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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리가 아름답게
장경애 사모 컬럼
2021년 11월 02일 (화) 13:14:03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이제 37년의 긴 목회 여정이 끝날 날이 점점 더 선명하게 눈에 보여온다. 지나간 37년을 되돌아보니 눈 깜짝할 사이처럼 짧았던 것 같은데 크고 작은 수많은 일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니었다. 나이 30세에 이곳에 와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내 짧은 생의 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그렇게 살아온 날 동안 별 사고 없이, 건강하게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지금도 임마누엘 되셔서 함께하시고 저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이니 감사 외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다만 마지막이라는 말이 아쉬움의 긴 여운을 남긴다.

은퇴(隱退)를 한자로 해석한다면 은(隱)자는 ‘숨기다, 닫다, 떠나다’의 뜻이고, 퇴(退)는 ‘물러나다, 떠나다’의 뜻이 있다. 그것을 붙여서 말한다면 은퇴란 ‘직임과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 한가로이 지냄’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리타이어(retire)라고 하는데 마치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는 것같이 삶의 새로운 장으로의 갈아타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은퇴는 한 장(章)의 끝이지만 또 다른 장(章)의 시작이기도 하다. 한자의 의미와 영어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면 은퇴란 지금까지의 분주한 모든 활동에서 물러나 살아온 날과 다른 삶을 새로 조명하며 남은 삶을 보람있게 보내는, 정말 타이어를 갈아끼는 시기다. 그렇기에 여기서 멈출 수 없고 또 다른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함을 느낀다.

은퇴를 즈음하여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본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나온 37년의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희로애락의 많은 날이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어간다. 성도 마음 속에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서로가 그립고 고마움으로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서고금을 통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이 지구에서 살다 갔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좋은 사람으로, 닮고 싶은 사람으로 그 이름을 남긴다는 말일 것이다. 한 사람이 떠난 뒤에 그 자리에 남긴 흔적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참으로 명언이다. 이 말은 떠난 후에 그 가치가 더 빛남을 의미한다. 어떤 자리, 무슨 직분과 직책을 맡았는지보다는 그 자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무슨 일을 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머물렀던 곳에서 성실과 진실로 살았던 사람은 떠난 후, 그가 머물렀던 빈자리가 더 커 보이고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목회 37년 동안 수많은 부교역자가 다녀갔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서로 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교역자가 있는가 하면 이름 석 자도 잘 기억되지 않는 교역자도 있다. 또한 떠난 후에 좋은 이미지를 남긴 교역자가 있는가 하면 떠나간 후에 잘못이 드러나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 교역자도 있다.

음식도 먹고 나서 뒷맛이 더 좋아야 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낮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이라도, 떠난 후에 떠난 것이 아쉽고 귀한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머물던 곳에서 떠날 때 보내기 싫고, 떠나 있어도 안부가 궁금하고, 아쉽고 보고픈 사람이라면 어느 자리에 앉혀 놓아도 손색이 없고 그가 떠난 자리에는 향기가 남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높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사람이라도 망가뜨린 과업이나 탐욕스러웠던 행적이 남아 있어 비난과 혐오를 받는다면 그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악취만이 풍길 것이다.

나의 엄마는 어디를 가든지 그곳을 떠날 때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한번 돌아보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습관이 생겼다. 좁게는 날마다 앉았던 자리를 말하지만 넓게는 인생에도 해당하는 말임이 연륜이 쌓일수록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자리에 머물렀다가 떠나는 일의 반복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를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머문 자리가 앞모습이라면 떠난 자리는 뒷모습이다. 혹자는 사람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고 한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타인에게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인 뒷모습’은 고칠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뒷모습은 얼굴처럼 꾸밈이 없기 때문이며 자기 눈으로는 절대로 확인되지 않는 오로지 타인에게만 열린 또 하나의 모습이 뒷모습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에서도 떠나고 난 후에 보이는 가치가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사후에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는 별로 알지 못했는데 떠난 후, 혹은 사후에 그 사람의 가치가 더욱 빛나기도 한다. 반대로 생존엔 존경받았던 사람이었는데 타계한 후에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어 그 사람에 대해 실망하거나 나아가 배신감마저 느끼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경과 이루어 놓은 업적까지 씁쓸하게 남기도 한다. 살아 있을 때와 죽고 난 후가 똑같을 수는 없다. 어쩌면 있을 때보다 떠난 후의 평가가 더 진솔한 것이고 더 객관적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는 어떻게 살다 갔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생은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머물렀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은 반드시 떠날 때가 오는 것처럼 어디서든 왔다면 반드시 떠날 때가 있음을 모르지 않건만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미련함이 있다. 그것을 생각하며 산다면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이 시험 준비를 하는 것처럼 정직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려 했을 것이다.

시계 초침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무엇이든지 초읽기에 들어가면 시간이 더 빠르게 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실감하는 시간이다. 내 인생의 거의 반인 37년의 긴 세월 동안 머물렀기에 솔직히 아쉬운 마음을 말로 다 할 수는 없다. 다만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내가 떠난 후 떠난 자리가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생각해 본다. 나는 37년간 항상 최선을 다하며 어떤 성도든지 친절하고 자애롭게 한결같은 자세로 대했는가. 혹 나로 인해 맺혔던 것이 있다면 풀어 버리고 가볍게 가고 싶다.

어디에서나 내가 떠난 후 내가 머물던 자리에서 주님의 향내가 날지언정 악취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훗날, 이 땅을 떠난 후 내가 있던 자리에서는 주님의 향기가 은은히 풍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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