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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의 이단성
1997년 09월 01일 (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38세에 신학을 시작하여 아직 전도사의 신분인 40세 초반 교회를 개척했던 윤석전 연세중앙교회(기독교한국침례회) 담임목사. 개척초기 1년 6개월 동안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 집에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을 만큼 가정생활과 부부생활조차 멀리하며 목회에 힘을 다 쏟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열심주의자. 초교파적으로 매년 5천명 정도가 참석하는 목회자 부부 세미나를 무료로 개최해 전국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해 오고 있는 지도자. 준비된 건축헌금이 5억 6천만 원뿐이었는데 강력한 밀어붙이기로 불과 4개월만에 60억 원을 완불하고 노량진 대성교회당을 인수했을 정도의 실력자. 그러나 그 동안 나름대로는 이단시비를 받아왔던 목사. 이제, 이 같은 윤목사의 이단성에 대해 매체로는 최초로 <교회와신앙>이 집중 분석해 본다.<편집자 주>


Ⅰ. 글을 시작하면서
1) 윤석전 목사의 이단성 시비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인 윤석전 목사는 한국교회에 ‘목회자 사모 수련회를 많이 인도하는 목사‘로, 또 ‘기도를 강조하는 목사‘로, 그리고 이단교회였던 ‘노량진 대성교회당을 인수한 목사‘로 많이 알려진 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그 동안 그에 대하여 “이단이다“ “아니다“ 많은 논쟁도 있었다. 이 점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윤석전 목사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윤목사 스스로 자신의 이단시비에 대하여 적지 않은 변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그가 했던 설교와 그가 쓴 책에서 살펴보자.

“내가 요즘 집회를 인도하며 다니니까 노골적으로 나더러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사람이 많다. 실로 불행한 일이다. 다른 교단에서(어느 교단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필자 주) 나를 너무 괴롭히는데 한 번은 어떤 교회에서 나를 비방하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결코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하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윤석전 설교 테이프에서, 1996. 11. 5~8. 제천연합성회, 본문: 마16:21~28). 윤목사는 자신을 이단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변병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윤석전 목사가 최근에 저술한 책이 있다. <영혼의 때를 위하여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요단출판사, 1997. 5. 26)라는 책이다. 그의 사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란 점에서 이 책이 나옴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책에서도 자신의 이단시비에 대한 변증이 있다.

2) 미리 약속해 두고 싶은 점
필자는 윤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살펴보기 전에 전제해야 할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단 문제에 있어서 제일로 중요한 것은 먼저 자료의 객관성이요 다음으로는 비판 기준의 객관성이다. 다행히 그에 대하여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그가 쓴 책과 그리고 많은 설교 테이프들과 기타 자료들이 있다. 가장 객관적인 자료로는 책을 들 수 있다. 다행히 그가 쓴 책으로는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영혼의 때를 위하여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란 책이 있고, 또한 박용규 목사(전 총회신학교 목회 대학원 교수, 현 총신대학교회 협동 목사)란 분이 윤석전 목사를 긍정적으로 취급한 <와 보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연세중앙교회와 윤석전 목사의 목회담>(은파선교출판사, 1996. 3. 10)이란 책이 있다. 필자는 위의 자료에 근거하여 윤석전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 필자의 신앙 양심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밝혀 두고 싶은 점이 있다. 그의 작은 사상을 확대하여 이단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혹 필자의 이해의 부족이나 실수가 있을까봐 염려하여 기도하며 이 논쟁을 시작할 것이며 또한 윤석전 목사에게 반론권까지 보장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그리고 비판 기준의 객관성을 유지할 것이다. 필자가 장로교인이란 이유만으로 쉽게 장로교 교리를 기준으로 이단을 규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역사적 교회의 보편적인 교리와 그보다도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비판할 것을 약속해 둔다.

3) 반론권을 보장한다
윤목사는 자신의 이단성에 대한 변증과 변호도 하지만 고맙게도 다른 이단에 대한 경계와 비판도 하고 있다.

“지금 이단종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무서운 이적을 나타내면서 말입니다. 마지막 때 가서 적그리스도들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많은 이적을 나타내면서 능력을 보고 따르라고 말할 때 따르지 않을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따를 자가 누구냐?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언제든지 사람을 판단할 때 그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지 아니면 입만 하나님을 찾는지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참과 거짓은 행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잘 모릅니다“(영혼의 때를 위하여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391쪽).

