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안식년이신 옥한흠 목사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그리웠는데 7월의 어느 날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러나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단순한 반가움으로 읽어 내릴 만한 책은 아니다. 개인적 신앙생활에의 지침이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책이 손에서 떨어질 쯤엔 양쪽 어깨가 무거워지는 책이다. 마땅한 부담으로 인해 시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를 야기시킴직한 그런 책이다.

 책은 묻고 있다. 어디 하나 냄새나지 않는 곳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보라. 네 명 중 한 명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이야기인가? 빛과 소금이어야 할 기독교인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바로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묻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생명력을 상실한 무기력함은 소위 이중적인 삶으로 인한 영적 분열증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삶, 말이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개인적인 구원만을 중시하고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충분히 가르치지 않은 교회에 있다고 책은 말한다. 그러한 책임통감에서부터 사회책임에의 엄중한 가르침은 시작되고 있다.

 빛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다. 빛이란 이 사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개인적 종교임과 동시에 공적인 종교로서의 역할을 균형 있게 감당해야 한다. 정의를 외치고 약한 자와 억눌린 자 편에 서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먼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책망함으로 어두움이 드러나게 해야 하고 우리의 빛된 행실을 보게 해야 한다. 빛을 비추면서 겪는 고통을 감수하며 말이다.

 빛의 자녀라면 우선 정직해야 한다. 사람들을 살맛 나게 하고 나라를 살리는 정직한 의인이 되어야 한다.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정직하게, 세상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며, 잘못한 것은 솔직히 시인하고, 책임전가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무엘서를 보며 배우듯 그 눈을 흐리게 하고 공의가 설 자리를 없애 나라를 망치는 뇌물의 위력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손은 깨끗케 할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해 비상벨을 울리는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선지자는 누구인가? 마음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토해 내는 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자이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선포하는 예언자인 것이다. 어떻게 예언할 것인가? 우선 복음으로 예언해야 한다. 복음을 펴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까지 복음 전파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또한 절대 기준인 하나님 뜻대로 사는 선한 생활로 예언해야 하며 이웃과 나를 위한 중보기도로 예언해야 한다. 이 나라의 소망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공의와 인자와 하나님과의 동행, 이 세 가지이다.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포함하는 구체적인 삶의 장 속에는 아직도 우리 나라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 여기는 또 하나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환경보존이라는 문제이다.

 환경문제가 먹고 사는 치열한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거나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시급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이 문제가 놓여 있는 위치를 잘못 파악한 데에서 나온 생각이다. 다른 모든 시급하고 중요한 일들과 그대로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이 환경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중요한 일을 수행하느라 너무 바빠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 인간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이며 하나님의 소유인 자연을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대로 관리할 책임을 위임받은 관리자로서의 인간이다.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절제와 절약이라는 개인적인 생활 습관에서부터 시작되어 환경 파수꾼으로, 환경 교육자로서의 선지자 역할까지 이어진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우리의 생존 문제이기에, 그리고 자식보다 더 예쁘다는 손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몇 년 전 정책 만드는 일을 했을 때, 어떤 살아 있는 표현이 국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로 몇날 며칠 정책회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모아졌던 지향점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백이 통하지 않는 사회, 돈 없어도 차별 받지 않는 사회, 떠오르는 아침 해가 희망일 수 있는 사회.... 표면적인 원칙 뒤로 행해지는 온갖 더러운 관행들 때문에 삶 전체를 좌절 당했을 많은 소시민들의 마음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럴듯한 정치광고문안을 위한 공허한 과정일 뿐이었다. 그런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해답은 바로 우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다.

 우리 나라에 그리스도인의 수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좌절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또 우리 밖에 없다. 이 책은 지속적으로 '우리', '우리'라고 말함으로 우리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악행을 보고 나는 아닌 것으로 손 터는 것에서 끝나서도 안될 것이고 힘없는 그리스도인만 많은 이 땅을 한탄하는 것에 머물러서도 안될 것이며 내 삶을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으로 드리는 것과 함께 사회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지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