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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분 사모/ "시련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체해 가는 것이 곧 기적입니다"
1998년 05월 01일 (금)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서경분 사모(홀트아동복지회장 송재천 목사 사모)

우리 가족은 시아버님과 나와 남편과 딸 송순호와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 송문호, 이렇게 다섯이다. 보통의 가정과 다름없이 보통의 모습으로 살고 있던 우리 가정에 지금부터 6년 전에 커다란 사건이 생겼다. 아들 문호가 초등학교 5학년 봄에 뇌종양이 발견되어 생명을 건지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문호가 처음(초등학교 5학년)에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을 때, 나는 문호의 말을 100% 믿지 않았다. 문호의 아프다는 말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결국 문호를 오래 고통받게 할 줄은 몰랐다.

내 자신이 어려서부터 머리가 자주 아팠다. 햇빛 속에 나가도 머리가 아프고, 비가 오는 날도 아프고, 슬픈 것을 듣거나 보거나 해도 머리가 아팠던 나는, 문호가 나를 닮아서 머리가 아픈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다. 문호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머리의 씨티(CT)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결과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그 순간 하늘이 캄캄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며 혼이 나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뇌종양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씨티 촬영보다 더 정밀하다는 엠알아이(MRI) 촬영을 했다. 제발 씨티촬영이 잘못된 것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촬영은 금방 끝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더욱 불안해졌다. 며칠 후에 촬영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우리는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엠알아이 촬영 결과도 마찬가지로 뇌종양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눈앞이 캄캄하고 금방 쓰러질 뻔했다.

"어째, 이럴 수가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길래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주실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머리를 촬영하는 동안 어린 문호는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 환자복을 입고 촬영대에 오르내리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저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것이 잘못하면 이 세상에 더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막히고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뇌종양은 수술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머리 골 속의 가장 깊은 곳에 종양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종양이 악화되면 암이 된다는 것이었다. 암이 머리 속에 생기면 어떻게 살겠는가? 그러나 더 우리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수술을 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적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그런 말은 마치 나에게 "너 때문이다!" 라고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어미로서의 죄책감으로 뼈 속 깊이 회한이 밀려왔다.

이화여대 병원에서 손댈 수 없다는 선고를 받고서 문호는 서울대학병원으로 보내졌다. 문호는 수술을 받기 위해 일 주일 간의 종합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수술하는 날이 왔다. 새벽에 이발사가 와서 면도칼로 문호의 머리를 빡빡 밀었다. 면도하는 칼날이 움직일 때마다 내 가슴을 저미는 것 같았다. 수술실 입구에 도착해서 문호와 우리는 서로 승리의 'V' 자를 그렸고, 문호는 수술실 문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까지 문호는 자신이 뇌종양 때문에 수술 받는 줄을 몰랐다.

그저 머리에 벌레가 생겨서, 그 벌레를 없애기 위하여 수술한다고 우리는 문호에게 거짓말을 했다. 문호를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나와 남편은 힘없이 입원실로 발길을 옮기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고 그 처분대로 따르겠습니다" 하고 간구했다. 이제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 잘 되기를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어떤 결과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내가 문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1분 1초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그 하루, 아침 7시에 시작한 수술은 밤 10시 반에 끝났다. 16시간이나 걸렸다. 처음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오후 3시쯤이면 수술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한참 후에 새벽까지 수술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 어린 것이 새벽까지 머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간호사 한 사람은 그런 중대한 수술은 시간이 많이 걸릴수록 좋은 징조라며 우리 가족을 의로하려 했다.

우리는 오후 3시가 지나면서부터 혹시나 수술이 끝났나 싶어서 연신 보호자 대기실에 가 보았으나, 전광판에 켜져 있는 문호의 이름은 계속 '수술중'이었다. 그날 여러 아이가 수술 받았으나 다른 아이들은 벌써 전광판에서 이름이 없어지고, 문호 이름 뿐이었다. 또 가 보아도 문호 이름은 수술중이었고, 또 가 보아도 문호 이름은 계속 수술중이었다. 밤 10시 반이 넘어서야 문호의 이름은 '수술중' 에서 '회복실'로 옮겨졌다.

문호가 회복실로 옮겨진 후 첫 면회를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병원 소독복을 입고 회복실에 들어갔다. 문호는 입에 산소 마스크를 하고 두 눈은 퉁퉁 부어서 양쪽 눈이 어른 주먹만큼 튀어나와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본 나와 남편은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괜히 수술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문호의 그 처참한 몰골을 제대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었다. 그저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하고 입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의식 없이 지낸 아이답지 않게 문호는 빠른 회복을 보여서 하루만에 입원실로 돌아왔다. 회복실에 더 있을 수도 있었으나, 회복도 빠르고 또 문호가 엄마 옆에 있고 싶다고 간청하여 수술 하루만에 입원실로 옮겨온 것이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입만 달싹거리는 아이가 입을 열어 처음 한 말이 기가 막혔다.

"엄마, 나는 내가 뇌사상태에 빠지면 내 몸을 모두 기증하려고 했어요. 맹장만 빼고 모두 몸을 기증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나는 나의 어떤 친구나 또 내 주위에 있는 친척 누구에게도 이런 시련이 오지 않게 하시고, 내게 이것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해요."

