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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 목사의 대사기극
김홍기 목사 분석
2023년 11월 10일 (금) 01:48:10 김홍기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홍기 목사 / Ph.D., D.Min. Christ Lives Ministries 대표. Talbot School of Theology (M. Div., D.Min.).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D.)

정동수 목사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정 목사는 최근에 일련의 설교들을 통해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무오한 성경이며, 개역을 포함한 영어 현대역들은 카톨릭과 마귀가 변개시킨 부패한 성경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홍기 목사는 이러한 주장은 이단적이며 거짓된 가르침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교회와 신앙은 김홍기 목사의 일련의 비판을 가감없이 게재함으로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 김홍기 목사 

정동수 목사는 최근의 설교(“NIV, ESV는 다른 예수, 다른 그리스도를 가르친다: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성경 비교 분석,” 2023년 9월 8일)에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셨다고 가르치도록 마 5:22을 변개했다”[1]고 주장한다. 또한 개역과 NIV가 눅 2:33에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있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2]고 말하며, “누가 그랬겠어요 마귀가 그러지 누가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3]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역과 NIV는 신약의 여섯 구절(마 8:2, 9:18, 15:25, 18:26; 20:20; 막 5:6)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부정하고 있고, 엡 3:9에서는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삭제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의 네 구절(행 3:13, 26, 4:27, 4:30)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종으로 격하시키고 있고, 빌 4:13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능력의 원천이심을 삭제하고 있으며, 갈 4:7에서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마 18:11에서는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부인하고 있으며, 요 16:16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부정하고 있고, 고전 15:47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요 3:13에서는 예수님의 편재성을 부정함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고, 엡 5:30에서는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으며, 신약의 네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에서 주(主)라는 단어를 39회, 그리스도를 52회, 예수를 37회 제거함으로 우리 구원자의 이름을 총 178회나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역과 NIV가 히 2:7에서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창조물 위에 세우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4]
 

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의 궤변

   
 KJV나 TR에 성경의 원본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이단 교리이다(유튜브 캡처)

이와 같은 주장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을 이단 교리들을 가르치는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것이며, 마귀가 변조한 마귀의 작품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1938년에 출판된 개역성경에 대해 지금까지 이런 도발적이고 악의적이며 허무맹랑한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던가? 필자는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이런 주장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최근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정동수는 왜 이런 유독하고 위험천만한 주장을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신봉하는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이단 교리 때문이다.

정동수 같은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은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성경(이후KJV)이나 KJV의 헬라어 신약본문인 텍스투스 레켑투스(이후 TR)를 성경의 원본과 동일한 성경, 즉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오류가 없는 성경으로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KJV나 TR을 성경 원본처럼 사용하여 그것들을 기준으로 다른 사본들이나 번역본들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어떤 사본들과 번역본들의 내용이 KJV나 TR의 내용과 다르면 ‘부패했다’고 낙인을 찍는다. 또한 어떤 사본들과 번역본들의 단어나 문장이 KJV나 TR의 단어나 문장과 다르면 ‘변개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KJV나 TR에 있는 어떤 단어나 문장이 어떤 사본들과 번역본들에 빠져 있으면 ‘삭제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KJV나 TR에 없는 단어나 문장이 어떤 사본들과 번역본들에 있으면 ‘첨가되었다’고 말한다.
 

정동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NIV 이후에 나온 수백개의 현대역본들은 다 똑같다. 빠진 데도 있고, 틀린 데도 있고, 삭제된 데도 있고, 첨가된 거,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들이 부패된 게 그 안에 반영이 되어 있다.”[5]
 

정동수의 이와 같은 주장은 물론 잘못된 것이다. KJV나 TR에 성경의 원본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비정통, 즉 이단 교리이다. 딤후 3:16과 벧후 1:21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을 받은 성경은 오직 구약과 신약의 원본에만 국한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지난 2천 년간 성경 원본 외에 다른 어떤 사본이나 번역본을 성경 원본의 위치에 올려놓은 적이 결코 없다. KJV 유일주의는 말할 나위 없는 이단 교리이다. KJV 유일주의는 또한 교리 사기이다.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된 성경 원본은 오류가 전혀 없지만, KJV와 TR은 여러 가지 오류와 혼동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TR은 30개 이상의 판이 있지만 100% 동일한 판은 하나도 없다.[6] 그렇다면 그 30개 이상의 판 중 어느 것이 성경의 원본과 같은 것이라는 말인가? 정동수와 같은 KJV 유일론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적도 없다. 만약 성경의 원본과 동일한 TR을 골라낼 수 없다면 30가지 이상 다른 TR에 성경 원본의 권위를 부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여해서도 안 된다. 성경 원본이 내용이 다른 30가지의 이상의 다른 원본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볼 수 있는가?
 

