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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 공동체가 확증하는 ‘복과 저주’의 진리
정훈택 교수의 ‘가계저주론’반박에 대한 이윤호 목사의 재반론(完)
2003년 08월 13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들어가는 말

필자는 지난 번 글에서 “신자는 더 이상 저주아래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계의 저주를 포함한 모든 저주는 이미 끊어졌다”라는 정훈택 교수(이하 반론자)의 견해의 오류성을 정통적 구원론과 종말론의 입장에서 반박하였다. 필자는 반론자의 견해를 하나의 신학이나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다양한 신자들의 비가시적 연합체인 ‘성경해석 공동체’를 통해 다시 평가하고자 한다. 또한 필자는 ‘복과 저주’의 진리를 실생활에 적용할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괄호([  ]) 안의 인용문은 반론자의 주장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85번에 대한 반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말하고 있지 . . .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불행과 고통을 말하고 있지 않다]라는 반론자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반론자의 주장은 “율법을 범함으로 받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기 위해 신자는 외적 혹은 보통 방편인 말씀, 성례, 기도를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소요리 문답 제 85번의 답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 저주’로서 ‘가계의 저주’와 같은 개별적 저주를 포함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최종적 저주의 종결은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이다: “다시는 저주가 없게 된다(No longer will there be any curse)”(계 22:3).

베드로전서 1장 18절의 ‘유전’에 대한 반론

필자는 본문의 말씀을 [유전이 아니라 전수(傳授)/전수(傳受)/전승(傳承)을 뜻한다. . . 잘못된 생활방식의 습득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라고 해석한 반론자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필자는 원죄의 결과인 ‘망령된 행실’이 ‘저주’의 하나의 통로인 유전을 통해서 후손에게 전수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필자는 왜 성경 번역자들이 ‘전수하다(hand down)’는 단어를 ‘유전’으로 번역했는가를 반론자에게 묻고 싶다. 또한, 필자는 어떻게 ‘유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히브리서 7장 6~10절의 말씀이 “인간의 영·혼·육 총체적 본성이 부모를 통해 유전된다”라는 ‘영혼 유전설/전이설’을 지지하는 주요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있는가를 묻고 싶다.

조상의 죄악적 행동성향이나 죄의 결과가 “유전을 통해서 혹은 부모의 삶을 모방하는 등 환경적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직신학자 밀라드 에릭슨은 이런 진리를 지지한다(<Christian Theology>, 654면).

또한 질병 및 비정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 인자를 발견한 게놈(genome) 연구는 이런 진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반면에, [잘못된 생활방식의 습득]이라는 반론자의 견해는 성경과 배치되는 펠라기우스(354~418?) 이론과 흡사하다.

[가계치유론이 . . . 새로운 계시를 받은 것일까?]에 대한 반론

반론자의 이런 질문과 같이, ‘가계저주론’ 뿐만 아니라 교회역사상 새로운 주장, 시도 혹은 사역방법은 늘 도전을 받아왔다. 물론, ‘오래된 모든 것이 다 금이 아니고, 반면에 새로운 것이라고 진리가 될 수 없다’라는 미국의 속담과 같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무조건으로 수용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새로운 것의 내용이지, ‘가계의 복과 저주’가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기본 논리는 ‘성경적 침묵에 의한 논쟁(arguments from biblical silence)’이다. 이런 논리는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을 무조건 비성경적인 것이나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논증법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논증법을 교회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것에 적용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예를 들면, 투표제도, 여자 목사 및 장로 안수, 노예제도 철폐, 주일학교(Sunday schools), 제자훈련, 교회성장, 셀 사역, 가정사역, 심리학/상담학 등이다. 반대자들은 이런 사역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성경구절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찬성자들은 이런 사역에 대한 성경적 개념(concepts)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사적 실례들을 찾을 수 있지만, 처음 도입되었을 때 기존 신자들의 저항 역시 상당히 거셌다. 또한, 교단에 따라, 나라에 따라 아직도 논쟁중에 있는 것들도 있다.  과연 그렇다면, 왜 새로운 사역이나 제도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이는 신학형성의 하나의 출발점인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대처럼 가정이 파괴되는 위기가 새로운 상황으로 등장했고, 이런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복과 저주’의 진리를 적용할 필요성

