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라우센부시(1861∼1918)는 독일에서 배웠다. 일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미국 신학생들이 독일로 유학했다. 우리가 미국을 평가하듯 그들도 그러했다. 그는 릿츨학파에서 공부했다. 당시 다른 신학생들처럼 그도 헤르만이나 하르낙 같은 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 슬럼가의 목회자

라우센부시는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독일계 신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난다. 경건한 독일계 침례교 전통에서 훈련을 받았다. 신학 졸업한 뒤에 인도로 선교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반대해서 못 가게 된다. 그의 구약을 보는 견해가 너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뉴욕시 슬럼가로 목회하러 들어간다. ‘지옥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지역이었다. 여기서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직접 보게 된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경건주의적 또는 개인주의적 인도주의가 얼마나 사회문제 해결에 무력한지 경험한다.

11년 동안 여기서 목회를 한 뒤에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후에 라인홀드 니버는 그를 “사회기독교의 창시자요 가장 탁월한 대표자”로 부르게 된다. 릿츨학파의 가르침은 그로 하여금 전통적인 개인구원을 위한 목회를 버리고 사회를 향한 책임을 강조하게 한다.

그러다가 1897년 그는 자기가 나온 로체스터 신학교의 교수직을 맞게 된다. 여기서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일을 계속한다. 그의 전공은 교회사였다.

하지만 교회사에 관해서는 거의 글을 쓴 게 없다. 온통 사회문제에 대해 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07년 독일에 머무는 동안 <기독교와 사회적 위기>를 출판한다. 여기서는 그 시대의 사회악이 비판된다. 그리고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제시된다. 그것이 너무도 급진적이라서 본인도 “위험한 책”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이 책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날 각오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이 책이 당시 상황에 잘 맞추어 나왔기 때문이다. 전에 포이엘바하나 니체가 가르치던 학교에서 쫓겨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 사회복음주의자

미국으로 돌아오는 라우센부시는 유명인사가 된다. 그는 열정적으로 강의와 설교와 글쓰기에 몰두한다. 말년에 그는 <사회복음의 기독교화>(1912)와 <사회복음의 신학>(1917)을 출판한다. 뒤의 책은 <하르낙의 기독교란 무엇인가>에서처럼 자유주의 신학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릿츨학파의 분위기대로 철학이나 교리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역사적 예수는 거룩한 공동체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라우센부시가 보기에는 인간은 영적 요구와 자연적인 충동의 사이에서 사회를 향한 구원의 도리를 선택해야 했다.

기독교는 사회 공동체라는 단어에서 발견된다. 예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개인적이고 영적이고 내면적인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얻어야 하는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이다. 기독교는 거룩한 사회적 이상을 성취해야 한다. 그 일을 간절히 소망할 때 비로소 기독교는 살아 움직이게 된다.

하르낙이 원시 기독교가 헬라문명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보는 것처럼 라우센부시도 원시 기독교의 사회적 이상이 없어지면서 기독교도 변질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 원리대로 기독교는 방향을 완전히 되돌려야 한다. 이것이 예수의 복음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죄와 구원의 개념부터 다시 돌려져야 한다. “죄는 이기심이다. 이 정의는 개인주의적인 신앙보다 사회복음에 더 맞는다. 죄악의 마음은 비사회적 또는 반사회적 마음이다.” 전통적 견해처럼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으로 보는 게 아니다.

“제일 나쁜 죄는 맹세를 한다든지 종교를 경멸한다든지 삼위일체의 신비를 부정한다든지 하는 게 아니다. 나라의 부가 특정계급의 사유재산이 되고 가난한 농부 노동자들이 아무런 권리도 없이 위협을 당하고 가난해지고 부도덕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결국 죄의 원인은 개인적 이기심과 인류전체에 대한 공통의 이익 사이의 갈등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인격이기보다는 인류전체의 이익인 셈이다. 개인적인 구원은 이기심만 조장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구원은 서로 섬기고 협조해서 사회전체가 좋아지는 것이다.

◆ 개인구원이 아니라 사회구원

하나님은 인류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성취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죄악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온전히 보이고 펴도록 하는 일을 방해하고 파괴한다.

그러므로 우리 동료 사람들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죄악이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한다.
인류의 진보를 막고 개인 욕심을 채울 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진다. 이것이 바로 죄악이다. 이 우주는 하나님이 높은 곳에 혼자 독재자로 계시고 우리는 낮은 여기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고통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영적 공동체 가운데 계신다.

늘 그랬듯이 자유주의 신학은 당시의 문화를 보여준다. 철학이나 사회변화 등이 신학에 표현되기 때문이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자유주의는 신학을 단순히 개인적인 칭의와 화해의 경험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구원은 도덕적, 사회적, 진보적인 의미에서 설명되었다.

그에게서 가장 다루기 곤란한 분야가 경제였다. “이윤을 남기는 사업이 현재 모든 문제의 중심이다. 경제생활이 우리 사회에서 중생하지 못할 분야이다.” 그의 가르침이 왕성하게 일어나지 못한 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때문이었다.

라우센부시의 사회복음은 그후 주춤하다 후에 남미 해방신학, 한국 민중신학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후자들은 이보다 훨씬 과격하게 변화를 추구한다. 방법을 거의 가리지 않으면서 공산주의나 비슷한 투쟁노선을 택했던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신화적 이야기로 넘겨버릴 때 개인의 구원은 의미가 없어진다. 사회의 발전 즉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도전이 구원의 길이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왕국은 이 땅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늘 거기와 멀고 구원은 미래에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