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덕 목사/ 한빛교회

 우리 나라의 가옥 구조는 실내에 들어갈 때 반드시 신을 벗어야 한다. 형사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 외에는 신을 신고 방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날 때도 반드시 신을 벗어야만 한다.

손님과 승객의 방
 예전에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했었고, 약사들이 파업을 했었다. 지하철노조의 파업은 지하철 운행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약사의 파업은 환자에게 약을 팔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의사들이 파업을 오랜 동안 반복했는데, 의사들의 파업은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적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였거나, 한약의 판매구조에 문제가 있었거나, 의약분업이 많이도 잘못되었나보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다만 당사자 간에 분쟁의 충분한 이유와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들 파업의 최대 피해자는 승객들과 환자들이었다. 파업의 직격탄이 승객과 환자에게 떨어졌다. 지하철노조의 분쟁 대상은 서울시와 지하철 관계자들이며, 약사의 분쟁 대상은 한의와 보건당국이고, 의사의 분쟁 대상은 약사와 보건당국이다. 그런데도 파업의 포탄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승객과 환자에게 떨어졌다.

그러나 승객과 환자는 절대로 폭격을 받아서는 안 되는 선량한 양민이다. 오히려 승객과 환자는 그들에게 보호받아야 할 고마운 손님들이다. 그들에게 직업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승객과 환자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객과 환자는 파업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다. 그들에게는 윤리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승객과 환자를 보호할 절대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 따라서 만약 파업의 포탄이 선량한 승객과 환자에게 떨어진 것이 실수였다면 급히 파업의 방향을 조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승객과 환자를 향해 직격탄을 퍼부었다.

 군인은 온갖 무기들을 동원해서 적을 섬멸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래서 적군을 포로로 잡으면 설령 아군을 많이 살상한 적이라도 죄를 묻지 않고 보호하였다가 석방한다. 그러나 그런 특권을 가진 군인일지라도 양민을 해치면 법과 도덕과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파업을 하는 이들의 포탄이 분쟁의 대상이 아닌 선량한 승객과 환자에게 마구 떨어졌다. 승객들은 지하철을 타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굴렀고, 환자들은 약을 구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을 당하거나 죽어갔다.

 파업을 하는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절박성과 정당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량한 양민에게 더군다나 감사해야 하고 보호해야 할 손님들에게 가차없이 직격탄을 퍼부은 것은 분명 승객과 환자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간 황당함이다. 만약 그들이 급박하게 신을 신고 방에 들어가야만 했다면 분쟁 당사자들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환자는 약사와 의사에게 직업을 갖게 하고, 어떻게 책정이 되든지 치료비를 절대로 깍지 않고 현금으로만 지불한다. 더욱이나 환자들은 약사와 의사를 존경한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어떤 지시든지 순종한다. 때로는 마치 잘못한 학생같이 민망한 책망도 얌전하게 기꺼이 받는다. 그런데 왜! 범인도, 빚쟁이도 아닌 보호해야 할 이렇게 고마운 승객과 환자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가게 되었을까? 그것은 애당초 조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파업의 거대한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기독 의료인들은 환자를 진료했다고 하니 참 다행스럽다.

예수님의 방 (요 5장)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다. 그 베데스다 못의 물은 가끔 스스로 움직인다. 아마도 간헐천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사람들은 가끔 물이 분출하여 못의 물이 움직이는 현상을 천사가 내려와서 휘저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치유된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때문에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려고 그 전설을 의지하는 많은 병자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 중에는 무려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있는 병자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누워있는 그 병자를 만나셨다. 예수님께 치유 받은 대개의 병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을 찾아 왔고 치료를 간청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병자에게는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 가셨고 먼저 치유를 제의하셨다. 더욱 특이하게도 이 병자는 예수님에게 시쿤둥 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다.

 38년이나 병들어 있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하지만 지난 38년 동안도 힘들었지만 남은 평생도 그렇게 병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 병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고, 그런 절망에서 구해 주셨다. 이것은 보통 은혜가 아니다. 목숨을 다하고 인생을 다해서라도 갚아야 할 은혜이다. 일반적으로 목이 마를 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을 받으면 감사한다. 만약 등에 작은 가시가 박혀 가벼운 고통을 당할 때, 누군가가 그 작은 가시를 뽑아준다면 마치 총알이라도 뽑아준 것처럼 크게 감사한다. 그리고 은혜를 갚지 않을지라도 은혜를 갚을 것처럼 최소한 가시를 뽑아준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고 놀랍게도 38년 된 병자는 그 절망의 병을 고쳐준 은인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마침 그 병자가 치유 받은 날이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치유를 받고 안식일인 그 날 침상을 들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것이 율법적으로 문제가 됐다. 우습게도 침대를 들고 간 것이 노동으로 간주되어 율법의 안식일 노동금지법에 저촉 된 것이다. 얼마 후에 은인이 대해 관심 없던 그가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은인을 알게되자 침대를 들고 갈 수 있게 병을 고쳐준 은혜를 갚거나 감사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침대를 들고 가게 했다고 예수님을 고발했다.

