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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않는 ‘하나님의 도구’ 였다
운보 김기창 - 작품세계와 신앙
2003년 06월 25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 <예수의 일대기> 시리즈 중 <아기 예수 탄생> 1953.
<바보산수>의 화가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은 기독교 미술가였는가? 그가 생을 마치던 2001년, 그는 천주교 신자였고, 장례식 또한 천주교식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그의 생활과 작품은 여전히 기독교적인 틀을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운보는 어려서부터 줄곧 개신교 신자였다. 8살때 청각을 잃은 운보를 극진하게 보살핀 어머니 한윤명 씨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다. 또 어머니 한 씨가 아들의 미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화가로 키워줄 것을 부탁한 운보의 스승 이당 김은호 선생 또한 장로교 신자였다. 따라서 운보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개신교 신앙을 가지게 됐다.

운보의 신앙은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바보산수>와 <청록산수> 등의 작품과 더불어 운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바로 6·25 동란 때 그린 성화 <예수의 일대기> 시리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운보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한국,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다. 운보는 당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우리민족의 현실이 예수님의 생애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때 이 그림에 나타난 예수님의 한국적인 형상을 일부 개신교단이 문제 삼기도 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운보갤러리 관장인 이환영 집사(잠실교회·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사무국장)는 <예수의 일대기>를 “운보다운 자연스러운 표현”이라며 “한국적인 미를 중요시 한 운보는 한국인이 한국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이처럼 생활과 작품에서 기독교 색채를 드러내던 운보는 그가 72세 되던 1985년에 돌연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운보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의 가톨릭으로의 개종이유에 대해서는 딸이 수녀가 됨으로 인해 딸과의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였다는 의견과, 성품이 어린아이처럼 천진해서 천주교의 세례명을 받고 싶어서였다는 의견도 있다. 또 개신교의 환경에서는 미술활동이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교적 미술의 비중을 높이사는 천주교를 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청산도> 1970.
그러나 운보의 개종에 대해 많은 미술인들은 그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영세를 받았으나 기독교를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운보미술관 김형태 학예실장은 “생전에 운보 선생님도 개종이유에 대해 명확하지 않게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말씀하셨다”며 “운보 선생님은 개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환영 집사 역시 “운보 선생은 교리적 갈등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다”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었을 뿐, 종교의 형식면에서는 예술가 본연의 모습처럼 어느정도 자유로웠던 것 같다”고 했다.

운보가 개신교와 천주교의 사이에서 교리적인 갈등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운보의 개종이후의 삶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운보는 개종이후 성당을 다니면서도 가끔 교회에 나갔다고 한다. 또 자신이 살던 형동리에 형동교회를 건축하게 했고, 집 앞에 있는 논에서 나는 수확은 전부 형동교회 목회자의 생활비로 헌금하는 등 교회에 대한 지원을 활발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운보 선생이 좀더 활발한 활동으로 더 많은 성화를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 개신교의 풍토가 미술활동을 지원하지 못해서라는 지적도 있다. 진흥아트홀 유명애 관장은 “개신교에서는 화가나 예술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기 힘들다”며 “신앙의 실천적인 측면에서 늘 죄책감에 시달리게 돼 예술가 특유의 자유로움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이환영 운보갤러리 관장 역시 “미술을 우상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올바르지 않다”며 “그림이나 조형이 말씀이해의 도구임을 이해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무엇을 찬양하기 위해서 창작했는가를 보아야 한다”며 예술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운보가 남긴 <청록산수>나 <바보산수>의 작품 또한 창조질서를 그린 성화의 일종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장은 “하나님이 운보에게서 청력은 가져갔지만 대신 천재적인 능력을 주셨다”며 운보가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강조했다.

운보의 집
한옥·정자·연못·나무… 자연 벗삼아 맘껏 창작

   
   ▲ 운보의 집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는 ‘운보의 집’이 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말년을 보냈던 전통 한옥과 운보미술관, 운보공방, 아트샵, 야외수석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에서 자동차로 초정리약수 방면으로 10여 분 달리면 ‘운보의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운보의 집’에서 가장 두드러진 공간은 미술관이 아닌 운보가 살았던 한옥이다. 이 건물은 운보의 아내인 우향 박래현과 사별한 후 만들기 시작해서 1984년 완공된 전통가옥으로 전통가옥 자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연못이 있는 정원과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연못가에 있는 정자와 주변의 수많은 꽃나무들은 운보가 말년에 왜 그토록 자연을 표현하는 데에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운보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말년을 보내며 <청록산수>와 <바보산수>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통가옥 뒤편에는 운보 미술관이 있다. 여기서는 운보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정면에는 운보의 동상이 서 있고, 벽면에는 운보가 그림을 그리는 대형 사진이 붙어있다. 이 밖에도 미술관 뒤편에는 연못이 있는 뒤뜰과 넓은 잔디밭, 그리고 나지막한 언덕 위에 운보의 묘가 있다. 전통가옥 앞쪽인 입구 쪽에는 연못과 나무로 꾸며진 정원이 있고, 정문 매표소 쪽에는 운보공방과 아트샵이 위치하고 있다.

‘운보의 집’은 운보의 작품과 함께 그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꾸며져 있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예술가의 삶이 어떤 것이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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