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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사순절에 생각한다
장경애 사모 컬럼
2022년 03월 25일 (금) 11:02:07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사순절 절기가 되면 인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인간을 향하신 가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 많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다함 없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정반대되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 떠오른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오고 오는 세대에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맨 밑에 있는 가룟 유다의 죄목은 ‘배신’이었다.

그래서 금 번 사순절에는 이 배신 혹은 배반에 대해 더 생각하고 새기고 싶다. 배신과 배반을 굳이 비교하자면 배신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배반은 신의를 저버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 모두 신의와 믿음에 대한 긍정적인 단어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스승인 예수님에 대해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고 돌아서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행위로 배반과 배신을 실천했다.

배신행위의 근원적인 원인은 생존본능이라고 한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기와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아무리 큰 은혜를 입었어도 배은망덕하게 자기 유익을 위해 돌아서기 잘한다. 배신은 자기 기분, 자기 이익, 자기 판단으로부터 나오기에 거짓이라는 단어와 함께 시대를 막론 하고 이 사회에서 가장 악한 것으로 난무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배신의 경험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다. 일생에 한 번도 배신하지 않거나, 배신당한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내 남편 목사는 한 교회에서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목회하고 은퇴했다. 이제 고백하자면 목회하는 동안 수도 없이 겪은 일 속에는 배신의 경험도 많았다. 교회를 등지고 떠나야 할 위험에 처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도우시는 은혜로 정년을 잘 마치고 은퇴했으니 감사할 뿐이다.

   
 

처음 이 교회에 부임을 결정했을 때, 여러 선배 목사님 그리고 집안의 어른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그중에는 내 좁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격언 같은 말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부임할 때 짐을 싸 준 사람이 제일 먼저 짐을 싸서 보낼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부임을 가장 앞장서서 반기고 환영한 사람이 가장 먼저 배신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막 30살이 된 초년의 목사 아내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가 잘못하지 않고 바른길로 간다면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혹 목사님 자신이 잘못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 또는 핑계가 필요해서 생긴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조언한 분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 말은 진리였다.

배신은 멀리 있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배신은 주로 가장 가까운 사람, 믿었던 사람에 의해 겪게 된다. 인간은 서로서로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님을 살면 살수록 더 실감한다. 하늘같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그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파탄의 인생을 사는 사람도 보았다. 아니, 이 땅을 스스로 등지는 사람도 보았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렇다. 그렇게 나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던 사람도, 친구도 배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배신은 무서운 것이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한 생을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셀 수 없는 배신 속에서 살아간다. 배신에는 크고 작은 계획적인 배신도 있지만, 그보다는 무의식 속에 당하는 배신도 많다.

그러나 그 많은 배신 중에서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배신은 자기 자신에게 당하는 배신이다. 아니, 이 배신은 사실 자기 자신이 하는 배신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배신 감정을 느끼며 사는지 모른다. 이것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면 시간에 있어, 감정에 있어, 생각에 있어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돌이켜 후회할 일이 많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나, 하지 않아야 하는 생각과 행동을 한 것은 모두 다 자신에게 저지른 배신행위이다. 온전한 인간은 지·정·의가 일치된 사람을 말하는데 때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정(情)으로부터 받는 배신감이 지(知)와 의(意)를 삼켜 버릴 때도 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이 배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니체는 “세상에 모든 것은 다 해도 배신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였다. 그것도 자기 스승을 배신하고 배반했기에 배신자의 대명사로 낙인되고 말았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배반당하는 자는 상처 받지만, 배반자는 더 비참한 상태에 놓인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가장 잘 증명한 인물이 가룟 유다였다.

배신과 배반의 행위는 자신에게 일시적인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그 배신자를 제외한 나머지 많은 사람과 배신당한 당사자에게 주는 피해는 매우 커서 심하면 파멸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래서 배반자를 ‘금수만도 못한 사람’ 혹 ‘짐승의 탈을 쓴 인간’이라 칭한다 해도 과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행 중에 가장 악한 것이 배신과 배반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더럽고 무서운 악행을 예수님도 제자로부터 당하셨다. 물론 이 배반은 가룟 유다만이 한 것은 아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이보다 많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다. 그런데 베드로는 회개하고 남은 인생을 주를 위해 배반을 갚는 삶을 살다 순교했지만 가룟 유다는 회개하기보다는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은전을 성전에 뿌리고 스스로 죽고 말았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를 생각해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수제자 베드로도 한 배신이라면 우리는 어떠한가? 또한 예수님도 당한 배신이라면 우리는 어떠한가? 가룟 유다를 향하여 ‘어떻게 자기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었을까’라며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욕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인간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가룟 유다보다 나은 사람일까? 가룟 유다의 배신은 결코 예수님 시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제 후로는 가룟 유다 같은 배신자의 길을 가지 않도록 결단하고 노력해야겠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람’이 결코 되어서는 안 되겠다. 또다시 나로 인해 십자가의 고통을 드리는 그런 어리석음이 없도록 마음을 다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순절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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