윤목사가 이단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기적을 행해도 이단일 수 있다고 말한 점에 대하여는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단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그가 말씀대로 사는지 아니면 입만 하나님을 찾는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고 한 점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살았는지 살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도덕성이나 진실성을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단을 구별하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목사는 “참과 거짓은 행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잘 모릅니다“라고 했는데 입으로 알 수 없듯이 사실은 행동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과연 윤목사가 말하는 이단 판별의 기준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도 이단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고 본다.

어쨌든 위의 글을 읽어볼 때 윤목사는 자신에게 이단시비를 일으키는 필자를 가리켜 무조건 사탄이라거나 성령을 거스리는 사람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래야 위의 말이 진실한 말이 된다. 기독교 역사는 이단시비와 함께 오늘날의 교회와 교리를 이루었다. 비록 필자가 윤목사에게 이단시비를 일으킨다는 점이 그에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윤목사의 이단시비를 벗겨 줄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음을 알고 필자의 노력을 가치있는 일로 여길 것으로 믿어 본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본지의 방침이 그러했듯이 필자는 윤석전 목사에게도 반론권을 보장하는 바이다. 윤목사는 필자의 오해가 있거나 또는 잘못된 기준이 있다고 느낀다면 이 반론권을 최대한 이용하기 바란다. 위에서 밝힌 그의 글대로라면 변병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변명하지 않겠다는 말도 일종의 변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명 차원이 아니라 진리를 밝히자는 차원에서 꼭 반론권을 이용하기를 바란다.

Ⅱ. 윤석전 목사는 이단인가 아닌가?
1. 윤목사의 마귀론은 이단자 김기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여러 가지다. 한 곳의 질병은 비교적 다른 곳에도 질병을 유발하듯이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곳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윤목사에게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볼 때 그의 계시관에도, 교회관에도, 그리고 목사관에도, 구원관 등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유발시킨 출발점 중에 하나가 마귀론이라고 보고 싶다. 그에게 김기동 씨를 교주로 하는 소위 ‘귀신파‘의 신학적, 교리적 영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그 동안 그에게 있었던 이단시비의 핵심이었다. 필자도 윤목사의 책을 읽고 테이프를 들으면서 그의 이단성의 핵심이 있다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1) 윤석전 목사의 마귀론에 대한 주장은 무엇인가
윤석전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면 ‘귀신‘ ‘마귀‘ ‘사탄‘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귀신‘이나 ‘마귀‘란 말을 많이 한다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의 교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이냐는 것이요 특히 구원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가 문제이다. 먼저 그의 마귀에 대한 사상을 점검해 보고 비판해 보겠다. 밝혀 둘 것은 녹취된 내용은 그의 테이프의 말과 문자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바꾸지는 않았다. 가능한 중요한 말은 그의 말 그대로 기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경우에는 끝말을 바꾸거나 때로는 의미상의 말을 따라 조금씩 바꾸기도 하였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한 말은 괄호 속에 넣었다. 그것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니까 18년간 귀신들려 구부려져 앓았는데 근대 의학에서 볼 때는 ‘아하 저건 곱추다. 허리의 뼈와 신경이 잘못되어 구부려진 것이다‘(그렇게 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밝히 보고 알아요. 주님은 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 주님이 당신 안에 있어 당신 안에 일어나는 일을 알지 않겠느냐? 알 뿐만이 아니라 능히 해결할 분입니다. 이 분이 내 가정의 가장 되기를 원해요. 마태복음 11:22에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거늘 의학에서는 눈멀은 것이 무엇이냐? ‘눈신경 시신경이 마비되었다‘ 말하지만 주님은 귀신들렸다고 말합니다. 쫓아내어 보고 말하더라 누가 알어요?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셔서 알아요. 죄를 사람이 짓는지 알았더니 주님이 볼 때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죄를 짓는 일을 합니다“(윤석전 설교 테이프 중에서, 1996. 11. 5~8. 제천연합성회, 13번).

