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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권사01/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학교
1998년 12월 01일 (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영애권사/ 온누리교회, 한동대 총장 사모

 

5년 전 여름, 한통화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남편(김영길 장로)이 KAIST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오랜 친구로부터 대덕에 있는 우리에게 밤중에 전화가 왔다.

"포항에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지는 신설대학에 크리스천 과학자 총장을 찾고 있습니다. 그 대학총장으로 김박사를 초청합니다. 한 번 고려해 보시지요!"

그 전화를 받자 생각할 여지도 없이 우리는 거절했다.
"제게 과분한 초청이고, 또 저는 과학자이지 행정가가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기도하시는 장로님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기도도 하지 않고 거절하십니까?"

수화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성은 우리의 마음을 찌르며 당황케 했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기도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사실은 며칠동안 기도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제안은 과학자인 남편이 연구를 중단해야 함을 의미하며, 따라서 우리 삶의 커다란 방향전환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대학총장직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다는 것은 그 당시 포항공대 초대 총장으로 계신 셋째 시숙 김호길 박사로부터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 주일이 지났다. 그분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기도해 보셨습니까?"
비로소 우리 부부는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했다.
"이 제안이 하나님의 부르심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초청입니까? 주의 말씀으로 분별하도록 알려 주소서."
하나님은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응답해 주셨다.
답답한 심정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목사님은 사도행전 9장을 강해하셨다. <아나니아와 사울>이라는 제목이었다.

"성령께서 아나니아에게 '다소사람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라'고 하셨을 때 만일 아나니아가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면 아마 그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서 그 당시 악명 높았던 사울을 찾아가 안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바울이 탄생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한 기독교 대학들이 많지만 오늘날 그들이 세속화되고 변질되고 있음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섭섭하실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학문과 대학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순수한 기독교 대학이 이 땅에 필요합니다"

우리 부부는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하필이면 목사님께서는 아나니아의 순종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대학 이야기를 하시는 것일까?

설교가 끝난 뒤 우리는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그 후 한 주일이 흐르고 두번째 주일이었다. 자리에 앉자 주보를 폈다. 설교 제목은 <부르심과 순종>, 본문 창세기 12장 1절에 4절까지였다.

익히 잘 아는 내용이지만 제목만 보아도 어쩐지 기분이 으스스했다.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 내용은 이전에 듣던 것과 달랐다. 점점 우리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우리가 있는 이 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당신을 의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너무 익숙하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떠날 그 곳은 미지의 세계요 어떤 상황이 기다릴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크게 놀랐다.
목사님의 설교는 이어졌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 하기 위해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지금 있는 이곳은 우리도 모르게 자기의 이름, 지위, 습관이라는 사슬에서 우리를 부자유케 하고 있습니다. 떠난 그곳은 이런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놀라움과 충격 가운데 설교를 계속 듣고 있었다.
"떠나라고 명령을 받은 사람은 지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 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제 하나님께서 더 이상 동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미지의 세계라 불안하지만, 오히려 더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를 꼼짝할 수 없는 협박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고생시키려고 떠나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요, 이름을 창대케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보호하심과 동행하심을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으로, 떠난 사람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 좇아가야 합니다.(4절)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혹 기근이, 환난이, 고난이 기다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에 깊은 감동이 왔다. 오늘의 설교는 바로 나를 위해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다. 남편도 내 손에서 손수건을 빌려갔다. 오늘의 이 설교말씀은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편하고 안정된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였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이화대학에서 14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얼마나 보람된 사명으로 알았던가! 그래서 그 때까지 남편의 발목을 잡고 만류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 외에 더 있었다.

"이 대학의 설립자를 우리는 과거에 만난 적이 없는 분이잖아요. 중소기업을 하시는 그분의 사업이 만약 잘못 된다면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어요. 이름 있는 재벌이 하는 대학이라면 또 모를까…!  앞으로 같이 갈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의 장래는 말할 것도 없고요. 당신이 KAIST 교수로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안전하게 연구하며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온누리 교회 장로로서, 또 창조과학회 사역으로 얼마든지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이런 좋은 연구 여건과 직장을 버리고 어떻게 이 나이에 모험을 하겠어요?"

