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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 <헌신의 기쁨>를 읽고
한 걸음 더 가까이
1999년 07월 01일 (목)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진 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신 후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만남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전도를 할 때에도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과 그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간증한다. 어제 오늘을 생각하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주님을 만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분과 동행함으로 그 전과 얼마나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 놀라게 된다. 많은 부분에서 그 길은 분명함과 확신을 가지고 걸었던 길이었다.

그만한 확신으로 발을 떼어놓을 수 있는 길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은 확실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삶인지 늘 백퍼센트의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백퍼센트라고?  인간에게 있어서 순수 백퍼센트의 믿음과 백퍼센트의 확신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논의는 뒤로하고,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내가 주님의 지배를 받고 있고 전적으로 헌신되었다는 느낌으로 늘 충만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빠져있다는 생각,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새로운 장애물이 생길 때마다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듯한 서투름...  

 존 화이트는 이렇듯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진짜 알고 있지 못한 부분, 그러나 너무도 중요한 부분들을 참으로 명쾌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그럼으로 다시 주님 앞에 재헌신을 결심하도록 도와준다.

 그가 이 책을 다시 쓴 것은 몇 년 전의 일이고 그 때 나이 65세였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자 하며 더 많은 희망을 품고 더 많은 추진력을 발휘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 이유를 헌신에 둔다. 헌신이란, 그것이 진정한 것이라면 신체가 쇠약해지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쇠의 과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멋진가. 그를 보며 나는 점점 안정희구세력에 편입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께 "이러이러한 것들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안정되게 해주세요"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사역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기르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이제 어느 한 구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정착하고 싶어하고 군사로서의 나의 칼날은 너무 많이 무뎌져 있다. 

 그는 말한다. 헌신이란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시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때때로 미래 대한 소망을 새롭게 하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죽기까지 실행할 새로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우리는 시시각각 새롭게 개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좇는 삶을 두고 장사를 하지 않는다. 헌신에 대한 보상만을 화려하게 늘어놓지도 않으며 반대로 그에 따른 고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또한 균형 있게 다룬다는 의도로 천칭저울 양쪽에 무게를 재어가며 고난과 보상을 골고루 올려놓는 일을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헌신의 길에 따르는 바를 정직하고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기쁨과 고난이 있을 거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두 가지 모두 불가피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위로부터 태어난', 즉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읽을 때 천국의 분위기와 그 천상도시의 문화는 그들의 존재를 파고든다. 주님과의 교제가 깊을수록 이 같은 일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그 천상도시에서 고향같이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는 그들이 에녹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곳의 공기를 호흡한 시간의 양에 달려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도 점점 이 땅이 낯설고 주님나라가 그리워지니 그의 말은 정말 맞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하늘의 고향과 지상의 고향 사이의 줄다리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비롯되어 참 헌신이 없고 그래서 참 자유가 없다. 하늘의 보물'을' 갈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보물'만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원하여 고난을 받거나 일부러 가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경우도 따지고 보면 은밀한 욕심이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주님께 모든 권리를 드리고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공급하시면 기쁘게 받지만,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얻으려고 자신을 종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한 주인을 섬기는 마음, 하늘만을 바라보는 헌신은 우리를 자유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심리적으로 자유롭게 느끼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시야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자유는 하기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하기 원하는 것을 한다면 결국 그것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더 무거운 부담이 되는 예속 상태가 된다고 그는 지적한다. 우리는 이 늪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헌신의 바탕을 탄탄히 준비시킨 후에 인간관계와 고난, 법과 박해에 관해 다뤄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릇된 행위로 처벌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고 피할 수 있는 고난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감수해야 하는 고난이 있음을 그는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주님을 위해 뭔가 좀 하는 것 같은 드러난 행위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늘 내 마음과 동기를 살핌으로 교만의 유혹을 끊어야 할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을 읽음으로 다른 이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너무 좁고 우리가 이르러야 할 기준은 너무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안이 되는 것은 주님은 우리를 잘 아시고 끔찍이 사랑하심으로 무한히 인내하시면서 하나씩하나씩 가르치시고 고치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헌신 자체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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