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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목사 소속 교단측의 양심과 양식과 신학을 의심한다
2001년 04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본인이 <교회와신앙> 2001년 2월호에서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은 비성경적이다'라는 제목의 글로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을 지적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정작 당사자인 이광복 목사가 본인에게 직접 보인 반응은 없고, 그가 속한 예장 개혁(광주측) 교단에서 교단지 <개혁신문> 2001년 3월 3일자를 통해 반응을 보였다. 즉 '이광복 목사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성명서와 함께, 본인이 '예장 개혁(노량진측)의 사주를 받아서 이목사를 비판했다'는 보도를 한 것이다. <개혁신문>은 그 같은 음해 보도에 변한규 목사의 코멘트를 앞세웠다.

  처음에 그 기사를 접하고 객관성이 없는 유치한 반응이라 여겨 그냥 둘까 생각했다가, 이 글이 이단들에 의하여 악용될 가능성이 큰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답을 하기로 하였다. 먼저 윤리적 부분에 대해서 대답하고 다음은 신학적 부분에 대하여 대답하겠다.

  솔직히 이광복 목사가 소속된 그 교단에는 본인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많다. 존경하는 동료 선후배도 있고, 교수도 있고, 그리고 은사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적으로 유감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보수주의와 칼빈주의를 자처하는 교단의 반응이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란 점에서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미련스런 주문을 하며 글을 시작한다. 본인의 글을 감정적으로 받지 말고 냉철한 이성과 신앙으로 이해하여 객관적으로 내용 있는 답을 해주기 바란다.

  본론: 예장 개혁 광주측 교단의 양심과 양식과 신학을 의심한다

  첫째, 본인이 예장 개혁 노량진측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에 대하여

  광주측의 주장은 본인이 노량진측의 사주를 받아서 이광복 목사를 이단시했다는 것이며, 본인의 입지 확보를 위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인신공격적인 음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광주측 교단에 속한 사람들 중에,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밝히겠다.

  ①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7년 전인 1994년 <교회와신앙> 8-9월 합본호에서 진용식 목사가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과 3세대론은 성경적인가'라는 글을 썼고, 곧이어 1994년 11-12월 합본호에서 이광복 목사가 '진용식 목사님의 질문에 대답하며'라는 답변서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그 때에 본인이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에 대하여 취급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하였다. 그 동안 7년 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독자들에게 죄송한 터에 계속해서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에 대하여 상담이 이어짐으로 7년 전 독자에게 한 그 약속을 이번에 지키게 된 것이다. 누구의 사주를 받아 갑자기 취급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② 그리고 지난 7년 동안에 이광복 목사는 자신의 이단성에 대하여 취급하지 말 것을 본인에게 여러 채널을 통하여 여러 차례 요청하였다. 본인의 생각에 이광복 목사가 본인을 찾아온 회수가 적어도 5회 정도는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한 번도 이 목사의 이단 문제를 취급하지 않겠다고 말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만날 때마다 취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였다. 늘 만날 때마다 "곧 취급하겠다"고 하며 그렇게 7년을 보냈다. 그 외에도 이광복 목사는 여러 번 본인의 동창이나 본인을 잘 아는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취급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 때에도 한결같이 "곧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계속 견지해왔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 이광복 목사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그 증인들도 있다. 본인이 갑자기 누구의 사주를 받아 이광목 목사 문제를 취급한 게 아니라는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보아도 갑자기 누구의 사주를 받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은 상식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누구의 사주나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할지 몰라도, 그러나 본인은 목사로서 그리고 한국교회의 사이비 이단을 밝히는 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 증거가 있다. 본 2001년 2월호 글을 쓰기 직전에도 이광복 목사의 요청에 의하여 만난 자리에서 그는 몇 달만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광복 목사에게 "그 동안 지적 받은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고치겠다고 공적으로 발표하면 고려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광복 목사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교회와신앙> 인쇄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광복 목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본인은 이광복 목사가 어떻게든 자신의 문제를 취급한 책만 발행되지 않게 하려는 꾀를 부리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본인이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을 밝힌 것은 노량진측의 사주를 받아서 한 것이 아니라, 이광복 목사의 요청를 거절하고 오히려 진실을 따라서 한 일이다. 누구의 사주를 운운하는 것은 내용에 있어서 대답할 진실과 용기가 없고 평소에 남의 사주나 받아서 살아가는 데 익숙한 자들의 선입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③ 그리고 사주를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피할 수 없는 압력이나 인정, 또는 금품이나 기타의 유익을 위하여 하는 행위를 가리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본인을 사주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이광복 목사 자신이다. 지난 7년 동안 이광복 목사는 자신의 이단성을 취급하지 말 것을 인맥을 통하여 주문하였고, 만날 때마다 직접 본인에게 사정하였고, 심지어 본인에게 약도 보낸 일이 있고 돈까지 보낸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본인은 그것들을 다 돌려주었다.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광복 목사의 양심이 진실을 떠났다고 보이기 때문에 밝히는 바이다.

