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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대 집사/ 내 인생을 바꾼 사람
1998년 08월 01일 (토)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노일대 집사/ 사랑의교회, 산업은행 정보시스템부 차장


테이블 위에는 생맥주와 쥬스가 놓여 있었다. 생맥주는 내 차지였고 쥬스는 당시 나의 담당 대리였던 최봉오 형제의 것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기 싫다"며 복음을 거절하는 내게 사정사정을 하며 "제발 여자 없는 술집에 가면 같이 따라가서 얘기를 좀 하고 싶다"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그와 함께 생맥주 집으로 갔다. 나는 생맥주를 시켰고 술을 하지 않는 그는 쥬스를 시켰다. 이렇게 먹어 가면서 그는 밤늦게까지 별 피곤한 기색 없이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해 주곤 했다.

사실 그는 이런 점, 예수 믿는 점만 뺀다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를 만난 것은 은행에서였다. 은행에 근무할 당시 나는 무신론자였다. "인간은 우연히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의미고, 목적이고, 내세고, 뭐고 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가뜩이나 짧은 인생인데 그런, 답도 없는 문제에 얽매여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무슨 수를 쓰든지 실컷 즐기다가, 늙어서 추해지기 전에 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자. 그러면 끝이다. 그렇게 원래대로 없어져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저 어리석은 인간들이 죽음이 두려워 그것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니 저렇게 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

따라서 나는 온갖 쾌락에 탐닉하여 있었다. 거의 매일을 술로 보내며, 아침에 눈만 뜨면 어지러운 머리로 '어제보다 좀 더 멋있게 즐길 방법은 없을까?'하는 것이 첫번째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날 밤의 쾌락이 진하면 진한만큼 아침에 찾아오는 허무감도 그만큼 컸다. 마치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시원하기는커녕 갈증만 더해 갔고, 점점 인격 파탄자가 되어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돈 봉투를 놓고 가면 쫓아가서 "사람 잘못 봤다"며 돌려주던 내가 술독에 빠지다 보니 그 돈 봉투의 두께가 쾌락의 두께로 보였다. 결혼 생활도 나의 이기적이고 방탕한 생활로 인해 분기 행사처럼 이혼을 들먹이며 파탄직전에 간 상태였다.

당시 나는 '이젠 더 추해지기 전에 죽어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그 무렵부터 무엇이든 죽어라고 하기 시작했다. 며칠씩 밤을 새우며 죽어라고 일을 하니까 남들은 속도 모르고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다. 또 술을 먹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차에 뛰어들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78년 가을, 내가 거의 기진맥진해 있을 때, 새로운 담당대리가 부임해 왔다. 그가 바로 최봉오 형제였다. 그는 매우 깔끔하고 경우 바르고 친절하면서도 일의 경중을 잘 분별하는 매우 사리 판단이 밝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에다가 인내심도 대단해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해도 입을 꽉 다물고 끝까지 참아내는 아주 인내력 있고 또 나에 대해서도 놀라운 사랑을 보여준 사람이다.

내가 밤새 야근을 해서 일을 빨리 끝냈을 때의 일이다. 다른 대리들은 이럴 경우 매우 좋아한다. 또 그런 부하사원이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칭찬 대신에 "집에 왜 안 가고 일을 했느냐"며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정색을 하면서 나무라는 사람이었다. 그 통에 그에 대해 섭섭할 때도 있었다. 또한 그는 거래처에서 고맙다는 뜻으로 집으로 케이크 하나라도 가지고 오면 그 값에 해당하는 돈을 사장한테로 송금하는 청렴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을 할 때도 달랐다. 다른 대리들 같으면 행원들이 일해서 결재를 올리면 그때서야 도장만 찍어 주는 게 일이었는데 그는 어려운 일은 자신이 도맡아서 해결했다. 더욱이 공이 생기면 그것을 부하인 나에게 돌렸다. 그 덕분에 나는 입행 후 처음으로 총재 표창을 받아 보았다.

이런 터라 구겨진 인상의 사람들을 보다가 그를 보면 많이 비교가 되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다림질이 아주 잘된 양복처럼 활짝 펴져 있었고 자기 것을 챙기고 긁어모으려는 주위의 사람들과 달리 그는 '무엇인가 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하나라도 더 나누고자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근심 어린 구석이 하나도 없이 밝게 웃는 그 얼굴은 영화배우가 꾸며서 웃는, 또는 석가나 다른 종교인들이 갖는 그런 거룩한 웃음과도 달랐다.