12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그 말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문호는 수술에 들어가자 마자 양 팔다리를 묶고 주사를 놓고 또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머리에 못을 박는 것을 보고 자신의 수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뇌 수술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뇌사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일 뇌사상태에 빠지면 자기 몸을 모두 기증할 마음을 먹었다고 한 것이다.

내가 가진 신앙이 순종이나 체념의 수준이었다면, 이 아이의 신앙은 감사의 수준이었다. 이 어린 것이 그 엄청난 고난과 고통을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자기에게 준 것을 감사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12년 동안 키운 이 아이가 정말 우리 아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식구와 친척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자기는 그 고통이 감사하다니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한참 잠을 자고 난 문호는 "엄마 왜 방의 불을 껐나요, 지금은 밤중인가요?" 라고 물었다.

"엄마, 자꾸 자도, 자도 밤이에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가슴은 다시 한 번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곤 했다. 목숨이 살아나기는 했는데 이제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력이 없어진 것이었다. 종양이 시신경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종양을 수술하니까 시신경이 없어진 것이다. 종양이 시신경을 먹고 자란 것이다. 뇌 수술을 하고 나면 누구든지 충격을 받아서 며칠 간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문호는 수술 때문에 자기의 시력이 없어진 줄을 모르고, 간호사들이 와서 눈 검사를 할 때마다 "언제쯤 보게 되나요" 하고 물었다. 간호사들은 "곧 보게 될거야" 하고 대답했다.

한 이틀 동안 그렇게 계속 간호사에게 묻다가 그만 다시는 묻지를 않았다. 스스로 자기의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자기가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엄마가 떠 먹여 주던 밥을 자기가 먹겠다고 했다. 모든 먹는 것을 자기가 스스로 먹겠다는 것이다. 자기 눈에 대해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가 눈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다 내 죄 때문이 아닌가?" 하고 혼자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엊그제까지 다 보이던 이 세상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세상은 온통 절망의 빛깔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답답하고 깜깜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위로이다. 나는 곧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도 많은데, 이 아이는 그래도 12년 간 세상의 빛깔과 꽃의 아름다움과 하늘의 높음을 보았다. 그리고 수술할 때까지 5천 권도 넘는 많은 책을 읽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러한 마음을 주셨다. 내 신앙은 요만큼 뿐이었다.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그저 따를 뿐인 작은 신앙이었다. 수동적인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호는 나와 달랐다. 이 아이는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시력을 다시 주신다는 것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처음에 시력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시력을 보관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시력을 다시 주실 이도 하나님이시다' 라고 믿으며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의 믿음을 어여쁘게 여기셨나 보다. 하나님은 잠시 보관하셨던 문호의 시력을 회복해 주시기 시작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문호와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관하셨다가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으로 믿는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눈은 수술 후 5년이 지난 지금 주먹만한 큰 글씨를 볼 수 있고 현미경을 사용하면 30분 정도는 책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야가 좁아져서 혼자서는 길을 다니지 못한다. 차가 오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안과에서는 이 아이가 이만큼 보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과의 기계는 현재 왼쪽의 전혀 보이지 않는 눈과 조금 보이는 오른쪽 눈과의 차이를 알아내지 못한다. 기계는 두 눈이 똑같이 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호는 분명히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

문호의 능동적인 믿음이 지금 이만큼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얻었다. 건강도 좋지 않다. 수술 후유증으로 호르몬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이 정도의 후유증은 뇌 수술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30여 가지의 후유증 가능성 중에서 아주 가벼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 혼잣말로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라고 중얼거린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런 어려운 훈련을 시키시는 가를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에 대해서,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뜨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모든 시련들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체해 가는 그 마음이 곧 성령이 함께하시는 것이며 또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애쓰는 그 마음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이 아이가 살아갈 날들을 온전히 지켜 주실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이다. 문호의 건강과 시력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아들 송문호 군의 고백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믿었어요"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봄에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맨 처음에 이 병을 앓게 될 때는 처음에 머리가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몹시 아팠다. 어머니께 말씀 드려봐도 어머니는 그냥 학년도 높아지고 했으니 공부가 하기 싫어져서 꾀병을 부린다고 그렇게만 말씀하시고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우셨나 보다. 내 친구 어머니인 어느 약사분께서 내 안색을 보시고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하시며 종합검진을 권유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대 부속병원에서 여러 가지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는데 엑스레이(X-Ray) 같은 것보다 조금 더 성능이 뛰어난 씨티(CT) 촬영을 하는 동안 내 머리에 이상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보다 정밀한 엠알아이(MRI) 찰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내 병은 뇌종양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때 나는 검사 결과를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이 들으러 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내게 그냥 머리에 이물질이 들어갔다고만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냥 '간단하게 이물질만 제거하면 금방 일어나서 뛰어다닐 수가 있겠지',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병을 선고 받은 후 나는 곧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 주일 동안 다른 여러 가지 검사를 또 받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검사를 하는 기간중에 어머니께서 물어보셨다.

"문호야, 너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 않니? 하나님이 계신 곳에 말이야."
그 때 나는 "아니오, 어머니. 저는 아직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라고 대답했다.

