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신 목사

시편에서 왕을 노래한 이유

<시편>에는 왕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이 중에 다윗을 노래한 시가 가장 많다. 그래서 학자들은 <시편>을 분류하면서 이런 시를 ‘제왕시(royal psalms)’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제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제왕시란 표현보다는 ‘왕의 찬가, 왕을 칭송하는 노래’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낫다.
 

중동에 있었던 제왕시는 일반적으로 왕의 아름다움ㆍ위엄ㆍ영광 등을 노래했지만, <시편>은 이것과 더불어 왕이 겪었던 고난과 시련, 낮아짐 등을 노래했다. 그래서 중동의 여러 제국에서 노래했던 제왕시와 다른 면모를 보인다.
 

<시편>에 나온 왕을 칭송하는 노래는 왕으로 등극한 것, 전쟁 전후의 결과에 대한 감사, 결혼, 성전 봉헌 등과 연관이 있는데, 이게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노래가 됐다. 또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을 <1:2>에서 율법을 밤낮으로 읊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예수님이 보여줬던 삶의 모습이 그러했기에, 신약시대 성도는 <시편>에 나온 노래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를 그분에 대한 예언적 노래로 이해했다.
 

<1편>과 마찬가지로 <2편>은 <시편>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래서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1∼2편>에서 제시한 율법과 왕,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아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두 시를 비교해 보면 <1:1>에 나온 “행복하여라(아쉐레이)”가 <12절>에 나온다. <1편>은 ‘아쉐레이’로 첫 문장을 시작했고, <2편>은 마지막 시행을 ‘아쉐레이’로 시작한 문장으로 끝맺었다. 또 “길(데렉)”을 통해서도 두 시가 연결된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1:1>에서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고 했고, <1:6>에서 악인의 “길”은 망한다고 했는데, <2:12>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은 사람은 그가 가는 “길”에서 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1:2>에서 사용한 “읊조리다(하가)”를 <2:1>에서도 사용했는데, 우리말 번역은 문맥의 의미를 고려해서 같은 단어를 헛된 일을 “꾸민다”로 번역했다.
 

이런 면에서 두 편의 시가 표방하는 주제는 다르지만, 두 곳에 쓴 단어의 연관성을 고려해서 하나로 본다. 이 외에도 <시편> 전체의 일련번호를 매기는 관습이 달라졌기에 하나의 시를 둘로 나눴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2편>을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시로 이해했다. 시가 노래한 메시아ㆍ왕의 모습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다윗의 후손 중에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시가 보여준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이 시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시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2:1∼2>을 인용해 기도하면서 시가 성령님이 다윗에게 준 예언이라고 했고(사도행전 4:25∼31), 바울은 <2:7>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뤄졌다고 했다(사도행전 13:33). 또 <요한계시록 12:5; 19:15>도 이 시를 인용했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왕권을 표현하기 위해 이 시를 인용했는데, 만약 이 시가 없었다면 신약성경 기자들이 그분의 왕권을 소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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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시각으로 시편 읽기

<시편>을 인용하면서 신약성경 기자들은 이 책에 수록된 시 중 일부만을 집중 조명했다. 따라서 현대의 우리는 신약성경 기자들이 집중 조명한 시의 내용 외에 다른 부분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게 뭔지 알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2편>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지 않고 통일 왕국을 이뤘던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했던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이 아주 번창했을 때도 <2편>에 나온 것처럼 다른 나라를 속국으로 삼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현대의 독자는 고대 중동의 역사적 상황과 신약성경의 관점이란 두 개의 창으로 <시편>을 읽어야 한다.
 

<2편>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시는 시온산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의 대관식을 치른 모습이 배경이다(2:6).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 절차는 <열왕기상 1:38∼48>에 나오는데, 대관식의 핵심은 하나님이 기름 부음을 받은 왕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2:7). 
 

이제 왕과 하나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이 된 왕에게 모든 이들이 입 맞추며 경배해야 한다(2:12). 그리고 신약시대의 우리도 시가 예언적으로 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이런 해석은 신약성경 기자들이 시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시로 이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시는 <1∼3절>, <4∼6절>, <7∼9절>, <10∼12절>로 나눌 수 있는데, 흥미로운 건 각 연에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시에서 말하는 사람을 ‘시적 화자(話者)’라고 하는데,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연마다 다르다.
 

첫째 연에서는 다른 나라 왕들이 말을 하고, 둘째 연에서는 하나님이 다른 나라 왕들에게 말씀하신다. 셋째 연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시고,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이 다른 나라 왕들을 향해 말을 한다.
 