역시 윤목사는 귀신파의 주장처럼 질병도 귀신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마태복음 11:22의 말씀은 김기동 씨가 모든 질병이 귀신에서 왔다고 주장하게 된 핵심 성구 중에 하나이다. 이 말에 의하면 질병의 치료도 귀신의 관점에서 해결될 것이다. 좀더 들어보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는 지탄을 받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배후에는 마귀가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만류한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마귀의 술수입니다. 주님도 십자가에서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니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용서받을 수 없으나 성경에 죄는 마귀가 짓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 앞에서 마귀는 쑥대밭이 됩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범죄한 자입니다. 죄가 거기서부터 나옵니다. 인간의 죄짓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결코 죄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드러날수록 형량은 없어집니다. 회개할 때에 마귀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 죄가 마귀에게도 돌아가 마귀는 쑥대밭이 됩니다“(윤석전 설교 테이프 중에서, 1996. 11. 5~8. 제천연합성회, 10번).

윤목사는 죄와 마귀를 연결시킨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나타나셨다는 말은 요한일서 3장 8절의 말씀으로서 귀신파 계열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핵심 성구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가 지탄을 받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에 유의하여야 한다. 마귀가 시켜서 한 일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책임이 없고 마귀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 계속되는 말 중에 하나는 회개는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용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마귀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들어보자.

“성수대교 사건과 같은 사건들 이거 다 어디서 왔습니까? 삼풍백화점 사건이 어디서 왔어요? 죄에서 왔어요. 건설할 때부터 정상적으로 못한 죄부터 왔어요. 죄로부터 오는 죄의 싹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왜 제대로 시공했으면 왜 그런 일이 생깁니까? 그래서 모든 문제는 죄로부터 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합니다. 벌써 악한 마귀는 계획이 있어요. 여러분은 하나님만, 사람만 계획이 있는 줄 압니다. 마귀도 인격이 있기 때문에 계획이 있습니다. ··· 자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제자들과 함께 탄 배를 바다에 수장시켜 생명을 파괴하려고 하는 원수같은 광풍의 원인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흉악한 악마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천재지변을 볼 때 자연지변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벌써 이것을 이용해서 죽이려는 원수같은 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저지할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윤석전 설교 테이프 중에서, 1996. 11. 5~8. 제천연합성회, 13번). 결국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원인도 마귀에게 있다는 뜻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 놓고 예수 못 믿게 하는 것이 처절하게 도적질(하게 하여) 죽이게 하는 것은 마귀의 일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온 것은 이 일을 끊어 놓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없이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종횡무진 죄인들을 죽이는 원수 마귀를 정죄하고 없애려고 왔습니다. ··· 사람을 붙들고 죄를 짓게 한 마귀를 벌받게 합니다. 그럼 누가 죽였습니까? 마귀(입니다.) ··· 마귀는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해요,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그 죄는 마귀에게 가서 마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는 것은 죄를 마귀에게 전가해서 마귀를 멸하는 최고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윤석전 설교 테이프 중에서, 1996. 11. 5~8. 제천연합성회, 13번).

“병을 문제 삼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병을 이기면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을 문제삼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없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 이런 영감이 만약 성도들에게 있다면 질병이 죽이려고 자신에게 들어올 때 그것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영혼의 때를 위하여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21쪽). 병이 마귀에게서 왔으니 병을 문제 삼지 말라는 뜻이다.

연세중앙교회에서는 모든 직분에 선거가 없고 모두 윤목사의 임명으로 한다고 한다. 윤목사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집사가 되려면 많은 서약을 해야 하는데 그 서약 중에도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겠다‘고 서약을 한다. 그  중에 <집사의 상과 벌>에 대한 서약의 내용을 살펴보자. 집사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해야 한다.

“나는 연세중앙교회 서리 집사로서 제7항 1의 교회생활과 제반사항을 지키지 못하여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고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서 교회를 파괴하는 불손한 행위나 이 모든 서약을 위반하는 행위가 들어날 때에는 강단과 교회가 취하는 엄한 처벌(출교, 서리집사 해직, 근신 등)을 받아 마땅함을 인정하고 순종하여 받아들일 것을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엄히 서약합니다“(와 보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120쪽). 이런 말과 사상은 수도 없이 많다. 우선 본호에서는 이 정도로만 살펴보고 비판하고 다음에 그의 반응을 보고 더 소개하도록 하겠다.

