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이단&이슈 > 이만희(신천지교회, 시온기독교신학원, 무료성경신학원)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허상을 봤다?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⑨
2007년 06월 15일 (금)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 이전기사

 

   
 
   ▲ 영화 <콘스탄틴> 포스터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콘스탄틴>이라는 영화다. 주연 배우는 ‘키아누 리브스’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이다. 이미 <매트릭스>, <스피드> 등의 영화로 세계는 물론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유명한 배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기독교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 역)이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혼혈 악마를 지옥으로 보내는 퇴마사 역할을 한다는 큰 줄거리를 갖고 있다. 주인공 콘스탄틴은 그로 인해 사후에 지옥으로 떨어질 자신의 운명을 구원하여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콘스탄틴은 지옥으로 떨어진 강력계 여형사 안젤라의 동생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대신 죽기로 한다. 이러한 ‘자기 희생’으로 말마임아 콘스탄틴은 사탄의 손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콘스탄틴>은 내용뿐 아니라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환상’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영화의 3가지 요소(3V)를 잘 살렸다고 칭찬을 받고 있다. 그 3가지 요소는 첫째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고(Voyeuristic), 둘째 관객을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Vicarious), 마지막으로 특수효과와 사실적인 액션의 표현이다(Viscerar). 이러한 3가지 요소와 ‘키아누 리브스’라는 특출한 배우가 합작해 낸 영화인 것이다. 만약 현대 영화에서 이러한 요소를 무시했을 때는 막대한 자금을 들인 영화가 흥행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 콘스탄틴이 주술로 마귀를 축출하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 ‘기독교적이다’, ‘반기독교적이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 속에 천사와 악마가 혼혈인의 모습으로 나온다는 것, 악령 퇴치를 위해 주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부적을 사용하는 것과 지옥을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것 등은 분명히 반기독교적인 내용이다. 그러난 지옥의 존재와 그것을 고통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 등은 기독교적이라 볼 수 있다.

 

필자는 어느 영화가 기독교적인 영화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어떠한 영화를 보든지 그것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줄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기독교적인 요소를 걸러낼 줄 알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또는 일반인들에게도 강조되어야 할 교회 교육이 아닐까?

이만희와 영화

이만희 씨는 영화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콘스탄틴>과 같은 영화는 어떠한가? 대체로 이 씨와 같이 나이가 지긋한(?) 이는 위와 같은 영화보다는 TV드라마를 더 좋아하지 않은가? 이 씨는 어떤지 모르겠다.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읽다보면 문득 위의 <콘스탄틴>과 같은 영화를 보는 듯하다. 반기독교적인 내용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씨의 성경 해설이 성경 본문 자체에 충실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특별한 목적으로 유도해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를 요한계시록 1:10절의 ‘성령에 감동하여’ 구절에 대한 이 씨의 해설에서 찾아보자.

먼저 요한계시록 1:10절의 성경 본문이다(한글개역성경).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만희 씨는 위의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부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책 목차에 그 항목을 별도로 표시해 둘 정도다. 그러나 그의 관심의 정도와는 정 반대로 그 성경구절에 대한 그의 해설은 형편없다. 이 씨는 “본문에 의하면 그는 유배 당시 주의 날 성령에 감동하여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고 설명했다(p. 57). 다음 단락에서는 “성령이 요한을 감동시키므로 요한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게 된다”(p. 58)는 수준으로 말했다. 해설을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애매하다. 요즘 유행하는 TV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인 ‘이것은 설명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여~’라는 대목이 연상될 정도다.

 

   
 
   ▲ 이 씨의 책 목차에 '성령의 감동' 항목이 있다
 
본문에 언급된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구절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4번 등장한다(계 1:10, 4:2, 17:3, 21:10). 계 1:10 외에 각각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4:2),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17:3),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21:10) 등으로 나타난다. 한글성경에는 조금씩 다른 표현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 헬라어 성경 ‘엔 프뉴마티’(εν πνευματι)의 표현이다. 영어 성경만 보아도 같은 표현인 ‘in the Spirit’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4번 등장하는 ‘엔 프뉴마티’의 표현을 이만희 씨는 그의 책에서 어떻게 해설해 놓았을까? 한 번 살펴보자.

계 4:2의 해설에서 이 씨는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구절의 의미를 보다 자세히 해설했다. 1:10 해설에서 소제목을 ‘성령의 감동’이라고 하며 싱겁게 지나간 것과 달리 ‘이 일 후에 마땅히 될 일’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4:2의 해설에서는 ‘엔 프뉴마티’에 대해 조금 더 길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았으므로(2절) 그가 본 것은 육안이 아닌 영안으로 본 것이며 육의 세계가 아니라 영의 세계이다. 물론, 하늘로 올라간 것도 요한의 영이지 몸이 아니다”(이 씨의 책, p. 109).