그 평화로운 웃음, 독특한 웃음을 한 번 지어보려고 나도 거울을 보면서 흉내를 내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연습해도 잘 안 되는, 내가 보기에 아주 특이한 웃음이었다. 그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까 얘기한 대로 단 한가지만은 빼놓고였다.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게 정반대의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웃음, 친절, 인내, 평화 등 무엇보다 먼저 내가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고 있었다.

예수 믿는 것 빼곤 매력적인 사람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의 삶이란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진 고행의 삶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성경의 내용에 대한 숱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런 내게 근무 중에도 잠깐잠깐 여유가 생기면 그는 내게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들려주었다. 나는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를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생각해 두었다가 던지곤 했다.

'선택은 뭔지, 삼위일체가 어떻게 가능한지, 흑인은 왜 생겼는지, 악이 왜 존재하는지, 전쟁은 왜 있는지,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가 왜 고통을 당하는지, 예수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신라시대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 심판이 가능한지?' 등 난해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질문들을 골라서 던졌다. 그러면 그는 꼭 성경을 펴면서 어떤 부분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의 지시를 따라 성경을 펴서 읽으면 나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닌 것 같았지만 여하튼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계속 빠져나가려는 나에게 끈질기게 전도를 했고 나는 그것을 피하고 벗어나기 위해 이래저래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렇게 40일이 지나며 그의 끈덕진 전도의 결과로 마음문이 어느 정도 열려진 토요일이었다. 근무가 끝난 후 잠시 회의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그는 그 동안에 여러 가지로 얘기했던 기독교의 내용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난 뒤에 나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유일한 구원자로 믿을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안 믿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라고 되물으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했다. 그는 "나를 따라서 하나님께 믿음을 표현하는 기도를 하라"고 했다. 내가 그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그 동안 나를 짓눌러오던 문제들, 생의 의미와 목적들, 죽음의 문제들, 죄의식에 관한 문제들에서 드디어 놓여 놨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의 근본적이고도 어렵고 큰 문제를 해결했다는 깊은 평안이 마치 작은 샘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듯이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최봉오 형제는 그날 나에게 40일 동안 전도 하다가 하도 지쳐서 마지막으로 한 번 정리해서 얘기한 다음에 예수를 안 믿으면 나를 포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영접을 하자 그는 내게 성경 구절 5개가 적힌 카드를 주면서 암송을 해보라고 했다.

"구원의 확신, 요한일서 5장 11~12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외에 기도응답의 확신, 용서의 확신, 승리의 확신, 인도의 확신이라는 구절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영접을 하고 나서 집에 가는 길에 이 구절들을 암송하며 갔다. 그러면서도 '내가 혹시 어떤 이상한 것에 홀린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내 정신상태를 찬찬히 점검해 보기로 했다. '흔히 하는 말대로 내가 비겁해서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라는 아편을 먹은 것은 아닌가, 내가 광신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또 내가 엉뚱하게도 순교를 당하면서도 이런 믿음을 지킬 수 있을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말씀을 암송하면서 두려움을 털어 버릴 수가 있었고 또 40일 동안 그와 나누었던 긴 대화를 반추해 보면서 나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서 해방된 그 토요일, 나는 술을 안 마시고 맨 정신으로 대낮에 집에 들어갔다. 가족들은 놀랐다. '술로 인사불성이 되서야 들어오던 집을 웬일로 맨 정신으로 들어오는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들은 더욱 놀라게 되었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온 식구들을 불러모았다. 어머니, 아내, 남동생. 이렇게 3사람 앞에서 나는 그날 최봉오 형제에게 들은 대로 정리해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나는 복음을 받아들였고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제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동생이 몇 가지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그 질문들은 이미 내가 40일 동안 최봉오 형제와 대화를 나누며 해결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해 줄 수가 있었다. 마침내 식구들은 예수를 믿겠다고 하며 나를 따라서 기도를 하게 됐다. 나는 실로 예수를 믿은 지 몇 시간만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영접시키는 특권을 누렸다. 그 다음 주일에는 온 식구가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가서 등록을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최봉오 형제와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쳤다. 말씀을 섭취하는 법, 성경공부, 암송, 큐티, 기도, 전도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들을 그로부터 배웠다. 거의 매일 하나씩 하나씩 배웠다.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배운 결과 불과 3개월만에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로는 큐티가 너무 좋아서 하루 3시간 정도를 큐티로 보냈다. 술 담배를 비롯한 악습들도 없어지게 되었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46kg이었던 체중이 6개월만에 58kg으로 늘어서 새 옷을 사야만 했다.

