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환  목사 /  컴 미션 대표

미국 여권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디서나 어깨에 힘을 주고 공항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작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어느 나라를 가든지 비자를 받아야 했고 심한 통제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 비자 때문에 대사관에서 늘 수모(?)를 겪곤 했지만 미국 여권은 비자가 필요 없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국경을 무사 통과했다.

80년대 초, 영국 공항은 우리의 입국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 일일이 세어보기도 했다. 당시 초록색 여권이 정말 초라하게 보였다. 아프리카의 공항직원들이 코리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곤 했다. 얼마 전만해도 아프리카에서 현대 포니를 봐도 그렇게 반가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코리아를 모르는 사람은 달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물건과 올림픽 그리고 월드컵이 세상을 뒤 바꾸어 놓았다.

그 당시 아프리카행 비행기에는 항상 유럽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키 작고, 코 작고, 눈이 작은 동양인은 우리 가족 밖에 없을 때가 많았다. 서양 사람들 판인 서구 단체 속에서 동양인은 늘 기죽어서 일해야 했다.

1984년, 내가 일하던 감비아 땅에는 우리 식구 밖에 한국인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54개의 아프리카 국가 중에 한국인이 없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는다. 이제는 한국 여권을 가지고 못 들어가는 나라가 하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인의 여권은 달라졌다. 미국은 9·11사태 이후에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을 놓고 많은 나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여권을 가지고 중동국가들 속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아프카니스탄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미국이나 서구 사람들의 여권이 엄청난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 동안 서구 선교가 담당하고 있는 엄청난 분량의 선교를 이제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일을 대신 감당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도, 노하우도 아직 없다.

선교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아직도 여물지 않은 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는 서양의 선교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우리 몫이 되어야만 할 부분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열려져 가는 선교의 문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