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지덕 목사)가 지난 99년 4월 30일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공식 규정한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한기총이 연합단체로서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한국교회의 민감한 이단문제를 내용성 있고 치밀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연합단체도 '의지'만 있다면 어느 단일 교단 못지 않게 얼마든지 이단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한기총의 이번 '이재록 건' 결정은 그 문제의 접근 과정에서부터 그 동안 취해온 모습과 크게 차이가 났다. 흔히 생길 수 있는 '외압'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데서부터 달랐다. 사실 이 부분이 이단문제 본질의 외적 요소 중 최대의 관건이다.

한기총은 두 가지 면에서 노력했다. 첫째는 5명의 전문 연구위원을 비공개했다는 것이다. 약 4개월의 연구 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불어올 수 있는 소위 '정치 바람'을 막아보자는 노력이었다. 둘째, 조사, 연구, 결론 등 전권을 5인 연구위원들에게 위임했다는 것이다. 연구위원이 낸 결과를 이단대책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받아들였고, 또한 그것을 한기총 임원회가 역시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한기총 임원회가 '이재록 건' 조사, 연구, 결론의 전권을 이대위에 일임한 것은 임원진에 의해 연구 결과가 번복되는 등의 또다시 불어올 수 있는 정치 바람의 틈새까지도 막고자 한 세심한 조치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이재록 씨에 대한 연구는 결국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무서운 이단" 규정으로 매듭된 것이다.

52개 교단 및 14개 기관의 연합으로 구성된 한기총이 그 동안 사이비이단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온적인 입장을 취해 온 경우가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최순영 장로 건의 경우 그 연구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호해져버린 것이나, 조사 연구 결론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관계로 연구 내용이 어떠해졌는지 불투명해져버린 안식교 건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따라서 이번 이재록 건의 결정은 사이비이단 문제와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한기총 최초의 공식 규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고 한기총을 향한 외압이 그렇게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4월 16일 일부 이단대책위원이 "기자들이 있으면 안 된다. 비공개로 회의를 해야 한다"는 등 절차 문제로 트집을 잡으며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듯한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재록 측에서는 한기총 이대위의 결론이 내려지자 부랴부랴 '재조사'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한기총 대표회장 앞으로 송달하는 등 어떻게 하든 문제를 희석시켜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기총 임원회는 이재록 측의 재조사 요청 자체를 이대위에 즉각 위임했고, 이대위는 지난 5월 13일 "이유 없다"며 이씨의 요청을 기각해버렸다.

한편, 일부 교계 신문들은 이재록 측의 정서에 편승해, 한기총 이대위의 회의 절차 문제 등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착했다. 그 결과 '이재록 이단성'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한기총의 '이재록 이단' 결정은, 교계는 물론 일반 언론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쳤다. 먼저 이씨의 제1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신현균 목사가 이씨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을 했다. 신목사는 기독신문(5월 5일자) 광고면을 통해 이목사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과의 유관된 모든 단체에서 이목사의 명의를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신목사 역시 자신의 성명서 발표를 두고 외압(?)과 상당히 줄다리기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12일 방영된 MBC PD수첩 '이단 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의 프로그램도 결국 한기총의 이번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다. 한국교회 대표적인 연합단체에서 내린 결정을 비중 있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재록 씨에 대한 이번 한기총의 연구 결과는 결국, 그로 하여금 두 가지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몰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그래, 나는 신(神)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지금까지 가던 길로 가든지, 아니면 "회개합니다"며 180° 방향을 틀든지 말이다. 그러나 이씨가 후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월간<교회와신앙> 199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