이 씨는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의미를 ‘영안으로 보는 것’ 그리고 ‘하늘로 올라간 것’ 등으로 설명을 해 놓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하늘 영계를 본 이는 요한뿐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뒤 따르는 이 씨의 해설은 그의 해설의 본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요한이 본 것은 ‘환상’이고 자신이 본 것은 ‘실상’이라는 것이다. 직접 읽어보자.

“여기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약 이천 년 전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본문에 기록한 하나님의 보좌를 환상으로 보았을 뿐이며 계시록 성취 때에는 그와 같은 입장으로 오는 목자가 있어 참 하나님의 보좌 형상을 본다는 점이다. 사도 요한의 위치에 있는 그 목자는 초림 예수님께서 그랬듯이 하늘 영계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증거한다”(이 씨의 책, p. 109).

이 씨는 계 21:10의 ‘엔 프뉴마티’ 부분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역시 직접 살펴보자.

“약 이천년 전 사도 요한은 본장의 새예루살렘 성을 환상으로 보았지만 본문 성취 때 그의 입장으로 오는 한 목자는 실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치 모세가 산에서 하늘 영계의 장막을 보고 내려와 그 모형으로 이 땅에 장막을 지은 것처럼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을 이 땅에 창조한다. 거룩한 성을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목자에게 천사가 보여준 까닭은 그로 하여금 이 땅에 영계와 같은 거룩한 성을 짓게 하기 위해서이다”(이 씨의 책, p. 459~460).

무슨 말인가? ‘엔 프뉴마티’의 상태 즉,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본 것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환상’적인 것이고, 진실된 것인 ‘실상’은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이 땅에 온 이만희 씨가 보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이 씨가 설명하는 ‘엔 프뉴마티’의 뜻이 바로 그런 것인가? 위에 언급한 이 씨의 계 1:10의 해설과 지금의 계 21:10의 해설을 연결하면 더욱 재미있어진다.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 그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 육안이 아닌 영안으로 모든 것을 보았지만 그것은 실상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성령에 감동하여도 결국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닌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무조건 이 씨를 추종하는 자만이 진실된 것을 본다는 것 말이다. 허허!

   
 
   ▲ '사도요한=환상, 이만희=실상'이라는 그의 주장
 
‘성령에 감동하여’란?

‘성령에 감동하여’란?

 

요한계시록에는 ‘성령’과 관련된 구절이 많이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령에 감동하여’의 구절은 계 1:10 등 요한계시록에 4번 나타난다. 그뿐 아니다. 성령에 대한 다른 언급들도 있다. 모두 10번 나타난다(2:7, 2:11, 2:17, 2:29, 3:6, 3:13, 3:22, 14:13, 19:10, 22:17). 그리고 역시 성령을 의미하는 ‘일곱 영’의 표현도 4번 등장한다(1:4, 3:1, 4:5, 5:6). 즉, 요한계시록 22장 전체에서 성령과 관련된 구절이 18번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거의 매 장마다 한 번씩 성령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요한계시록은 저자 요한이 철저히 성령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뜻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라는 구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리처드 버쿰은 성령에 의해서 생포(rapture)된 상태, 그로 인한 환상의 경험을 기술적인 용어로 설명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Richard Bauckham, "The Role of the Spirit"  The Climax Prophecy. 1993. pp.150~151). 이 말은 요한은 환상을 보면서 자유로운 대리인(agent)으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는 요한이 경험하고 있는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의 상태는 성령에 의해서 생포되어 황홀한 지경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요한 자신의 정상적인 감각들이 성령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시각들과 청각들로 대체되었다는 말이다. 즉, 성령에 의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그의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이것을 ‘엔 프뉴마티’라고 하는 것이다. 

홍창표 교수는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를 ‘영적 고양’(the exaltation)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1권, 크리스천 북, 1999. p.199). 이때의 영적 고양 상태는 황홀감(a trance)과 몰아의 경험(ecstatic experience)으로 묘사된다. 홍창표 교수는 본문의 ‘엔 퓨뉴마티’의 상태를 욥바에서 사도 베드로의 경험(행10:10; 11:5)과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의 체험(행22:17; 고후12:2~4)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데이빗은 ‘엔 프뉴마티’와 관련된 가장 가까운 구약성경으로 미가 3:8을 언급했다(David E. Aune, Revelation(WBC) 1-5,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상>, 솔로몬, 2003. p. 441).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미 3:8)라는 미가서 구절의 의미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다니엘 7장이 요한계시록 1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단 7:9의 “내가 보았는데”라는 등의 표현이 계 1:10의 ‘엔 프뉴마티’에 근본 개념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엔 프뉴마티’의 의미가 신구약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이빗도 위의 홍창표 교수처럼 ‘엔 프뉴마티’를 바울 서신과 연결시켰다. 특히 바울 사도가 기독교인들의 기도 생활과 ‘엔 프뉴마티’를 연결시켰음을 언급했다(고전 14:15).

