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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에 대하여
1998년 12월 01일 (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조덕영 목사/ 참기쁜교회, 한국 창조과학회 전 대표 간사

 1970년 대 이후 생병공학이나 의료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의료 행위에 의한 생명의 연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이후 가치관이나 사회적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배경들과 더불어 의료 기술의 발전이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를 파생시키게 되었다. 이를테면 뇌사 문제라든가, 시험관 아기, 유전자 조작 등의 문제는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며 모두 의료 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과 더불어 생겨난 것들이다. 이와 같은 생명의학 윤리학의 분야 가운데 안락사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윤리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안락사는 일반적으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너무나 심한 고통 때문에 안락한 죽음을 원할 때 생겨나게 된다. 어떤 환자가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으며 여러 가지 의료장치에 의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는 아주 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죽음을 청한다. 이 때 그를 편하게 죽게 하는 것이 관연 윤리적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안락사(Euthansic)의 문제이다.

안락사는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행해지는 강제적 안락사와 본인의 의지에 의하여 행해지는 자발적 안락사가 있다. 이 중 본인의 의식이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의사를 피력할 수 없거나 혹은 안락사를 원치 않을 경우 타자가 안락사의 결정을 내리는 강제적 안락사가 과연 윤리적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발적인 경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먼저 간접적인 안락사로 인공호흡이나 보조도구에 의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경우 더 이상 이러한 보조도구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혹은 더 이상의 생명 연장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맞게된다. 이 경우 적극적으로 환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도록 방치하는 경우이다. 이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직접적인 안락사의 경우 의사가 약물을 주사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환자로 하여금 그의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가해지는데 본인이 안락사의 의사가 있었더라도 과연 이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안락사의 또 하나 고려될 사항은 뇌사와의 관계다. 사실 뇌사와 안락사의 문제는 전혀 다르다. 물론 식물인간과도 다르다.

 뇌사는 뇌가 혈액순환을 통한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함으로써 뇌 조직이 괴사하게 되어 즙처럼 녹아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락사 문제와는 논제 자체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또한 뇌사자는 식물인간과도 다르다. 뇌사자는 수 십 시간, 길어야 2주 후에는 심장사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식물인간은 수년을 사는 경우도 있다. 안락사와 논제의 핵심이 다른 뇌사 문제가 안락사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뇌사자들의 안락사가 곧 타자에게로의 장기 이식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뇌사와 안락사의 문제를 푸는데는 먼저 죽음의 정의와 기준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인간의 육체에는 살려는 의지(Will to Live)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삶의 일상적 기능을 유지하려는 항상성(Homestesis)이 있다. 이에 따르면, 세포 단위에서까지의 의지가 최선의 노력을 하다가 그것이 멈추는 순간이 곧 육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지를 어느 누구도 꺾을 권리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어느 시점이라 할 수 있고, 통상적으로 죽음을 과정(Process)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정확히는 죽음이라는 시점 직전까지의 삶의 과정(Living Process, Not Dying Process)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 생명과 죽음에 대해 조금은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믿음 좋은 여성도가 교회건축 헌금을 하기 위해서 기도 중에 신장을 팔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목사님도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의의 뜻이라고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전해들은 의사는 "기증하겠다는 뜻이라면 몰라도 매매는 소개할 수 없습니다."하며 되돌려 보내었다(누가들의 세계 1991. 3/4). 우리 나라는 신장(腎臟) 복덕방-버젓이 인쇄된 안내장이 돌아다니고 있는- 이 있는 희한한 나라이다. 공식 가격이 얼마이고 복비는 얼마라는 사실까지 환자들은 잘 알고 있다.

