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건설 중인 경수로발전소 공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8월 7일 공사부지인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는 경수로 본체에 콘크리트를 처음 타설하는 착공식이 열렸다. 이제 대북 경수로 사업은 결코 중단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 동안 약속위반을 이유로 핵합의 파기를 위협해온 북한도 경수로를 통한 핵문제 해결 방안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의미 때문에 경수로 사업을 추진하는 국제기구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관계자들과 국내외 취재진 등 135명이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인 한나라호를 이용해 현지에 도착해 착공식에 참여했다. 또 경수로 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 90여명 중 60명이 참석하고, 김희문 경수로대상사업국장 등 북한 관계자 20여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본체 공사 착공이 당초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이제라도 공사에 들어가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완공지연에 따른 보상 문제를 미국 등에 제기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한 인사는 “공연히 미국의 약속을 믿고 자체적인 핵 발전 계획을 동결했는데 경수로 공사가 늦어져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콘크리트 타설 공사는 그 동안 벌여온 부지정리 공사를 마무리하고 경수로 본체가 자리할 터에 콘크리트를 처음으로 쏟아 붓는 단계다. 경수로 발전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원자로가 자리할 본체 격납용기를 만들기 위해서 본격적인 공사를 벌이는 것이다. 지진이나 폭격 등 외부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격납용기는 두께 1.2미터의 콘크리트로 둘러 싸여있고 높이만도 60미터에 이르는 돔형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지난 94년 10월 체결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추진되는 대북 경수로 건설 사업은 비용만 46억 달러가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가운데 한국이 비용의 70%인 3조5천 억원을 부담하게 돼있고 일본은 10억 달러를 부담한다.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4개국이 KEDO의 집행이사국을 맡아 공사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일반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제사업이다.

공사부지로는 옛 소련 때 원전을 건설하려던 함흥에서 동북쪽으로 80 킬로미터 떨어진 바닷가인 함경남도 금호지구가 결정됐다. 과거 신포시였던 이곳의 9개 마을을 통합해 금호지구라는 독립행정구를 탄생시킨 것이다. 전체 부지면적이 270만 평이 이를 정도로 방대한 규모다. 현재 공사 진행률은 22% 수준이다.

그렇지만 앞서 북한측 인사들의 불만에서도 엿보이듯 지금까지의 공사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계기로 본격화한 북한 핵위기의 해소를 위해 미국 등 관계국은 북한측에게 핵관련 시설의 동결을 대가로 100만킬로와트짜리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비용은 공짜가 아니라 완공이후 3년거치 17년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94년 북미 핵합의에 따라 이듬해 6월 북미간 쿠알라룸푸르 협상에 따라 경수로의 노형을 울진 3, 4호기와 같은 한국 표준형 원전으로 하기로 했고,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2003년이 완공 목표시한이었지만 현재로서는 내년 완공은 불가능하다. 2008년이나 그 다음 해쯤 돼서야 완전한 마무리가 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북한은 당초 약속보다 지연된 데 따른 전력 손실분을 마땅히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측의 입장은 다르다. 경수로 공사의 지연이 96년 북한의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과 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빚어진 긴장상태 때문인 점이 분명한 만큼 북측의 책임이 더 크다는 얘기다. 이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내년도에는 적지 않은 마찰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또 있다. 경수로 공급협정에 따라 원자로 등 핵심부품이 북측에 인도되는 시점에 북한은 전면적인 핵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핵심부품 인도시기를 2005년께로 잡고 있는 미국 등의 전문가들은 사찰에 2∼3년의 준비가 필요한 만큼 내년도에는 사찰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반면에 북측은 두세달이면 충분하다고 버티고 있다. 2003년 핵위기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 등 서방의 대북 강경파들은 경수로 제공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플루토늄의 추출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고, KEDO 등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철저한 핵통제 시스템을 벗어나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한다.

아무튼 북한 경수로 사업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 현재 공사현장에서는 우리 근로자 700여 명과 북측 근로자 90명이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공사가 최고조에 달하면 하루 5천∼6천명의 근로자들이 투입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분단 이후 남북한이 공동으로 벌이는 최대의 역사(役事)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주도로 시작됐고 국제기구인 KEDO와의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금이나 인력 등 여러 측면에서 남북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이뤄지고 있고 남북간 교류협력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벌써 지난해 12월 첫 방문에 이어 모두 세 차례 북한 경수로 관계자들이 남한을 다녀갔다. 또 지난 달에는 강원도 양양과 북한의 선덕비행장을 연결하는 직항공로편이 개설돼 경수로 관련 물자와 인력을 실어나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6월부터 금호지구 부지에서는 123명의 북한 요원들이 우리측의 지도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교육을 마치는 오는 10월 서울에 와 경수로 관련 교육훈련을 받게 된다. 북한은 특히 서해교전이 이뤄진 직후인 7월초에도 핵안전규제요원의 남한 방문을 강행했다.

이처럼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은 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다. 경수로는 전력난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에게 빛과 에너지를 줄 수 있다. 또 핵과 미사일 의혹으로 인해 따돌림 받던 북한을 당당히 국제무대에 서도록 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경수로 공사가 순조로운 진척을 보여 민족의 화해와 분단극복의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그런 상징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