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문화 | 감동이 있는 한대목
       
그분께 속하면 그것들이 십자가에 못박힌다
2006년 11월 27일 (월)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마음의 혁신> 중에서
달라스 위라드 지음/윤종석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믿음(확신)과 소망을 실제로 서로 분리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분리하는 순간, 참 본질을 잃고 만다. 기쁨과 평안 없는 사랑, 사랑과 평안 없는 기쁨, 사랑과 기쁨 없는 평안을 상상하려고 해 보라. 믿음과 소망 없는 기쁨, 평안, 사랑도 상상해 보라.
다른 것들이 빠진 사랑, 기쁨 등은 이미 그것일 수 없음을 이 간단한 시도만으로 알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기쁨과 평안 없는 “사랑”, 사랑과 기쁨 없는 “평안” 따위를 이 세상에서 이미 너무 많이 보았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소망 없는 기쁨은 가장 절묘하게 왜곡된 인간 절망의 발로 가운데 하나다. 현대 세속주의(토머스 하디, 알베르 카뮈 등)가 끝없이 그것을 조장해 왔다.

그러나 그런 분리가 “종교”의 산물로 등장할 때가 너무 많다. 통상적 방식의 종교가 교만과 두려움을 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매번 더 심화시키는 까닭이 거기 있다. 교만과 두려움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5:19-21 등에서 말한 “육신의 행위”의 두 뿌리다. 육신의 행위는 색욕과 악의,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어 세를 불리는 다른 해로운 감정들에 지배당한다. 의지/심령/마음이 그런 감정에 지배당하는 한 삶은 한마디로 절망적이다.
반면, 부정적 감정들을 제하거나 적어도 우리 삶의 지배 요인으로서 그것들을 제하는 것은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향한 긍정적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에 기초한다. 반대 방향으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즉 파괴적 감정을 먼저 뿌리 뽑으려 해봐야 소용없다.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한 세상적 지혜와 많은 종교의 흔한 실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예수 안에 있어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점점 더 보고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는”(시36:9)것을 깨달아 갈 때, 파괴적 감정들과 거기 수반된 행동들은 우리를 떠나간다.

거룩한 교제 안에 자라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은 두려움, 분노, 채워지지 않은 욕망, 상처, 거부를 깨끗이 몰아낸다. 그런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더 이상 없다. 잠깐은 있을 수 있으나 점차 줄어든다. 그리스도께 속했다 해서 나쁜 감정들이 즉각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분께 속하면 정말 그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과거시제).”(갈5:24)고 말한다.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은 한낱 육신적 정과 욕심이 죽어 가는 중이며, 그것이 전처럼 우리 삶 전체를 좌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자체적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삶의 왕좌에 모시고 십자가에서 제자리를 찾은 자들의 모든 부정적, 파괴적 감정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듯 실제적으로 말해 감정 차원의 심령 변화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에 우리 마음을 열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가꿔 나가는 문제다. 우선 하나님과 이미 그분 안에 살아가는 자들로부터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차츰 자라가며 우리도 태도와 기도와 행동으로 다른 이들과 온 주변에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베푼다. VIM 패턴에 따라 우리는 그런 의도를 품어야 하며, 내 전 존재와 행위에 그것을 담기로 결단해야 한다. 물론 이미 말한 것처럼 우리 사고생활의 초점은 하나님께 있다. 그럴 때 은혜를 통해 우리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 안에 거하려는 이 의도를 일상적 실존의 미세 조직으로 옮길 수 있다. 예수와 아버지와 동행하여 살면, 의도한 것의 실현에 필요한 세부적 방법을 가르치고 보이신다.

우리가 해야 할 몇 가지 일은 다음과 같다. 많은 이들의 경우 자기감정의 실체를 정직히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척이다. 바울은 로마서 12:9에서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했다. 이 일만 하는 데도 진지한 노력과 깊은 배움과 넘치는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 일상생활과 종교적 교제에는 진실성 없는 사랑 표현이 깊이 베어있고, 멸시와 분노가 동반될 때도 많다. 일부 상황에서 부득불 위선에 빠지지 않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피하는 길을 배울 수 있다. 위선만 버려도 엄청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금세 볼 수 있다.
할 일은 그 외에도 아주 많다. 자기와 가까운 관계이거나 한때 그랬던 사람들을 향해 깊은 부정적 감정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월과 함께 품어 온 상처는 우리를 짓눌러 사랑과 기쁨과 평안의 영적 성장을 막았다. 상처는 아예 내 정체의 일부로 스며들었을 수도 있다. 상처 없이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꺼이 나를 맡기고 말씀과 성령의 치유사역을 받아들인다면 상처의 치유나 절제는 가능하다. 이것은 장기간 잃었거나 추구해 온 것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절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단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겼다면 일반적으로 다음 할 일은 내 감정의 실체를 인식하고 주님과 생각을 같이함으로써 특정 감정-잘못인 줄 아는 행위나 인격으로 우리를 몰고 가는 파괴적 감정-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분이 이 작업을 도우신다. 우리는 그런 감정들이 무엇인지 “주님께 드리는 편지”에 적거나 또는 내 말과 하나님 음성을 동시에 들을 줄 아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의논할 수도 있다.

개인들이나 소속 교제모임이 나를 위해 기도사역에 임할 수 있다. 감정의 진척 상황을 일기로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파괴적 감정의 기초가 되는 개념과 이미지나 과거의 사건들이 일기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 그런 것들 역시 대치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생각과 자아의 감정 차원에서 우리가 사랑과 가쁨과 평안에 지배되는 상태로 자라가는 데 있어 이런 많은 구체적 일들이 감당하는 일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장경애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목회자 설교 준비 모임, ‘프로
‘여자 아빠, 남자 엄마’...
목사 은퇴금, 신임 목사 권리금으
목회자 성범죄 매주 1건 발생 ‘
‘기독사학’ 생존과 발전 방안은.
목표의 재설정이 필요한 교회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