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문화 | 감동이 있는 한대목
       
목회자는 언제부터 결혼했을까
2002년 10월 23일 (수)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교회 밖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교회사 이야기>
유재덕 지음/ 도서출판 호산나 펴냄


요즈음에는 가톨릭의 신부나 수녀들을 제외한 나머지 성직자들의 결혼은 아주 일반적이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성직자들의 결혼 여부를 놓고서 격론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결론은 대부분 부정적인 쪽으로 흘렀다. 사람들이 성직자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고, 또 언제부터 그런 전통이 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수장으로 받들어진 베드로의 경우에도 중세 신학자들은 인정하기 꺼려했지만, ‘장모’에 대한 성경의 내용은 그가 기혼자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일부는 결혼을 그리 권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바울의 예가 대표적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역에 나선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을 때의 유익에 대하여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칭찬되거나 공식적으로 권장되지는 않았다.

사도 이후 시대에는 결혼이 개인적인 문제였다. 2세기에 이단으로 판정 받은 영지주의자들은 결혼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이었다.
인간은 본래 남자도 여자도 아니며, 악의 원천이 여자를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는 결혼생활을 통해서 자녀를 낳는 것이 악의 세력에 의해서 속박을 받는 영혼들을 증가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은 결혼을 단념하도록 적극적으로 가르쳤다. 이들과 달리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믿음을 가진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마땅한 신랑감을 구할 수 없어서 스스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수요는 많았지만 공급의 부족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3세기부터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성결한 삶의 어떤 상징으로 받드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학자이자 교사였던 오리겐은 결혼하지 않는 게 성경적이라 생각해서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

그의 행동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고 교회가 평온을 찾아가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성직자들도 역시 그런 흐름을 따라 부부생활을 절제하기도 했지만, 결혼을 금기하지는 않았다.

성직자들의 결혼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4세기에 이르러서였다. 315년경에 열린 앙카라 공회에서는 성직을 임명받기 전에 결혼을 할지 아니면 독신을 고수할지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런 뒤에는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불가타 역’의 번역자인 제롬은 열렬한 결혼 반대자였고, 서방의 신학자들 가운데는 임신을 하게 되면 원죄가 아이에게로 들어간다고 믿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이 언제나 모범이 되지는 못했다. 독신을 고수하는 일부 성직자가 아내가 아닌 여자와 함께 살거나, 이미 결혼한 일부 성직자들이 독신생활을 위해서 아내를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로마 당국은 420년에 아내를 버리는 일을 금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5세기부터 교회는 결혼에 대해서 어느 정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직을 임명받기 전에는 결혼이 허락되었지만,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는 언제나 독신자 가운데서 선출되었다.

서방교회는 성직자들의 결혼에 대해서 동방교회보다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 수도원 운동이 점차 교회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교황 레오는 성직이전이라도 결혼을 금할 것을 지시했고,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이 독신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졌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 7세 때에 이르러서 성직자들의 결혼을 금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면 오늘날처럼 개신교 성직자들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터는 1525년 6월 13일에 수녀 출신 카타리나 폰 보라와 화촉을 밝혔다.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타락한 신부와 소녀의 간음이라고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그 이후로 성직자들은 본격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장경애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국가기관에 제소하면 면직 출교,
통합, 에스라하우스(노우호) ‘이
신천지(이만희) 온라인 세미나,
이명범, 사과문 발표 이단 해지
통합, 인터콥(최바울) ‘참여자제
전광훈 이단 규정 없어, 교단의
이만희 교주, 감염병예방법 위반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