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순  전도사/ 멤피스 주립대학 교육학 박사 수료, 현 서울침례교회 아동부

5월 15일자 어느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우리 나라 부모의 68%는 아이의 적성에 따라 양육하기보다는 부모의 욕심대로 교육 방향을 결정한다.?

68%라는 수치가 어떠한 기준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의 기사 내용에 필자는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자녀의 교육 방향을 결정할 때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비중을 더 많이 둔다. 자녀의 기질이나 성향보다는….

정태(가명)와 현태(가명)는 목회자이자 교수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혈기 왕성 그 자체인 4학년, 6학년 남학생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들의 행동이 시간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였다가 다시 활달한 그들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오곤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원인은 부모님이었다.

그들 형제는 재밌게 다른 아이들과 놀 때도 다른 아이들을 리드하는 대장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이나 부모 중 한 명이 들어오면 그들은 온순한 두 마리 양이 되어 버린다. 조금 전까지 "얘~ 하자, 얘 너는 이쪽으로 서"하며 호령하던 두 형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된다.

어느 날인가 그들은 어머니의 출현을 미처 보지 못하였고 두 지도자는 용맹스럽게 친구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뒤쪽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중에야 어머니를 먼저 본 동생이 가만히 있었고 영문을 모르는 현태는 "야! 정태야" 하며 돌아서다가 어머니를 보았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부동 자세를 취하였다. 그 때 사모님의 부드러운 한 마디가 그들을 긴장시킨다.

"정태야, 현태야, 너희들은 목사님 아들이야 조용 조용 놀아야지 아빠 욕먹으셔."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위장하였지만 곁에서 듣고 있던 필자의 귀에는 '나중에 집에 가서 보자'라는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순간적으로 그들을 향한 연민이 엄습해와 한마디 거들었다. "에이, 사모님! 저렇게 노는 것도 이 때뿐이에요.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그냥 두세요. 보기 좋네요."

그런데 사모님은 이렇게 응답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욕해요. 목사 아들이 더 별나다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잡아야 해요."

활달하고 지도력 있는 두 어린이의 잠재력이 부모의 이기적 생각에 의해서 파괴당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학교 교사들도 새 학기가 되어 새로 올라온 학생들을 그들 부모의 직분에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맞추어 학생에 대한 기대치를 갖거나 혹은 선입견을 가진다. 이러한 기대치나 선입견이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나의 학생을 알고 가르치는 데 상당한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부모나 교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녀를 위함이라는 미명아래 행하는 부모의 이기적 교육방향이나 교사의 시야를 막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새로 교사 직분을 맡은 열심 있는 교사에게 4명의 학생을 담당하게 하였다. 교사는 아이들의 취미, 장래 희망들을 물어보고 열심히 수첩에다 적었다. 그리고 전화번호와 인터넷 주소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인척 사항도….

다음 주일 교사는 공과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수업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인척 사항을 보고 어릴 때부터 교회학교를 다녔음직한 장로님의 손녀이름을 부르며 성경의 4복음서 이름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고 아이가 수줍음을 탄다고 생각한 교사는 자꾸 발표하는 습관을 들이면 학교에서도 발표를 잘하게 된다고 부추겼다. 그 아이는 그 다음 주일에 나오지 않았다. 장로님의 며느리가 원불교 성도라 어릴 적부터 불교 교육을 받고 자랐다. IMF를 맞이해 하청업을 하던 아들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아들은 숨어 지내야 하는 형편이 되고 며느리는 일용직을 나가게 외어 장로님께서 손자 손녀를 맡게 되었다. 이날이 그 어린이에게는 교회 첫날이었던 것이었다.

분명 4복음이 무슨 말인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을 것이다. 장로님은 손자 손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오히려 이 형편에도 위로를 받으신다고 하셨다. 교사는 그 어린이에게 전화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그림 엽서도 보내고 자신의 작은 부주의의 대가를 크게 치르고 난 후에야 그 학생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한번 닫혀진 학생의 마음을 여는 데는 이후에도 얼마나 더 걸렸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교사나 사역자는 내게 맡겨진 학생들을 이상희, 김진수, 박준섭 등 어린이를 일대일 인격적 관계로 대하고 가르치고 양육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심령은 이목사의 아들, 박장로의 손녀, 김집사의 딸이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