만약 내가 그 때 "예, 가고 싶어요!" 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내 말씀을 들으셨는지 나를 살려 주셨다. 내가 일 주일 동안 검사를 받고, 아침에 머리를 싹 깨끗이 밀고 수술대 위에 올라갔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니와 장난치면서 병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술대로 가는 도중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고 병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수술대 위에서 마취를 해 주시는 선생님의 몇마디의 말씀을 듣고는 밝은 세상에서 떠나게 되었다.

내가 그때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느낀 것은 깜깜한 어두움, 그리고 중환자실의 시끄러운 소리뿐이었다. 일어나자 마자 어머니를 찾았는데 기운이 모두 빠져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회복이 빨리된 편이라고 했다. 수술이 끝난 지 30분 만에 깨어났고 또 장기관이 금방 일을 하기 시작하여 음식도 금방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이 끝난 후 나는 처음에 깨어났을 때 그 어둠이, 시력이 나빠져서 나온 어둠이 아니고 밤에 불을 꺼서 아주 깜깜했을 때의 어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계속 물어보았다.

"왜 자꾸 밤이 되요? 자고 또 자도 밤이예요. 어머니, 불을 켜 주세요!"

그 때 어머니께서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문호야, 네가 지금 밤이 아니고 수술이 끝나고 나서 시력이 잠깐 나빠진 것뿐이란다. 곧 좋아질테니 걱정마라" 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깜깜한 세상인 채 병원에서 회복되고 있을 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그러나 다른 사람한테 이런 시련을 안 주시고 나한테 주신 것은 그래도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맨 처음 내가 태어났을 때 시력을 주셨고 또 잠깐 이것을 보관하시는 것뿐이지 다시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믿었던 대로 나는 퇴원한 후 회복 기간중에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누워 있는데 천장에 있는 형광등이 한 줄기 빛으로 보였다. 그것도 오래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잠깐 2-3초 정도 보이고 꺼져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게 남아 있던 시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믿었다.

나는 바라는 대로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주셨다. 나는 점차 시력이 조금씩 회복되어, 볼 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또 후에는 어머니의 얼굴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5학년 2학기를 이렇게 집에서 회복하고, 건강 관리를 하며 지내고, 6학년이 되어서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새로 공부를 한다는 마음에 부풀어서 나는 힘찬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는데 그곳에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다른 시련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눈이 잘 안 보이고, 생활이 다른 친구들과 약간 다른 것이 친구들에겐 참 재미있었나 보다. 친구들이 내가 물건을 찾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내 물건을 감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나를..., 길을 갈 때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 때 선생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6학년을 온전히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5년 동안 친하게 사귀어온 절친한 친구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면서 내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나는 6학년을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 5년 동안이나 같이 지내던 친한 친구들도 저렇게 나에 대한 반응이 저런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새로운 문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 친구들은 오히려 5년 동안 지낸 친구들보다 내게 더 잘해 주었고 또 선생님도 내게 너무 너무 잘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학교 생활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보디가드를 4명이나 세워 주셨다. 또 친구들도 호기심에선지, 하나님께서 정말 사랑으로 인도를 해 주셨는지 친구들이 자원을 해서 내 보디가드가 되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서 중학교 1학년 시절을 보내면서 메말랐던 마음이 다시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고 계셨다. 1학년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2학년에 올라왔다. 2학년에 올라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2학년 때도 담임 선생님으로 똑같이 올려 주셨다. 내가 생활하는 데 큰 부담을 던 셈이었다.

나는 2학년이 되어서 새로운 좌절감에 부딪혔다. 병원에서 내가 더 자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키나 다른 면에서도 성장 호르몬이 더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런 것은 믿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믿고 간구했다. 하나님은 내 믿음을 사랑으로 모두 받아주셨다. 나는 그 후에도 의사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컸고, 또 내가 바라는 것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시력도 다시 (조금이지만) 얻게 되었고, 키도 컸고, 그리고 또 앞으로 나아갈 희망도 생겼다.

나는 지난 여름 방학 때 점자를 배웠다. 점자를 배운 것은 절대 내가 눈이 나빠질 때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내가 점자를 배운 이유는 하나님이 내게 시력을 주시는 것에 대한 보답이고, 또 노력이다. 그리고 점자를 배워서 내가 눈이 더 좋아지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점자를 다 배운 날 하나님의 나라 일을 위해서 내 눈을 다 잘 보이게 해 주실 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 그 사랑을 나는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이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드렸다.