  ④ 문제는 변한규 목사님과의 진실이다.
  지난 7년 전에 이광복 목사 문제를 취급하고 난 후 변한규 목사님께서 밤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일이 있다. 취지는 '이광복 목사를 고쳐서 쓸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인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일이 있다. 그리고도 이번에 이광복 목사 문제를 취급키로 결심하고 평소에 존경하는 목사님이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변목사님께 전화로 취급할 것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변목사님은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참아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본인은 "아무래도 목사님이 이광복 목사를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의 이단성을 설명드릴 터이니 고쳐서 쓸 수 있는지 없는지 목사님께서 판단하시지요"라고 말씀드린 일이 있다. 그리고 변목사님의 인간적인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글을 쓴 것이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신문 기사에는 본인이 변목사님에게 "자꾸만 자료만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터뜨려라는 (노량진측의)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말은 기자가 만들어서 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확인하였더니 역시 본인의 예측과 같았다. 변목사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개혁신문>의 발행인이 변한규 목사님이란 점을 고려할 때 변목사님에게 음해보도의 도의적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을 밝히겠다. 본인이 할렐루야기도원 문제 때문으로 인하여 노량진측 모 인사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그때 본인이 노량진측 인사에게 이광복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는데 곧 취급할 것이라고 하자 "그렇게 해 달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은 변목사님에게도 다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후 노량진측 모 인사께서 본인에게 "좀 미루어줄 수 없느냐"는 요구를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그분의 요구를 거절하고 본인의 의도에 따라서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을 밝히게 되었다. 본인은 '누가 취급하라고 해서 취급하고 누가 취급하지 말라고 해서 취급하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주를 받아서 했다'고 하니 이는 본인에 대한 명예훼손인 것이다. 여기에서 그 글을 쓴 기자에게 충고한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기자는 스스로 펜을 잘라 버리고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기자는 한국교회의 공해에 불과하다.

  이것이 사주라면 사주이다. 혹 노량진측 사람이라도 자신들이 요구해서 본인이 취급하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해이다. 본인의 의도에 의해서 했고, 필요에 의하여 했고,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여겨서 한 일이다. 만일 본인이 광주측 사람들에게 "개혁신문의 그 글은 누구의 사주를 받아 쓴 글인가?" "이광복 목사의 사주인가? 교단측의 사주인가? 아니면 혹 마귀의 사주는 아닌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둘째, 이광복 목사에게 교리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점에 대하여

  1) 이광복 목사의 말에 대하여.
   먼저 <개혁신문>의 기사에 나오는 이광복 목사의 멘트는 그의 의도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겠다. 그러나 본인으로서는 그 기사에 대하여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 이제라도 이광복 목사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진실을 말하기 바란다.

  ① 먼저 양태론을 주장한 일이 없다고 한 점에 대하여
  본인이 이광복 목사의 삼위일체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은 이것이다. 이목사가 양태론적 주장을 한 일이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의 잘못을 시인한다고 하는 그 내용에 진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개혁신문>을 통하여 잘못이 없다고 하니 더욱 큰 실수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수를 했으면 실수라고 인정하면 된다.

  먼저 <개혁신문>(3월 3일자)의 내용을 살펴보자.

"양태론을 주장한 사실이 없으며,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유일신관에 조금도 의심이 없다.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의 위를 설명함에 있어 세 인격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양태론자'라고 몰아 세운다면 누가 비켜 나갈 수 있겠는가"

 반증하겠다.

  첫째, 먼저 다음의 말은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가능한 말인지 대답하기 바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을 하자면 이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는 한 나무지만 뿌리가 있고 또 줄기가 있고 또한 열매가 있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나 예수님이나 성령의 주나 다 한 분이십니다"(설교테이프, 92년 6월 7일 보혜사 성령).
 이 말은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예화이다. 정통교회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예화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정통 삼위일체관과 일치하는지 설명해 주기 바란다.