나의 남편 발목잡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편이 포항의 대학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를 또 들었다.

"당신은 과학자예요.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연구와 실험으로 살아오신 분이 어떻게 갑자기 대학 행정가로 변신할 수 있겠어요? 제가 봐도 당신은 행정가보다 과학자로 연구하는 달란트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만류했었지마 나는 그날의 설교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나의 의지를 내려 놓아야 했다.
'주님,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차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지도하에 있는 수십 명의 석, 박사, 학생들의 논문지도며 그 많은 연구비와 연구실,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연구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아깝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명령 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떠날 수 없다면 그것은 벌써 내게 우상이오. 이때까지 내가 잘나서 연구를 잘 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소. 군대생활과 같은 인생에 이제 전출명령이 났으니 속절없이 떠나야 하지 않겠소. 앞으로 3년간 휴직계를 내어 학생 논문지도를 마무리 해야겠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인데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해야 하지 않겠소? 미국에서 한국, 서울에서 대덕단지, 그리고 이제는 또 포항으로 떠납시다! 그래도 우리는 저 멀리 아프리카나 러시아로 가지 않은 것만 해도 영전이라오. 우리는 우리말을 쓰는 내 나라 포항에 가서 한 손에 복음을, 한 손에 전문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킬 우리의 젊은이들을 양육하는 대학에 부름을 받았으니 특권이요 축복이오! 자, 이제 보따리 싸서 떠납시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그토록 은혜 가운데 결단을 하고도 교회 문밖을 나서자 또다시 어쩐지 불안감과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또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대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내 귀에 대고 '얘야, 그곳으로 가라' 해 주시면 얼마나 더 확실하고 좋을까요!" 마치 기드온처럼 떼를 썼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눈뜨고 평상시에 하는 말이나 눈을 감고 기도할 때나 동일하게 다 듣고 계셨다. 그리고 그 소원도 들어 주셨다.
"우리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알리지 않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느니라"(암3:7).

우리가 한동대학으로 가기로 결심하자 창조과학회 동역자들도 몇 분이 함께 가기로 나섰다. 그들과 함께 새 사역을 위해 기도회를 가졌다.

기도와 예배 가운데 한 형제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내가 이미 오래 전에 시작하였노라. 이제 때가 되어 너희 앞에 펼쳐 보이노라. 이 학교에 내 백성을 불러 이 세상을 변화시킬 인재들을 내가 친히 양육하리라. 너희는 너희의 이름만 내게 빌려 다오. 내가 사방에서 내 양떼들을 불러모을 것이며 이 양떼들의 생육은 번성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중간허리를 칠 터인데 저희는 놀라거나 염려하지 말라. 레위기에 가증한 것과 속된 것과 부정한 것과 거짓된 것을 이야기했건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구나! 이 학교는 깨끗한 돈으로 하리라.

너희는 앞으로 느헤미야서를 묵상하라. 52일만에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을 때 있었던 영적 공격이 앞으로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이 학교는 너희 믿음의 선진들처럼 눈물과 무릎으로 가는 길이다."

그 방에 모인 모두에게 충격적인 기도였다. 그러나 마음속에 찜찜하게 남는 것이 있었다. 도대체 중간허리를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앞길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우리는 무엇인가 조금만 일이 순탄치 않으면 이것이 중간허리를 친다는 말인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6월 말,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 든 순간 사회면에 난 큰 활자의 기사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포항 Y 실업제방붕괴, 환경공해 심각"
남편은 교수모집을 위해 지금 미국 출장 중이었다. 이 사고가 장차 학교에 어떤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러나 드디어 한 달 후인 7월 말경, 불안스러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사장은 놀라운 통고를 했다.       
"김박사님, 도저히 내년에 개교하기가 힘들겠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지는 한동대학이니 학교를 맡아 줄 새로운 재단 이사장으로 기독 실업인을 찾든가, 기독교계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저는 사심없이 학교를 떠나겠습니다. 만약 둘다 여의치 않으면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백지화 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이었다. 사람이 허리를 다치면 꼼짝없이 누워 있는 것처럼 재단의 모든 재정을 지원하는 사업체의 사고로 학교를 진행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하, 이게 바로 중간 허리를 친다는 예언의 말씀이었구나!'

