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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의 여호와의증인 비판1: 자가당착식 삼위일체관
1995년 07월 01일 (토)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이즈음 교계에는 한국교회의 이단문제를 염려하는 소리가 분명 높아져 가고 있다. 이단 문제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를 미혹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등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그보다 국 내외를 막론하고 선교의 큰 장애물이 되었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이단에 대한 적극적 대안이 없다는 점이 한 사람의 목회자로, 더욱이 이단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 아쉽기만 하다.

 이단이란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말한다. 비교적 이단은 윤리적 타락을 수반하는 것이 상례이나 혹 윤리적으로는 선하다고 하더라도 교리적으로 잘못될 때 분명 이단이다.

  그런 점에서 이단이 보는 성경에 대한 자세는 좁게는 두 개, 넓게는 세 개라고 본다. 좁게 보면 첫째는 성경계시 외에 자기계시를 가진 이단이요, 둘째는 성경계시만을 인정하는 이단이다. 넓게 보면 성경계시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을 둘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하나는 실질적으로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으나 표면적으로 성경계시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과 다른 하나는 오직 성경 해석적 입장만 달리할 뿐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다.

 그러나 통계상으로나 경험상으로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 더 무서운 이단으로 밝혀졌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다름 아닌 여호와의증인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일반인이라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단이다. 어제 오늘 생긴 이단이 아니기 때문이요, 또한 수혈 거부, 집총 거부, 국기 배례 거부 등의 사건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기성교인들이 여호와의증인들에 대해 마음 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들의 성경 연구가 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여호와의증인의 성경 연구나 교리체계가 깊어서라기보다 그들의 성경연구가 지협적이요, 편파적인 면에서 깊어 보이기 때문이며 기성교인들이 그들의 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여호와의증인을 비판하는 것은 저들의 성경 연구가 얼마나 지협적이요, 또 얼마나 형편없는 것이지 알게 하고 나아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한편 성경 연구의 필요까지 느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보는 것이다.

  이단들은 자기들의 활동 근거지를 만들어 그곳으로부터 집중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상례이다. 통일교의 구리시 일대와 충청도를 중심한 활동과, 구원파(특히 박옥수파)의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등 경상도를 중심한 활동과, 또한 안식교의 태릉 일대와 남양주시 일대의 집단 거주 및 활동이 그러하다.

 그런데 특히 여호와의증인들은 집단으로 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들의 반 사회적인 삶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여호와의증인이 어떤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지역은 쉽게 여호와의증인에 잠식되어 가는 것이다. 특히 왕국 회관이 있는 지역이나 대회회관이 있는 지역은 교회들이 연합전선을 펴서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증인이란

  여호와의증인이란 수혈거부, 군입대 거부, 집총 거부, 국기경례 거부, 학업거부 등등의 사건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반사회적이요, 반국가적인 단체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들어 보셨습니까?"라는 소리로 우리 문전을 노크하는 불청객으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의증인'이란 1931년부터 교주인 촬스 테이지 럿셀(Charles Taze Russell)이 최초로 사용한 명칭인데, 이 명칭에 대한 성경적 증거를 이사야 43장 10절의 "나의 증인"이란 말에서 찾고 있다. 이 집단의 현상학적 문제점도 많고 심각하지만 이 곳에서는 교리적인 면만 생각하기로 하겠다. 이들의 반성경적 교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관에서부터 시작하여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으나 우선 신론 중에서 삼위일체 문제만 취급하겠다.


 여호와 증인의 삼위일체론에 성경적 변증과 반박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삼위일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교리란 신앙의 실질적인 문제가 아니며 오직 이론적인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신앙에 있어서 삼위일체를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철학자 칸트마저도 삼위일체론은 실천적 의미가 없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모든 교리가 다 중요하지만 삼위일체교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며 또한 신앙의 실제도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증인의 삼위일체에 대한 반박론 네 가지를 하나씩 열거하면서 왜 그들이 이단인가 하는 점을 밝히고 또한 바른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도록 하자.

  첫째,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

  물론 성경에 삼위일체란 말이 없다. 초대교회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an)이 삼위일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러나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어도 삼위일체 교리를 철학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변증한 사람은 그보다 앞선 아데나고라스(Athenagoras)라는 교부였다.

  문제는 성경에 삼위일체란 말이 없는데 왜 삼위일체란 말을 쓰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성경에 삼위일체란 말이 없는데 삼위일체란 말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여호와의증인의 잘못은 무엇인가?

  성경에 없는 말을 쓰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성경에 없는 사상을 교리화할 때 잘못인 것이다. 성경에 그 단어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상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혹 성경 속에 있는 단어를 사용할지라도 성경의 사상과 다른 의미에서 사용한다면 그것이 더 큰 잘못인 것이다. 성경에는 삼위일체 사상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란 말이 없지만 삼위일체란 말을 쓰는 것이다. 만일 성경 속의 삼위일체 사상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다른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여호와의증인의 자가당착적 주장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사실 그들이 자신들을 '여호와의증인'이라고 하는데 성경 어디에도 '여호와의증인'이라는 바로 그 단어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저들은 이사야 43장 10절에 나오는 "나의 증인"이란 말씀을 여호와의증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자적으로는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여호와란 말의 히브리어도 너무나 오랫동안 읽지 않아서 '여호와'인지 '야훼'인지 '이흐후'인지 아직 정확히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란 말이 성경에 없다고 하여 이 말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자가당착적인 말인 것이다.