그리고 30가지 다른 TR 중 어느 하나를 골라서 영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에 성경 원본의 권위를 부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여해서도 안 된다. 게다가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11번을 개정했고, 1769년 개정판은 1611년판과 75,000군데 이상이 다르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규모의 개정은 인쇄상의 문제나 식자공의 오류와 같은 사소한 것을 넘어서는 심각한 교정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1611년 KJV에는 마태복음 26장 36절에 “Then cometh Judas”(유다가 온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KJV에서는 “Then cometh Jesus”(그때에 예수께서 오신다)로 번역되어 있다.[7] 주어가 바뀐 것은 것은 문장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으로서 결코 사소한 교정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참조. 이런 심각한 교정의 더 많은 예들을 필자의 다른 글인 “정동수 목사의 후안무치한 교리 사기를 확증하는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가지 오류들”에서 볼 수 있음). 정동수는 이런 확실한 지식과 정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611년판 KJV는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본문을 한 번도 수정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퍼뜨리며 교리 사기 행각을 계속하고 있다.
 

심각한 다수의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는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이 성경의 본문인 (30가지 다른) TR에 성경의 원본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가르침은 이단 교리이다. 명망 있는 경건하고 보수적인 사본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어느 사본이나 번역본에 성경 원본의 영감과 권위를 결코 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오류와 혼동을 포함하고 있는 TR과 KJV를 성경 원본과 같이 절대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본이나 번역본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교리적 불법 사기 행위인 것이다.
 

개역이 예수님이 범죄하셨다고 가르친다는 기상천외한 궤변

정동수의 교리적 사기극을 폭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다루는 성경 구절들과 이와 관련된 그의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이다. 정동수는 마 5:22과 관련해서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셨다고 가르치도록 마 5:22을 변개했다”고 주장한다. 여기 “변개했다”는 주장은 성경 원본과 동일한 KJV와 번역이 다르다는 뜻이다. 개역과 NIV는 마 5:22에서 KJV와 번역이 다르므로 그리스도가 죄를 범하셨다고 가르치는 것이며, 따라서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동수의 주장은 개역과 NIV뿐 아니라 NASB와 ESV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 성경들은 마 5:22에 대해 모두 동일한 의미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KJV와 개역 및 영어 현대역(NIV, NASB, ESV)은 번역이 어떻게 다른가? KJV는 마 5:22을 이렇게 번역한다. “누구든지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킹제임스 흠정역).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이런 뜻으로 번역한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정동수는 이 둘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KJV는 형제에게  까닭 없이 화를 내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화를 내면 무조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가지 다른 번역들을 예수님이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엄중히 책망하신 사건에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KJV는 까닭이 있어 화를 내신 예수님의 행위는 범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화내면 무조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번역함으로 예수님이 성전에서 화내심으로 범죄하셨다고 말한다.
 

정동수의 위와 같은 주장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예수님이 마 5:22에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라고 말씀했을 때, 그 분노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보여주신 의로운 분노를 포함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마 5:22의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르기조(화를 내다)는 키우고 죽도록 허용하지 않는 음울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원한을 품는 것과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억울한 마음에서 보여진다.”[8]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말하는 마 5:22의 분노는 성경이 인정하는 의로운 분노를 포함하지 않는, 죄가 되는 분노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까닭 없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형제를 향한 모든 분노를 죄로 정죄했고, 이로 말미암아 성전에서 분노하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이것은 형제를 향한 분노가 의미하는 바를 보아도 그렇고 마 5:22이 위치한 문맥을 보아서도 그렇다.
 

마 5:22의 직전 구절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라고 말한다. 이 구절의 번역에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KJV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정동수의 주장대로 하면 이 구절이 “까닭 없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고 있음으로 성경은 모든 살인을 죄로 정죄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 발생하는 살인을 죄로 정죄하지 않는다. 즉 전쟁 중의 살인(수 8:1-2; 삼상 15:3)과 정당방위에서의 살인(눅 22;36) 사형에서의 살인(출 21:12)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면 KJV가 마 5:21을 번역함에 있어서 “까닭 없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KJV는 모든 살인을 죄로 정죄하고 있다고 말하면 정당한 주장이 되겠는가? 정동수의 주장대로 한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KJV가 성경의 다른 구절들이 말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정당화된 살인을 부정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즉 정동수의 주장대로 하면 KJV는 서로 상충하는 주장을 가진 잘못된 성경이 된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마 5:21)는 말씀이 정당화된 살인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 5:22)도 정당한 분노(예: 예수님의 의로우신 분노)를 포함하지 않는다. 문맥상 여기의 살인과 분노는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살인과 분노는 정당한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처럼 성경의 한 구절을 이용해서 성경 전체의 교리를 수립하면 정동수의 사기극과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교리를 결코 한 구절이 아닌 성경 전체의 관점 위에서 종합적으로,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 마 5:22에 대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번역은 그 한 구절이 아닌 성경 전체의 관점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 정동수처럼 한 구절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한다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 같은 정통 성경들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며, 동일한 이유로 KJV를 잘못된 성경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마 5:22에서 “까닭 없이”라는 표현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그것들의 헬라어 성경, 즉 헬라어 사본이 그 표현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수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카톨릭 이단 사본(시내 본, 바티칸 사본)이 이단 개역성경과 이단 영어 성경들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비록 개역과 영어 현대역을 ‘이단 성경’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다른 복음,”“다른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말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NIV, NASB, ESV)은 ‘이단 복음,’ ‘이단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건하고 보수적인 학자들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까닭 없이”를 삭제하여 성경을 변개시킨 것이 아니라, KJV가 “까닭 없이”라는 말을 임의로 첨가하여 성경을 변캐시킨 것으로 본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마귀가 변조한 마귀의 작품이라는 망언