최종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도 몰랐다. 이사장이 학교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총장이 밀고 나갈 일이 아니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것 같았다.

"믿음으로 행할 것인가, 상식으로 행할 것인가?"
상식으로 행한다면 당연히 하던 일을 중단하고 떠나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세미하지만 단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너는 지금까지 입으로만 나를 믿었느냐? 네가 지금까지 믿었던 하나님은 재단기업이 무너지면 속수무책인 무능한 하나님이더냐? 너는 지금까지 문자 속에 갇혀있는 관념 속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느냐? 어떻게 너는 지난 14년 동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있던 것도 없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다녔느냐?"

미국에서 귀국 한 후 지금까지 남편은 크리스천 과학자로서 창조과학회 사역을 통해 진화론의 허구와 창조론의 과학적인 증거를 선포했다. 이제 나를 구원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무능한 하나님으로 끌어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현상은 성경대로 살기에 너무 무서웠다.  여러 가지 두려움과 염려로 뒤로 물러서고만 싶었다. 남편은 여전히 과학기술원 교수로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적당히 둘러대며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면 예전처럼 편하게 살 수 있었다.

"좋은 기독교 정신의 대학이 하나 세워질 뻔했는데 아마 하나님 뜻이 아니었나봐요."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우리 멱살을 잡고 하나님 이름을 마음대로 도용하지 말라고 항의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은밀한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흔들림을 미리 아시고 4개월 전에 한 평신도, 하나님의 선견자를 통해 사고를 예고해 주신 것이었다. 이 때부터 두려움을 내어쫓기 위해 새벽마다 교회로 달려가 엎드렸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나가라고 우리의 등을 밀어 내 주셨다.

이제 곧 8월부터 학교 홍보를 시작한다는 계획이 짜여져 있었다. 홍보를 하려면 홍보물을 인쇄하고 인원을 동원해서 신설 대학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했다. 그러나 이사장께서 학교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계획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8월초, 한국 국적 과학자임에도 미국의 과학재단에서 뽑은 미국의 과학자 인명 사전에 남편이 수록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사실은 일제히 일간지 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의외로 '김영길 박사(한국과학기술원 교수, 한동대 총장)'으로 보도되었다. 아직 개교인가도 나지 않았고 출산도 불투명한 한동대학교의 총장이라고 소개되었으니 참으로 난감했다. 신문에 나고 말았으니 점점 포기의 기회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할 것이니 너는 앞으로 한동대 총장으로 행세하라' 하고 등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것을 계기로 월간지 등 각종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통해 남편은 앞으로 개교할 한동대의 비전과 교육목표를 매스컴을 통해 소신을 밝힐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인본주의 교육은 한계가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교육에 의해서 가능하다. 한동대학은 지금까지 입시위주의 지식교육에 치우친 교육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신앙을 바탕으로 인성교육을 시킬 것이다.
또한 21세기 정보지식화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 있는 인재, 영어와 전산을 다룰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중심의 대학을 할 것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자들도 과학자가 가진 새로운 대학구상과 비전에 대해 상당히 공감하며 격려해 주었다. 전혀 새로운 교육철학과 목표로 새롭게 시작하는 대학에 기대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동대학 홍보는 돈 한 푼을 들이지 않고 11월까지 저절로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구나. 따라서 한동대학은 확실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학이다'라는 믿음이 생겼다.

매스컴을 통해 뜻하지 않은 격려와 용기를 얻었지만, 그때부터 새 재단 이사장을 찾기 위한 애타는 발걸음은 서울과 대덕, 포항을 바삐 오가며 힘겹고 고달픈 나날이 시작되었다.

또 하나 우리를 뒤로 물러서지 않도록 힘이 되어준 것은 서울에서 합류할 동료들이었다. 개교도 하기 전에 재단의 무너짐을 알고도 동요하지 않고 함께 기도하며 학교의 출산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서로 서로 힘이 되었다.
그외 미국에서도 귀국할 교수진이 짜여졌다. 그 중에 김박사는 8월 중순에 잠시 귀국할 예정이었다. 10여년 간 미국 알라바마 헌츠빌의 컴퓨터 회사에 재직하는 그는 14년만에 한동대학으로 영주귀국을 할 결심을 한 것이다.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재단이 이렇게 되었으니 좀 안정이 된 후 김박사가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 지금의 불투명한 학교 상황을 그가 알면 귀국할 생각이 바뀔 것 같아요."