서경분 사모의 일기 중에서
얼마전 문호의 학기말 시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문호가 우리 가족들 앞에서 느닷없이 한다는 소리가 "저는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것 같아요. 내가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구경꾼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내가 어떻게 죽겠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문호에게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때 옆에 있던 남편이 "뭐, 구경꾼들이 많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라고 물었다. 문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낮에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 문제를 읽어 주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얘들아, 뭘 구경하니? 다들 저리 가지 못해!'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또다시 선생님은 '저리 가지 못해!' 하고 더 큰 소리로 야단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애들이 잔뜩 모여들어 우리를 들여다 보고 있잖아'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안 보이는 데요' 라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너는 눈이 잘 안 보이니까 그렇지. 보일 리가 있냐?'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문 쪽에서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약간 나기는 했지만 '아, 그렇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에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저 애들이 모두 내가 살아가는 데 증인들이 될 것이므로 나는 할 수 없이 장애가 다 나아서 오래 살 수밖에 없을 것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호는 시각 장애인이면서도 일반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시험 때에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님들에게 부담도 많이 드린다. 시험 때가 되면 비장애인 아이들은 시험지만 받아들고 자신들이 문제를 직접 읽으면서 답안지를 작성하지만, 문호는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문호는 양호실에서 선생님이 읽어 주시는 문제를 듣기만 하고 혼자서 시험을 친다. 그러다 보니 문호는 시험 보는 시간이 일반 아이들보다 훨씬 길어진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시험을 먼저 끝낸 많은 아이들이 문호의 시험치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양호실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문호가 눈이 잘 안 보이는데 시험을 어떻게 치는가 보고 싶어서" 호기심을 가지고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보려고 야단이었다고 한다. 뇌종양과 투쟁하면서, 시력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문호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증인들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문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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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문호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시각 장애인이 되었지만 여러 가지 치료약을 가진 아이이다. 그에 의하면, 모든 병의 치료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이지만, 세상의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잘 가지면 무슨 병이든지 치료된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호의 그러한 주장은 맞는 것 같다. 그가 엄청난 뇌종양의 시련을 이겨내고, 또 시각 장애의 어려움도 이겨내어, 하나님의 자녀 됨을 떳떳하게 자랑하며 생활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문호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문호는 자신의 고난을 이겨내는 방편들 가운데 자랑 삼아(?) 주장하는 것 몇 가지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누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즉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호는 친구들을 집으로 많이 초청한다. 물론 친구의 집으로 갈 때도 있다. 그러나 주로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한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과 주일 오후가 되면 우리 집은 문호의 친구들로 북적댄다. 친구들을 초청하게 되면 친구들을 대접할 것들을 청구한다.

냉면, 라면, 아이스크림, 빵, 호떡, 과일 등등 주문이 꽤 많다. 그러나 그러한 먹을 것들이 없으면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수시로 장만해 줄 것을 요청한다. 어느 주일에는 우리가 일찍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는 가운데 이미 문호 친구들이 오기 시작했다. 5-6명이 왔다. 이날 나는 냉면을 네 번이나 만들었다. 해가 질 때까지 자리에 제대로 한 번 앉아 보지 못하고 아이들의 먹을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 아이들은 내가 직접 만든 냉면이 맛있다고 하면서 자꾸 자꾸 만들어 달라고 했다. 물냉면도 만들고, 비빔냉면도 만들고, 갖가지 먹을 것들을 만들어 시중을 들었다. 그 때 문호는 "친구야, 친구야. 너희들이 나의 병을 고쳐 주었단다. 너희들은 내 말의 뜻을 잘 모를 거야. 나의 병은 친구들하고 자꾸 이야기하면 낫는 병이야. 왜 그런 줄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야!" 라고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문호의 그러한 말을 들은 아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오히려 "정말로, 문호, 네 하나님은 신통하다" 라고 하면서 다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마음 속으로 "친구야, 친구야!" 하고 외쳐 본다. "하나님, 문호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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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가 고등학교(중동고교)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문호는 비록 시각 장애인이었지만 모든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일반 중학교(수서중학교) 3년을 잘 마쳤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정을 처음 밟았을 때 '시각 장애가 이곳에서도 통할 수 있을 지 걱정 되어서'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는 부질없는 것이었음이 차츰 드러났다.

수업 시간에 현미경과 망원경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서 열심을 다하는 문호의 모습을 지켜본 선생님들은 문호에게 사랑과 격려를 주기 시작했다. 특히 문호의 "망원경 수업"은 수업 첫시간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과목의 선생님들이 문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과학 시간이었다고 한다. 과학 시간의 수업은 여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주제를 토의하고 토의한 것을 조장이 발표하도록 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장이 갑자기 "조장의 직권으로 부조장인 문호가 발표하도록 명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졸지에 시각 장애인인 문호가 그 조의 과학 시간 발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호가 발표하는 것을 보신 선생님께서 문호에게 "네 시력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문호는 "2급 장애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때 선생님은 문호의 어깨를 쳐주시면서 "중동고등학교에 진정한 사자 한 마리가 들어왔구나" 하시더라는 것이다. 중동의 상징이 사자이다. 시각 장애인이면서도 당당한 문호를 보고 선생님께서 그렇게 위로해(?) 주신 것이었다. 문호는 선생님의 그러한 격려 때문에 큰 감동을 받고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문호는 사실 시력이 아주 약하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과목은 참으로 힘든 과목이다. 인문사회 계열 과목이라면 듣기만 하고서도 정리를 할 수 있지만 과학은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애로가 가장 많다.

스승의 날을 맞아 문호를 사랑해 주신 선생님들의 면면이 선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3학년 누나와 함께 하교할 수 있도록, 3학년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게 해 주셨던 김두성 선생님, 6학년 때 수술 후 실명된 문호를 끝까지 보살펴 주신 최세경 선생님,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보디가드 4명을 세워 문호를 보호해 주셨던 오춘분 선생님, 문호를 위해 칠판에 글씨를 대문짝만하게 써 주시던 손종대 선생님, 중학교 3학년간 시험지를 읽어 주신 양호실 김미자 선생님. 그분들의 사랑 안에서 문호는 온갖 시련을 잘 극복하고 있다.