필자가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신자는 ‘이미’와 ‘아직’사이의 종말론적 긴장가운데 살고 있다. 따라서, 신자들이 이미 획득한 신분을 통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런 진리를 잘 대변해준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그는  ‘이미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라는 말씀을 통해 ‘이미 성취된 것을 성취하라’고 권면한다. 이 말씀을 ‘복과 저주’의 진리에 적용한다면, 하나님은 그가 이미 이루신 ‘복과 저주’의 진리를 신자들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천국에서 혹은 재림시 받을 축복을 이 세상에서 최대한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이는, 칭의의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화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축복을 신자들이 더 많이 누리는 것이다.

‘복과 저주’의 진리를 증언하는 성경해석 공동체

‘복과 저주’의 진리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신, 구약 성경에 많이 언급됐지만, 교회사를 통해 그다지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이는 대부분의 조직 신학책들의 색인은 ‘복과 저주’의 주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적 전쟁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가계의 복과 저주’에 대해 언급한다. 또한, 미국의 대부분의 신학교들은 가정치유 및 가계도(genogram)에 대해 가르친다. 한국 교회에 열풍을 일으키는 셀 교회의 모범이 되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ICM) 교회는 ‘가계의 저주’를 끊는 사역을 중요한 사역으로 간주한다: “‘대결 수련회’라 불리는 평신도 집중훈련 과정에서 ICM교회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의 근원(the roots of generational curses)을 찾아내는 진단도구를 사용한다”(Joel Comiskey, <Groups of 12>, 70면).

1999년 가을에 장로교 신학대학에서 ‘가계의 복과 저주’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을 개최한 오성춘 교수(상담학 전공)가 “가계의 복과 저주는 신학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단지 성도들이 ‘가계저주 신드롬’에 휘말릴까 염려된다”라고 균형잡힌 결론을 내린 것도 주목할만하다.

몇 년 전, 필자의 모교인 풀러신학교에서 교수들 및 신학생들 간에 ‘가계치유’ 논쟁이 벌어졌을 때 당시 부총장이며 신약학 교수인 Russ Spittler박사는 신학교의 공식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후손에게 임한 부모와 조상의 영향이 지속적이고 미묘하다는 견해는 풀러신학교가 가진 기본 신조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 . 나는 가계치유는 (서양의학의 대체의학인) 동양 침술과 같이, 기독교 가정치유의 하나의 대안으로 여긴다.

가계치유는 모든 경우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내담자들의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고무적인 간증을 남겼다(The idea that parental and generational impact on descendents is both durable and subtle violates no article of the Seminary’s Statement of Faith. . . I think of generational healing as a sort of alternative Christian therapy comparable, say, to Asian acupuncture. It may not work in every case, but for many it has produced compelling testimonials of decided improvement).”
‘가계치유’를 지지하는 서구의 신학자들, 치유사역자들, 목회자들 및 심리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에 관해서는, 필자의 책, <가계의 복과 저주를 성경해석 공동체로 확증한다>, 179~203면과 메리딧 G. 클라인(Klein)의 책, <언약: 성경권위의 구조>를 참고하라.

맺는 말

필자는 ‘복과 저주’의 진리가 논쟁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필자는 ‘복과 저주’의 진리는 성경의 확고한 근거를 갖고 있으며, 특히 임상적으로 효력이 있음을 재차 천명하고 싶다. 반면에, 필자는 ‘과정중의 신학(theology in progress)’인 ‘가계치유’ 신학의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을 기대한다.

끝으로 바쁜 중에 진지한 토론에 임해 주신 정 교수의 연구 및 교수 사역 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이번 지상논쟁을 끝맺고자 한다(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가계의 복과 저주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필자의 책을 참조하고, 본고에 대한 토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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