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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믿음, 둘은 손 맞잡고 함께 일한다
2007년 01월 19일 (금)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내 영혼의 번지점프> 중에서
루시 쇼 지음 / 김유리. 김명희 옮김 / IVP 펴냄

두려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을 수 있다. 단순히 두려움을 부인하는 것이 용기는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 본성과 경험의 한 부분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헤치고 나아가야 할 두려움인지 아니면 마땅히 피해 가야 할 것에 대한 경고성 두려움인지, 후자라면 부딪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루실 클립톤은 인종 편견에 철퇴를 가한 선구자적 흑인 시인으로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행을 바랄 수도, 요령을 피울 수도 없다. 그것은 통과해야 할 두려움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려울 거 많은 이 세상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인간적이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대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칠 바엔 글 쓰는 일을 아예 접는 편이 낫다”.

두려움을 내 나름대로 풀이하자면 이렇다. 예를 들어 날씨를 점수로 매기는 지표가 1에서 10까지인데 언제나 10점 만점이라면 그 10점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언제나 맑고 화창한 날씨뿐이고 그와 비교할 만한 폭풍우 치는 사나운 날씨가 전무하다면, 날씨가 아무리 좋은들 좋은 줄 모를 것이다. 이는 용기의 정도를 매기는 데도 마찬가지다. 생각도, 행동도 언제나 배짱 두둑한 이에게 용기를 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말일 것이다. 용감성이란 극복해야 할 두려움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두려움은 무시하거나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누가복음 14:28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일에 착수하기 전에 먼저 “예상 비용부터 계산”하라고 충고하신다.

사랑하라는 계명이 주어졌다면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이 없다 해도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전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잘 해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부상일 수 있다. 설령 하나님과 나 자신 외에 나의 재능이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해도 말이다.

당신이 홈런은커녕 어깨 너머 가는 공도 못 칠 거라고 감독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역으로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셈이다. “자, 한번 해 봐. 배짱 좋게 쳐 보란 말야. 야구장 담벼락까지 넘겨 봐!” 여기서 따라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면, 그건 두려움은 느끼되, 날려 보내라는 것이다. 남들한테 어리석게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실패할 게 뻔하다는 시선을 감당해 보라. 마치 문간을 들락거릴 때마다 어깨를 스치는 발처럼, 어깨 너머로 두려움을 스쳐 보내라.

그런 자세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라면 물론 그렇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은 자기 종들에게, 할당된 몫을 투자하라고 말한다. 투자에는 언제나 위험 소지가 따른다. 시세 변동으로 약세와 강세가 반전에 반전을 밥먹듯 하는 증권 시장을 보면 알 것이다. 국가 경제나 국제 정세, 아니면 유혹적인 새로운 기업 공개 등으로 등락이 시시각각 변한다. 주식 투자는 우리가 아무리 현명하고 보수적인 재정 고문을 갖고 있다 해도 비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비유가 제시하는 유일한 보증이 있다면, 주님 손에 우리의 은사를 맡길 때 그의 나라를 위한 이윤이 창출된다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종잣돈이라고 부르는, 얼마 되지 않는 시시하고 곧 폐기될 것 같아 보이는 부스러기 지폐 조각을 고랑 사이에 묻고 비옥한 토양으로 덮어 주라고, 그러면 언젠가 싹이 트고 열매 맺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다. 그분은 이 비유의 진리를 아셨을 뿐만 아니라 몸소 성취하셨다.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모험을 감행하려는 우리의 동기는 무엇인가?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유명 인사가 되고 업적을 쌓거나, 나보다 소심해서 겁내는 친구들에게 나의 우월함을 뽐내려는 욕심이, 모험을 감행하는 이유요 동기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권력에 대한 인간적인 집착에 위태로이 빨려 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현명한 두려움(현실적 위험을 직면하는 것)과 가공의 두려움(사사로운 불안)을 구별하는 법을 알았다면, 담대함과 광적인 몰두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담력과 용기, 대담함과 오만으로 인한 무모함과 환상은 또 어떻게 다른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하나의 수단일 뿐이요, 목적이 아님을 깨달았는가? 이는 오래도록 분명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되묻곤 하던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분명히 믿고 있다. 우리가 도달하려 노력하는 목적과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나라와 우리에게 품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임을.

이 때 다시 요구되는 것이 순종이라는 열쇠다.
순종과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있어 연결고리 마냥 붙어 있다. 둘은 손을 맞잡고 있다. 친밀한 동역자처럼 함께 일한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보이지도 않고 더듬어 헤아릴 뿐인 미지의 영역으로 떠나는 모험, 그것을 무릅쓰는 것이 믿음이다. 이는 나의 인생과 운명, 미래에 대해 나 자신이 휘두르던 일방적인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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