  둘째, 이광복 목사가 <개혁신문>의 기사처럼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한 일이 없다면 왜 <흰돌설교> 2000년 9월호(188쪽)에서 "잘못된 점을 시정합니다"라는 글을 쓰게 되었는가? 계속 자신의 삼위일체관이 옳다고 주장했어야 주관적으로 진실하지 않았겠는가? 길이가 다른 두 개의 날개로 날으려는 새의 미련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셋째, 그리고 더 기가 막히는 점은 <개혁신문>의 내용이다. 위의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의 위를 설명함에 있어 세 인격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양태론자'라고 몰아 세운다면 누가 비켜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한 말을 보면 이광복 목사는 자신이 무슨 주장을 했고, 본인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비판하게 되었는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삼위일체의 삼신론적 이해와 양태론 이해조차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이목사에게 문제를 삼은 것은 이목사가 '본질이 하나이고 인격이 셋이라고 해서 양태론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인격이 하나라'고 하기 때문에 양태론적이라고 한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위의 말이 기자의 실수라면 이해하겠다. 그러나 만일 기자의 실수라면 그런 기자를 고용하고 있는 <개혁신문>이나 이광복 목사나 다 같은 수준으로 보일 뿐이다.

  본인이 이광복 목사를 비판하며 그가 양태론적으로 주장했다고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보여주겠다. "성령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의 인격이십니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구약은 주로 하나님이 사역하셨습니다. 음성으로 또는 기적의 역사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그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자의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 그랬습니다. 주님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는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설교테이프, 92년 6월 7일 보혜사 성령). 위의 말에서 '하나의 인격'이란 말 그것만으로는 양태론적 주장이 아닐 수 있다. 즉 그 말만으로는 '같은 인격'이란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광복 목사가 "주님이 오심으로 그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자의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 그랬습니다. 주님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는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한 말은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볼 때만 가능한 말이다.

  ② 삼세대론자가 아니라는 점에 대하여
  이광복 목사는 "(자신을) 삼세대론자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스라엘 구원 시대를 구약으로, 이방인 구원시대를 신약으로, 재림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 왕국으로 보고 있으며, 이와 같은 맥락에서 3시대라고 했다. 또 이단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종말은 자기들 시대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주장을 편 적이 없으며, 이상근 목사도 '초세 종말, 중세 종말, 말세 종말'을 주장했다"고 변증했다(개혁신문 3월 3일자).

  그러나 여기 이상근 목사가 "구약, 중간기, 신약"으로 나누어서 종말을 설명한 것으로(마태복음 주석, 345쪽) 이광복 목사의 삼세대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 마디로 이는 이상근 목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이상근 목사의 의도를 거짓되게 인용하여 이상근 목사까지 삼세대론자로 만들어 자신의 삼세대론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위의 이상근 목사의 말과 이광복 목사의 말이 일치하려면 이광복 목사의 세대론은 3세대론이 아니라 4세대론이 되어야 한다. 즉 그가 말하는 '환난시대'는 이상근 목사의 범주에서 보면 신약시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환난시대는 천년왕국 전이지 천년왕국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광복 목사가 실제적으로 그렇게 강조하는 '재림시대의 만나'는 성도들이 천년왕국 시대에 들어가서 먹을 양식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상근 목사의 구별에 의하면 신약시대 즉 오늘날의 성도들이 먹어야 할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의 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①재림 직전에 종말의 대환난이 있음을 말한다. ②영과 육의 완전 성화된 첫째 부활, 휴거되는 자를 성도라고 부른다. ③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는 것을 축복으로 의미 부여한다. ④순교적인 신앙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푯대 삼는다. ⑤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이광복, 감추어진 만나의 비밀, 목양선교연구원, 1990년 10월 30일, 14쪽).

  ③ 시대에 다른 구원관이 요청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하여
  이미 앞서 2월호에 밝혔기 때문에 본 호에서는 밝히지 않겠으며 다음에 그의 풍유적 해석에 대하여 비판할 때 자세히 비판하겠다.

  2)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신학위원장 정규남 목사의 성명서에 대하여
  먼저 성명서 전문을 소개한다.

  "교회와신앙 2001년 2월호에 실린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은 비성경적이다'는 최삼경 목사의 비판에 본 신학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하고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최삼경 목사가 이광복 목사를 지적하여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한 1. '양태론자', 2. 삼세대론자', 3. '다른 구원관이 요청된다고 주장하는 자', 4. '말세에는 선행과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 5. '시한부 종말론자' 이상 다섯 가지 내용을 조목조목 검토한 결과 최삼경 목사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며 임의적인 틀에 짜 맞춘 자기 결론임을 확인하였다.