제일 잘 안 되는 것은 전도였는데 그는 토요일이면 나를 인천의 자유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전도지를 한 묶음 주면서 전하라고 했다. 그런데 하는 걸 보니까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른 쪽에 가서 하겠다"고 해 놓고서 전도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려고 했다가 차마 양심상 그럴 수가 없어서 돌아선 적도 있었다.

초신자의 위기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을 하던 나의 생활에 갑자기 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6개월간 함께 근무하던 최봉오 형제가 본점으로 발령이 나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나는 옛날 술친구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옛날의 생활로 복귀되어 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며 그가 가르쳤던 대로 살지 못하게 되자 주일마다 성경공부 모임에 가서 그를 만나는 것이 싫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내게 쏟는 정성을 생각하면 모임에 안 나갈 수도 없고, 나가자니 괴롭고 해서 나는 아예 인사부에 "청주지점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했다.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지 않을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인천 . 서울간 거리가 짧아서 성경공부 하러 못가겠다고 핑계를 대기에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에 거리가 먼 청주로 가면 못 온다는 핑계를 댈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부에 부탁한 대로 나는 청주로 갔고 드디어 그에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효과적으로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이었다. 최봉오 형제는 업무상 출장이나 또는 개인적으로 토요일 오후가 되면 가끔씩 시간을 내서 청주에 나타나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를 사랑해서 찾아 왔다지만 나는 그를 기쁨으로 반갑게 맞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그는 함께 출장 온 동료에게 내가 구원받은 내용을 간증하라고 할 때는 영락없이 나는 위선자가 되어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거의 월요일 아침마다 내 책상에는 편지가 놓이도록 편지를 썼다. 때로는 연휴가 있을 때 서울에서 열리는 수련회에 참석하라고 해서 그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숙직을 자청하고서 그에게는 "수련회에 참석하고 싶지만 숙직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눈치채고서 그 다음 번에는 아예 수련회비와 교통비를 붙여 오는 통에 할 수 없이 수련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그의 정성과 달리 나는 수련회에 참석을 해 놓고도 담배 피우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해 그로부터 떨어져 들을 수 있는 워크숍을 신청하고는 워크숍 시간에 살짝 빠져 나와서 화장실에 앉아 남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사탄과 하나님 사이를 오가면서 이렇게 살아야 될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새롭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수련회에서 돌아온 일주일 뒤에는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내 모습을 아는 집사람은 수련회에 다녀오면 "또 며칠간 병이 나겠구만" 하고 비아냥거릴 때도 있었다.

조변석개하는 내 모습과 달리 최봉오 형제는 일관되게 사랑과 정성을 쏟았다. 한때는 내가 서울 본점으로 출장을 왔을 때였다. 최봉오 형제를 찾아갔더니 반가워하며 "저녁때 만나자"고 했다. 쾌히 승낙을 했는데 일을 보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옛날 술친구들이 유혹을 했다. "술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술 마셔 본 것도 오래되고 해서 허락을 했다. 그리고 최봉오 형제의 책상에 일부러 그가 없는 틈을 타서 메모를 남겼다.

"오늘 00이네 집에 들어가 잘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내일 봅시다."
이렇게 남겨놓고 술집으로 갔다. 여러 차에 걸쳐서 곤드레 만드레 취하도록 마시고 친구 집에 들어가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런데 새벽에 나한테 전보가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간에 '여기서 자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보냈을까' 라고 의아했지만 전보에는 분명히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바로 최봉오 형제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오늘 아침 0시에 은행에서 성경공부 모임이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아침에 부랴 부랴 서둘러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 장소로 술냄새를 풍기며 달려갔다.

