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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2022년 10월 06일 (목) 13:10:44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아르메니아 대학살 107주년에 되새기는 기독교의 사랑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악다마르(Akdamar): 오! 타마라!

 반 호수(Lake Van)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라면 악다마르(Akdamar)이다. 아르메니아어로 ‘오! 다마라’라는 뜻이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이후 고대로부터 아르메니아 땅이었던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악다마르’의 유래와 관계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아르메니아 왕실에서 반 호수에 있던 이 섬에 궁궐과 필요한 건물들을 짓고 주거지로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섬이기 때문에 풍광도 좋고 외세의 침략에 용이하게 방어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 당시 왕실의 한 공주가 평민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이 촌노는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어 이 공주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밤이 되면 공주가 밝혀주는 불빛을 보고 이 섬으로 헤엄을 쳐서 건너오곤 하였다는 것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공주가 은밀하게 촌부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아챈 왕이 헤엄치는 촌부에게 섬의 방향을 알려주던 횃불을 끄도록 지시하여 익사하게 만들었다.

그 촌부의 입에서 연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오 타마라’(Oh, Tamara)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악다마르 섬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가 악다마르 섬은 예나 지금이나 연인들의 명소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흠모하는 연인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로 몰려들 듯이 말이다.

   
▲ 이 아름다운 사진만 보아도 고대로부터 아르메니아 왕실과 백성들이 악다마르 섬을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르메니아 왕실의 한 공주와 한 촌부가 나누었던  애절한 사랑이야기만큼이나 고난과 역경을 통해 정금과 같이 빚어진 기독교의 사랑에 대하여 되새기게 해 주는 곳이 악다마르 섬과 교회다.


사랑의 시련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 왔던 악다마르 섬도 역사의 격랑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본격화되면서 이 악다마르 섬에 거주하던 모든 아르메니아 성직자들과 여타의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다. 오토만 투르크 제국의 조직적인 학살의 와중에서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정진하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빗발치는 총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학살자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사랑의 섬인 악다마르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사랑과 용서를 외치며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다. 필자가 바돌로매 순교 기념 교회 및 수도원을 다루면서 언급했던 작은 십자가들이 악다마르 교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다. 물론 바돌로매 교회의 십자가들보다는 숫자적으로 적었지만 말이다. 그만큼 악다마르 교회가 겪었던 시련도 만만치 않아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돌 위에 새겨 넣으며 그들의 간절함을 표현하였다.

   
 반 호수는 소금호수인데다 고생대의 괴생물체가 산다는 소문까지 무성하여 아름답지만 공포심마저 드는 곳이다. 아나톨리아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심도 깊어서 한밤중에 수영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공주를 사랑한 한 촌부는 목숨을 걸고 사랑을 키우다가 결국은 이 호수에 빠져 최후를 맞았다. 반 호수가 사랑으로 채워지고 넘실대는 명소가 되었던 이유다. 아울러 수많은 아르메니아 순교자들의 피를 머금은 호수이기도  하다

악다마르 교회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거치면서 인명 살상과 함께 아르메니아의 정신을 담고 있는 기독교 건축물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아르메니아 문화 대학살’이라고 지칭해 오고 있다. 이런 반문화적 행위들은 역으로 보자면 당시 학살자들이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정신을 얼마나 무서워하고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악다마르 교회는 군대의 사격장으로 사용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어 갔다. 궁극적으로 악다마르 교회에 대한 완전 파괴 명령이 떨어졌고 여타의 교회당들과 마찬가지로 폐허로 변할 긴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때 문화를 존중하고 아끼는 일단의 지도자들이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압박하여 파괴가 진행되고 있던 악다마르 교회를 보존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미 파괴가 진행되고 있었고 사격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깊게 패인 부분들을 복구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였다.

   
▲ 악다마르 섬과 교회가 상당부분 재건되고 정비되었지만 섬의 여기저기에 아르메니아 문화 대학살을 당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십자가 없는 사랑과 타락한 이슬람

필자가 누누이 언급한 대로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은 아직도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정기가 살아 숨 쉬는 거룩한 성지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계기로 씨줄과 날줄처럼 뒤엉켜 버린 민족 간 갈등으로 인하여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아직도 서로의 국경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샌드위치처럼 끼인 쿠르드족까지 합세하여 이 지역의 형세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같다.