2) 윤석전 목사의 마귀론에 나타난 이단성은 무엇인가
귀신을 말하고 마귀를 말한다고 결코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마귀론이 성경적이냐 아니냐 하는 점이요 그리고 그것이 구원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점이다.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① 모든 죄와, 질병과, 사고의 원인이 마귀인가
이미 한국교회는 교단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귀신파 계열의 많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김기동 씨요, 또한 이초석, 이명범, 한만영, 김광신, 김요한, 그리고 류광수 등이다. 그 중에도 김기동 씨는 무려 6개의 대교단들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사람이다.

그런데 김기동 씨의 핵심 사상이 무엇인가? 바로 모든 사고와 질병이 마귀나 귀신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질병을 고치는 것은 약이나 의학이 아니라 귀신과 마귀를 쫓는 것(축사)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전 목사에게 김기동적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상이 바로 모든 죄와 사고와 질병의 원인을 마귀 내지는 귀신으로 본다는 점이다. 윤목사가 모든 죄의 원인을 마귀로 보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죄로부터 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합니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질병과 모든 사고의 원인도 마귀로 보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직접적 언급은 없다. 그러나 유추해 보자면 윤목사는 모든 사고 질병이 마귀에게서 온다는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 즉 모든 문제는 죄로부터 오고 죄 뒤에는 마귀가 있다는 말이 그렇다(심지어 삼풍사고도, 태풍도, 예배 시간에 조는 것도 마귀가 한다고 주장한다). “병을 문제 삼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병을 이기면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을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없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란 말에서도 병이 마귀에서 왔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러다 그보다 더 위험한 사상이 있다.

② 죄에 대한 책임이 죄를 지은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있는가
분명히 윤석전 목사는 죄에 대한 책임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짓게 한 마귀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목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죄를 지어도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마귀의 사주에 의하여 지은 것으로 그 책임이 마귀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어떤 죄도 마귀가 책임져야 하고 마귀만 처벌하면 될 것이다. 결국 마귀만 지옥에 보내면 되는 것이다. 다음의 말보다 이를 더 선명하게 증명하는 말이 없을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는 지탄을 받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배후에는 마귀가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모릅니다“(윤석전 설교 테이프 중에서, 1996. 11. 5~8. 제천연합성회, 10번).

위의 잘못이 또 다른 잘못을 낳게 된다. 즉 회개관이다. 윤목사의 회개관은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우리가 져야 할 죄에 대한 책임이 마귀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결국 마귀의 잘못을 우리가 대신 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한 곳이 없다. 죄에 대한 책임을 죄를 지은 그 자신에게 돌렸을 뿐 마귀에게 돌리지 않았다. 이것을 성경에서 직접 살펴보자.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했다. 분명히 죄에 대하여 죄를 지은 자의 죄라고 했지 마귀의 죄라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거나 죄를 사하실 때마다 하신 말씀을 보면 더 선명해 진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죄를 당사자 그 사람의 죄라고 했지 마귀의 죄라고 말한 곳이 없다는 점이다. 중풍병자에게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막 2:5; 눅 5:23)고 하셨고,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도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눅 7:48)고 말씀하셨다. 윤목사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너를 죄 짓게 한 마귀의 죄를 사하노라“고 하시거나 또는 “네가 죄를 회개하니 네가 지은 죄를 마귀에게 돌리노라“고 하셨어야 할 것이다.

분명히 넓은 의미에서 죄 뒤에는 마귀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만 그러나 윤목사의 말처럼 그 죄의 책임이 마귀에게 있다고 하면 달라지는 것이 바로 구원관이다. 분명히 사탄 마귀의 문제에 있어서 윤목사의 구원관에 문제가 있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윤목사는 교회에서 목사를 거역하는 사람을 거침없이 ‘마귀‘나 ‘사탄‘이라고 말하고 지옥 자식으로 정죄해 버린다. 이런 내용이 많이 있지만 하나만 인용해 보겠다.