권성수 교수는 ‘엔 프뉴마티’를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받는 상태”로 표현했다(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p. 32~33). 그는 인간의 영이 자연적인 세계와의 접촉에서 떠나 새롭고 신령한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엑스터시’(ecstasy)(행 10:10, 11:5, 22:17)한 상태가 ‘엔 프뉴마티’이지만 단순한 인간 영혼의 ‘엑스터시’한 상태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제의 상태임을 강조했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엔 프뉴마티’는 인간 스스로가 술에 취한 듯 황홀한 무아지경에 빠져 횡설수설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제 속에서 이성을 가지고 허락하시는 계시를 정확하게 보고 듣게 되는 상태라는 것이다. 오히려 보통의 상태보다 더욱 또렷하고 정확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만희 씨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엔 프뉴마티가 어쩌고 저쩌고...’하는 것보다는 ‘사도 요한=환상 혹은 허상, 나=실상’인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그는 성경 본문의 내용을 마치 SF영화라도 만들듯이 각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콘스탄틴>의 결론은 보기에 따라 황당한 내용으로 끝난다. 마치 ‘금연’ 홍보 영화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탄은 줄담배로 인해 망가진 콘스탄틴의 폐를 깨끗케 해주며 그를 이 땅에 다시 살린다. ‘자기 희생’으로 천국에 가려는 콘스탄틴을 이 땅에 살려서 다시 줄담배로 지옥에 올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영화는 종종 황당하고 허무한 결론으로 마쳐진다. 이만희 씨의 주장도 그와 다르지 않다. 성경을 성경답게 읽고 해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장운철,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2000.
------, ‘장막성전의 후예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 ‘이만희 이단성 밀착확인’ ,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5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1’ ,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월호
------, ‘이단사이비문제 종합 2’,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2월호
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김서택, 역사의 대 드라마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2004.
박형용, 신약개관, 아가페출판사, 1993
송영목,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쿰란출판사, 2007
심창섭 외, 기독교의 이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1998.
장종현, 최갑종, 사도 바울, 천안대학교 출판부, 1999
정행업,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논쟁,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최병규, 이단 진단과 대응, 은혜출판사, 200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이단사이비 종합 자료 200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004.
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1권, 크리스천 북, 1999.
------, 하나님 나라와 비유, 합동신학대학원출판사, 2004
Chuck Smith, Dateline Earth, 이요나 역, <계시록의 숨겨진 비밀>, 이레서원, 1995.
David E. Aune,  Revelation(WBC) 1-5,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솔로몬, 2003.
Graeme Goldsworthy, The Gospel in Revelation, 김영철 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성서유니온, 1996
J.A. Schep, The Nature of the Resurrection Body, 김종태 역, <부활체의 본질>,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Markstrom, Symphony of Scripture, 오광만 역, <성경교향곡>, IVP, 1997
Michael Wilcock, I saw Heaven Opened, 정옥배 옮김, <요한계시록>, 두란노, 1989.
Richard Bauckham, "The Role of the Spirit"  The Climax Prophecy. 1993.
Robert E. Coleman, Songs of Heaven, 석창훈 옮김, <천상의 노래>, 두란노, 2000.
Robert H. Stein, An Introductio to the PARABLES OF JESUS, 오광만 역, <비유해석학>, 엠마오, 1996
---------, The Method and Message of Jesus' Teachings, 오광만 역.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여수룬, 1991
Vern S. Poythress, The Returning King, 유상섭 옮김, <요한계시록 맥 잡기>, 크리스천출판사, 2002.
William D Hendricks, Revelation, <요한계시록>, 아가페출판사, 1895.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⑩ [다음기사보기]
장운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JMS 정명석, 징역 30년 구형
이재록, 신옥주 등 자칭 남신 여
사이비종교 소재 영화 <원정빌라>
교회 AI(인공지능) 도입, 52
기억함의 사명을 실천하는 이성만
교인 10명 중 4명 ‘명목상 기
주의 날은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