   
▲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곧 이어 진행되었던 아르메니아 문화 대학살을 견디어 낸 돌덩이들이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이 사격장으로 쓰였었기 때문에 아직도 총탄의 흔적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아울러 돌 위에 십자가를 새겨 놓으며 십자가의 사랑을 외쳤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튀르키예가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파괴된 기독교 유적들을 복원하려는 시늉을 할 때마다 깊게 배인 양측의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곤 한다. 일례로 튀르키예가 철저하게 파괴를 진행했던 악다마르 교회를 재건하면서 교회당이 아닌 박물관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푹풍우가 몰아치듯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튀르키예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까지 나서서 악다마르 교회의 재건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교회당 건물 꼭대기에 세워질 십자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극렬하게 저항하였다.

이렇듯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교회당이 재건되고 십자가가 세워졌지만 그 어떤 예배도 정기적으로 드릴 수 없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아르메니아식 예배가 허용되는 것 정도다. 그럼 왜 이슬람인 튀르키예가 악다마르 교회의 재건과 십자가 설치를 허용했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첫째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의 영토로 삼은 점령자들의 아량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둘째로 튀르키예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환심을 사고 실제로 아르메니아와의 국교 정상화도 기대했을 법하다. 셋째로, 아니 가장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고려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다마르 교회와 섬 전체의 재정비는 곧 수 많은 관광객들의 유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악다마르 교회에는 아라랏산을 얹어 놓은 교회당을 주님께 봉헌하고 받들어 섬기는 한 왕의 모습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이었던 애니에서 발견된 가직 1세의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동상 외에, 교회당에 새겨진 이런류의 조각은 이 교회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배를 타고 악다마르 섬을 거의 다 방문한다. 필자가 악다마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오갈 때도 수많은 방문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다마르 섬을 찾는 절대다수가 이슬람 신앙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반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는 이란에서 엄청난 숫자의 방문객들이 대형 버스에 나눠타고 단체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이란인들은 악타마르 섬으로 가는 배 안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고 선상 가무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가 아는 대로 이란이 매우 엄격한 이슬람 국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이 선 듯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는 필자의 뇌리에 ‘타락한 기독교’와 ‘타락한 이슬람’이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악다마르 섬과 교회를 ‘보고’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지 그 의미를 되새기며 ‘기억’하기 위해 가지 않는다.
 

두 종류의 조각들: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제왕,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 아르메니아 교회당 건물에서 자주 목격되는  다윗과 골리앗 조각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들의 도전을 온몸으로 막아서야 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의 현실을 다윗이 기적적으로 골리앗을 이긴 성경이야기에 빗대어 승화시켰다

초대교회 당시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이후 아르메니아를 강하게 만들고 외세의 침략을 비롯한 국난을 극복하게 만든 원동력은 기독교 신앙에서 나왔다. 그런 견지에서 아르메니아 제왕들은 영산인 아라랏산을 얹어놓은 교회당을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 헌당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이었던 애니(Ani)에서는 가직 1세가 교회당을 받들어 섬기는 모습의 조각품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악다마르 교회당 건물에도 한 제왕이 교회당을 받들어 헌당하고 섬기는 모습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만큼 사회의 지도층들이 솔선수범하여 교회를 섬기고 받들었다는 말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런 류의 조각이 새겨진 교회당 건물은 악다마르 교회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동부 아나톨리아에 산재한 수많은 교회당들 가운데 이런 식의 조각이 혹시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워낙 철저하게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현존하는 폐허 속에서도 필자는 본 적이 없다.

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가히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아르메니아인들이 교회당 건물에 자주 새겨넣었던 조각이 다윗과 골리앗이다. 악다마르 교회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 필자는 조금이라도 흔적이 남아있는 교회당 잔재들에서 이와 비슷한 조각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필자는 가만히 묵상하며 생각해 보았다. 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수많은 성경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예배당 건물에 새겨놓으려고 했을까?

   
▲ 이슬람 국가나 마찬가지인 튀르키예에서 악다마르 교회당 위에 십자가 하나를 얹어 놓는 일도 세계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어렵게 세워진 십자가인만큼 이곳을 찾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생명의 사랑을 일깨워 주기를 소원할 뿐이다

그 이유는 파란만장한 아르메니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항상 주변의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새우등 터지 듯 살아왔던 역사 속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다윗으로 생각하며 골리앗을 넉넉히 이기는 하나님의 전쟁을 사모하고 염원하였던 것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성경의 말씀처럼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신념 속에 살았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무슬림 방문자들이 음주가무를 즐기며 악다마르 교회를 보기 위해 수도 없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보다는 교회가 그들의 오락의 대상이요 조롱거리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그래도 이슬람 신봉자들이 악다마르 교회당 안으로 들어갈 때는 최대한 기독교식 예의를 차리려고 하는 매너에 위안을 받으면서 그들 속에서 진정한 십자가의 사랑이 꽃피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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