그리고 정동수는 눅 2:33과 관련하여 NIV와 개역성경이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KJV는 눅 2:33을 이렇게 번역한다.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 일들로 인해 놀라더라.” 반면 NIV는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리고 개역은 “그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줄여서 이렇게 번역한다.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정동수는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 킹제임스 성경에는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놀라더라. 이렇게 돼있어요. 그런데 NIV나 개역성경은 그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놀라더라. 이렇게 돼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요셉이 되는 거잖아요.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안잖아요.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잉태가 되었지. 엄밀하게 말하면 요셉은 의붓 아버지지. 요셉이 아버지가 되면 그러면 처녀 탄생이 성립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정확하게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 마리아는 놀라더라 이렇게 번역을 해논 거를 그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인간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그런 사람이 되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인이 되는 거잖아요. 이 별거 아닌 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이거 하나만 해도 엄청난 오점인 거에요. 예수님이 인간이 되고 마는 거에요. 이게 이렇게 되면은. 요셉이 아버진데 그러면 인간의 피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죄 많은 인간으로 예수님이 이땅에 존재하셨다 이런 얘기가 되는 건데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그런 일이죠. 누가 그랬겠어요 마귀가 그러지 누가 그렇게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9]
 

정동수는 요셉을 아버지라고 말하면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신성을 부정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 주장이고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요셉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수가 원본 성경같이 여기는 KJV는 요셉과 마리아를 예수님의 “부모”라고 부르며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 부모가 아기 예수를 데려오니”(눅 2:37, 한글킹제임스성경). 여기서 부모라는 단어는 헬라어 고네우스(γονεύς)를 번역한 것인데, 고네우스는 선조 혹은 부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KJV는 눅 2:41에서도 요셉과 마리아를 “부모”(고네우스-γονεύς), 즉 아버지와 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게다가 KJV는 눅 2:48에서 요셉을 “아버지”로 호칭하고 있다. “그분의 어머니는 그분께 이르되, 아들아,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며 너를 찾았노라, 하매”(킹제임스 흠정역).
 

정동수는 자신이 요셉을 “아버지”로 번역한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일까? 정동수는 마리아가 자신의 남편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불렀으니 마리아도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신성을 부정했다고 주장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정동수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자기당착에 빠진 것일까? 그 이유는 그가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라는 ‘이단 교리’에 근거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부모(父母)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킨다. 이것은 우리말이나 헬라어 혹은 세계 만국어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성경(눅 2:48)은 요셉을 “아버지”로 직접적으로 호칭할 뿐 아니라, “부모”라는 말을 통해 요셉이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개역이 요셉과 마리아를 “부모”라고 번역하고, NIV가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번역한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성경이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인 요셉을 아버지로 부른 것을 보고 요셉을 친아버지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오직 KJV 유일주의자들뿐이다. 신자들뿐 아니라 불신자들조차 그런 오해는 하지 않는다.
 

정동수 같은 KJV 유일주의자들이 이런 허튼 주장을 하는 이유는 유일하게 바른 성경은 오직 킹제임스 성경뿐이라는 황당무계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 정동수는 KJV를 “성경”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는 개역과 NIV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정확하게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 마리아는 놀라더라 이렇게 번역을 해논 거를 그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 그러면 안 되잖아요.”
 

정동수에게 있어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은 KJV 단 하나뿐이다. KJV는 진리의 절대적인 심판 기준이고 다른 성경들은 그 기준에 따른 심판 대상일 뿐이다. 다른 성경들을 비판할 때 그가 보여주는 오만방자함을 보라. “성경은 그렇게 안 하잖아요” 혹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정확하게 번역해 놓은 거를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라는 말 속에는 다른 성경들을 성경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정동수에게 개역이나 영어 현대역은 성경이 아니다. 그냥 문제 많은 번역본이고, 그것들의 헬라어 본문은 그저 문제 투성이 사본일 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동수에게 있어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부패한 성경이고 마귀가 편집하여 개악한 성경이다. 정동수는 NIV와 개역이 요셉을 아버지라고 번역함으로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신성을 부정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 그랬겠어요 마귀가 그러지 누가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 정동수에게 있어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잘못 번역된 성경 정도가 아니라 마귀가 성경 원본의 구절들을 삭제하고 임의로 첨가하고 심히 부패시켜서 성경 원본을 180도로 변개시켜 놓은 마귀의 작품인 것이다.
 