감사하다. 문호는 진정한 사자로 자랄 것이다. 선생님들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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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가 시각 장애인으로서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특히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와 같은 시험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늘 걱정해 왔다. 드디어 그 걱정이 눈 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문호와 나는 담임 선생님을 뵙고, 중학교 때에는 양호실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양호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께서 시험 문제를 읽어 주시고 또 시험 시간도 넉넉하게 주었다고 말씀 드리고, 이번 시험 때에도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중학교 때는 내신 성적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위한 내신 성적이 있으므로 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서 별도의 특혜를 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선생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문호가 눈이 잘 보이는 학생들과 똑같은 조건하에서 경쟁을 할 때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남편은 "학교의 혜택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자"고 하면서,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자고 했다. 남편은 또 "준비는 열심히 하고 성적은 꼴찌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자, 문호가 "꼴찌를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는 안 되지요!" 라고 하면서 여유를 보였다.

"반에서 누군가가 꼴찌를 해야 할텐데 이번에는 문호 네가 꼴찌를 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께서 채점하시는 성적표는 따로 있겠지" 라고 위안하였다.

우리 가족은 성적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평소처럼 하기로 했다. 우리 식구 모두가 힘을 모아 문호의 시험 준비에 동참하기로 했다. 남편은 영어와 독어를 담당하고, 수학, 과학, 영어회화를 딸 순호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과목들은 주로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과목이었다. 시험이 시작되는 전날 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문호를 데리고 양호실에 가서 시험을 보도록 하세요"

나는 이 말에 너무나 감사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양호 선생님은 문호와 나를 너무도 친절하게 맞아 주셨다. 시험 문제를 읽어 주기도 하시고 답안지 작성을 도와 주기도 하셨다. 문호는 "이렇게 되면 꼴찌하기는 다 틀렸는데!" 라고 하면서 얼굴을 나에게로 돌렸다. 문호는 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잘 보이는 것처럼 쳐다보며 말했다. 문호에게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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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남편이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삼중고(三重苦)의 성녀 헬렌 켈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헬렌 켈러는 자기가 사흘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나는 그 동안 나에게 친철을 베풀어 준 사람들을 만나 그 고마운 얼굴들을 마음껏 보고 실컷 이야기를 나누겠다. 그리고 갓난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외 남은 시간은 되도록 책을 많이 읽겠다.

둘째 날에는, 나는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겠다. 그리고 박물관에 가서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발자취를 보겠다. 미술관도 꼭 방문하여 인간들의 놀라운 창조력을 음미하고 싶다.

셋째 날에는 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고 숲의 새 소리와 바닷가의 파도 소리를 듣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여러 일터를 보고 싶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네거리에 서서 그 많은 얼굴들을 보겠다. 저녁에는 극장에 가서 연극 한 편을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감사하겠다."

남편의 이 이야기를 들은 문호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저는 3일만 볼 수 없어요. 곧 시력이 완전히 회복될테니까요! 그렇지만 꼭 그런 표현을 한다면 '3일만 볼 수 있다면'이 아니라 '30센티미터만 볼 수 있다면'이라고 하겠어요. 3일만 볼 수 있다면 3일이 지난 후에는 다시 볼 수 없지만, 30센티미터만 볼 수 있다면 멀리 볼 수는 없지만 영원히 볼 수 있잖아요."

이와 같은 문호의 말을 듣고 우리 가족은 모두 말을 못하고 서로 쳐다보며 눈시울만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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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5년도에 KBS 제 1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순간 또 문호 때문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추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방송국 측에서는 문호와 인터뷰할 것이 있는데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KBS 측에 의하면, 오는 12월 초에 KBS 장애인 라디오 방송국을 개국할 예정인데, 그것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 장애인의 꿋꿋한 삶을 그린 작품을 특별히 만들어 TV에 방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문호가 장애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촬영하여 TV에 내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문호에게 잘 부탁하여 촬영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문호는 TV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장애인이 많은데 그 사람들을 소개해 주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TV에 자주 나가면 교만해져서 신앙도 약해지고 삶의 의지도 약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KBS 방송국의 간절한 요청이 있고 또 장애인 방송국 개설 홍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문호는 촬영을 허락했다.