시적 화자를 보면 첫째ㆍ넷째와 둘째ㆍ셋째 연이 서로 연결되고, 각 연은 하나님과 다윗을 축으로 이어진다. 이런 변화를 통해 시인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밀접한 연대를 표현했다. 하나님의 통치가 다윗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주님을 거스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을 저주하시겠다고 하신,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같다(창세기 12:3).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저주한 사람을 하나님이 죄가 없다고 보지 않으시기에(요한복음 16:9, 고린도전서 12:3), 주님과 다윗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그분에 대한 태도로 연결된다.
 

<2:1>에서 시인은 수사 의문문을 통해 놀람ㆍ걱정ㆍ의분을 표현했다. 시인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개탄스러운 일을 다른 나라의 왕ㆍ장군들이 벌이고 있다고 했다. “술렁거리다”로 번역한 말은 ‘떼로 모여서 소동하다’란 뜻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주님께 반란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고대에서 제국을 만들었던 왕이 죽었을 때 제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제국을 통치하던 왕의 위세에 밀려 억압받던 속국들이 왕이 죽었다는 걸 기회로 삼아 주권을 회복하려고 봉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은 왕의 죽음을 비밀로 했고, 비상조치를 시행한 후 왕의 죽음을 알렸다. 또 새롭게 왕위를 물려받은 사람은 속국들이 틈을 타 봉기한 걸 빨리 진압해서 제국의 힘을 유지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2:1>은 그런 역사적 상황이 배경이다.
 

당당하지 못하니 숨기는 것

저들이 겉으로는 봉기해서 소동을 벌인 것으로 보였지만(2:1a), 자세히 보면 저들이 한 일은 밀실에서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2:1b, 하가). 이는 저들이 꾸민 계획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저들이 꾸민 계획이 정당했다면 굳이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들의 계획을 공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꾸민 계획이 정당하지 않았기에 저들은 밀실에서 의논했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관점으로 이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을 숨겨진 골방에서 하는 건 그나마 낫다.
 

드러내 놓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욕하는 언행을 자행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시대가 현대다.
 

<잠언>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사람들 몰래 골방에서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드러내놓고 자행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했다. <요한계시록>도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행한 대로 심판이 이뤄진다고 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음모를 꾸민 사람들은 세상의 왕ㆍ장군들이었다(2절). 저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서로 결탁했다. 그러면서 저들이 내세운 표어가 <2:3>이다. 전쟁에는 항상 그 전쟁을 왜 하는지 선전하는 문구가 필요한데, 저들이 벌인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들도 캠페인용 문구를 만들었다. 저런 문구를 만들어야 사람들을 동원할 때 명분이 서기에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해서 사람들을 동원하려고 문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현대의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이 저들을 따르라고 유혹하거나,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은 없고 인간의 생각이 신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는 여러 가지 문구를 보면 <2편>의 교훈이 기독교인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성령님의 인도를 족쇄로 생각하는 사람

저들이 내건 문구의 내용이 참으로 기가 막힌다. 하나님의 통치와 성령님의 인도가 저들의 눈에는 족쇄ㆍ사슬인데, 이 단어는 땅을 파거나 물건을 나를 때 사용했던 ‘짐승의 목에 건 멍에’를 뜻한다(렘 27:2, 나 1:13).
 

성령님의 인도를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미 그 끝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십자가를 진 사람인데, 그걸 온 인류를 대속한 사건이라고 하면서, 기독교가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다고 한다. 이는 <창세기>에서 아담ㆍ하와가 하나님을 벗어나서 그들만의 자유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이 웃으신다

시를 4연으로 구분했을 때, 둘째 연의 시작에 해당하는 <4절>에서 갑자기 장면이 바뀐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신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란 표현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용했던 아주 높은 성호로, 이 웃음의 배경에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주님의 보좌가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웃으신다”로 표현한 곳은 <4절>뿐이다.
 

물론 “웃다”와 “비웃다”로 표현한 단어가 서로 다르고, 이 웃음은 기쁨에 겨워서 웃는 게 아니라 악인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악인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화를 내셨다. 이곳에서만 하나님이 악인들을 보고 웃으셨다. 이는 악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일의 한계를 다 아시는 분이 웃으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전초전(前哨戰)을 벌인 모습이 <4절>에 담겨 있다.
 

하나님이 보이신 웃음을 통해 우리 신앙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살펴야 한다. 이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온몸을 덮는 갑옷(엡 6:11)과 더불어 악의 세력이 진화(鎭火)할 수 없는 크리스천의 무기다. 따라서 우리도 이 말씀처럼 세상에 악이 편만할 때 그 악의 끝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어떤 걸 보고 비웃으면서 그게 주는 유혹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압제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면, 세상의 거친 흐름을 따르지 않고 그걸 보고 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