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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권세도 하나님이 주신 것
2006년 04월 28일 (금)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중에서
레슬리 뉴비긴 지음/홍병룡 옮김
IVP 펴냄

만일 우리가 예수를 단순히 과거에 기존 권력에 항거하다가 죽은 자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간주한다면, 그분과 그분의 죽음을 오해하는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의 사랑 받는 아들로서 죽었는데, 그를 죽인 권세는 아버지로부터 재가를 받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들어 올린 분은 바로 전능하신 아버지였다. 재판 과정에서 예수는 자기를 죽음에 처하도록 넘겨줄 빌라도의 권세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였다(요19:11).

그가 비난한 것은 이 권세를 오용하는 행위였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적 의미에서의 왕권- 한 백성을 다스리는 권세-은 하나님이 재가하셨으며 동시에 인간의 죄가 끊임없이 오염시킨 그 무엇이다. 이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는 본보기는 사무엘상 8장과 9장에서 왕권이 세워지는 과정에 드러난다. 예수는 로마와 유대의 기득권이 행사하는 지배력을 타도하려고 나선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된 왕권을 밝히 드러내고 행사함으로써 그들의 타락을 노출시켰으며, 그에 따라 바울의 말처럼 그들을 무장 해제시키고 절대적 권세를 가진 듯 행세하는 것을 박탈해 버렸다. 그는 또한 진리를 증언함으로써 자기의 왕권을 행사했는데, 그 가장 위대한 진리는 다른 모든 진리 주장의 시험대가 되는 것이다(요18:37).

갈보리 사건 이래 모든 왕권은 거기서 세워진 참된 왕권에 의거해서 시험받고 판단 받게 되었다. 판단과 시험을 받되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 권세들이 무장 해제는 되었으나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악의 앞잡이가 될 소지가 있는 권력과 권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 정체가 노출되고 절대 권력인 양 행세하던 것이 박탈당했으나, 실은 이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고 장차 그리스도의 결정적 승리 이후에도 그분의 권세 아래서 계속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바울의 사상을 더욱 잘 파악하려면 복음서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야 한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첫 번째 논평은 바로 유다의 자살이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최후의 말씀이라면, 이 첫 번째 논평 말고는 다른 가능한 논평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인류-그 최상의 대표들마저-가 여기서 하나가 되어 자기 창조주를 대항하여 반역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노출되었다면 죽음 말고는 무슨 장래가 있겠는가? 아무리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다 한들 이와 같이 무익한 죄의 고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일 십자가가 끝이라면, 장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진실로 왕이라는-죽음과 죄의 정복자요 만물의 주인이자 구원자라는- 사실이 선택된 증인들에게 계시된 사건이다. 부활은 패배의 역전이 아니라 승리의 선포이다. 그 왕은 그 나무에서부터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통치가 정말 우리에게 임했고, 그 표지는 황금 보좌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십자가이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 실제적 효과를 낳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무력함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그 왕의 십자가 죽음은 십자가형에 협력한 모든 유의 왕권의 종말을 의미해야 하지 않는가? 물론 이제는 왕권과 정치적 지배의 전통적인 구현이 모두 십자가에서 발휘된 왕권 앞에서 만천하에 노출되어 정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지금은 하나님의 왕권이 다른 모든 형태의 주권을 대치하면서 뚜렷이 출현할 순간임도 분명하다. 이것이 당연하고도 자명한 추론인 것처럼 보이는데, 제자들이 일단 예수의 죽음이 그의 왕권의 종말이 아니라고 확신하자 실제로 그렇게 추론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행1:6) 이는 무척 자명한 질문이다. 예수의 대답은 경고와 약속을 담고 있는데, 양자는 모두 ‘그리스도 이후’ 시대에 그 나라와 관련하여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규정한다.

먼저는 경고다. 하나님이 홀로 왕이시며, 언제 그리고 어떻게 자기 왕권을 드러내실 지는 그분의 권한에 속한 것이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행1:7).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닌데, 그 나라란 한마디로 그분의 통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 거기에는 약속도 들어 있다. 그것은 성령의 약속인데, 그분의 임재는 그 나라의 보증이요 맛보기이며, 교회에게는 계속되는 이 시대의 권세와 마주하는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증인이 된다(행1:8). 이런 권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질서가 유지되고-많이 왜곡되고 부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정의와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인데, 그분은 자비롭게도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어 참된 왕권을 깨달아 회개하고 믿게 하신다.

이런 권세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인 만큼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바울이 말하듯이, 그들은 나쁜 일 하는 자를 벌하고 좋은 일 하는 자에게 상을 주도록 임명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법을 자기 수중에 취하여 스스로 보복하려 해서는 안 되는데,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이 정의를 세우려고 임명한 자, 곧 당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있기 때문이다(롬12:17-13:4). 따라서 바울 자신도 문제가 생겼을 때 주저 없이 기존 권세에 정의를 호소한다(예. 행25:10-11).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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