다섯 명의 촬영팀이 오후 2시부터 약 4시간에 걸쳐 우리 집안에서 문호를 모델로 촬영했다. 촬영은 한번의 NG도 없이 잘 마쳤다. 촬영을 마친 KBS 관계자들이 문호에게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연기를 잘하니? 탤런트보다 더 잘한다" 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문호는 즉각적으로 "뭐, 보이는 게 없으니까 그렇지요!" 라고 했다. 자신이 시각 장애인이므로 눈앞에 카메라를 갖다 대도 잘 안 보이기 때문에 떨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문호는 이 말을 천연덕스럽게 했지만 어미된 나는 가슴이 메어져 왔다. 우리 가족이 문호의 시력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도를 더 많이, 더 간절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나님 앞에 해본다. "하나님, 지금의 상태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감사할 수 있도록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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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이었다. 남편이 밖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남편이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막 들어서는 데 문호가 "아빠" 하고 불렀다.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보통 때와는 달리 약간 심각한 것 같았다. 문호가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남편에게 "아빠, 요즘 밖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세요?" 라고 묻는게 아닌가? 무엇인가를 따지는 듯했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갑자기 문호가 집에 들어오는 남편에게 어떻게,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은 남편이 "문호씨, 왜 그러세요?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하고 물었다(남편은 아이들에게 반말을 잘하지 않는다).
문호는 "예, 아빠, 심각한 일이 생겼어요. 아주 심각한 일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약간 놀라면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심각한 일이 뭔데요?" 라고 다급하게 다그쳐 물었다. 그 때 문호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오늘 하루 종일 아빠 찾는 전화가 한 통도 없었어요. 어찌된 일입니까? 밖에서 얼마나 인기가 없으면 아빠 찾는 전화가 한 통도 없습니까?" 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문호의 이러한 말을 들은 우리 가족은 "별걸 다 가지고"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도 문호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 "웃을 일이 아녜요. 저는 정말로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하면서 계속 "인기 떨어진 아빠, 어찌된 일이냐?" 고 했다.

나는 이날 저녁 문호의 그러한 주장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은 것 같았다. 사람의 사회 활동과 가정 생활이 완전히 단절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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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리 가족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유언에 관한 것을 시청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유언을 해석하기도 하고 또 유언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재산을 불우 이웃에 써 달라고 유언했다고 소개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죽으면 고향 산천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소개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죽으면 시체를 화장해 달라고 유언했다는 것도 소개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죽으면 시체를 의학 실험용으로 기증하겠다고 했거나 또는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유언에 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죽은 후 자기의 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다. 그 때 앞을 못보는 문호가 불쑥 한다는 말이 "저는 살려 달라고 유언하겠어요!" 라고 했다. 남편이 말하기를 "죽는 사람이 남기는 말이 유언인데, 살려 달라고 한다면 유언이 아니잖아?" 라고 했다. 그러나 문호는 "유언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저는 마지막으로 살려 달라고 하겠어요" 라고 했다.

문호는 그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심각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아주 덤덤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문호의 그러한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문호를 쳐다 보았다. 문호의 그러한 말은 문호의 현재 형편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가족의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유언을 "살려 달라고 하겠어요" 라고 하겠다니 무슨 말인가? 자기가 부모인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 문호의 그런 말은 뇌종양 수술 환자로서 여러 가지 고난을 이기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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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마음이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문호는 보통 하기 좋은 말로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92년 8월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문호가 뇌종양 수술을 받고 지금은 살아났지만, 수술하기 전에는 수술을 해도 살아날 가망성은 희박했다. 문호는 당시 자신이 뇌종양을 앓고 있는지를 몰랐다. 우리 가족이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여 1주일 동안 종합 검진을 받았다. 그 때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문호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문호야, 만일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다면 어떻게 하겠니?"
이것은 문호가 갖고 있는 병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문호는 대뜸 말했다.

"엄마, 저는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단호히 거부할 거예요."

불과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쩌면 그렇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자기가 무서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문호는 계속해서 "엄마, 저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하여 다 배우지도 못했고 또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을 하나도 못했는데, 왜 제가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아야 합니까? 저는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배우고, 또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때까지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겠어요!" 라고 했다. 문호의 이러한 확신을 보고 우리 가족은 문호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확실해졌다. 순간 나는 "하나님, 이 순간 새로운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문호의 단호한 모습을 보시고 보내려 했던 초청장을 거두었다. 그래서 문호의 뇌종양 수술은 성공했다. 문호는 지금도 자기가 하나님에 관하여 더 많이 배울 때까지, 또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할 때까지, 하늘나라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고집도 순수하면 어여삐 여기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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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가 갑자기 점자를 배우겠다고 했다. 그처럼 눈의 시력회복을 위해 날마다 간구하더니 얼마 전부터 점자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하더니, 결국 점자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면서 점자를 배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뇌 수술로 인해 상실된 시력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만 보아도 우리 가족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었는데, 이제는 또 점자를 배우겠다고 폭탄 선언을 함으로써 우리 가족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눈물을 삼키게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리 남편은 계속 눈물을 훔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문호는 너무나 태연했다. 그리고 당당했다. 문호는 지금 자기가 시력이 나쁘지 않다면 어떻게 점자를 배울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시력이 좋은 사람들보다 점자를 배울 수 있는 은혜를 하나 더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감사한다고 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이다. 그러한 믿음이 어디에서 나올까? 목사의 아내이면서도 문호의 감사하는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나의 믿음은 도무지 무엇인가? 나는 문호에게 '시력회복을 위해서도 간구해야 하고, 또 점자 공부도 해야 하니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문호는 "엄마, 둘 다 똑같은 기도예요. 그냥 시력 회복시켜 줄 것을 간구하는 기도보다 점자 공부하면서 간구하면 기도의 힘이 훨씬 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도 분명하게 도달될 거예요" 라고 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나의 가슴은 더욱더 메어져 왔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호는 불쑥하는 말이, "엄마, 내가 점자 배운다니까 완전히 장님으로 끝날 줄 아세요? 안 그래요. 점자 배우면 눈이 두 군데 생길 거예요! 눈도 보이고 손끝에도 눈이 생기게 될테니까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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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가 점자를 공부를 하기로 했지만, 공식적으로 점자를 배우려면 정부에서 발행하는 장애인 수첩(증명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임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 몇 군데의 의료기관에서 검진을 받고 확인 받아야 했다. 며칠 전 강남구 보건소에 가서 피를 뽑고 대소변을 검사했다. 그때는 흔히 할 수 있는 검사이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95년 8월 5일)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문호와 함께 강남시립병원에 가서 눈 검사를 받았다. 문호의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 대강 예측하고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2급 장애인 판결을 받는 순간 가슴이 메어져 왔다. 우리 문호가 정말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앞이 캄캄했다. 문호는 정말 눈이 잘 안 보이는 시각 장애인이란 말인가? 시각 장애를 부인하려고 혀를 깨물며 온갖 애를 썼으나 어쩔 수 없는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머리가 아파왔다.

