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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우 “로고스는 혼적 믿음, 레마는 영적 믿음”(?)
분석/ 변승우 씨의 비성경적인 ‘레마 사상’ (2)
2023년 10월 20일 (금) 15:48:30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변승우 씨의 비성경적인 레마 사상(1)’이라는 제목으로 변승우 씨의 비성경적인 사상을 취급한 바 있다(클릭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44). 지난 원고에서, 변 씨는 자신의 레마 사상이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변 씨는 그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수정증보판, 거룩한 진주, 2017, p. 109)에서 ‘참 믿음’을 언급하면서 “믿음은 말씀, 로고스가 아니고 계시적인 말씀인 레마를 들음으로써 시작됩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근거의 성경구절로 히4:12-13절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레마 사상’ 주장에 대한 근거로 히브리서 4:12-13절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표현이 ‘레마’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교회 변승우

그런데 그 히4:12-1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의 ‘말씀’은 정작 ‘레마’가 아니라 ‘로고스’로 되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원고에서 헬라어 성경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혹시 헬라어 성경 중 다른 버전을 언급할 수 있어서 여러 버전의 헬라어 성경까지 언급했다. 결국 변 씨의 ‘레마 사상’은 성경적으로 ‘거짓’임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변승우 씨의 비성경적인 레마 사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자.

변 씨의 비성경적인 레마 사상의 핵심은 ‘로고스와 레마가 다르다’고 주장한 데서 시작된다. 지난 원고에서 언급한 변 씨가 자신의 레마 사상의 근거로 히4:12절의 성경구절을 인용한 것을 ‘큰 실수’(?)라고 취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고스와 레마가 다르다’는 그의 사상은 근본적인 비성경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레마 사상’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런데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로고스와 레마가 그것입니다. 로고스는 듣는 자들에게 혼적인 믿음을 주고, 레마는 듣는 자들에게 영적인 믿음을 줍니다. 로고스는 사람의 머리에 이르고 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적인 믿음을 줍니다. 그러나 레마는 성령의 조명과 기름부음이 융합된 설교로 그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영에까지 들어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창출합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 수정증보판>, 거룩한 진주, 2017, pp.242)
 

성경에 ‘말씀’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헬라어 용어에는 두 가지, 즉 ‘로고스와 레마’가 있는데, 이 두 용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변 씨는 주장한다. 로고스와 레마가 도대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로고스혼적인 믿음을 준다. 사람의 머리에 이르고 영에 들어가지 못한다. 단지 지식, 화술, 유머에 의지하여 메마른 설교를 하게 된다.

* 레마영적인 믿음을 준다. 성령의 조명과 기름부음의 융합된 살아 있는 설교를 하게 된다. 영에까지 들어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창출한다.
 

‘로고스’는 ‘혼적인 믿음’을 준다고 하며, 반면에 ‘레마’는 ‘영적인 믿음’을 준다고 구분했다. 혼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차치하고, 변 씨는 분명히 로고스와 레마가 다르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변 씨는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를 설명한다면서 ‘참 믿음’과 ‘구원’이라는 단어까지도 언급했다. 그 구분의 정도가 결코 적지 않다. 로고스와 레마가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로 이해될 수도 있다. 다시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참 믿음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믿음은 말씀, 로고서가 아니고 계시적인 말씀인 레마를 들음으로써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레마는 계시적인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계시가 필요합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 수정증보판>, 거룩한 진주, 2017, p.109)

 

변 씨는 ‘참 믿음’은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를 통해서 시작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 로고스를 통해서는 ‘참 믿음’의 시작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욱이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계시가 필요한데, 이때의 계시는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의 말씀이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결국 구원을 받으려면 ‘로고스’가 아닌 ‘레마’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변승우 씨의 주장은 옳은가?
 

로고스와 레마가 다르다?
 

   
변승우가 출간한 책들

이제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하려는 변 씨의 주장이 옳은지에 대해 성경 본문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다시 언급하지만, 변 씨는 ‘말씀’에 해당되는 헬라어 로고스와 레마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처럼 설명했다. ‘로고스’는 ‘혼적인 믿음’을 준다고 하며, 반면에 ‘레마’는 ‘영적인 믿음’을 준다고 구분했다. 또한 변 씨는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를 ‘참 믿음’과 ‘구원’까지도 언급하며 확실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제 성경 본문을 통해 변 씨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직접 살펴보자. 아래 몇 가지의 성경구절을 제시해 보겠다. 각 구절에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제 변 씨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께서는 어떤 것이 로고스에 해당되고 또 어떤 것이 레마에 해당되는 용어인지 구분해 보기 바란다. 어떤 ‘말씀’이 ‘혼적인 믿음’에 해당되며, 또 어떤 ‘말씀’이라는 단어가 ‘영적인 믿음’에 해당되는 단어인지 구분해 보기를 바란다. 물론 변 씨가 주장한 로고스와 레마의 다른 의미가 옳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22)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위 성경구절에 있는 ‘말씀’이라는 단어 중, 어떤 것이 혼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로고스이며, 또 어떤 것이 영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레마에 해당되는가? 위 성경구절을 읽고 구분을 할 수 있는가? 또한 구분이 가능한가?

헬라어성경을 찾아보면 결과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요1:1절의 세 개의 ‘말씀’은 모두 ‘로고스’다. 두 번째 요2:22절의 말씀도 모두 ‘로고스’다. 세 번째 요8:47절의 말씀은 ‘레마’다.

