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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통제권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2006년 08월 18일 (금)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베푸는 삶의 비밀> 중에서
고든 맥도날드 지음/윤종석 옮김/ IVP 펴냄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제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누가복음 12:20-21)

베푸는 마음은 말한다. “어찌할꼬? 좋은 방법을 찾아내 내가 가진 복을 나누리라.” 탐심은 말한다. “내가 재산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곳간을 더 많이 짓고 몽땅 나의 몫으로 쌓아 두리라.” 이 부자가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본문에서 그의 새로운 사업 구상이 자세히 나타난다. 곳간을 더 크게 더 많이 짓자. 모든 소유는 내 통제 하에 있게 되며 그러면 안전과 행복이 올 것이라고 그는 결론지었다.

그러나 성경을 좀 아는 자들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안다. 부자의 사업구상은 죽음을 변수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한 재산 통제권을 주장했으나, 수명 통제권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 날 밤 하나님은 그의 더 큰 재산을 불러들였다. “네 재물은 큰 창고에 그대로 둬도 좋다만 네 목숨은 내가 도로 찾겠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는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영향력과 물질의 복을 많이 받은 자일수록 더욱 분별력 있게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네 재산에 대한 선택에 따르는 결과는 무엇인가?”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미련한 자는 그것을 무시한다. 그러나 지혜롭게 베푸는 자는 결과를 신중히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부와 영향력에는 책임이 수반된다는 중요한 원리를 배운다. 운영하는 돈의 규모가 클수록 재앙의 가능성도 크다. 하나님과 나를 향한 그분의 뜻에 겸손히 복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떤 부자 청년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태복음 19:16)
재력과 영향력 있는 사람은 영적인 안전벨트를 조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대목들이 성경에 나타난다. 비행기 조종사의 말을 생각해 보라. “전방 항로에 난기류가 있습니다.”

질문을 품고 예수님을 찾아온 본문의 이 청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구도자였을까? 베푸는 삶을 살려는 자였을까? 최소한 그가 건전한 호기심과 선에 이끌린 사람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예수님께 끌렸으며 그가 던진 질문은 예수님을 트집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께 배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는 이론뿐인 종교적 말장난이 아니라 내적 시각과 삶의 참 변화를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모든 질문의 어머니다. 그 정답 속에 인생의 다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답을 찾으라. 그리하면 내가 행해야 하고 되어야 하는 다른 모든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청년은 그것을 알 만큼 똑똑했다.

대화 초반에만 해도 청년은 제법 자신만만해 보였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선 그를 우리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니는 율법의 핵심으로 인도하였다. “계명들을 지키라.” 그것들을 감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청년은 말하였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솔직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는 율법을 지키는 삶에 혼신을 다해 왔다. 아마도 그의 생활 방식에는 중대한 과오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주 착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이 질문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로 이것은 이런 말일 수 있다. 왜 제 기분이 더 나아지지 않습니까? 왜 아직도 뭔가 모자란 듯한 기분이 듭니까? 두 번째 해석은 이것이다. 이 순간 선생님만의 특별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제가 모르고 있거나 행치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청년은 정말 새로운 깨달음을 원하였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든 정당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해석이 맞다면 대화의 다음 부분은 분명 그에게 일대 충격이었을 것이다. 야구 용어로 말해 만일 그가 홈런을 날릴 만한 투구를 기대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에게 날아온 것은 높고 치기 어려운 빠른 공이었다. 그는 아예 공이 날아오는 것조차 보지 못한 듯하다. 그는 자신이 대화의 고삐를 쥐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베푸는 삶을 사모하며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 짧은 시간을 보내는 자들도 간혹 비슷한 경험에 부딪힌다. 안전벨트를 바짝 조이는 것이 좋다. 난기류는 그 때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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