그러나 남편의 대답은 여유로웠다.
"내가 만나 본 그는 믿음이 있는 귀한 분이었소. 하나님의 사람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을 거요. 우리도 알다시피 미국 직장의 휴가를 번복하기 쉽지 않으니 그냥 계획대로 오게 할거요."

며칠 후 그는 서울에 도착했고 남편과 함께 포항으로 내려가서 건축 중에 있는 학교도 돌아보고 집으로 왔다. 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남편에게 물어 보았다.

"김박사님께 학교상황을 모두 얘기 하셨나요?"
"그럼, 했지!"
"뭐라고 하십디까?"
"궁금하면 당신이 직접 물어보구려."
나는 응접실에 있는 그에게 물었다.
"김박사님 학교가 이렇게 되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래도 귀국하셔서 한동대학으로 오실건가요?"
"사모님!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을 시작하셨는데 기도없이 어찌 이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겠습니까? 모두 기도하라는 사인이죠. 저는 올 겁니다."

그의 말에 나는 놀랐다. 과연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상황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을 듣던 대학 3학년인 딸 종민이의 말이 "엄마! 아빠도 저 김박사님도 모두 비 정상이예요.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도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말만 듣고 시골대학으로 겁없이 오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수한 회사에서도 그를 유치하려고 했으나 그는 오직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학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심지가 견고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다시 한번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다. 10월 말이 지나가는데도 재단을 인수할 새 이사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3월에 개교를 하려면 교육부 예치금도 있어야 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마치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것과 같았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쿵쾅거리는 일이었다. 이러다가 우리가 거짓말쟁이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가 아는 두려움이 앞섰다.

온누리교회의 하목사님은 한동대학의 시종을 아시며 애타게 기도해 주셨다. 마침내 그는 온누리 교회에서 제일 먼저 헌금 9억을 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명성교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내년의 개교인가를 받게 되었다.

개교인가를 받자 입시를 위해 교수요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입시 응시자격을 두고 전혀 새로운 생각을 했다. 그것은 수능 상위 25% 이내, 내신 5등급 이내로 응시자격을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교육부에서 쉽게 허가를 해 줄리 없었다.

한동대학은 장차 21세기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양성할 것임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해야 했다. 이 생각은 신설지방대학으로서 참으로 무모한 것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교육부 담당 관리는 어이없어 했다.

"김총장님, 꿈도 크십니다. 신설 한동대가 후기모집을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동대학 재단이 허약한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이런 조건으로는 틀림없이 정원미달될 것입니다."
"첫 해는 미달이 되도 좋으니 교육부에서 허락만 해 주십시오!"
"내가 이 직책에 있는 한 저희도 책임이 있으므로 허가를 못하겠습니다."

교육부 관계자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서 이 계획은 지연되고 있었다. 시간은 자꾸 가고 모집 요강은 빨리 발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강경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담당직원이 느닷없이 해외로 정근을 가게 된 것이다.
후임 담당자는 "이제 우리의 대학도 앞으로 자율화가 될 터인데 총장님 자신있으면 소신껏 한 번 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한동대는 최초로 응시 자격을 제한한 학교로서 입시요강을 발표했다. 며칠 후 원서를 마감했다. 400명 모집에 4천 8백 20여 명이 응시했다. 그 결과는 우리는 물론 교육관계자들도 놀라운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몰려 올 줄 몰랐던 것이다. 신문마다 대서특필이었다. 지방 신설대인 한동대 입시돌풍, 입시이변, 신설 명문대로 무난히 자리매김, 등 각색 표현들이 신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학생들이 서울이나 지방명문대를 합격하고도 전국각지에서 모여 들어 역 유학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서울 경기지역 학생들이 약 55%였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으로 소신 지원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시지 않으면 올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직접 하시고 우리는 그냥 심부름만 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2장 9절,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이다. 물이 포도주로 된 것을 맛 본 사람들도 연회장도 모르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던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변화의 능력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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