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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배려의 영성(2)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2021년 05월 24일 (월) 16:28:58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같이 기뻐할 수 없는 사람들

마가복음 2장에는 한 가지 더 하나님 나라의 장애물이었던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서기관들이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죄도 용서를 받고 자신의 육체의 병도 고치게 되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러나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공격하였다. 이들의 문제는 기뻐해야 할 때 함께 기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속에서 문제를 찾고, 문제를 발견할 수 없으면 문제를 만들어 공격한다.

그들은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고 그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을 공격하면서 ‘참람하다’고 하였다(막 2:7). ‘참람하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뜻이다. 하나님만 용서할 수 있는 죄를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이 하나님의 권한을 가로채고,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얼마든지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선한 것이 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감동을 잃어버렸거나 감동받기를 거절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조차도 신성모독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면 남의 죄만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의 신앙의 수준을 점검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내 죄는 전혀 안 보이고, 남의 죄만 보이는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거나 아직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내 죄는 작은 ‘티끌’로 보이고, 남의 죄는 커다란 ‘들보’로 보이는 사람은 신앙의 성숙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내 죄가 ‘들보’같이 크게 보이지만 남의 죄에 대해서는 작은 ‘티끌’처럼 보는 사람은 성숙한 신앙인이다. 혹시 “나는 내 죄는 보이지 않고 남의 죄만 크게 보이지 않는가?”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많다.

   
 

마가복음 2장에 나타난 중풍병자의 경우 주님께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장애물은 병 그 자체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그를 데리고 와서 주님께 침상을 달아 내릴 때 뜯어야 하는 지붕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모였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이기적인 사람들이 가장 넘어서기 힘들었던 장애물이었다. 장애인들은 정상인들의 마음에 숨어있는 무서운 이기심을 보게 될 때 가장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이기주의는 하나님 나라의 큰 장애물이다. 모두가 힘의 논리에 따라 보다 유리한 공간을 차지하는 동안 주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중풍병자는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장애인에게 가장 큰 고통은 그들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이다.

사랑과 배려의 영성

이 시대의 교회 공동체 안에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고통은 대부분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영적 이기주의가 원인일 때가 많다. 교회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논리를 따르는 최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막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모두에게 사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사람들에게 막힌 길을 열어주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야고보서에 보면 '위로부터 난 지혜' 즉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그 특징이 '관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3:17). '관용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피에이케스'(ἐπιεικής)인데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이다. 영어에서는 ‘부드럽다’는 뜻 ‘gentle로 번역을 했지만 정확한 의미가 아니다. 이 단어는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것' 혹은 '상대방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을 뜻한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영성으로 사는 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공간을 열어주는 삶을 산다. 이것이 배려의 영성이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무한 경쟁의 논리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무능하든지 바보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관용'의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하신 분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자리를 비우시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하셨다(빌 2:6-7). 여기 '관용'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관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다. 특히 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래서 인류가 사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시대에도 ‘배려의 영성’으로 사는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공간을 열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이기주의로 사는 사람들은 평생 남의 자리를 탐내고 그 자리를 뺏기 위해 남을 해하면서 살게 된다. 초대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 여러 자격을 고려했지만 딤전 3:3에 보면 ‘오직 관용하며’라고 하였다. 초대 교회에서 일군을 세울 때 '관용'이라는 자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교회 직분자'들 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였다(빌 4:5). '관용'이라는 뜻의 '에피에이케스'(ἐπιεικής)가 나타나고 있다. "주님이 가깝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한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처럼 ‘관용의 영성’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시대의 제자들이 이렇게 산다면 무능해 보이든지 망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관용적으로 사시고 자신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내어주신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하였다(빌 2:9-10). 예수님은 자신의 보좌를 비우시고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오셨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신 것이다. 관용의 정신으로 자리를 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는 제자들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게 될 것이다. ‘배려’와 ‘사랑’은 제자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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