절망의 가혹한 병을 치료해 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치료됐기 때문에 엉뚱하게도 안식일에 침대를 들고 갈 수 있었던 것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자신을 치료한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이 놀랍고, 알게 되자 고발을 한 것이 놀랍다. 그는 감사를 위해서는 예수님을 전혀 몰랐고, 곤란케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알았다. 그런 끔찍한 병을 앓는 병자는 설령 단 하루 동안만을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시적인 치료를 받을지라도 목숨으로 은인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 '낫고자 하느냐'고 물을 때, 그는 누구도 자신을 물 속에 넣어주지 않아 병을 고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병들어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몰인정과 불친절 때문이라는 것으로 들린다. 아마 38년 동안 그렇게 늘 원망하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38년 동안을 병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병은 자신의 문제이다. 오히려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있었으면서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작고 큰 은혜이다. 그럼에도 감사치 않고 도리어 원망만 했다. 심지어 원망의 대상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마치 그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급기야 안식일에 병을 치료해주어서 침대를 들고 가게 했다고 예수님까지 원망하지 않았나 싶다. 예수님께서 치료 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더 큰 죄를 짓지 말 것을 경고하셨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도 감사하지 않았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원망으로 진전되어, 결국 안식일 노동금지법 위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님을 고발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의 방에 신을 신고 침범해 버렸다.

이상한 일들
 최근까지 우리 나라의 법에는 아주 요상한 점이 있었고, 우리 나라에는 해괴한 현상들이 있었다. 어떤 권사님의 땅 한곳에 갈곳 없는 가족이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권사님께서 사랑과 동정으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공터를 빌려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그 거주자는 그 땅의 권리를 법에 주장했다. 결국 그 거주자는 권사님의 땅을 차지했다. 후에 권사님께서는 그 땅의 남은 곳에 집을 짓게 되었다. 그러자 그 거주자는 소음과 먼지가 싫다고 건축하는 내내 건축을 하지 못하도록 고소를 했다. 권사님께서 보관하신 소송 서류가 한 상자나 되었다.

 흔히 땅의 일부분을 공짜로 이용한 후에 땅의 주인이 사용하려고 하면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으레 보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땅을 무상으로 빌려준 주인이 땅을 되찾으려면 공짜로 사용하던 거주자에게 사정해야 하고 보상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순리대로라면 단 1년을 거처했더라도 은혜를 감사하거나 선물은 고사하고라도 최선을 다해 협조해야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공짜로 땅을 사용하던 사람이 훼방을 하며, 대가를 받아야만 비워주고, 심지어는 땅을 차지해 버리기도 한다.

 한 그리스도인이 어려운 이웃을 동정했다. 그래서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이웃은 한 번도 감사치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웃은 자신의 불행이 그 그리스도인 때문인 것처럼 원망하며 짜증까지 내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이웃을 마음에 두었다. 자신이 옷이라도 한 벌 사면 그 이웃이 마음에 걸렸다. 한 번은 나름대로 정성껏 옷을 골라 선물을 했다. 그러나 이웃은 선물 받은 옷에 대해 불평을 했다. 그런 후로는 그 이웃에게 옷은 선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이웃의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코 작다 할 수 없는 결정적인 도움도 주었다. 하지만 그 이웃은 여전히 감사치 않았고 오히려 원망하며 훼방까지 했다.

 이들은 은인의 방에 신을 신고 침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강한 자는 약한 자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가도 해를 입지 않는다. 강하기만 하면 해괴하고 요상한 것이 정의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은인의 것을 점령하고 빼앗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하지 않으시다.

보따리를 내 놓으라고?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단다. 주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고 하셨다. 사람의 마음이란 타락했기에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으면 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하게 돼 있다. 그리고 종내는 은인의 방에 범인과 빚쟁이의 방에 들어가듯이 신을 신고 들어가는 죄를 짓게 된다. 38년 된 병자는 병을 고쳐주었더니 안식일에 침대를 들고 가게 했다고 예수님께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발로 밟고 돌이켜 찢어 상하게 했다. 이렇게 더 큰 죄를 짓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단호하게 개와 돼지에게는 귀한 것과 진주를 주지 말라고 하신다.

 물에서 건짐을 받은 후에 보따리를 내 놓으라고 행패를 부린 사람은 다시는 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구조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는 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 간 인생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귀한 것과 진주를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렵게도 인생은 모두가 타락했기에 하나님의 방에 신을 신고 침범할 수밖에 없다. 성도일지라도 그렇다. 그런데 감사는 이런 큰 죄를 예방한다. 감사하는 이는 어떤 경우, 어떤 때이든지 하나님의 방에 신을 벗고 들어간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욱 귀하고 진주 같은 은혜를 입는다.

 성도가 감사하지 않는 것은 감사할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은 조만간 하나님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 갈 것이다. 아니 이미 하나님의 방에 신을 신고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고 자신은 병들었음에도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이에게 감사할 것을 주신다. 감사의 크기만큼 은혜를 베푸신다. 신을 벗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방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방에는 무궁무진한 은혜가 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