“목사님이 뭐라고 하면(무엇을 하라고 하면이란 뜻이다: 필자 주) ‘왜 나 보고만 하라고 하십니까‘ 감각이 없어요(영적 감각이 없다는 말이다: 필자 주). 이 자가 믿노라(하지만) 마귀 앞잡이요. 저만 하지 말지 왜 남도 못하게 해? ··· 그러니까 시작부터 완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합한 자를 세우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들은 저 안 시키면 집에 가서 전화 걸어요. ‘집사님 이번에 아무래도 기관장이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이 사람 저 사람 전화 걸어서 동조하게 만들고, 그렇게 만들고, 그리고 기관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이 사람 하나 있으면 이거 하나 수습하기가 6개월 걸려요. 이게 마귀 앞잡이이지 뭐여? 뒈져 봐(죽어 보란 말이다: 필자 주) 그게 구원받겠나? 그렇게 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것이 죽어 봐 구원받겠나?(구원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필자 주)“(제천시 연합집회 테이프, 17번).

다음의 구원 문제에서 다시 취급하겠지만 윤목사의 말을 설명하자면 이런 말이 된다. 모든 죄는 마귀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죄가 있는 곳에는 마귀가 있다는 말이요 그리고 마귀가 있으니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윤목사의 말로 하자면 아마 아무도 구원 얻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마귀짓이라고 하고, 그러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아마 윤목사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의 마귀짓은 윤목사에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윤목사를 귀신파의 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는 증거요 그리고 가히 이단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상이다. 이 점은 그의 구원관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구원관을 살펴보자.

2. 윤목사의 구원론에 이단성 있다
윤석전 목사의 구원관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는 성도에게도 “지옥에 간다“는 말을 서슴없이 그것도 참으로 많이 한다. 확인해 보자.
“여기서 죽으면 지옥 갈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오느라고 한 번만 이긴 사람은 여기서 죽으면 더 이상 회개할 기회를 못 가졌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꼭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사람들에게 ‘새벽기도 나와라‘, ‘삼일예배 나와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고 싶으면 나와야 합니다“(제천연합성회 테이프, 7번).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그런가?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회개관인가?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정통 기독교가 가르치는 회개관이 절대로 아니다. 윤목사의 회개관에 의하면 윤목사의 구원은 무엇에 의하여 보장받을까? 인간은 아무리 회개를 해도 숨은 죄까지 회개할 수는 없다. 인간은 회개할 죄가 무엇인지 모를 만큼 죄를 모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성도들에게도 모르는 죄가 있다. 이것은 필자도 윤목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알고 있는 죄는 다 회개하는가? 사실 그렇지도 못하다. 우리는 늘 성화를 위한 회개를 해야 하고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면서도 깨달은 죄도 다 회개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더욱이 구원받은 성도라도 예기치 못한 죽음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얘기치 못한 죽음을 당한다면 회개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윤목사의 구원관에 의하면 그도 지옥에 갈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비록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도 주님의 구속의 권능이 어떤 죄의 권능보다 크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구원의 증거이고 구원의 확신이다.

윤목사는 형식에 있어서는 율법주의가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앙의 열심을 촉구하기 위해서 지옥까지 운운하기 때문이다. 좀더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영적 생활이고 생명이고 영생입니다. 신념은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쏘아야 할 과녁이 선명하다면 우리는 주위의 방해를 염려하지 않을 것이며 유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녁이 선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망이 충만해야 하고 과녁이 명확히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면 구원의 은총이 살아나고 감격이 유지가 됩니다.  ··· 성경은 우리에게 투쟁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신이 있는 한 이 싸움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죄짓게 만들어 지옥에 보내려고 무슨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 마귀와의 싸움은 끝까지 이겨야 합니다.

··· 우리는 신앙생활을 치열한 전투로 여겨야 합니다. 이 전쟁에서 진 사람은 여기에 못 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진 사람들은 지옥에 갔습니다. 이긴 사람들만이 구원받습니다. ··· 싸움에서 진 사람은 여기에 못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겼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조는 사람은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이겨야 합니다. 진 사람이 가는 곳이 어디인 줄 압니까? 지옥입니다“(제천시 연합집회 테이프, 7번).

조는 것도 마귀의 일이란 말이요 그리고 조는 것은 마귀에게 진 것이요 결국 마귀에게 지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영적 생활이고 생명이고 영생입니다“란 말도 그냥 들으면 옳은 말 같지만 윤목사가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란 말씀대로 사는 행위 하나하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이다. 그의 책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에도 이런 사상은 많다. 하나만 이용해 보자. “우리 성도는 모두 자신의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원수처럼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334쪽).