장애인 판정을 받고 병원 안과실을 나오면서 나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으나 문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문호와 나는 장애인 판정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 서로 착잡하여 말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날이 더우니까 더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문호와 나는 손을 잡고 걸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쳐다 보게 되었다. 문호는 나를 볼 수 없으니까 그저 느낌만 있었겠지만, 나는 문호를 바라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정말 이 애가 눈이 안 보이는가? 아니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또 외치고 했지만 아니라는 메아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곧 시력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고 간구하며 기다리는 문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나님, 당신의 치유의 은총이 문호를 통해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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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TV에서 주말영화를 보고 있었다. 남편도 옆에 있었고, 또 시각 장애인 문호도 함께 보았다. 문호는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본다기 보다는 소리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호는 화면을 잘 보지도 못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다. 시력 대신에 청각을 통한 이해력과 판단력이 발달한 모양이다.

그 영화는 기구한 한 여인의 애틋한 삶을 그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사랑하던 무남 독녀가 어린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순간 남편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으며, 문호는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그 때 나는 문호에게 "너는 잘 보지도 못하면서 뭐 그렇게 슬프게 우느냐?" 고 했다. 그런데도 문호는 아주 심하게 울었다. 한참 눈물을 짜고 난 문호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마디 내뱉었다. 문호는 "저는 조금만 슬퍼도 억지로라도 울면서 눈물을 흘려야 해요!" 라고 했다. 문호는 "억지로라도 눈물을 짜내지 않으면 나의 눈물 샘이 말라버릴 거예요. 시력이 상실되면 눈물 샘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대요. 그러므로 눈물 샘이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꾸 울면서 눈물을 짜내야 해요" 라고 했다. 문호는 계속해서 "그런데, 조금 보이기 시작한 오른쪽 눈은 눈물이 그런 대로 나오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은 눈물이 안 나오려고 해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문호의 얘기를 들은 남편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집밖으로 나갔다. 나도 어안이 벙벙하고 가슴이 메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잘 안 보이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쓰는 문호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열심히 기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노력까지 하고 있다니, 너무나 기가 막혔다. 문호의 눈물 샘이 마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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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손대기가 어렵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은 문호의 모든 삶을 포기할 뻔 했다. 특히 어린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길래 이렇게 엄청난 시련을 주시는가 하는 생각에 그저 앞이 캄캄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어린 병아리가 물을 먹듯이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아무리 들어도 눈물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에 대한 '사형선고'에 대하여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을 곧 갖게 되었다. 창조주께서 이 시련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루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하고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기로 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문호의 '뇌종양 사건'을 창조주께서 우리 가족으로 하여금 이웃 사랑 실천을 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한 것이 없으니, 곧 이웃과 사회에 빚을 지고 살고 있으니, 이웃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 줄 물질적인 것도 없었다.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마음과 시간과 몸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으니,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부자가 아닌가 하는 다짐을 했다. 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우리 문호의 뇌종양 발견을 무슨 일에든지 무조건 봉사하고 헌신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무차별 봉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문호의 운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장중에 있으니, 우리 가족은 그저 열심을 다하여 봉사만 하면 된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이때부터 소위 '무차별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시련을 당하게 된 문호와 그의 누나 순호(당시 중 1)는 그 당시 이미 '무차별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었다. 순호와 문호는 학교에 갈 때나 또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올 때 종이 조각이나 담배 꽁초 같은 쓰레기를 주어서 호주머니마다 가득 담아가지고 왔다. 그럴 때마다 호주머니가 더러워진다고 야단친 것이 기억나기도 한다.

문호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었을 때 그가 어릴 때부터 그처럼 쓰레기 줍기를 열심히 하더니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한 생각이 드니 우리가 '무차별 봉사'를 더욱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무차별 봉사'를 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지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은 주로 도와 주는 일을 하도록 했다. 나는 젊었을 때 익힌 재봉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마음의 가난한 어머니들에게 재봉 기술을 무료로 가르치거나, 어린 아동들의 옷을 무료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어린 아이들은 금방 금방 자라기 때문에 그에 따라 옷도 자주 사야 하므로 가정 형편이 곤란한 사람들에게는 여간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천을 사다가 직접 어린아이의 옷을 만들 수 있도록 재단 및 재봉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 주며 도와주기로 했다.

