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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하지 않는 사랑
1999년 02월 01일 (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사랑의 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랑의 말로 가득 차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이 아닌 것들을 열거하며 첫 번째로 '투기하지 않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사랑과 투기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인간적으로 볼 때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투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만일 사랑한다고 하면서 투기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사랑이 의심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상하지 않는가? 사랑과 투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왜 성경은 말하기를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사실 인간의 타락한 본성 중에 대표적 특성이 투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인간이 제일 먼저 지은 죄가 무엇이었던가? 살인죄였다. 그것도 형이 동생을 돌로 쳐죽였다. 그런데 바로 투기 때문에 형이 동생을 죽였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수도사가 있었는데 도를 닦으며 사탄이 와서 먹을 것으로 시험하고 정욕으로 시험하고 불안 공포를 동원하여 시험해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귀에다 대고 "당신 동생이 당신이 없을 때 주교가 되었소"라고 했더니 얼굴빛이 변하고 화를 내며 동생을 욕하고 저주하더라고 한다.

말로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펄쩍 뛰며 부정할 말이 없지만 실제로는 이 말보다 이해가 잘되는 말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3절에서 육신에 속한 자의 대표적인 특성을 '시기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육체의 열매 중에 하나가 바로 시기이다(갈 5:19-21).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의 특징으로 역시 '시기'를 말하고 있다(롬 1:29).

  이처럼 타락한 인간에게 시기와 질투는 종횡무진하게 나타난다. 어느 때는 전혀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도 시기나 질투가 나타난다. 인간은 남의 자식 옷만 잘 입혀도 시기하고, 남의 남편 진급만 해도 배가 아프고, 남이 나보다 좋은 자동차를 사고 나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면 견디지 못한다. 역대의 폭군들을 보면 사소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보다 노래를 잘한다고, 나보다 힘이 세다고, 나보다 아름답다고 사람을 죽였다. 시기의 종착역은 살인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심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나타난다. 모세의 누이와 아론이 모세에게 질투하는 것을 보라.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였는데 사실 그 저의는 모세의 지도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민 12:2)고 했다. 어쩌면 모세가 실수하기를 기다렸고 그래서 모세의 실수가 기뻤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사울 왕의 다윗에 대한 질투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보아도 사울과 다윗은 질투할 수 없는 사이이다. 사위의 행복은 즉 자기 딸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식의 행복을 시기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본다면 더욱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그 말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한 번 시기심의 덫에 걸리면 결국 자신의 영혼까지 그 덫에 걸려 죽이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웃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또한 이웃의 불행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는 형제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이라는 한 명사의 말은 옳다. 그런데 형제의 성공이 질투스러운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형제의 불행을 보고 내심 기뻐하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말로는 어떻게 친형제의 실패를 기뻐하겠느냐고 하지만 질투의 마음이 드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나라 왕궁에서는 남자들의 방탕과 주색잡기를 합법적으로 행하기 위하여 여자는 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모든 왕조마다 왕궁에는 형언할 수 없는 투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왕조의 왕궁에 시기가 없던 때가 있었겠는가?

 본문의 투기란 헬라어 단어는 '젤로이'란 단어로서 "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죄의 특성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투기하는 자는 마음이 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이 죄는 인간을 타락시킨 죄의 본질과 상통하는 것이다. 즉 본래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탐심으로 타락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골로새서 3장 5절과 6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결국 인간은 탐심에 의해서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 마지막 계명이 탐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시기심으로 살면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한다. 시기심으로 사는 자는 열심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그가 성공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약 4:1-2).

결국 시기심으로 동생을 죽인 가인은 일평생 살인자의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의 말로는 나봇보다 더 비참했다. 다니엘을 시기심으로 사자 굴에 넣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사자굴에서 대신 죽었다. 장희빈은 시기심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신이 사약을 받고 죽지 않았는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게 된 것은 그의 친구가 그를 망신을 주려고 교황에게 소개한 것인데 미켈란젤로는 불의의 명작을 남기는 복을 받았다고 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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