  하나 더 실례를 들어 보자. 사실 그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통치체'라 부르는데 성경 어디에도 통치체란 말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성경에 삼위일체 사상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비록 성경에는 삼위일체란 말이 없지만 삼위일체 사상은 충만한 것이다. 그래서 삼위일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삼위일체란 숫자적으로 모순된다.

  여호와의증인은 삼위일체 교리를 사탄의 것이라 하며 기성교회는 이 사탄의 교리를 추종하는 바벨론의 일부라고 정죄한다. 그런데 이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우리의 삼위일체 교리를 이들은 일신론으로 이해하여 공격할 때가 있고 또는 삼신론으로 이해하고 공격할 때가 있다.

  예컨대 일신론 중에 대표적인 양태론(Modalism)을 삼위일체론으로 이해하여 성도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즉 삼위일체에 의하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곧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한 것이 아니냐고 공격하는 것이 상례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경험한바에 의하면 이 질문은 여화와의 증인들이 정통 교회 교인을 공격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주제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정통 교회가 주장하는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라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사벨리우스가 주장한 양태론적 삼위일체 교리 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일신론이나 삼신론 어느 한쪽이 더욱 합리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나 성서가 가르치는 것은 삼위일체론인 것이다.

  여호와의증인의 공격법은 1로 3을 공격하고 3으로 1을 공격한다. 여기에 대한 간단한 변증적 답을 제시해 보자.

  삼위일체는 신비로운 교리임에 틀림이 없다. 칼빈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므로 설명을 못하나 믿을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하였다. 예수님의 양성문제의 신비를 보면 삼위의 신비를 함께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은 결코 반쪽잡이 신이거나 반쪽잡이 인간이 아니다. 분명히 한 인격 속에 온전하신 신이요, 또한 온전하신 인간이다.

 그런데도 분명 두 인격이 아니다. 한 인격 속에 두 성품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계신 것이다. 그렇다고 두 성품이 혼합되지도 않고 분리되지도 않고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하나님의 삼위일체론 또한 세 하나님이 1\3쪽잡이 신도 아니요, 온전하신 신으로 삼위요 그러나 일체인 것이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신비로운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예수님은 피조물로서 전능하신 분이 아니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에게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고 예수님 하나님에는 대능자 하나님이라 한다. 이에 대해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 성구 하나가 있다. 이것을 중심해서 변증해 보자.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다. 분명히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니(14절) 말씀은 예수님이요, 그 말씀 곧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은 전능자(God)라 하였고 아들 하나님은 대능자(a god)라고 번역했다(신세계역). 그들의 설명인 즉 첫번째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헬라어에 정관사가 있고 두번째 아들 하나님에는 정관사가 없다는 것이다. 왜 같은 하나님이면 예수님 하나님에는 정관사가 없느냐고 하여 헬라어 원문까지 들고 나오는 것이 헬라어를 모르는 여호와의증인들에게까지 익혀진 수법이었다.

  반증하여 보자. 과연 헬라어 정관사가 있으면 전능자 하나님이시요, 없으면 대능자 하나님인가? 아니다. 그들의 말대로 하면 요한복음 3장 2절의 니고데모가 말한 하나님은 분명 그들 말로 전능자 하나님이어야 할터인데 정관사가 없는 것이다(요 1:6,12,13 등에서도). 왜일까? 그런가 하면 반면에 요한복음 3장 3절의 하나님은 그들 말로 전능자 하나님이요, 위의 3장 2절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인데, 여기에는 또 정관사가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증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관사가 있으면 전능자요, 없으면 대능자란 공식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결정적인 반증이 있다. 예수님에게는 정관사가 없느냐하는 점이다. 예수님 하나님에 정관사가 없다면 여호와의증인의 말이 맞을 것이요, 있다면 저들은 사탄의 자녀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대로 대능자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한 신약의 성구가 약 7개 정도 되는데 요한복음 1장을 재외하고는 한결같이 모두 정관사가 있다는 점이다(히 1:8, 요 20:28, 딛 2:13, 요일 5:20, 행 20:28, 롬 9:5).

 필자는 지금까지 이 점을 알고 있는 여호와의증인을 만난 일이 없고 또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여호와의증인을 요단강 이 편에서 찾아본 일이 없다. 아버지 하나님에게 정관사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보다 예수님 하나님에게 대부분 정관사가 있다는 사실은 여호와의증인에게는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요 또한 저들이 성경을 얼마나 부분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단적인 실예이다.

  예수님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시 9:6), 창조주요(골 1:12-17), 처음과 나중이요(계 1:17, 2:8, 21:6, 22:13), 심판자요(딤후 4:1, 고후 5:10), 섭리자이시다(마 9:2-7). 아버지 하나님과 인격은 다르나 동일한 본질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들은 이사야 9장 6절에서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이는 전능자 하나님께 사용하는 "샤다이"란 단어가 아니라 대능자를 가리키는 "기보르"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 말에 의하면 다음의 성구에서 보면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보르"를 사용했으니(렘 33:18, 느 9:32, 사 10:20-21, 신 19:7) 아버지 하나님도 대능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호와의증인은 성경에 삼위일체란 말이 없는데 삼위일체란 말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자신들을 '여호와의증인'이라고 하는데 성경 어디에도 '여호와의증인'이라는 바로 그 단어는 없다는 점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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