정동수는 이전에 이와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하다가 예장합동으로부터 “이단성, 참여금지 및 엄히 경계”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런 처벌을 받고 현재는 내려놓은 정 목사의 설교 동영상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성경을 변개시키려고 하는 그와 같은 자들이 있다. 누가 그 일을 하겠어요? 마귀가 그 일을 하는 거예요. . . . 그래서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 성경이 있고 마귀가 변개한 말씀이 들어 있는 부패한 그와 같은 성경이 있다. . . . 지금 나오는 모든 성경은 뜻만 전달해 주면 된다는 거예요. 그건 성경이 아닙니다. 마귀가 부패시켜 놓은 그와 같은 작업이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 안에 내용이 동일해요. . . . 마귀의 주요 비즈니스는 뭐냐. 그 말씀을 제거하거나 그 말씀을 변개하거나 그 말씀에 첨가하거나 그 말씀을 영해해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그게 마귀의 가장 큰 주요 관심사다. 개역성경, NIV 같이 마귀가 변개시킨 성경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10]
 

정동수는 개역과 NIV를 비판하는 이 짧은 문장에서 마귀라는 말을 여섯 차례나 사용한다. 이것을 볼 때 정동수가 개역과 NIV를 마귀의 작품으로 여긴다는 필자의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동수는 자신의 이러한 설교를 듣고 분개한 한 사람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이런 죽일 놈들이 있나. 이렇게 이런 죽일 놈들. 성경을 이렇게 바꾸나. 어떤 분 얘기대로.”[11] 그리고 그는 이 험상궂은 말을 이렇게 흔쾌히 추인한다. “이렇게 되어야 정상인 겁니다.[12]
 

예수님은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셨다. 정동수의 열매인 그의 제자들과 사역자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한 사람도 있다. 다음은 정동수가 담임으로 있는 사랑침례교회 예배 시간에 설교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말 성경이 이단이라는 흡혈 기생충들이 우굴거리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이 아니었다면 신천지라던지 베뢰아라던지 박태선이라던지 이런 사람들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 . . 기존 개신교단들은 자기들도 천주교처럼 슈퍼 이단이지만, 천주교 잔재를 못버린 태생적 한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위기 상황을 그들의 자기네 친정격인 천주교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단 메뉴얼을 제정하고 그들을 정죄함으로써 공격자인 자신은 정통이라는 논리를 만들어서 정체성을 구축하는 방법입니다.”[13]
 

정동수는 예장합동의 징계와 압력에 굴복하여 이러한 이단적인 동영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개역성경에 대한 불신과 경멸 및 자신이 속한 독립침례교회 외의 다른 교파와 교단에 대한 심각한 역사적 편견과 거부감은 위와 같은 그의 제자의 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영상과 그 가르침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동수의 KJV 유일주의의 이단 교리와 그 이단 교리의 전파를 위해 정동수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거짓말과 교리 사기의 폐해는 반드시 한국교회가 거두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지금 행동해야 한다. 정동수의 이단 교리와 교리 사기를 강력히 규탄하고 단죄하여 그 위험성을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
 

800년 전의 사본이 800년 후의 사본의 내용을 삭제했다는 황당한 궤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헬라어 본문인 UBS 성경은 눅 2:33에서 요셉과 마리아를 각각 파테르(πατήρ-아버지)와 메테르(μήτηρ-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NIV는 이 구절을 “그 아이의 아버지(the child’s father)”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그의 부모”라고 번역했다. UBS 헬라어 성경은, TR 헬라어 성경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본문 성경)과 달리, 대다수의 학자들이 신뢰하는 초기 사본인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 기초해서 요셉을 아버지(파테르-πατήρ)라고 부른 것이다. 따라서 요셉과 마리아를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부모”로 부르는 것은 100% 성경적인 것으로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동수는 개역과 NIV의 번역을 기형적인 논리로 왜곡해서 그 번역들이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신성을 부정한다는 괴이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정동수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백해무익한 비성경적인 궤변이다.
 

정동수는 또 개역과 NIV가 신약의 여섯 구절(마 8:2; 9:18; 15:25; 18:26; 20:20; 막 5:6)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정동수가 지적한 여섯 구절 중 하나인 마 8:2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KJV(흠정역)는 이 구절을 “한 나병 환자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라고 번역한다. 반면 개역과 NIV는 한 나병 환자가 와서 무릎을 꿇고”라고 번역한다. 그러면 이 두 번역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번역인가?
 