이 점은 박영규 목사가 윤목사를 높이 평가한 책에도 잘 나타난다.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할 수 없다. 윤목사가 교인들에게 자장 강조하는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누가복음 16장 17절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이다. ···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절대 다 행할 수는 없지마는 성경 말씀에 기록된 대로 다 믿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바른 신앙생활인데, 지금 교회는 교인들을 가르칠 때 아부하는 태도로 주일을 안 지키고 십일조도 안 바치고, 기도 생활도 안하고 주의 일을 안할 때도 책망하지도 않고 관심 없이 본 체 만 체하는 것은 교인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가르침이 아니고 교인들로 하여금 죄짓고 지옥 가게 하는 일이다“(와 보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113~114쪽).

윤목사의 마귀관이 잘못되었고 따라서 회개관이 잘못되었으며 결국 그것이 구원관에 이단적 요소를 집어 넣었다. 이단이란 어떤 사상 어떤 교리라도 그 결국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관과 다른 구원관을 말할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윤목사는 말씀으로 말씀을 파괴하고, 회개란 이름으로 회개를 파괴하고, 열심이란 이름으로 역시 구원을 파괴하고 있다. 기도도 해야 하고, 거룩한 교회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하고, 십일조도 드려야 하고, 예배 시간에 졸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강조하기 위하여 구원과 연결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사탄적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인간의 악세사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사가 목회를 하며 성도들에게 순종과 헌신을 가르치고 싶을 때, 또는 주일성수나 헌금을 가르치고 싶을 때, 새벽기도를 강조하고 싶을 때 그것을 구원과 연결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틀림 없이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권고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인간적인 유익을 내다보고, 아니 비록 영적 유익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입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을 강조한다고 해도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도 성령도 아니다. 그것은 주의 이름으로 주님을 폐하고 복음을 폐하는 사탄적인 행위이다. 이단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비교적 정통교인보다 더 열심이 있지만 그러나 그 열심이 저들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했다(잠 14:12).

이런 잘못된 구원관은 아무래도 윤목사의 경험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미 목사가 되라는 소명을 받은 후에 그가 삼각산에서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 속에서도 잘못된 구원관이 나타난다. 이를 박영규 목사가 증언하였다.

“윤 전도사는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했고, 남보다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는 성경구절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말로만 믿었던 윤 전도사의 지난날이 죄 투성이임을 발견하고 너무나 많은 죄들이 하나하나 보여지는데 자신이 너무 더럽고 추하고 부끄럽고 창피했다. ‘주여! 이 더러운 죄인을 죽이지 아니하시고 회개한 후에 죽여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려고 오늘까지 살려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그렇게 계속해서 기도했다“(와 보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53쪽).

윤목사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죄가 많았는데 모르고 살다가 은혜를 받고 보니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 구원은 취소되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 삼각산에서 그 때 구원을 받았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전자로 보인다. 윤목사는 바로 그런 회개관과 그런 구원관에 의하여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위의 말도 일반인이 했다면 신학적으로 이렇게 집고 넘어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윤목사의 회개관과 구원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맥락에서 볼 때 여기에서도 구원론적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윤목사의 계시론에도 문제가 있다

이상하게도 윤석전 목사는 계시관에서 보수적인 계시관을 가지고  있다. 즉 성경 외에 계시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계시관이다. 먼저 살펴보자.
“계시, 계시, 계시,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계시 쫓아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우리 교회에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계시를 얼마나 쫓아 다니는지 몰라요. 와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하 우리가 속았구나 계시가 하나님 말씀 밖에 계시는 거짓이구나‘ 이걸 깨닫고 정착하는 사람 있잖아요 ··· 이미 우리는 만세 전부터 계시를 받았어요.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면 성령이 인도한다고 했어요. 성령이 어떻게 인도하시나 봅시다. 거기 성령께서 무엇을 계시하나 봐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내게 오시는 역사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만들고, 여기 있는 말씀을 가르치게 만들고, 여기 있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이밖의 것이 아니예요. 여기 성경은 누가 기록했어요? 성령으로 감동된 자가 성경의 저자예요. 그런데 다른 계시가 또 있어요? 계시가 끝났는데 이 계시를 가지고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세상 끝날 때까지 모두 이 말씀을 가지고 삽니다. 바울이 말했어요. 만약에 천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태거나 감하면 가감하면, 저주를 받을 지니라“(제천시 연합집회 테이프, 25번).