이미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던지 그와 몇 명의 형제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그는 사람들에게 나를 괜찮은 그리스도인으로 소개를 했다. 몹시도 부끄러웠다. 우선 나는 전보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는 전날 밤 나를 찾으려고 무교동에 있는 술집을 다 뒤졌다고 했다. 내가 술집을 옮겨 다니며 마시는 바람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은행 숙직실에 가서 비상연락망을 찾아 가지고 내가 가겠다고 한 집을 찾아서 전화가 없자 전보를 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본점으로 올라 오라"고 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그러죠"라고 하자 그는 "인사부에 이야기해 놓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는 이 일을 까맣게 잊었다. 그후로 청주에 내려간 뒤에도 여전히 월요일이면 그로부터 편지가 왔고 심지어 최봉오 형제는 런던에 6개월 동안 연수를 받으러 갔을 때도 어김없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그의 편지 속에는 "런던이 얼마나 음란한 도시인지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양치질을 하면서도 암송카드를 들고 암송을 해야 하고 세수를 하면서도 암송을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라며 나에게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암송을 많이 하라"고 독려했다. 더욱이 그는 내가 자신의 '기쁨과 소망의 면류관'이라는 얘기도 했다. 이런 글을 보면 나는 가끔씩 제 정신이 들어서 '나도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옆에서 누군가 세워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위기를 넘어서
청주에 있던 내가 82년 10월에 갑자기 본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우리 지점장이 인사부에 전화를 걸어 "왜 발령을 냈느냐"고 하자 "노일대 씨가 희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최봉오 형제가 했던 말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동생이 안타깝게도 사업에 실패해 나도 수중에는 단돈 100만원도 없을 때였다. 집은 물론 없었다. 다행히 그 때부터 본점 직원에게도 임차 보증금을 600만원까지 빌려주는 제도가 생겼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서울로 이사를 했다. 간신히 부엌도 없는 방 두 칸 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집주인이 정신이상자라서 집사람에게 시도 때도 없이 욕을 하고 어떤 때는 6개월도 못살고 이사를 했던 적도 있었다. 발령을 나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무지 미웠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12월에 최봉오 형제가 런던에서 돌아와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돌아와서야 자신이 인사부에 얘기를 해 놓았다고 말했다. 너무도 기가 막혔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최봉오 형제와의 서울에서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의 도움으로 점점 안정을 찾아가던 나는 그 다음해 1월 1일부터 3일간 있었던 수련회 기간에 다시 내 생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면서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을 했다. 이때부터 술 담배를 비롯해 옛날 습관을 정리하고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직장에서 잘 아는 사람부터 점심시간이나 일과 후에 만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결신율은 높았다. 전혀 복음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20%정도가, 미션스쿨이나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50% 정도가 결신을 하였다. 교회에 나가고는 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도 성경을 가지고 예화와 함께 설명해 주면 거의 다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거인 같은 농구감독 최과장이 순순히 영접기도를 따라할 때는 나 자신도 놀랐다. 인간성 좋은 박차장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유명한 교회의 새벽기도에 맛을 들여 신이 났으며, 동창모임 때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시작하여 모임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며 나를 감격시켰다.

고생하며 자란 김과장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더니, 예수 믿고 보니 전보다 더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시인인 이 과장은 예수님을 영접한 지 얼마 안되어 지점으로 전출이 돼,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갈지 걱정하며 기도만 드렸는데, 교회에서 성가대원, 교육부장으로 승진(?)을 거듭하였을 뿐 아니라, 지점에서도 전도하여 새로 믿게 된 직원 두 사람, 불신자 한 사람과 함께 성경공부그룹을 만들어 인도하게 되었다고 기쁨에 찬 편지를 보내왔다.

외환 딜러인 문대리는 자기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며, 또 사랑하는 친구가 자기를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하며, 딜링 업무로 바쁜 중에도 새생명훈련원(New Life Tranning Center . NLTC) 간사직을 감당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후배 직원 서군은 복음을 전하려고 하자, 담배에 불을 붙이며 어디 한 번 얘기해 보라는 식이었지만, 복음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담뱃불을 끄고 자세를 고치더니 심각하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부부가 나와 등록을 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하더니 1년에 40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었다.