여기 경배하다와 무릎을 꿇다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에서 온다. 이 단어는 무릎을 꿇다, 절하다, 예배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역의 “절하다” 혹은 NIV의 “무릎을 꿇다” 혹은 KJV의 “예배하다” 등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헬라어 같이 한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을 때는 문맥과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뜻을 선별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8장 1절과 2절을 함께 보면 그 단어와 문맥의 관계가 드러난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여기 문맥을 보면 나병 환자가 참된 예배를 드리는 신자인지 혹은 단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 불신자인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NIV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병 환자가 무릎을 꿇었다”라고 번역을 한 것이다. NIV는 이 구절을 신중하게 잘 번역했다. 이런 맥락에서 개역과 NIV가 마 8:2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를 부정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억지 주장이요 독단적 주장이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를 부정하기를 원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확실한 구절들에서 분명하고도 광범위하게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정동수의 부당한 주장과는 반대로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를 향한 예배의 가르침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정동수는 개역과 NIV가 엡 3:9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삭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먼저 성경 구절을 보도록 하자. KJV는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했고, 개역과 NIV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했다.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개역과 NIV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동수는 이것을 보고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말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몰상식하고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록은 미래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변개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세기에 필사된 사본이 12세기에 만들어진 사본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변개시킬 수는 없다. 물론 반대로 12세기의 사본이 4세기의 사본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변개시킬 수는 있다.
 

에라스무스는 헬라어 성경을 만들 때 12세기 이후의 비잔틴 사본들을 참고해서 만들었다.[14] 그의 헬라어 성경은 나중에 텍스투스 레켑투스(Textus Receptus, 줄여서 TR)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TR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개역과 NIV는 UBS 헬라어 성경을 기초로 만들었다. 그리고 UBS 성경이 주로 참고한 것은 4세기의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그러니까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사본은 킹제임스 성경의 사본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선다. 그러면 800년이나 앞선 개역과 NIV가 어떻게 800년이나 늦은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삭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동수는 800년이나 앞선 4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개역과 NIV가 이보다 800년이나 늦은 12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몰상식하고 황당무계한 주장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는가? 정확한 사실을 말하면, 킹제임스 성경의 기초인 12세기의 사본이 개역과 NIV의 기초인 4세기 사본에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을 임의로 끼워넣었을 것이다. 과거의 사본이 미래의 사본의 내용을 삭제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몰상식과 황당무계함과 후안무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동수의 주장은 명백한 교리 사기에 해당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동수는 교리 왕사기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개역과 NIV가 4세기의 사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고 있지만, 성경의 전반을 통해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분명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사실상 KJV와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선포함에 있어서 100% 일치한다. 번역이 다소 다른 한 구절을 왜곡해서 개역과 NIV를 마귀가 부패시킨 마귀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정동수의 노력은 심히 개탄스러운 것이다.
 

정동수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NIV, NASB, ESV 등)의 구절이 KJV와 다르면 무조건 (성경 원본과 동일한) KJV의 내용을 삭제, 첨가, 변개시켰거나 성경 진리를 격하, 부정, 손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TR이 영감을 받은 오류가 없는 성경이라는 이단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오류가 들어 있는 성경을 완전한 성경이라고 속여 말하는 교리 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KJV와 다른 헬라어 성경과 다른 고대 사본을 참고해서 번역한 성경들이지 KJV를 개역한 성경들이 아니다. 따라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KJV의 내용을 삭제, 첨가, 변개시켰다는 주장은 전혀 가당치 않은 말이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KJV와 기본적 교리와 가르침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과 내용에 있어서는 몇 군데에서 사소한 차이가 있다. 정동수와 같은 KJV 유일론자들은 그 사소한 차이를 엄청나게 부풀려서 마치 근본 교리가 크게 다른 것처럼 과장을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사소한 차이를 정통 교리와 이단 교리의 차이로 둔갑시킨다.
 

예를 들어 정동수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갈 4:7에서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부정하고 있고, 마 18:11에서는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부인하고 있으며, 요 16:16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부정하고 있고, 고전 15:47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요 3:13에서는 예수님의 편재성을 부정함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고, 엡 5:30에서는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정동수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정통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 성경, 한 걸음 더 나아가 마귀가 변개시킨 성경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갈라디어 4:7에서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KJV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이라는 표현이 없는 사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KJV의 갈 4:7에 있는 “그리스도를 통한”이라는 표현은 후에 필경사들이 그 구절을 강화하기 위해 첨가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크다. 왜냐하면 사본학자들은 성경의 원본을 복원하는 작업을 함에 있어서 사본의 수많은 변종들 중 ‘더 짧은 읽기 자료’를 원본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필경사는 본문에서 자료를 삭제하기 보다는 설명을 위해 첨가할 가능성이 많다”[15]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정동수가 제시한 여러 구절들에 그대로 적용된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KJV의 비잔틴 사본에 있는 표현들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KJV의 비잔틴 사본 필경사들이 더 명확한 설명을 위해 첨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해석은 대다수의 사본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입장과 일치한다.
 

