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나의 카렌스가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7년여 동안 충성했던 프라이드는 마침내 교회에 반납을 했고 경제성이 뛰어난 카렌스를 뽑았던 것이다. 곁에는 아내가 탔고 뒤에는 연이가 탔고 맨 뒷자리에는 주애와 주호가 탔다. 녀석들은 신이 나서 견딜 수 없는지 아무리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른다. 막무가내다.

  나는 연이에게 남동생인 태현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네 남동생의 이름이 태현이라고 했지?  청주에 살고 있니?
  -몰라요.
  -몰라? 그럼 누가 아니?
  -혹시... 고모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연이의 고모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걸죽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나는 그가 연이의 고모부라는 것을 확인했다.

   -태현이 있나요?
   -누굽니까?
   마치 억한 감정이라도 있는 사람을 대하듯이 말했다. 나는 빨리 내 자신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교회 목사이며 연이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태현이와 수정이를 데리고 아버지가 있는 꽃동네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연이의 고모부는 화를 버럭 냈다.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놈인데 내가 어떻게 압니까? 몰라요.

   나는 태현이를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수정이가 살고 있는 고아원으로 갔다. 담벼락에다 차를 세워놓고 원으로 들어서는데 연이보다 한 뼘은 커 보이는 멋진(?) 아가씨가 뛰어나왔다. 수정이였다. 수정이는 아버지가 병들어 눕고 어머니가 가출을 하자 연이와 함께 고아원으로 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수정이는 고아원에서 7년을 자라난 셈이다. 두 자매는 손을 마주 잡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고아원의 사무장님과 선생님을 면담했다. 수정이는 빵 굽는 일에 퍽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제과점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어린 동생들을 잘 돌봐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면담을 마친 후 우리는 음성에 있는 꽃동네로 향했다. 수정이를 연이 옆에 앉혔다. 둘은 즐거운 듯 재재거리며 이야기가 한 참이다.  

   마침내 꽃동네에 도착을 했다. 그곳은 나의 고향이기도 했다. 연이의 아버지는 '구원의 집'에 있었다. 그는 당뇨에다가 간경화, 그리고 서너 가지도 더 되는 합병증을 앓고 있었다. '구원의 집'은 마지막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면회를 신청하고 10분쯤 기다렸을 때 연이의 아버지가 휠체어에 실려 면회실로 들어섰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흔 다섯의 나이치고는 너무나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예순은 족히 되어 보였다. 연이가 먼저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수정이는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7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으리라. 더욱이 성장하는 애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연이의 아버지도 수정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 나를 소개한 후 수정이를 끌어당기며 '수정이가 몰라보게 컸지요'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수정이를 알아보고 "수...수정이가 ...이렇게 컸구나! 이리 와 봐라"하며 울먹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수정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면서 자리를 피했다.

 면회를 끝내고 연이의 아빠에게 돈 3만원을 쥐어주며 돌아서는데 연이의 아빠가 나를 잡아당긴다. 
 -목사님, 저는 얼마나 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연이와 수정이를 잘 좀 돌봐주세요.
 -···걱정 마세요. 몸 건강히 오래 오래나 사세요.
 그의 손은 차갑고 앙상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