잘 놀기로 소문난 최대리는 평소에 전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했으나, 어느 날 조용한 사무실에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복음을 전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겠느냐고 물었더니 "네, 받아야죠"하며 결신했다. 축구선수였고 술고래였던 홍선배는 퇴근 버스 안에서 그답지 않게 순순히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하더니 사흘 뒤 급성 췌장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에서 그가 죽기 전에 평소에 안 찾던 하나님을 부르더란 친지의 말을 전해 듣고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후배직원 조군은 여러 번 전도해도 슬슬 피하기만 해서, 단 둘이 대구로 출장 갈 기회를 만들어 여행을 하면서 하루종일 복음을 설명했지만 "제가 아무래도 노 선배보다는 오래 살텐데 두고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라며 결신을 보류하더니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다. 젊은 아내와 갓난 딸 하나를 놔두고 교통사고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영적아비의 헌신적인 사랑
이렇듯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고 믿게 된 사람을 모아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대로 했다. 사람들이 늘어나자 각 사람의 수준대로 나눠 그룹을 나누었고 사람들이 많아지자 할 수 없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일찍 은행에 나와서 성경을 공부했다. 주일에는 교회를 정하지 못한 초신자들을 은행에 집합시켜서 영락교회나 새문안교회를 순회하며 참석케 한 다음 취향에 맞는 교회에 출석토록 했고 수요일 저녁 집회에도 함께 참석해서 교회 분위기와 말씀의 맛을 알아가도록 도왔다.

또한 주제별 큐티 교재를 만들어서 아침에 모여서 큐티를 하고 받은 은혜를 같이 나누었고 그 중에 몇몇 충성된 형제는 제자화 대상으로 삼아 거의 매일 만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내게는 어려운 일이 닥쳤다. 같은 직원의 보증을 잘못 서서 그 직원 대신에 2백만 원을 대신 물어주게 되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방에서 연탄가스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고, 집에는 세탁기 하나 가스레인지 하나도 없고, 도르레 식으로 연탄불을 꺼내서 밥짓고, 정신이상자인 주인 남자의 이상한 행동을 두려워하며 찬물에 빨래하고 고생하는 아내에게 그나마 봉급의 절반을 차압 당하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살라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면 너무도 미안해서 밤에 잠도 안 오고 속앓이만 할 뿐 앞은 캄캄하기만 했다.

드디어 법원에서 내 봉급에 대한 차압 명령이 떨어지고 은행 내에 나에 관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 와중에도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바로 최봉오 형제였다. 그는 내게 전화를 한 다음 만나자마자 100만원 짜리 수표를 한 장 건넸다. "나머지도 빨리 준비해 볼 테니까 이것 먼저 은행에 갖다 내고 담당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해 보세요."

너무 다급했던 나는 염치 불구하고 그 돈을 받아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은행 담당자에게 수표를 내미니까 그 담당자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본인이 쓴 돈도 아닌데 이렇게 빨리 갚으시려고 합니까? ...당신, 믿을만한 사람이니까 이 수표로 연체금을 정리하지 않고 정기 예금을 들어놓고 담보로 해 두고 제가 최대한 노력해서 원래의 채무자에게 받도록 해 보겠습니다."

결국 그 은행 담당자의 노력으로 숨겨진 채무자의 수입원을 찾아내서 거기로부터 다 변제 받고 정기예금에 들었던 1백만 원은 이자와 함께 돌려 받았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내게 새로운 빚이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최봉오 형제에게 진 사랑의 빚이었다.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내가 말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어 난관을 쉽게 넘어가게 해 준 그에게 나는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진 것이다. 전세 집을 구하는 일, 인사이동, 직장 일, 경제적인 도움, 성경공부 그룹을 형성하고 제자를 삼는 일에 본을 보여 주는 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게 개인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고 끈질기게 나를 추적해서 자기 개인의 행복과 가정과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과 재물과 생을 이제껏 20여 년 동안 내가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쏟아 부어 준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일이 일어나게 해 준 사람이다. 내 인생이 질서가 잡히게 해 주었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 진보가 있게 해 주었다. 그 사랑이 나도 다른 사람의 인생 속에 그런 중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기게 해 주었다. 또 나같이 세속적이고 인내심도 없고 과단성도 없고 도덕적으로 형편 없었던 사람도 그리스도안에서 성숙한, 한 사람의 변함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 이 일은 정말 해 볼 만한 일이라 생각하고 생을 걸어서 추호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를 따라서 앵무새처럼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되뇌며 열심히 전도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말씀대로 직장생활을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84년도에는 대리로 승진하여 인사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근무하는 1년동안 팀원 6명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 중 한 명은 이용규 형제라고  직장인성경공부 삼성모임을 인도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나는 직장 근무와 사역의 균형을 위해서 근무시간에는 직장 일에 열심을 냈고 어느 누구도 직장 일로 인해서 나를 책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업무 수행의 질을 높이는 데 나름대로 노력을 해 왔다.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직장인을 위한 사역훈련이 시작되었던 88년도에는 처음으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이 훈련을 New Life Training Center, 새생명훈련원에서 실시를 한다고 해서 NLTC훈련이라고 했다.