진리를 거짓으로, 거짓을 진리로 둔갑시키는 정동수의 대사기극

정동수는 개역과 NIV가 마 18:11에서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부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 초기 사본들에 이 구절이 없기 때문에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그 구절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 바비에리 교수는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헬라어 사본들은 마 18:11,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를 첨가했는데, 아마 눅 19:10을 끼워 넣었을 것이다.”[16]  
 

누가복음 19:10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마 18:11과 동일한 내용이다. 개역과 NIV에는 마 18:11이 없지만, 눅 19:10이 들어 있다. 따라서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부정한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바비에리 교수의 말처럼 킹제임스 성경이 마 18:11의 자리에 눅 19:10을 끼워 넣었을 것이다.  
 

정동수는 개역과 NIV가 요 16:16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개역과 NIV에서는 삭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4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개역과 NIV가 12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경사가 12세기 사본에 끼워 넣은 말을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개역과 NIV는 책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승천을 강력히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정동수는 개역과 NIV가 고전 15:47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KJV는 “하늘에서 나신 주시니라”고 말했는데 개역과 NIV는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라는 단어가 빠졌다는 말인데, 성경 원본에 있는 말을 개역과 NIV가 뺐다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KJV가 성경 원본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는 KJV의 사본의 필경사가 ‘주’라는 단어를 끼어 넣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개역과 NIV는 책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정동수는 개역과 NIV가 요 3:13에서 예수님의 편재성을 부정함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KJV는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하지만, 개역과 KJV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 올라간 자는 하늘에 있는 인자”라는 KJV의 표현은 예수님의 편재성을 증언하지만, “하늘에 올라간 자”라는 개역과 NIV의 표현은 예수님의 편재성을 부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인자”라는 KJV의 표현은 필경사가 예수님의 편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끼워 넣었을 확률이 더 많다. 왜냐하면 사본학자들은 “더 짧은 읽기 자료”가 더 원본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역과 NIV는 책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편재성과 신성을 강력히 증언하고 있다.
 

정동수는 또한 개역과 NIV가 엡 5:30에서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KJV는 “우리가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체임이라”고 말하는데, 개역과 NIV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살과 그의 뼈”라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는 주장인데, 대다수의 사본학자들은 이 표현은 KJV의 후기 사본의 필경사가 끼워 넣었을 것으로 본다. 개역과 NIV는 책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력히 선포하고 있다.
 

정동수는 또한 개역과 NIV가 신약의 네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한다. KJV는 “그리스도의 심판석”(롬 14:10)이라고 말하나 개역과 NIV는 “하나님의 심판대”라고 말하고, KJV는 “그리스도의 날”(살후 2:2)이라고 말하나 개역과 NIV는 “주의 날”이라고 말하며, KJV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고 말하나 개역과 NIV는 “주를 시험하지 말자”고 말하고, KJV는 “그리스도를 일으켜”(행 2:30)라고 말하나 개역과 NIV는 “그의 자손들 중 하나”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유치하고 가소롭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호칭하면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가 손상된단 말인가? 그리고 그리스도는 주이신데 왜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면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가 손상된단 말인가? KJV는 롬 14:6과 고전 3:5 등 수백수천 구절에서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 정동수는 KJV도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으니 KJV도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를 손상시키는 나쁜 성경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다고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를 손상시킨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KJV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마 1:1; 12:23; 15:22, 21:9, 막 10:48; 12:35, 요 7:42, 롬 1:3; 딤후 2:8; 계 5:5)으로 열 차례나 불렀으니 정동수는 KJV도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세를 손상시키는 나쁜 성경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동수는 또한 개역과 NIV가 히 2:7에서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창조물 위에 세우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에서 KJV는 “그를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 위에 세우시고”라는 말했는데, 개역과 NIV에는 이 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인 히 2:8을 보면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는 말이 개역과 NIV에 나온다.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세우시는 것(7절)이나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는 것(8절)이나 의미는 동일하다. 정동수의 성격 해석은 깊이에 있어서 너무나 얄팍하고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개역과 NIV를 비판하는 정보를 발견하면 정확한 분별 없이 마구잡이로 가져다 쓰고 있다. 정동수는 성경의 바른 해석은 문맥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부터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정동수는 주(主)라는 단어를 39회, 그리스도를 52회, 예수를 37회나 킹제임스 성경에서 제거함으로 우리 구원자의 이름을 총 178회나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세기의 사본(개역과 NIV의 사본)이 12세기의 사본(KJV의 사본)의 내용을 삭제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의 12세기 사본의 필경사들이 위의 내용들을 임의로 첨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이것은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대다수 학자들은 개역과 NIV의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사본이라고 믿는 반면 KJV의 사본인 비잔틴 사본은 원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본이라고 믿는다.[17] 대부분의 학자들은 비잔틴 사본은 늦은 시기를 대표하며, 다른 사본 유형의 읽기 자료들(readings)이 융합되어 비잔틴 읽기 자료가 된 것으로 믿고 있다. 비잔틴 사본은 몇몇의 고대의 자료들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대개 2차적인 혹은 늦은 읽기 자료들(95%가 7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그리고 비잔틴 사본은 다른 사본 유형들의 융합물(conflations)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본문에 추가된 것들이 있다.[18] (참조. 추가된 것들의 여러 가지 예들이 필자의 글 “정동수 목사의 음모론에 기초한 사이비 사본학”에 나와 있음)
 

KJV보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강력히 선포함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동수와 KJV 유일주의자들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KJV보다 훨씬 더 분명하다. 
 

