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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기뻐하는 것
2000년 04월 01일 (토)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아주 넓고 큰 강에서 살던 개구리가 실수로 그만 우물에 빠졌다. 우물 속에서 있던 개구리를 만나 자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나는 아주 큰 강에서 살던 개구리인데 어쩌다 이 우물에 빠졌소."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우물 속에 있던 개구리는 물었다. "아니 큰 강이라? 그게 무슨 뜻이요?" "아하, 그건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난감하오. 당신은 이 우물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질 않소? 이 우물은 아주 조그마한 것이오."

그러자 우물 안에 개구리는 껄껄껄 웃기 시작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 우물보다 더 넓고 큰 것이 있다는 소릴랑 들어본 적이 없소. 그래 당신이 살던 강은 도대체 얼마나 크단 말이오?"라고 비웃듯이 물었다. 그리고 우물 속에 있던 개구리는 힘을 다 하여 뛰면서 "이 만큼 크단 말이오?"라고 하였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이 번에는 있는 힘을 다 하여 더 넓고 높게 뛰었다. "아니 그러면 이 만큼 큽니까?" "아니 그보다 천 배나 만 배나 큽니다."라고 하자, 이 번에는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아니 이 우물보다 그렇게 더 큰 것이 있단 말이요? 난 아직까지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당신은 거짓말쟁이오."라고 하였다.

  어쩌면 우리가 안다는 진리는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진리를 우리가 느끼고 알고 받은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넓고 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무슨 의미일까?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말은 먼저 진리 자체를 기뻐한다는 말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과 의미는 사람마다 그 신앙의 깊이에 따라 그의 신앙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목적과 의미를 교양과 도덕에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에 두기도 하고, 또 복에 두기도 한다. 그러나 성도가 신앙생활의 기쁨을 진리 자체에 둘 때 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도덕적 이성적 진리도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 얻게 되고 그리고 서로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주신 진리는 다른 모든 진리보다 더 깊고 더 넓고 더 포괄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진리와 또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즐거워하지 못하면 참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아야 하고(시 119:103),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해야 하고(시 119:127), 재물의 즐거움보다 더 커야 하며(시 119:14),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기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진리를 얻는 기쁨, 진리를 배우는 기쁨, 진리를 따라 사는 기쁨, 그리고 진리를 증거하는 기쁨이 충만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이면 자식 자랑, 돈 자랑, 건강 자랑, 음식 자랑, 집 자랑, 보석 자랑, 지식 자랑, 미모 자랑, 가문 자랑 등을 일삼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성도들은 깨달은 진리를 자랑하고 진리를 실천한 기쁨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진리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진리로부터 나와서 진리로 말미암다가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상하게도 히브리말의 진리란 단어 '에메트'는 히브리어 첫 자음인 '알레프'와 중간 자음인 '민'과 끝 자음인 '타우'로 되어 있다. 진리로 시작하고 진리를 따라야 하고 그리고 진리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도가 진리의 기쁨이 없다면 거짓이다.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설교가 재미있어야 한다. 설교가 재미가 없고 졸리면 그는 믿음 얻을 길이 없다. 병든 사람은 성경이 수면제처럼 졸리게 되어 있다. 밥은 수도 없이 먹고 먹었어도 물리지 않고 먹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어야 건강한 사람이다.

  우리 인간이 진리의 맛을 알고 그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요 큰 은총이다. 그것을 가리켜 바울은 질그릇에 보화를 담는다고 하였다. 만일 어느 바닷가에 진주가 밀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신사복을 입은 사람은 옷이 더러워질까 봐 들어가지 못할까? 속옷이 더러워질까 봐 물밖에서 서 있을까? 물이 차가워서 못 들어갈까? 아니면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그 자리를 피할까? 예수님께서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천국과 비교하였다. 마치 천국은 밭에 보화가 가득 있는 것을 보고 온 집안의 보화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 팔았다는 말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의 것을 다 팔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화가 가득 담긴 진리의 밭을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주님 앞에 다 팔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주님의 제가가 되지 못한다. 다 팔겠다는 고백이 있어야 주님의 제자이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 팔아 드리고 싶어서 몸부림친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그 은혜가 너무 깊어서 "이 생명 바칩니다. 이 생명 드리고 싶습니다" 울고 울며 다짐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힘처럼 보인다. 권력의 힘, 돈의 힘, 지식의 힘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진리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주교의 사제들이 갈릴레오에게 지구가 돌지 않는 것처럼 강요했지만 갈리레오의 말처럼 지구는 돌고 있고 아무도 이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왕궁에 있는 거짓은 망하여도 토굴 속에 있는 진리는 승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무궁하다. 그 진리의 세계에 들어갈 때 이 세상 욕심을 버릴 수 있다. 진리의 기쁨 때문에 세상의 기쁨을 버린 사람들이 성도들이다. 돈도 명예도 다 버리고 그것을 그리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진리를 쫓는다고 말하면서 세상 욕심을 쫓고 있는 사람도 많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속에는 욕심 덩어리요, 적은 자존심의 상처를 못 견디는 사람도 있다. 늘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하늘이지만 성령충만 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이유는 진리의 참 기쁨과 참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진리의 참 맛과 참 기쁨을 모를까? 그 이유는 진리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기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기뻐할 것을 기뻐하면 기뻐하지 않을 것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이요, 기뻐하지 않을 것을 기뻐하면 기뻐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리를 기뻐하는 자가 사랑의 사람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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