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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산 믿음인가?
서덕종 집사의 안식일 분석 29
2023년 11월 07일 (화) 10:36:17 서덕종 집사 webmaster@amennews.com

서덕종 집사/ 이단연구가(안식일 분석 전문). 이태원대성교회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 서덕종 집사

안식일 주의자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 죽은 것이라”면서 산 믿음을 강조한다. 그들이 말하는 산 믿음이란, 안식일과 십계명이다.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은 안식일 지키지 않았다. 안식일 주의자들의 기준으로 볼 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1). 고 한다. 아브라함은 안식일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아들을 번제로 바쳐야 의롭다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행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혼란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루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고 한다.

번제란, 흠 없는 숫소나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여 죽인 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단 위에 올리고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벌려 놓고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이다(레 1:3~9 요약).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이삭을 바치라고 한다. 이러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거부할 만한 명분이 있었다. 이삭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라 곤란하다고 말하거나, 별처럼 많은 “자손”(창 15:5)을 약속받아서 죽으면 안 된다고 거부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결혼시켜서 아들 낳은 후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창 22:3)으로 간다. 모리아 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예배하고 돌아오겠다고 한다(창 22:5). 원래 아이는 죽고 나 혼자 돌아오겠다고 말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칠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서 아이와 함께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몇 걸음 가는데 이삭이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느냐”(창 22:6)고 물었다. 이때에 번제할 제물은 바로 너 이삭이란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상식인데 너무나 엉뚱하게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창 22:8)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 것으로 믿고 대답한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창 22:9) 담대하게 칼을 들었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창 22:12)고 하신다. 아브라함은 칼을 들었던 손을 내리면서 눈은 주변을 살핀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 어린 양을 찾았던 것이다. 실제로 어린 숫양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잡아서 번제로 드린다(창 22:13). 이것이 아브라함이 의롭다함 받은 믿음이요(히 11:17). 또 행함(약 2:21)이다.

아브라함은 안식일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롭다함 받았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 받은 사실을 기록한 책은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인데 그러나 해석은 반대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았다(히 11:17). 하고, 야고보서에는 행함으로 의롭다함 받았다.(약 2:21). 고 한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 받은 것은 믿음일까 행함일까?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서로 충돌하는 것일까? 아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믿음과 행함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다. 믿음이 행함이 함께 일하며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히브리서에 분명하게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의)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

야고보서에는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약 2:23)다.

로마서에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롬 4:18)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은이는 아브라함이 부러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천사와 대화하며 응답을 들을 수 있어서 부러웠다. 그러나 다음의 본문을 보고 위로가 되었다.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 4:23,24).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우리도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다함 받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어야 의롭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죽은 목숨이었다. 그 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 이 기간이 삼일이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히 11:19). 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은 것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게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의롭게 된다.

 

간첩을 숨겨 준 것이 행함이라고?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17, 26).
 

   
@ pixabay.com

위의 내용은 안식일 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을 미혹하는데 즐겨 사용하는 본문이다. 야고보서 2장은 행함장인데 아브라함과 라합이 나온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로 비교된다. 아브라함은 남자이고 라합은 여자다. 아브라함은 기혼자이고 라합은 미혼이다. 아브라함은 할례 자의 조상이지만 라합은 할례 없는 백성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선민이지만 라합은 여리고 사람으로 이방인이다. 두 사람은 모두 안식일과 십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 두 사람이 모두 의롭다함 받았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 받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라합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개처럼 여기는 이방 여인이다. 직업은 기생으로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다. 그녀가 입술은 왕을 능멸하며 속이고, 왕이 보낸 신하들에게 거짓말로 따돌리는 혀를 가지고 있다. 자기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간첩을 숨기면서 나라를 반역한 매국노다. 이러한 라합은 안식일 주의자들의 기준으로 볼 때 행함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할 대역죄인이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나 엉뚱한 얘기를 한다.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 고 한다. 라합이 의롭다함 받았다. 그것도 행함으로 말이다. 그녀의 행함이란, 율법이나 안식일이 아니다. 사자들을 접대하고 다른 길로 나가게 한 것이다. 십계명에 사자들을 접대하라는 내용이 없다. 율법에 다른 길로 나가게 하라는 구절이 없다. 그러나 라합은 사자들을 접대하는 행함으로 의롭다함 받았다.
 

당시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자. 모세가 보낸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 왔다. 라합이 정탐꾼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수 2:9). 라고 말한다. 여리고가 망할 차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라합과 여리고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스르르 녹아내릴 정도로 심한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을 두렵게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0,11).
 

당시 세계 최강인 애굽에게 열 가지의 재앙으로 초토화시켰다는 것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다는 소식은 떠억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또 아모리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쳐서 죽이고 그 백성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는 얘기는 여리고 사람들의 다리에 힘이 풀리기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점점 여리고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에는 나라별로 섬기는 신이 달랐다. 각 나라가 싸울 때 각각의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뤘다. 라합도 여리고의 신을 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기로 결단한다. 실제로 그녀는 여호와가 하늘에서나 땅에서 하나님이라고 칭송하는 고백을 한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수 2:12)고 요구한다.
 

여호와로 내 아버지의 집을 살려낸다고 맹세하고 증표를 내라고 요구한다. 라합은 정탐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직 여호와만 믿었다. 그후 붉은 줄을 달아 내린다. 이 줄은 여호와로 맹세된 줄이다.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는 줄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식구들을 집으로 부른다. 이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총칼을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조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식구들을 설득하여 자기 집으로 불러 모은다. 이것이 라합의 믿음이요 또 행함이다. 먼저 여호와로 맹세한 말씀을 믿었다. 그 믿음을 근거로 붉은 줄을 달아 내리고 식구들을 불러 모으는 행함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라합에 대해서 믿음 장인 히브리서 11장과 행함 장인 야고보서 2장과 예수님의 족보(마 1:5)에 기록시키셨다. 라합은 자기 민족에게도 손가락질받는 여인이다. 혈통이나 가문이나 직업이나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한 여인이다. 더구나 십계명도 모르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여호와를 믿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믿었다. 정탐꾼을 숨긴 것이 발각되면 그녀의 부모는 물론 먼 친척까지 몰살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죽을 것을 알면서 여호와만을 믿기로 결단하고 개종한 것이다.
 

여기에서 잠깐,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치고 있을 때 라합의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면 그 도둑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 도둑은 남의 것을 훔치는 죄를 범하려고 들어 왔다. 안식일이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았을 것이다. 라합의 집을 구원한다는 여호와로 맹세가 되어 있다. 라합은 붉은 줄을 내리는 수고라도 했지만 도둑은 그러한 수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살았을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요 또 선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원 얻으려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 언약이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이 말씀에 더욱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포함한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9). 
 

   
  서덕종 집사는 이단연구가이자 안식일 분석 전문가다. 그는 최근 <안식일을 버려라>(서덕종, 한사랑가족상담연구소, 2023)를 출간했다. 안식일주의자들과 직간접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발견된 그들의 비성경적인 내용은 물론,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 원고 시리즈는 서 집사의 책 내용을 요약 간추린 것이다(상담 전화 010-7706-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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