선진국이 이 사실을 알 경우 마치 노예 시장의 인간 매매를 보는 듯할지도 모른다. 영국의 경우 어떤 사람이 신장을 공여한 후 돈을 받으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영국 사람들은 자신이 혹시 뇌사상태가 되면 자신을 안락사하여 자신들의 특정 기관들을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카드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장기(臟器) 복덕방이 생기는 것은 장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성신부전 환자들 중의 경우 상당수는, 신장을 살 돈이 없어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가족 중에서 공여자를 찾기에 앞서 사기를 원한다. 그런 신장이식 수술을 의사들은 기꺼이 해왔다. 물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고방식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자라는 장기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정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뇌사가 인정되면 많은 환자들이 눈을 뜨게 되고, 소변을 보게 되고, 간과 심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현실을 그대로 둔 상태로 이 일이 진행된다면 몇몇 환자의 혜택과 의사들의 업적을 위해 더 많은 비극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죽어 가는 가족의 장기를 죄의식 없이 매매하게 될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가 외국에서는 장기도둑질이나 뇌사 상태인간 매매가 일부 의사와 환자의 담합에 의해 일어난다는 소식들을 듣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은 자기에게 맞는 장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또는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자신들이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빈부간의 위화감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며, 그 동안 어렵게나마 투병 생활의 고통을 이겨나가고, 그런 삶에 의미를 찾던 환자들은 오로지 장기이식이 삶의 목표가 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또한 이것이 특정 인간의 안락사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을 뇌사니 심장사니 하고 정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죽음 직전까지는 삶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적으로는 심장사를 좀더 죽음의 본질로 보는 듯한 구절이 많이 있기는 하다(생명에 있어 피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구절들-창 4:10, 9:5, 레 7:11 등). 그러나 다만 삶의 마지막 단계를 시점(순간)으로 보지 않고 시간(흐름)으로 볼 때, 대개의 경우 뇌사는 좀 앞에 위치하고 심장사는 뒤에 위치하는 것이지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죽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뇌사를 죽음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 즉시 현실적으로 장례식을 치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본성상, 뇌사를 완전한 죽음이라고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본인은 본인의 장기를 사용하도록 결정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주의의 가족이나 타인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기증인가 아니면 무능한 사람에게서 가진 자들의 담합에 의해 강탈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본질적인 문제가 왜곡되어 전혀 예기치 않았던 결론에까지 이르는 데는,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약간의 차이를 인정하기 시작한 데서부터 그 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즉, 뇌사인정 이후에도 여전히 장기는 모자랄 것이므로 그때는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뇌피질사를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뇌사를 인정하자는 주장 중에는 병원비 감당이 어렵다거나 기계에 의해 연명되는 생명의 고 통에 대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라고도 하나, 이 문제는 죽음의 또는 생명의 정의에 대한 본질에 접근하는 길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환자의 입장이 아니고 주위 사람들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의학협회가 뇌사의 당위성을 말하는 이유의 일부로 내세우고 있는 뇌사가 인정이 안되어서 우리 나라의 의학발전이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는 주장은 본질로부터 떠난 업적주의의 서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직접적인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으며 34개국에서 뇌사를 의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중 13개국은 법률적으로도 뇌사를 인정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와 의료체계가 유사한 일본의 경우 의학적으로는 인정하나 법률적으로는 인정치 않고 있다.

 우리의 겨우 1991년 대한의학협회가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뇌사를 인정하는 법률을 보사부에 공식 건의한 바 있으며 이러한 결과 보건복지부는 <장기 이식 등에 관한 법률> 시안을 마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대회의실에서 공청회를 가졌다(1996. 10.30). 이 시안이 확정되면서 뇌사 판정의료기관은 뇌사판정을 위한 뇌사판정위원회를 두도록 했고, 사정상 뇌사  판정위원회를 거치지 못할 경우 전문의 2인 이상이 함께 뇌사를 판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뇌사 판정과 장기 이식 대상자 선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복지부 산하에 생명윤리 위원회와 장기 이식 심사 위원회를 설치 미성년자의 장기 이식과 장기이식 대상자 선정 등 구체적 사항을 심사토록 하고 있다.

 뇌사를 인정한다는 것은 기관(뇌사와 심장 등)에 따른 살려는 의지(Will to Live)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즉 뇌가 심장에 대해 우선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생리학적으로 뇌기능의 유지를 위해서는 심장 박동이 필요하고, 또 이 심장의 기능 유지를 위해 뇌의 통제가 필요하다. 어느 것을 우위에 둘 수도 없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일부는 뇌사의 인정이 합당하다는 이유를 인격과 인격의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논리를 핀다. 그러나 이렇게되면 애써 뇌사와 식물인간을 구별한 근거가 없어지며, 심지어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인격성에 대해서도 혼란이 오게 될 수 있다. 다분히 진화론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불행히도 인류는 이것을 근거로 정신병자들을 학살한 역사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인격적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 존엄성에는 차이가 없으며, 또 그것을 다른 어떤 사람이 평가, 결정할 수도 없다. 즉 기능적으로 인간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과 의학의 동일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안락사 문제는 더더욱 신중을 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기독교 윤리적으로 직접적인 안락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간접적인 안락사의 경우에도 실제로 구체적인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데는 신중을 연장하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안락사는 생각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안락사 문제에 있어 성경적 입장은 어떤 면에서 단호하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대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순리를 거역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관심은 오히려 뇌사와 안락사의 연관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조차 죽음의 문제에 대해 같은 정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1. 뇌사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정해져야 한다. 여기에 크리스천 의료 전문가들이 자신의 기독교적인 양심으로 참여해서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

2. 뇌사의 기준에 따라 이것을 판정하는 의사의 능력에 정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3. 뇌사의 오용이나 범죄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는 일에 기독교인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의사가 뇌사를 이용하여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 한다거나 또는 장기 매매와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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