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열 목사(말씀사역원장)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새해가 밝았다. 2001년이 지나가고 2002년을 맞이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시작된 해를 새해라고 한다. 이 말은 2001년이 끝나고 새로운 해인 2002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새해‘라고 한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낟과 ‘시작‘이다. 끝과 시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인 구원 계시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구속의 역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역사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 역사의 목적대로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 새 역사를 창조해 간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오직 새 역사를 창조해 가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역사의 단절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기독교 역사 개념은 처음 시작했던 것이 목적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역사 개념을 갖고 있다. 새해의 의미는 이전 역사의 의미 속에서 찾아야 하며 과거 역사는 현재를 움트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장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한 뜻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셨다. 따라서 지금의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직선적 역사관에 의한 새해
새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교회에서 은퇴식이 있고 임직식이 있다. 은퇴식은 ‘손을 놓은 낟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임직식은 ‘시작‘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릴레이 경주하는 선수가 목적지에서 바통을 다음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은 ‘낟이라고 할 수 있고 바통을 ‘이어받은‘사람은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경주를 끝내는 사람과 이어 달리는 시작의 사람을 함께 설명하지 않고는 경주를 이야기할 수 없으며 승리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새해란 이미 시작되어 왔던 과거 역사와 함께 설명하지 않고는 안 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함께 바라보는 역사를 우리들은 보통 “직선적 역사관“, 혹은 “나선적 역사관“이라고 한다. 

자연신론주의자들이나 헬라인들은 역사를 선회 내지 윤회하는 것 소위 역사의 “순환적 견해“(Cyclical)를 갖고 있었다. 모든 일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발생되며,  그래서 오늘날 일어나는 것들은 미래 어느 날엔가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아침에 태양이 뜨고 낮에 태양이 빛나고 저녁 때에 태양이 가라앉듯이 모든 만물의 이치가 이와 같이 반복되는 순환을 통하여 계속된다고 믿는 것이 자연신론주의자들의 역사 개념이다.

이런 역사 개념 자체에는 어떤 의미도 목적도 없다. 이들은 구원 문제에 대해서도 이러한 반복되고  쳇바퀴적인 역사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구원이라고 했다. 즉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구원관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물질적인 것은 악하고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선하다고 하는 영·육 이원론을 의미한다.

이 같은 구원관은 현재 우리 교회에 많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이런 괴리 현상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바르게 구분하지 못한 잘못된 이원론적인 구원관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구원관이 초대 교회에 이단으로 등장한 영지주의 영촵육 이원론적 구원관이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그 이름이 가르치는 대로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지식)에서 유래하였는데，이는 지식으로 구원을 약속한다는 주의이다. 이들에 의하면 물질은 악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이 물질 세계를 부인하고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들의 윤리관은 은둔과 금욕주의이다.

이처럼 자연신론 주의자나 범신론，무신론，실존주의자들이나，고대 로마，그리스 헬라인의 역사관은 대부분 윤회적인 것, 내지는 동그라미적인 것, 또는 무의미한 것으로 봤지만 성경에 나타난 역사관은 선적 역사，즉 직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은 “나선적，직선적 역사 개념“이었다. 나선이란 말은 모든 역사는 윤회되고 둥글게 가는 듯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나선적으로 직선을 향해 가는 나선적 선적 역사 개념이다. 이 말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된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끝을 맺는다는 역사관이다. 이 역사관은 과거，현재，미래가 동일 선상에 있다는 역사관이다.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했던 그것이 마지막 완성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의 지적대로 역사란 의미 없는 일련의 순환 회귀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과 우주에 대한 자기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매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사관은 하나님께서 신성하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며 미래란 과거에 만들어진 약속들의 완성과 성취로 바라다보아야 한다는 사상이 성경에서 말한 역사의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 속의 행위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다.

새해란 바로 이런 역사관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과거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새롭게 시작하자“가 아니다. 또한 새해란 작년에도 새해가 있었고 올해도 새해가 있다고 해서 모든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면서 올해의 새해를 체념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잘못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같이 보는 역사적 관점에서 현재의 새해는 미래 지향적인 특성이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목적의 완성을 향한 과정으로써 새해
오스카 쿨만(O. Cullmann)은 우리가 우리의 달력을 계수한다는 것，즉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햇수를 계산한다는 사실은 신학적인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역사 과정의 시간적 중심점(mid-point)이다 라고 하였다(그리스도와 시간，1987，40-42).
결국 기독교 역사관이란 보는 관점이 뚜렷하다.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데 모든 것이 귀결된다.

“마지막 날들“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포함한 온 피조세계가 어디로부터 나와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깊이 살펴야 한다. 역사의 종말이란 시간의 종착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의 완성으로서의 종말이다(telos，τελο  ). 벧전 4: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라는 말씀에서 마지막(and:끝)이란 시간의 종착으로서가 아니고 목적의 완성으로서 텔로스(telos，τελοζ)이다. 즉 약속의 성취(fulfilled)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만물의 마지막이 처음 시작했던 하나님의 목적이 완전하게，충만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켜 성경은 끝인 역사의 종말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장에서도 종말의 징조는 있으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막 13:7)고 하실 때 채용된 단어가 바로 텔로스란 어휘다. 또한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막 13:13)는 말씀 중에서 “나중“ 역시 “텔로스“라는 어휘다. 종말의 끝이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끝이 온다는 그런 의미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하셨던 뜻과 계획과 목적이 완성되었을 때 그 때가 끝，즉 종말이라고 한다(김근수，복음서 이해, 1996，246).

우리들이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든지 그 새해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완성을 향해 가는 역사의 과정일 뿐이다. 즉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죄악일 수가 있다. 지나간 한 해가 우리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고 낙심과 실패를 가져다 준 한 해였을지라도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나의 생애 역사에서 지나간 실패의 해를 지우고 싶겠지만 결코 지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워지지도 않는다. 내가 볼 때에는 그것은 실패였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위해 필요했던 역사일 뿐이다. 그런 역사를 통해서 우리들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새해 아침에 우리들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이루실 위대한 구원역사가 무엇인지를 묵상해야 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자
우리들의 모든 삶과,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하신 그 목적을 향해가고 있다. 즉 목적의 완성을 향해가고 있는 역사라고 한다면 오늘 나의 삶과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단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낼 수 없다. 의미 없는 역사란 없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각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들의 요구조건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 그 이상이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는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이다. 즉 기도는 신앙고백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역사가 내 의지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신앙고백이 기도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런 기도를 드린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역사적 삶을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간구하는 성도들은 역사의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삶으로 살아간다.

맺는 말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아무리 새해가 밝았다고 해도 그 땅과 그 사람은 그대로이며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새해를 통해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새해에 우리들은 역사의 종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역사의 종말이란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하신 뜻과 목적이 완성을 향해 가고 있고 그 완성이 작년보다 올해가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을 뜻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 말은 새해가 됨으로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입성할 날이 더 가까이 왔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 땅을 떠나 언제 천국으로 입성할지 모르기 때문에 금년에도 긴장하고 이 땅에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