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느(Paul cezanne 1836-1906 프랑스)가 큐비즘(입체파)의 대가인 피카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특히 모든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았다는 것에서 입체파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거니와 사실은 그 내면적인 사상이 더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모든 사물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었고 적어도 뒤로 쳐지는 것이나 아래에서 억눌리는 상황은 어떤 물체나 인간에게 있어서 죄악된 구조하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을 때 귀한 것과 천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누르는 자와 눌려 있는 자라는 이런 개념과 등식은 성경 어디에나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은 끊임없이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힘 있는 곳에서 힘 없는 곳을 지배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이 피조세계에서는 정당성 있게 통용되는 원리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중에 제일 관심을 가지고 행하신 일은 소외된 자와 눌려 있는 자, 병든 자들을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그들의 나라가 천국이 되게 하시는 일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세잔느는 예수의 정신을 따르고 있었다.

▲ 세잔느(Paul cezanne, 1836~1906 프랑스)의 <바구니가 있는 정물>

지금 보여지는 <바구니가 있는 정물(still-life with a Basket)>(1890. 파리 인상파 미술관)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고 보아왔던 정물과는 다르다. 우선 한 눈에 보아도 구조와 원근법과 명암이 전혀 맞지 않는다. 그 이전의 회화세계의 잣대로 보면 이 그림은 당장 버려질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소리 없는 항변을 하고 있다. 우선 그림의 상식인 큰 과일들이 앞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과일들이 앞에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항아리는 애써서 그 속을 보여 주려고 기울어져 있고 앞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행세하던 큰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겨져서 오히려 덮개에 덮여 가려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에 같으면 작은 것은 큰 것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은 작은 것이 맨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놓고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억눌려 있던 것을 제 위치로 찾아 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화폭에 놓인 모든 사물들은 자유의 찬가를 부르며 거기에 아름다운 하모니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결국 큐비즘의 구조가 무엇인가? 보이지 않고 소외되었던 모든 사물의 권리를 찾아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세잔느의 정신이고 또한 피카소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정신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