이광복 목사는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는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한 일이 없다. 이광복 목사는 지금까지 본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와, 목회자로 보수 개혁 신학과 신앙에 바르게 서 있으며, 그 전개 방법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전하며, 우리는 그의 신앙과 역사에 신뢰를 갖고 있다. 오히려 우리는 최삼경 목사가 주장하는 삼신론이나 성령론에 비성경적인 요소가 있다는 견해들을 알고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때에는 교단적으로 단호히 대처할 것을 천명한다. 2001년 2월 22일 대한예수교 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장춘호 목사와 정규남 목사에게 함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① 본인이 비판한 내용 중에 무엇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며, 무엇을 본인이 임의적인 틀에 짜 맞추었다는 것인지 밝혀주기 바란다. 위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허위 사실에 의하여 그를 이단성이 있는 자로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특히 "이광복 목사는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는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한 일이 없다"라고 한 말은 본인의 비판은 맞으나 그 내용이 허위 사실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것은 상식이요 의무이다. 구체성도 없는 그런 성명서는 어린아이라도 낼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한 교단의 신학자요 교단장이라면 그런 어린아이 수준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② 본인에게 삼신론성과 성령론에 비성경적 요소가 있다는 견해들을 알고 이를 우려한다고 하였는데 본인에게는 물귀신 같은 소리로 들린다. 본인에게 삼위일체에 대하여 문제를 삼은 것은 이단자인 윗트니스 리(회복교회, 지방교회)측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이단자들 편에 서서 대리 싸움을 해주며 먹고사는 일부 언론인들이 이용하여 본인을 공격했었다. 그런데 귀 교단에서 그 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니 본인은 이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먼저 이광복 목사가 귀 교단의 목사이니까 그에게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무조건 이광복 목사를 보호하려는 유치한 행동으로 한 말이거나, 그리고 귀 교단의 자세가 사이비 언론인들의 수준과 다르지 않거나, 마지막으로 귀 교단의 삼위일체관이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처럼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졌을 가능성이다.

 아울러 귀 교단에서 정말로 본인과 윗트니스 리 사이에 벌어진 논쟁 글들을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설령 읽어보았다고 하더라도 귀 교단에서는 삼위일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것도 의심스럽다. 이런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대표자를 선정하여 본인과 지상토론을 하든지 공청회를 하기 바란다. 본인은 동방신학과 서방신학의 삼위일체관을 조화 있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이를 많은 학자들을 통하여 증명할 수도 있다.

  ③ 그리고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때에는 교단적으로 단호히 대처할 것을 천명한다"고 한 말이다. 그 말이 본인에게 협박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는 신학적 대응이라기보다 정치적 대응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위의 성명서에 의하면 본인의 신학적 지적에 대하여 구체적인 신학적 반증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귀 교단은 근거도 없이 본인에게는 누구의 사주를 받아서 했다는 등의 저질스럽고 유치한 말은 하고, 또한 이단자가 주장한 견해를 가지고 물귀신처럼 본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도 왜 구체적 언급이 없는지 모르겠다. 얼마든지 같은 학교에서도 신학적 논쟁도 가능하고 이단논쟁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학문의 자유요, 복음의 자유요, 나아가 헌법적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신학적 논쟁에 정치적인 입장에서 '대처'를 운운하는 것은 복음주의자로서, 보수주의자로서 할 소리가 아닐 것으로 사료된다.

  결론: 광주측 교단은 대표자를 선정하여 본인과 지상토론을 하든지 아니면 공청회를 하기 바란다
 
 귀 교단 신문에서 본인이 '신학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토론을 벌리자는 것을 동의하고 말을 바꾸어 공청회를 원했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였다. 신학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벌리자는 토론과 공청회는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토론회는 밀실에서 하는 것이고 공청회는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란 말인가? 둘 다 일종의 공청회의 한 형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실 귀 교단에서는 그런 말을 공적으로 요청해 본 일도 없다. 본인이 귀 교단 소속의 한 목사와 개인적으로 대화할 때, 신학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토론을 벌이자고 했고 그것을 일종의 공청회라고 여겨 허락한 일이 있을 뿐이다.

 귀 교단에서 이렇게 성명서를 발표한 것을 보면 이광복 목사에 대해서도 본인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했다고 믿어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본인의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지상공개토론이나 공청회를 하기 바란다. 그리고 본인이 귀 교단의 성명서를 본지에 그대로 게재하는 것처럼 귀 교단 신문에도 본인의 글을 게재할 진실과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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