그런데 윤목사의 말에는 모순이 많다. 먼저는 그가 영감이란 말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먼저 살펴보고 비판하겠다.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첫째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 두 번째 영감이 있어야 합니다. 영감은 눈에 보이면 뭔가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분별하는 영감이 있어야 합니다“(제천시 연합집회 테이프, 15번).

성령과 관계해서 사용되는 신학적인 용어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계시‘란 말이요, 다음으로는 ‘영감‘이란 말이요, 그리고 ‘조명‘이란 말이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열어서 보여주시는 행위를 가리켜 하는 말이요, ‘영감‘이란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할 때 오류 많은 인간으로 오류 없는 성경을 쓸 수 있도록 도우신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요, ‘조명‘이란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깨닫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 계시가 없다면 역시 영감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윤목사가 영감이란 말을 몰라서 영감이란 말을 쓰고 있을까? 아니다.

그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영감이 있다는 것과 성도에게 영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살펴보자.

“오늘날 목회자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나에게 영감을 주시옵소서‘ 왜 영감이 필요합니까? 성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려는지를 미리 알아야 잘못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이라는 짐승은 자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어도 자기의 눈이 무심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면 그냥 눈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가버립니다. 양이 가려는 방향을 미리 알아야 가는 길을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영감이 없으면 절대로 상대방을 알 수 없습니다. 영감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성령은 마귀의 생리를 기록했고 또한 하나님의 진실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관통하여 이해할 수 있는 영감이 있어야 합니다. ··· 영감을 가진 목사의 생활이라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듭니다.

··· 상대방의 속에서 썩어가는 질병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뱃속에서 창자가 암으로 썩어가고, 폐가 썩어가고, 심장이 썩어가는 그 냄새가 코로 직접 맡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감이 여러분에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한 영감이 여러분에게도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영감이 있다면 간경화 환자나 간암 환자가 각각 다르게 느껴지고, 위경화 환자, 위암 환자가 각각 다르게 영감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영혼의 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19~20쪽). “영안이 열려야 볼 수 있고, 영감이 있어야 느끼고 깨닫고 발견하여,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 작전을 세울 수 있고, 마지막으로 영력이 있어야 이기는 것입니다“(위의 책, 21~22쪽).

분명히 윤목사 자신도 영감이란 말에 대하여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라고 말함으로 영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가 계시는 더 이상 없다고 하는 말과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말은 모순될 뿐 아니라 그의 영감이 곧 계시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지금도 사도 시대의 이적이 계속된다는 이적관에서도 나타난다. 계시가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한다면 이적도 역시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는 너무나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사도 시대의 이적을 부정하면 예수님의 피의 역사도 끝났다고 말하였다. 살펴보자.

성경에 예수님 당시나 사도들 때에 병고침의 일들이 많이 있었고 물론 구약시대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 때도 병고치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병고침을 받는 이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윤목사는 지금도 사도시대와 같은 병고침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와 보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211~212쪽).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 받는 것을 무시하고 이미 사도행전 시대에 성령이 끝났다고 착각하는데 이 시대에 성령이 끝났다면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역사도 끝나야 하고, 성부의 역사도 끝나야 합니다“(위의 책, 278쪽)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섬세한 비판이 있어야 하지만, 계시 시대가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함으로 끝났다는 말과 그러나 사도적 이적이 있다는 말은 서로 모순된다. 그보다 더 모순된 것은 그의 실제적인 행동에는 계시적 요소가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명령에는 교인들이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 인간의 판단과 명령에는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할 수 없다. 그것이 성령의 명령이라는  절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4. 윤목사의 목사관에 의하면 그는 신격화된 교주와 유사하다
윤목사는 교인들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명령은 절대 순종, 윤 목사는 목회 중에 목사가 강단에서 하는 명령은 교인들이 이유 없이 순종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 목사가 교회 일을 할 때 범죄하는 일을 하겠는가? ‘목사는 교회 일을 할 때에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기쁘게 하는 목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한 후 일을 하고자 하니까 목사는 강단에서 명령하고 교회는 절대 순종하라, 만약 순종하기를 싫어하면 교회를 떠나라‘ 이것이 윤 목사가 교회를 인도하는 절대적인 목회 방침이다“(위의 책, 112쪽).