KJV 유일주의자 리플링거(Riplinger)는 영어 현대역이 “100가지 이상의 사례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회피하고 있다”[19]고 주장한다. 또한 빌 2:5-7에서는 모든 영어 현대역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하며, “뉴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 [20]고 말한다.” 그러나 빌 2:6을 분석해 보면 이 말이 거짓말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빌 2:6에서 KJV는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한글킹제임스)로 번역한다. 그리고 뉴킹제임스 성경도 단어 하나만 다를 뿐 동일한 뜻으로 번역을 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Think(생각하다)라고 번역한 단어를 뉴킹제임스 성경은 consider(여기다, 생각하다)로 번역했는데, 사실상 두 단어는 동일한 뜻이다. 따라서 뉴킹제임스 성경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는 리플링거의 말은 순전한 거짓말이다.  
 

반면 NIV는 빌 2:6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바로 그 본질(very nature God)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로 번역한다. KJV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체”라고 했지만 NIV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바로 그 본질”이라고 했다. 그러면 “형체”와 “바로 그 본질” 중 어느 편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분명히 표현하고 있는가? 물론 그것은 분명히 후자이다. 그러므로 모든 영어 현대역이 빌 2:6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리플링거의 말 역시 순전한 거짓말이다.
 

미국의 변증가 파산티노 부부는 리플링거의 책(New Age Bible Versions)에 대한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혹독하게 평한다.
 

[이 책은] 잘못된 것이고 선정주의적이며 부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오류가 없는 페이지는 없다. 리플링거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본문 비평, 언어학, 번역의 원리, 논리적인 논증, 적절한 인용, 문서의 표준, 능숙한 영어 문법과 스타일과 심지어 일관된 맞춤법도 모른다. 이 책은 리플링거의 저축한 돈을 사용하고 그녀의 차고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일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21]
 

리플링거는 KJV 유일주의 진영 안에서 매우 유명한 저술가이고 강사이다. 리플링거를 보면 우리는 그 진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동수는 설교 시 이런 리플링거의 자료를 즐겨 사용한다
 

또한 딛 2:13과 벧후 1:1에 대한 번역을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KJV보다 훨씬 더 분명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구절에서 KJV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the great God and our Saviour Jesus Christ)라고 번역한다. 즉 “하나님”과 “구주”를 둘로 나누어서 부정확하게 번역한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별하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애매한 구절을 이용해서 예수님은 “크신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우리 구주”이시라고 주장한다.[22] 이렇듯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별하면 아리우스주의 이단 교리를 만드는 일에 발판을 놓아주게 된다.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our great God and Savior, Jesus Christ)”라고 정확하게 번역한다. 이 번역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별하지 않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선언함으로 아리우스주의 이단이 발 붙일 곳이 없게 만든다.
 

KJV가 이처럼 오역을 한 이유는 1600년대 초반의 번역위원들이 1798년에 발견된 그랜빌 샤프(Granville Sharp)의 법칙을 몰랐기 때문이다.[23] 이 헬라어 문법 법칙에 의하면, 동일한 격의 두 명사가 καί(그리고)로 연결될 때 그리고 뒤의 명사 앞에는 정관사가 없고 앞의 명사 앞에 정관사가 있을 때 두 명사는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딛 2:13과 벧후 1:1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같은 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our great God and Savior, Jesus Christ)”라고 정확하게 잘 번역했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NIV나 NASB처럼 딛 2:13의 번역(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은 잘 했지만, 벧후 1:1의 번역(“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은 KJV의 오역을 따라 잘못 번역했다. 이것은 다음 번 개정 때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NIV의 번역(“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과 NASB의 번역(“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바른 번역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요 1:18에 대한 번역을 비교해 보아도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KJV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교리를 훨씬 더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JV는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번역한다. 여기서 KJV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지 않는다. 반면 영어 현대역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옹호한다. NIV는 “하나이시고 유일하신  하나님”(God the One and Only)이라 번역하고, NASB는 “독생하신 하나님”(the only begotten God)으로 번역한다. 여기의 헬라어 θεός(하나님)현존하는 모든 초기 사본들이 지지하고 있다.[24]
 

카슨 교수의 도표는 NIV가 KJV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교리를 훨씬 더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슨은 그의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8가지 주요 구절들을 제시하는 도표를 보여주었다.[25] 그는 이 구절들에서 10가지 다른 성경들이 그리스도에게 신성을 부여했는지 안 했는지를 검토해서 그 도표에 기록했다. 그 결과 KJV는 여덟 구절 가운데 네 구절에서, NIV는 여덟 구절 중 일곱 구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신성을 부여한 것을 발견했다.
 

