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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있을 때
방동섭 교수의 잠언의 영성 10
2021년 12월 28일 (화) 13:09:17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네 손이 베풀 힘이 있거든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고 했다(잠 3:27). 조금이라도 손에 가진 것이 있다면 아름답고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라도 그 나름대로 베풀 수 있는 능력과 기회는 주어진다. 사람들이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가 왔지만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도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거절하는 것이다. 잠언은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고 하였다(잠 3:28).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어려운 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가능하면 도움을 주어야 하는 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명은 “수고하여 약한 자를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행 20:35). 둘째는 약한 자를 돕는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였다(행 20:35). 따라서 주변에 약한 자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외면하는 것이 자신의 것을 지키거나 아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인의 형통은 짧다

   
 

그러나 이 세상은 자신의 것으로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것을 뺏고 착취하여 오히려 이익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악한 일이라도 시도할 준비가 되어있다. 심지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자들이 악한 일을 시도할 때 누군가를 끌어들여 공범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사람들은 그런 일에 유혹받지도 않고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라”고 했다(잠 3:29). 선량한 이웃을 모해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모해하는 악인에 대해 “결국 자기가 쳐 놓은 그물에 자신이 걸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시 141:10). 그러기에 잠언은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라”고 한 것이다(잠 3:30). 또한 잠언은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고 하였다(잠 3:31).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백성들은 악한 자들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흉내 낼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이 오래 갈 것 같아도 그 수명이 짧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악인에 대해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였다(시 37:10).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인의 도모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필요하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하였다(출33:11). 우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하나인 미미한 모세를 친구처럼 대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의 친구처럼 대해 주시는 사람들은 그 특징이 있다면 정직하게 인생을 사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잠언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잠 3:32). 시편에도 보면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할 것”이라고 하였다(시 140:13).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가 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 인생이 패역한 자리에 들어간다면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미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잠 3:32). 죄를 짓고도 하나님과 친구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순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와 참된 교제를 갖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은 필수적이다(요일 1:9).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한다고 해도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언제나 위로부터 낮은 곳으로 임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는 위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였다(잠 3:34). 그 반대로 사람들의 교만한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저주를 가져오게 하는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잠언은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잠 3:33). 그러나 그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지혜로 사는 자들에게는 “그의 영광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약속 하셨다(잠 3:35).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때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고난도 받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로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하였다(롬 8:17).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하였다(요 15:19). 또한 세상의 악인들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고난을 받으면서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 같은 고난이 우리의 궁극적인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미래는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원한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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