이 훈련이 끝난 7월에는 간사 훈련을 10월까지 받고 그 다음 해 실시됐던 직장인을 위한 NLTC훈련에서는 내가 훈련간사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전도했던 바로 최봉오 형제가 새생명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숙제 점검을 내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 형제의 철저한 경건훈련에 나는 또 한 번 도전을 받게 되었다. 내가 그를 포함하여 세 사람의 점검을 담당했는데 그는 가장 나이도 많았고 하는 일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숙제를 항상 정한 시간에 완벽하게 해 왔다. 전도 소책자인 4영리도 제일 먼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암송해 내었고 겸손하게 나의 점검을 받았다. 나는 그의 인격에 놀랐다. 놀라운 열심이었고 충성스러움이었다. 그는 그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냈다. 여전히 배우는데 마음을 열었고 말씀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암송하고 묵상하고 가르쳤다. 1000 구절 정도의 성경을 암송하면서 나의 모든 질문에 적절하게 지도하며 상담하는 모습은 나 또한 말씀에 헌신케 만들었다.

전도 폭발!
또한 내가 받은 훈련 중 전도폭발 훈련은 내게 있어 매우 특별한 훈련이었다. 나는 '94년 6월부터 11월까지 전도폭발 제 1단계 훈련을, '95년 8월에는 임상훈련을 받았다. 나는 출석교회에 상관없이 직장인들만을 위한 전도폭발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도폭발한국본부의 이창호 목사님과 사랑의교회 유정기 목사님의 희생적인 도움으로 "전도폭발훈련 직장인반"을 만들어 96년 6월부터 지금까지 800여 명이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에 참가한 직장인들은 그간 6,000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여 2,700여명의 결신자를 얻게 되었다.

전도폭발훈련을 통해서 나는 한 해에 150명에게 복음을 전하여 100여 명이 거듭나는 것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늘 느낄 수 있고, 그리스도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감격을 수없이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교회의 한 형제가 자기 아내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해서 전도를 했다. 그런데 그 아내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집에 가서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서 놀란 적도 있다. 알고 보니, 그 아내가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당신은 내가 오늘 들은 복음의 내용을 벌써 알고 있었느냐? 그렇다면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내게 그 복음을 들려주지 않았느냐? 왜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게 만들었느냐?"며 따지는 바람에 매우 혼이 났다는 얘기였다.

한번은 모 교회 청년부 임원인 한 여자 분을 만나 복음을 전했다. 구원의 확신이 있고, 믿음만으로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 그분의 얼굴은 말과는 달리 그다지 확신이 있어 보이지 않고 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그 얼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당신의 확신입니까? 아니면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거나, 그래야만 된다는 고집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분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희망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그분에게 복음을 2시간 여에 걸쳐 설명해 주었다.

마침내 그분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예수님을 진정한 자신의 구주로 모셔들였다. 그분은 확신과 기쁨에 찬 얼굴로 "이젠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올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도 해 보았지만 그럴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가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얼마 전에는 그분의 주위 분들로부터 그분이 얼마나 달라진 삶을 살고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들었다. 그 때 내 마음은 날아갈듯 가벼웠다.

서울구치소에 있는 교도관 몇 분에게 전도훈련을 시킨 적이 있다. 그들이 구치소에 들어온 미결수들은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면 안 들을 수가 없는데 전하는 방법을 몰라 안타깝다고 해서, 내가 우선 전도 시범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서울구치소에 가보니 시범대상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널리 알려진 사형수였다. 교도관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복음을 전했다. 그 사형수는 많은 사람 앞이라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더니 많은 질문을 했다. 특별히 예수님이 신이라는 사실은 못 믿겠다고 했다. 그리고 용서만 받으면 됐지 천국까지 가는 것은 기대도 안하고, 갈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복음을 여러 가지 예화를 가지고 설명해 주었더니 그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영생 얻은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는 기독교적인 상투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신선한 언어로 기도를 해서 동석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후 그는 감옥에서 많은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천국에 갔다. 이후로 지금은 서울구치소 교도관 여러 명이 전폭훈련을 받고 있다.

