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드디어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우리가 태국에 집회를 하러 간 사이에 S가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사고의 대략을 이렇다. '아름다운 땅'에 오신 손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맡겨놓은 키를 가지고 나가 시동을 걸고 건물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고는 크지 않았다. 정말 다행한 것은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S는 차를 그렇게 망가뜨려 놓고 겁이 나서 가출을 해 버렸다.

 S는 IQ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떨어졌다. 그녀는 3년 전에 유흥가에 있다가 우물가에 왔었다. 열 여섯이었던 그녀는 3년 동안 많이 성장했다. 키도 훌쩍 컸고 얼굴은 활짝 피었고 한층 여성스러워졌다. 여성 홈 공동체인 '아름다운 집'에 네 명의 자매 언니들과 함께 살면서 아름다운 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름다운 땅의 조일준 집사는 그녀에게 에니메이션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열고 있었다. 그 분야만은 정상인 이상의 집중력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태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S가 가출을 해서 사흘 정도가 지나 있었다. 다행히도 S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쳤더니 S가 받았다. 나는 S를 일단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되도록 부드럽게 말했다.

 "너 사고를 내서 걱정하는 모양이구나. 걱정하지 마. 차는 이미 다 고쳐서 주인이 가져갔어. 운전을 무척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누구나 그럴 수 있지 뭐. 밖에서 방황하지 말고 어서 들어와. 잠은 어디서 자는 거니?"

 "의자에서요."
 "의자에서? 춥지 않니?"
 "거의 안 자요."
 "괜한 고생 말고 어서 들어와. 차 고장 난 것은 우리가 다 처리했으니까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알았지!"   
 "예."

 그러나 그 날 S는 우물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이 더 지나 수중의 돈이 다 떨어져서야 S는 돌아왔다. 그런데 S를 보고 나는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이전의 S가 아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남성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진하게 화장을 했고 입술에는 루즈를 발랐다. 마스카라로 속눈썹도 요염하게 손질을 했다.

 나는 S에게 직선적으로 물었다.
 "애인 생겼니?"
 "예."
 "누구야?"
 "오빠예요. 직장 다녀요."
 S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디서 만났니?"
 "여의도에서요."
 "어떻게 만났는데."
 
"제가 앉아 있는데 저한테 와서 예쁘다고 했어요."
 "···같이 잤니?"
 "아뇨."
 "정말?"
 "···네"
 '너 거짓말하면 안돼. 사실대로 얘기해!' 그렇게 다그치려다 그만 두기로 했다. 어차피 엎지러진 물이 아닌가? 

  그런데 날이 갈수록 S에 대한 불안감은 자꾸만 커갔다. 그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땅의 조일준 집사, 아름다운 집의 정성은 간사도 같은 느낌을 말했다. 아, 임신이라도 됐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름다운 집 리더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아무래도 S가 임신을 한 것 같습니다. 구역질을 합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보건소에 가서 검사해 봐."
 결과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임신이었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막막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문을 구했다. 청소년 전문 상담을 하는 집사였다.
 그가 말했다.

 "해답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낙태를 시켜야 합니다. 산모가 지능이 떨어지는데 아기인들 온전하겠습니까? 본인은 물론이지만 아기도 불행합니다. 만약에 목사님의 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 한 영상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태아가 가시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것은 일종의 분노 같은 것이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까?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은 아기를 낳을 자격도, 행복해질 자격도 없다는 말입니까? 어떤 것도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명 앞에 그 어떤 윤리도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의 딸이 그렇게 됐다면 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아기를 낳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낙태를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 태아야말로 가장 약하고 불안한 실존이 아니던가. 편리주의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한 순간의 판단에 의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S가 좀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