 

요 1:1

요 1:18

행 20:28

롬 9:5

살후 1:12

딛 2:13

히 1:8

벧후 1:1

KJV

  •  

x

  •  
  •  

x

x

  •  

x

NIV

  •  
  •  
  •  
  •  

x

  •  
  •  
  •  

 

거짓된 음모론 전파자요 이단 교리 전도사인 정동수

이런 맥락에서 개역이나 영어 현대역은 KJV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분명히 선포한다. 그러나 우리는 KJV가 몇몇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KJV를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나쁜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KJV는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KJV 유일주의자들처럼 좋은 성경의 일부를 왜곡해서 나쁜 성경으로 매도하는 마녀사냥식 행동을 취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반면에 정동수 같은 KJV 유일주의자들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한 구절 혹은 몇몇 구절을 왜곡하여 해석해 놓은 후 개역과 영어 현대역을 나쁜 성경 혹은 이단 성경 혹은 마귀가 변개시켜 놓은 성경으로 정죄한다. 학자들은 비잔틴 사본은 원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에라스무스는 바로 이 비잔틴 사본을 가지고 헬라어 성경(TR)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동수는 TR이나 KJV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경이라는 이단 교리를 만들어 놓고 이것들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다른 성경들을 제멋대로 판단한다. 그리고 정동수는 학자들이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는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음모론 거짓말을 활용하여 카톨릭과 마귀가 부패시킨 이단 사본으로 정죄한다. 그리고 이 사본들에 기초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을 카톨릭과 마귀가 부패시킨 성경으로 정죄한다. 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본은 마귀가 변개시킨 사본으로 정죄하고, 학자들이 가장 덜 신뢰하는 사본은 성경 원본과 동일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다.
 

정동수는 정통 사본학을 배척하고 음모론에 기초한 사이비 사본론을 가르치며 성경 파괴를 일삼는 반지성주의자요 이단 교리 전도사이다. 그는 끊임없이 개역성경은 이단 성경이요 마귀가 변개시킨 마귀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한국교회의 영적 근본을 해치고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일어나 한국교회의 건강과 장래를 위해 정동수의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을 중지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행동할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참고문헌

 

[1] 정동수, NIV, ESV는 다른 예수, 다른 그리스도를 가르친다: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성경 비교 분석(25), 2023. 9. 8.  (43분15초 - 47분01초). https://www.youtube.com/watch?v=FPNYL0H1NQU&t=2865s

[2] 같은 동영상에서 (47:01-48:55)

[3] 같은 동영상에서 (48:50-54)

[4] 같은 동영상에서 (48:56-1:06-50)

[5] 정동수,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성경론 01, 7분 53-59초 (유튜브 동영상), 2015. 7.22. https://www.youtube.com/watch?v=Fkpl_J62PLs&t=203s

[6] John Ankerberg and John Weldon, Facts on the King James Only Debate (Chicago: ATRI Publishing, 2011), 6.

[7] 같은 책에서, 8.

[8] John MacArthur,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Wordsearch7 CD Rom, Matt 5:22.

[9] 정동수, NIV, ESV는 다른 예수, 다른 그리스도를 가르친다: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성경 비교 분석(25), 2023. 9. 8.  (47분 25초 - 48분 55초).

[10] 정동수, 개역성경은 마귀가 부패시킨 성경 (유튜브 동영상, 현재는 삭제한 것으로 보이지만 필자의 자료철에 보관되어 있음, 2014. 11. 16.

[11] 같은 동영상에서

[12] 같은 동영상에서

[13] “개역성경을 보면 이단이 된다.” 정동수 대 권동우의 재판에서 권동우 측에서 법정에 제출한 동영상. 사랑침례교회의 한 사역자가 교회 본당에서 설교한 것을 녹화한 것으로 필자도 소장하고 있음.

[14] D. A. Carson,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Grand Rapids: Baker Academic, 1979), 34. Kindle

[15] Norman L. Geisler and William E. Nix, A General Introduction to the Bible (Chicago: Moody Publishers, 1986), 477.

[16] Louis Barbieri, Jr., Matthew,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New Testament), eds. John F. Walvoord and Roy B. Zuck (Wheaton: Victor Books, 1983), 109.     

[17] Geisler and Nix, 476.

[18] James Whit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Minneapolis: Bethany, 2009), 71-72.

[19] John Ankerberg and John Weldon의 책에서 인용됨, 19.

[20] 같은 책에서, 20.

[21] Wikipedia, “Gail Riplinger,” 2023. 11. 8. https://en.wikipedia.org/wiki/Gail_Riplinger 

[22] John Ankerberg and John Weldon, 21.

[23] 같은 책에서, 21.

[24] 같은 책에서, 21.

[25] Carson,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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