이 훈련을 마치고 지금은 나보다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는 훈련자가 500여 명이나 된다. 그들도 훈련 기간 중에는 많이 어려워했다.

그중 모 은행의 텔러인 한 여자 분은 은행마감이 늦어서 훈련받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기에, 저 자신이 은행에서 근무하는 사람인지라 그분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당신이 그렇게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 은행에 파송된 선교사입니다. 선교사가 '전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함은 자명한 일입니다. 계속해서 훈련을 받으며, 훈련자로서 다른 사람을 전도인으로 훈련시키는 일을 지속하지 않으면 그 동안 받은 훈련이 다 쓸모 없게 됩니다" 하며 강하게 권면했다.

그 자매는 울면서 평생 어떤 고난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전도하고, 전도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작정했다. 그 자매는 직장인반 훈련의 시범조가 되었다.

한 은행 창구의 텔러가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그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나 선교사도 할 수 없는 특수한 사역지에, 한 사람을 전도인으로 훈련시켜 파송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 크리스천이 치러야할 3가지 대가
새생명훈련을 받은 직장인 형제자매들이 모여 명동의 향린교회를 빌려서 소그룹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90년 1월 아주 추운 날씨였지만 40여 명의 형제들이 저녁 7시 30분에 모였다. 같은 직장인이라는 공감대와 서로의 약함과 어려움을 잘 이해한다는 점, 그리고 성경 말씀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나누는 성경공부를 한다는 점이 매력이 있었는지 그 해 말에는 100명 정도로 직장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 명동지역에 근무하지 않는 형제 자매들의 참석이 거리 관계상 힘들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91년도 3월에 사랑의교회에서 직장인성경공부 강남모임을 시작했다.

이 과정 중에 최봉오 형제와 갈등이 생긴 적도 있었다.

강남 모임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매우 바쁜 본점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거의 매일 밤 12시를 넘겨서 퇴근을 했고 아침에는 7시까지 출근을 해야만 했다. 그 바쁜 와중에 성경공부 모임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서 고생을 하는 나를 보고 그는 아끼는 마음에서 "강남 모임은 내가 개척할 테니까 잘 되고 있는 명동 모임을 맡으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바쁘기는 했지만 '주님의 일마저 안 한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빠야 한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도 같은 제안을 반복했다.

이렇게 되자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그가 나를 불신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재미있는 일은 혼자 다 하고 나에게는 재미없는 일만 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침내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안 할테니까 혼자 다 하시라"고 빈정대며 "앞으로는 만날 일도 없으니까 그만 만나자"고 선언을 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나를 만나서 다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회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는 주일이었다. 주일에 사랑의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영락교회를 다니는 최봉오 형제가 우산을 쓰고 교회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교회로 찾아온 것이다. 그것까지는 피할 수가 없었다. 함께 근처의 커피숍에 가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마치 무슨 큰 죄나 지은 사람처럼 혹은 무슨 부탁이나 하는 것처럼 낮은 자세로 또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은행에서 노일대 형제가 맡은 일이 너무 바쁘고, 건강도 걱정이 되고, 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 모임을 개척하는 일 때문에 잘못되어 승진이라도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여러 가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랬던 것이지 못미더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요즘 나는 가끔 그의 눈에 글썽이는 눈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영적 리더의 짝사랑의 아픈 마음. 그것을 느껴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오해로 생기는 쓴 뿌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나의 오해가 얼마나 근거 없고 유치한 것인지, 사탄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 사이를 이간질하는지를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또 영적인 아비 노릇이 얼마나 속상하고 힘든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이 어린 직장 후배에게 오해를 풀어주고 진심을 말하기 위해 눈물을 글썽일 때도 있으니.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영적인 지도자는, 무슨 아쉬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도자이기 때문에 온갖 커뮤니케이션의 장애를 극복하고 영적 자녀와 화해를 시도해야 하며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그후 나는 여러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이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에게서 본 그대로 대화의 다리를 놓고 영적인 슬럼프에서 일어서도록 도와주곤 한다. 그는 나의 제자로서의 삶에 어떤 지침서보다 훌륭한 모델이 된 셈이다.

