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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지점, 하나님 나라 선교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7)
2023년 03월 31일 (금) 15:19:36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마태복음 1:21-25

  마태는 복음서 초두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21)는 천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Ἰησοῦς)라는 이름은 그 어원이 히브리어 ‘예호슈아’(יהושוע)에서 유래한 것이다.1)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2) 예수님은 그 이름의 뜻이 보여주는 그대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분명하다.3) 여기 ‘자기 백성’(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이라는 표현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마태와 그의 독자들은 그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4) 특히 이 구절에서 ‘그’(αὐτὸς)라는 3인칭 대명사가 사용된 것은 강조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자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5)


구원의 메시야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당시 메시야에 관한 유대인들의 대중적인 기대는 대부분 로마제국의 폭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메시야가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속죄 제물로 주는 것에 관해서는 기대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6) 그러나 마태는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기록하였다(21b). 이 구절에서 ‘구원하다’(σῴζω)는 동사의 ‘목적어는 ‘자기 백성’(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이며 구원의 개념에 대해서는 ‘죄로부터’(ἀπὸ τῶν ἁμαρτιῶν) 구원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7) ‘죄로부터의 구원하는 자’라는 메시야의 개념에 대해 프란스(R. France)는 “구약적인 소망과 후기 메시야 대망 사상의 본질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8)

이러한 관점에서 칼빈(J. Calvin)은 21절 말씀에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길과 방법을 배우게 된다”라고 하면서 “그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9)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죄를 해결해 주시고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하였다.10) 그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프란스(R. France)는 21절의 말씀에 대해 경고의 의미로 해석하면서 “메시야가 민족적인 해방자로서 대중적인 소망을 따르는 자로 기대하지 않도록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으며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선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열어주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11)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모든 삶과 사역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의 성취를 위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보라 처녀가12)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다(23).13) 그 앞선 구절에서도 예수님이 처녀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22). 이 구절에는 ‘하기 위하여’(in order that)라는 뜻의 접속사 ‘히나’(ἵνα)가 사용되고 있다. ‘히나’(ἵνα)라는 접속사는 동정녀를 통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마태는 22절에서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선지자 개인의 예언’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리스(L. Morris)는 “오래된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길에 대해 마태는 깊은 관심이 있다”라고 하였다.14) 이러한 차원에서 예수님의 오심과 그의 모든 생애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마태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표현을 그의 복음서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15) 마태가 이런 표현 양식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힐(D. Hill)은 “하나님의 목적이 역사의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16)

마태복음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의 사상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상은 22절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17) 이 구절에서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라는 표현을 마태가 언급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카슨(D. Carson)은 요셉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임을 그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18) 마태는 이런 표현 양식을 그의 복음서에서 11번이나 사용하고 있다.19)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삶과 사역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의
성육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라고 하신
‘임마누엘’의 약속과 함께
마무리되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23절에서 메시야에 대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던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20) ‘임마누엘’(Εμμανουηλ)이라는 칭호는 신약 전체에서 이 구절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른 적은 없다.21) ‘임마누엘’(Εμμανουηλ)은 히브리어 ‘임마누엘’(עמנואל)을 음역한 것이며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은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함께’라는 뜻이 있는 ‘임’(עמ)이라는 단어와 또 ‘하나님’을 뜻하는 ‘엘’(אל)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23).

그러나 ‘임마누엘’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스(R. France)는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실제 명칭이 아니고 하나님의 현존을 인간에게 가져오는 그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22) 이런 관점에서 마운스(R. Mounce)는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현존 그 자체라”고 언급하는 것이다.23) 따라서 ‘임마누엘’이라는 호칭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신 성육신의 호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4)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현존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이상 그림자가 아니고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나타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5) 이러한 차원에서 모리스(L. Morris)는 ‘임마누엘’이라는 호칭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있는 곳에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26) 바로 이러한 사실이 기독교와 일반 종교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종교에서는 사람들이 믿는 신은 대부분 인간을 초월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마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해 계시면서도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이 세상에 찾아오시는 분이다. 그러기에 건드리(R. Gundry)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단지 정적인 나타남이 아니라 구원의 사역을 행하시며 함께 하신다”라고 하였다(23).27)

마태복음에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세상과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죄인들을 찾아주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며 삶을 나누시고 그들의 고통을 체휼하신 바로 그 ‘성육신’의 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28)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이 시작하셨고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선교를 위임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므로 완성될 것이다. 그러기에 마태는 1장에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으며(23), 마지막 28장에서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라고 하신(28:20b) 임마누엘의 약속과 함께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운스(R. Mounce)는 “마태복음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끝나는 것은 적절하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29)

 

주(註)

1) cf. 행 7:45, 히 4:8.
2) ‘예호슈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는 ‘야웨’(יהו)라는 단어와 ‘구원하다’는 의미의 ‘야샤’(ישע)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만일 ‘예수’(Ἰησοῦς)라는 이름이 조금 긴 형태의 ‘예호슈아’(יהושוע)에서 유래하였다면 그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고(출 24:13), 짧은 형태인 ‘예슈아’(ישוע)에서 왔다면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느 7:7). cf. D. A. Carson, op. cit., 76.
3) cf. 시 130:8.
4) Donald A. Hagner, op. cit., 19-20.
5) Donald A. Hagner op[. cit., 19.
6) D. A. Carson, op. cit., 76.
7) cf. 시 130:8.
8) R. T. France, op. cit., 78. cf. 사 53장, 렘 31:31-34, 겔 36:24-31.
9) John Calvin, Calvin's New Testament Commentaries, A Harmony of the Gospels, Matthew, Mark, and Luke, Vol. I, trans by A. W. Morrison, (Grand Rapids: Eerdmans), 1972, 65.
10) 요 1:29.
11) R. T. France, op. cit., 78.
12) 여기 ‘처녀’라는 단어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는 마태가 이사야 7:14에 나타나는 ‘알마’(אלמה)라는 단어를 70인경에서 번역한 것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구약에서 ‘알마’라는 단어의 의미는 ‘처녀성’(virginity)을 가진 ‘젊은 처녀’를 뜻하고 있다(cf. Robert H. Gundry, op. cit., 24-25). 
13) 사 7:14.
14) Leon Morris, op. cit., 30.
15) Robert H. Mounce, op. cit., 10. 
16) David Hill, op. cit., 79.
17) Robert H. Gundry, op. cit., 24. 
18) D. A. Carson, op. cit., 76.
19)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는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는 표현 양식은 마태복음에 모두 11번 나오고 있다. 건드리(R. Gundry)는 마태가 이사야 7:14의 말씀을 이 곳에 인용한 것은 "11번 나타나는 마태복음의 특징인 '성취의 인용'(fulfillment quotations)의 첫 번째라고 하였다"(Robert H. Gundry, op. cit., 24). cf. 1:22-23, 2:15, 17-18, 23, 4:14-16, 8:17, 12:17-21, 13:14-15, 35, 21:4-5, 27:9-10).
20) ‘임마누엘’(Εμμανουηλ)이라는 칭호는 이사야서의 예언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사 7:14).
21) Leon Morris, op. cit., 31.
22) R. T. France, op. cit., 79.
23) Robert H. Mounce, op. cit., 10.
24) 요 1:14.
25) John Calvin, vol. 1, op. cit., 69.
26) Leon Morris, op. cit., 31.
27) Robert H. Gundry, op. cit., 24.
28) 11:19, 막 2:14-17, 히 4:15, 
29) Robert H. Mounce, op. ci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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