요1:1절의 말씀은 모두 로고스다. 이 성경구절에 변 씨의 ‘레마 사상’을 덧입혀 읽어보면 황당한 결과가 나온다. 다음과 같다. [태초에 ‘혼적인 믿음’인 말씀이 계셨고, 그 혼적인 믿음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혼적인 믿음으로 표현된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설명이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때의 말씀(요1:1)은 곧 하나님이시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구절이 아닌가? 예수님이 혼적인 믿음, 그 자체이며 또 혼적인 믿음을 준다는 말인가?
 

다른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요17:6-17절까지의 본문이다. 아래와 같다. 이 본문에 ‘말씀’이라는 단어가 4번 나타난다. 같은 방식으로 어떤 것이 로고스이고 또 어떤 것이 레마인지 구분해 보자. 변 씨의 입장에서 읽어보자.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6-17)
 

구분이 되는가? 어떤 것이 로고스이고, 또 어떤 것이 레마인가? 헬라어성경을 통해 보면 8절의 말씀만 ‘레마’이고 나머지는 모두 ‘로고스’다.
 

흥미로운 것은 6절의 ‘아버지의 말씀’은 로고스로 표현되어 있고, 8절의 동일한 ‘아버지의 말씀’은 레마로 기록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변 씨는 이것을 설명할 수 있나? 아, 변 씨 측에서 혹, 8절은 ‘아버지께서 내(예수님)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14절, 17절에도 동일하게 나오는 ‘아버지의 말씀’은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니란 말인가?
 

혹시, 복음서가 아닌 곳을 보아야 한다고 강짜를 부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사도행전을 살펴보자. 행13:5-46절까지의 본문이다. 여기서 ‘말씀’이라는 단어가 모두 6번 나타난다. 이 본문에서도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해 보자. 역시 변 씨의 주장을 전제로 한다. 본문의 길이가 길어 중간에 생략한 부분이 있다.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흩어진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다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13:5-46)
 

어떤 것이 혼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로고스이고 또 어떤 것이 영적인 믿음을 뜻하는 레마에 해당되는 용어인가? 구분이 가능하기는 한가?
 

   
변승우가 주장한 내용

헬라어성경을 확인해 보니, 42절만 ‘레마’이고, 나머지는 모두 ‘로고스’다. 특히, 26절의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에 해당되는 단어 역시 ‘로고스’다. 변 씨의 주장에 의하면 적어도 이 구절은 ‘레마’로 되어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위 성경에서 ‘구원의 말씀’도 ‘로고스’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40절에 사용된 ‘말씀’이라는 단어는 로고스나 레마와 상관없는 ‘말하다’라는 동사로 사용된 예다.

이러한 예들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정리해 보자. 변 씨는 성경에 ‘말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로고서’와 ‘레마’라는 단어라며 두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로고스’는 ‘혼적인 믿음’을 준다고 하며, 반면에 ‘레마’는 ‘영적인 믿음’을 준다고 구분했다. 또한 변 씨는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를 ‘참 믿음’과 ‘구원’까지도 언급하며 확실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옳을까? 성경은 변 씨의 주장처럼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하고 있을까? 성경 본문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는 한 마디로 ‘로고스’와 ‘레마’는 의미상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분한다는 게 무의미하다. 성경 본문을 직접 살펴본 결과, 로고스 자리에 레마가 사용되기도 하고, 반대로 레마의 자리에 로고스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흥미로운 성경구절 하나를 더 제시해 보겠다. 하나의 성경 문장에 로고스와 레마가 동시에 사용된 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10:44)
 

위 성경구절에서 ‘이 말’과 ‘말씀’이라는 단어에 각각 로고스와 레마라는 단어가 사용되어다. 변 씨의 주장대로 한다면, 그럼 어떤 것이 혼적인 믿음을 준다는 로고스이며 또 어떤 것이 영적인 믿음을 준다는 레마에 해당될까? 구분할 수 있는가? ‘이 말’은 베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말씀’은 성령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만나게 된다. 앞의 것(‘이 말’)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레마’이고 뒤의 것(‘말씀’)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로고스’다. 변 씨의 ‘레마 사상’ 주장에 따르면 두 단어가 뒤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즉, 앞의 것이 혼적인 믿음을 가리키는 로고스여야 하고, 뒤의 것이 영적인 믿음을 지칭하는 레마여야 하지 않을까? 성경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변 씨의 ‘레마 사상’이 잘못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와 레마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로고스와 레마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스스로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하고 있지 않은데, 왜 변 씨는 로고스와 레마를 다른 의미라고 구분하는가? 따라서 변승우 씨의 ‘레마 사상’은 성경적이라 할 수 없다.

 

변 씨는 정통?
 

아이러니하게도 변 씨는 자신은 ‘말씀의 사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한다’고도 언급했다. 자신의 은사는 ‘말씀의 은사’라고까지도 주장했다. 변 씨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은 성경을 사랑하며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고 설교하는 은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억만 번을 강조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 기독교> 큰믿음출판사, 2009, p.83)

“제가 성경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오해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합니다. 저의 주 은사는 말씀의 은사이며 어렸을 때부터 성경 말씀을 천천금은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은사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의 사람입니다.”(위의 책, p.91)

 

변 씨는 이단의 정의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이단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을 사용하지만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하여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것입니다.”(위의 책, p.163)
 

그렇다. 변 씨의 주장처럼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왜곡시키면 이단이 된다. 당연하다.

변 씨는 또한 자신의 교회(사랑하는교회, 구 큰믿음교회)는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큰믿음교회는 정통 중의 정통입니다. 왜냐하면 큰믿음교회는 참된 정통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교회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성경에서도, 교회사에서도, 진짜 정통들은 항상 가짜 정통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위의 책, p.219)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성경적임을 강조하고, 말씀의 은사가 있으며,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자를 이단이라고 언급하는 변승우 씨, 그는 정말 ‘정통’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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