참으로 직장 속에는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복음을 들어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직장 속에서도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잠자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캠퍼스 시절에 그렇게도 열정적이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이라는 곳에만 들어가면 전도는커녕 자기 신앙도 주체를 못하고 마치 블랙홀에라도 빠져 들어가듯이 빛을 잃어 가는 것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을 막아서서 물러나 침륜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과 민족과 자신을 위해서 믿음에 굳게 서자고 독려한다.

뿐만 아니라 일꾼으로, 제자 낳는 제자로, 재생산하는 비전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붓는 바울과 같은 삶을 살도록 같이 힘을 합하자고 자극한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이 나라에, 직업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복음을 전하고 육성하는 일을 하자고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징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힘들어 할 때 그 곁에 서서 세상의 거센 바람에 저항하며 말씀대로, 믿음대로 사는 법을 보여 주며 같이 있을 때, 나는 각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겁쟁이가 아니라 초대교인들이 그랬듯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명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직장인 그리스도인에게는 참으로 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해 볼까하는 생각, 직장 업무의 과중함, 결혼문제, 승진문제, 부서의 이동문제, 상사 부하간의 인간관계, 술자리 참석문제, 주일날 직장의 야유회, 직장의 구조적인 죄악들, 거짓을 강요하는 업무 관행들, 거래처와의 관계 등등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우리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여 적용함으로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거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첫째, 세상사람들의 호의를 포기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위해서 직장 내에서 인격적인 수모를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셋째, 제자삼는 일을 하기 위해서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각종 여유와 혜택과 권리를 바치겠다는 헌신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전략적으로 배치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 각자는 각 직장에 파송된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선교사들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소임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우리 직장 속에서 예수님의 심장으로 우리를 보고 민망히 여기면서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먼저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직장 속에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성취를 돕는 직장인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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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대 집사 인터뷰

"나의 꿈은 폭발적인 크리스천을 양성하는 것"
 
 정윤석 기자

노일대 집사(47 . 사랑의교회, 산업은행 정보시스템부 차장)가 꿈꾸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하나다. 폭발적인 크리스천. 세상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분쇄하며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되심을 자신이 처한 장소에서 강력하게 선포하며 주위를 복음화시키고 진리에 바로 선 담대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이런 모습일 때에라야 주위 사람들은 "저 사람은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진리를 품은 사람이다. 저 사람에게 가면 내 인생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라며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이다.

그도 폭발적인 크리스천의 40일간의 전도로 1978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고는 싶었지만 의문점이 너무 많았고 진리가 아니면 인생을 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이상을 쫓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인생을 걸 만한 진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그의 담당 대리였던 최봉오 형제다. 그의 끈질긴 전도로 인해 그는 마음을 열고 예수를 영접했다.

자신을 낳은 최봉오 형제처럼 노집사도 폭발적인 크리스천으로 변모해 갔다. 영접한 바로 그날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아내와 남동생을 영접시켰다. 마치 진리를 발견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직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집사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자신이 전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를 했다. 거인 같은 농구감독 최과장, 인간성 좋은 박차장, 고생하며 자란 김 과장, 시인인 이과장, 외환딜러 문대리, 잘 놀기로 소문난 최대리 등 숱한 사람이 복음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일리노이 대학에 연수를 갔을 때도 그는 쉬지 않고 전도했다. 주변의 크리스천들이 '저 사람은 도무지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다'라고 낙점한 연수팀 사람에게도 노집사는 복음을 전했고 결과는 영접으로 나타났다. 이를 본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노집사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영적 재생산의 기쁨이라고 지적한다.

"직장에 들어온 목적은 출세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라'는 지상명령 성취입니다."

노일대 집사는 현재 직장인성경공부모임에서 훈련간사를 훈련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그가 물고 늘어지는 화두는 '폭탄같은 크리스천 만들기'에 있다.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복음의 다이나믹한 능력이 전세계에 퍼지게 한다는 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생한 전세계 약 7억 5천만의 평신도들이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고 1년에 1명씩만 제자를 삼아도 세계 복음화는 3년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의 꿈은 현재 전국 31개 지역 모임, 1400여 명의 직장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직장인 성경 공부 모임과 함께 무르익어 가고 있다. 주님의 재림을 직접 볼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세대가 될 소망을 품고서.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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