아무래도 복음적인 목사라면 할 수 없는 목사의 권위이다. 그리고 이는 성경이 허용하지 않는 목사의 권위란 점이다. 실례를 더 들어보자.
윤목사는 청년들에게 매질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저는 저희 교회의 여자 청년들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입으면 종아리를 때립니다“(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86쪽). “어제도 청년 하나를 방으로 불러들여서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이 못된 놈, 목사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냐?‘ 그래도 그는 목사님이 때리는 매를 맞을 뿐입니다. ··· 또 제가 매를 때리면 한두 대 때리고 맙니까? 두어 번 거꾸러질 정도로 때립니다“(위의 책, 281쪽).

윤목사가 청년들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어쩌다 있는 일이 아니요 그의 말과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상당한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몇 번 거꾸러질 정도로 때린다니 참으로 폭력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윤목사가 목사에게 허용되지 않은 권한까지 부린다는 점이다. 만약 목사에게 청년성도들을 매질할 수 있는 권한(윤목사의 경우만큼)이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한다면, 아마 예수님께서는 불순종한 제자들을 죽기까지 매질했을 것이 분명한데 어디 그러한가? 아무리 불의한 시대에 불의한 사람에게라도 폭력을 행사한 선지자는 없었다. 아무래도 윤목사의 목사관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좀더 살펴보자.

“나는 우리 교회에서 안수 집사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목사가 한 번 명령이 떨어지면 장로교의 장로랑 똑같지 않아요(장로교의 장로들은 순종하지 않지만 윤목사 교회 안수 집사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필자 주). 명령이 딱 떨어지면 타당성이 있느냐 없느냐 이게 아니 잖아요? 어떻게 수행하느냐 이거예요. 어떤 방법으로 일사불란하게 수행하느냐 어떻게 실행하느냐 이거지 목사님 왜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이유가 없는 거예요. 설명할 것도 없어요. 설명하라고 하지도 않아요. 이렇게 해서 해야 한다는 설명이 필요가 없어요.

그런 정도로 성도가 받아들이고 아멘 해야 목회할 맛도 나고 그들을 살리는 그 맛도 나고 끌고 갈 맛도 나잖아요? ··· 그래서 성경에 우리는 양이고 주님은 목자라고 말했어요. 성경에 주의 종은 목자이고 성도는 양이라고 말한 것은 양이 뭔지 아세요? 양이란 동물은 첫째 생각이 전혀 없는 동물이예요. 내가 어디 가서 풀을 뜯겠다든지, 내가 어디 가서 물을 마시겠다든지, 내가 어디 가서 편히 쉬겠다든지, 내가 어디 가서 잠을 자겠다든지, 털을 바꾸겠다든지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여러분 자신이 아무런 생각이 없고, 완전히 목사의 손에서 생사가 달려 있어요. 그래 여러분들이 양이라고 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아무 생각이 없이 오직 목자에게 맡겨져야 하는 거예요“(제천시 연합집회 테이프, 17번).

기가 막힐 일이다. 이는 인격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성경에서는 주님을 목자라고 했으며 성도가 양이라고 한 말은 목사의 손에 생사권을 맡긴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위의 말을 들어보면 윤목사가 거의 신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말을 들어보라. 문제가 있다기보다 이단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사가 교인의 생사권까지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며, 타당성이 있을 때 역사합니다. 내가 살려고 예수 믿는 것이지, 교회에서 실권을 잡으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실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보낸 주의 종이 잡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가 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실권은 성도의 영혼의 생사까지 갖고 있습니다“(제천시 연합집회 테이프, 10번).

결론을 맺는다. 윤목사 교회가 부흥되기에 이단시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이단시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능력이 있다고 이단시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볼 때 이단성이 있다는 말이다. 필자의 진실이 얼마나 윤목사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윤목사 속에 있는 성령과 필자의 마음 속에 계신 성령이 같은 성령이라면 본 논쟁의 결과는 하나님 나라에 유익하리라 믿으며 펜을 놓는다.
(월간<교회와신앙> 199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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