문호가 뇌종양의 시련을 받았으나, 뇌종양을 수술하고 나니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이전 것보다 훨씬 더 큰 '날벼락'을 맞았다고나 할까? 우리는 이 큰 '날벼락'을 맞으면서 다시 한 번 가족이 모였다. 결론은 우리 가족의 헌신과 봉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무작정 무차별 봉사'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이 때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봉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누비천으로 동전주머니, 지갑, 필통, 핸드백 등을 만들어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누어 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길에서 담배꽁초나 종이 조각 같은 것을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는 사람에게 "좋은 일 하십니다" 라고 격려 한 마디 하고 이 누비천 필통이나 지갑을 준다. 또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 교통 안에서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 하십니다" 라고 격려하면서 역시 누비천 지갑이나 필통을 준다. 또한 남편은 이러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특강 등을 통하여 받는 강사료를 선한 일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가정은 '무작정 무차별 봉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누구를 도울 것인가를 미리 정해 놓고 돕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그냥 돕기로 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창조주께서 주신 생명이 다할 때까지 '무작정 무차별 봉사'를 할 것이다. 시각 장애아 문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으며, 문호와 우리 가정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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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가 5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고 시각 장애인이 된 후 매일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1년에 두 번씩 종합 진찰과 치료를 받았다. CT 촬영은 물론 MRI 촬영까지 하며, 기타 혈청 검사, 뼈 검사, 호르몬 검사, 시력 검사 등등 신체 전반에 걸쳐 검사한다.

수술한 지 1년 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CT 촬영을 하고 난 후 그 촬영결과를 놓고 평가와 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10센티미터 밖의 주먹만한 크기의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호와 나는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면서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우리 문호의 시력이 많이 살아 나서 주먹만한 크기의 글씨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씀 드릴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은 더욱 벅찼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 대병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문호의 진료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으며, 문호의 시력이 발전한 것을 마음 속으로 미소 지으며 옆에 앉아 있는 문호를 연신 쳐다보곤 했다. 드디어 문호의 진료 차례가 되었다. 주치의는 문호의 뇌를 CT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을 환하게 비치도록 걸어놓고 설명했다. 종양은 "까불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마음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 종양이 우리의 기도를 당할 리가 있나!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기로 하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살고 있는데, 종양 제 놈이 힘 쓸 수 없지, 없고 말고!"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주치의는 문호의 눈을 살피면서 "눈은 좀 어떻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 때 문호와 나는 동시에 자랑스러운 음조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먹만한 크기의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10센티미터 앞에 있는 큰 글씨가 보입니다" 라고 했다. 그 때 의사 선생님은 좀 안 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제가 알기로는 그 동안 수술로 인한 충격으로 조금 남아있던 시력이 가고 있는 중일 겁니다" 라고 했다.

그때 우리는 "아닙니다. 시력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보관하셨던 시력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시력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며 신앙의 확신입니다" 라고 했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오고 있다"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진료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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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삼풍 참사에서 참변을 당한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친구의 딸이 희생자 가운데 끼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희생된 친구의 딸(민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삼풍에 취직하여 매장 직원으로 일했었다. 사고가 난 후 시신 발굴작업이 시작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승현이나 명석, 지환이처럼 살아남기를 바라기도 했으나, 시간이 자꾸 지나면서 시신마저 나타나지 않아서 시신이나마 찾기를 바라며 서울교육대학강당에서 새우잠을 자며 발굴작업이 다 끝날 무렵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흙더미 속에서 찾아낸 것은 겨우 민선이의 지갑 뿐이었다. 끝끝내 민선이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는 삼풍의 무너진 흙더미는 모두 치워졌다.

나의 친구는 하나뿐인 딸을 그렇게 잃고도 울지도 못했다. 나의 중매로 결혼한 그 친구는 민선이가 20개월 되었을 때 민선이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 뒤로 혼자 살면서 정말 죽고 싶은 날도 수없이 많았지만 민선이 하나 의지하고 이 날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민선이를 불쌍하게 보시고 일찍 데려가셨나 보다. 성장해서 나 같은 인생을 살 바에는 차라리 일찍 가는 게 더 낫지!"

친구는 그렇게 푸념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려 했다. 얼마 전 우리 집에 온 그 친구는 뇌종양 수술을 받은 문호를 보며,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 며 눈물을 지었다. 문호도 사람의 힘으로서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살아있는" 문호를 보며 딸 생각이 난 듯 했다. 나는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과연 그러하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또 얼마나 큰 아름다움인지,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꾸만 자꾸만 우리 집 아이 문호의 얼굴을 훔쳐 보았다. 지금 눈이 잘 보이지는 않으나 문호의 생명을 지탱해 주시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어려움을 당한 삼풍의 가족들 모두 다 기막힌 사연들이 있겠지요. 하나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분들에게 마음의 평안함을 내리어 주옵소서.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엄청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긍휼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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