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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론’이란 무엇인가?(2)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2020년 09월 16일 (수) 14:34:11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제1장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

2. 선교적 교회의 정의 :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는 선교라는 단어와 교회라는 단어, 비교적 우리가 익히 듣고 알고 있는 두 단어가 연결된 용어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두 단어로 연결된 단순하고 명확해 보이는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가 지금까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교에 대한 정의나 이해의 측면에서 쉽게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용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하는가?

첫째, 선교적 교회는 단지 타문화권 선교 사역을 강 조하는 교회를 묘사하는 용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용어와 지금까지 교회 내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여 왔던 ‘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라는 용어 사이에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용어 사이에 내포하는 의미와 지향하는 방향성에 있어서는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 올리는 생각은 무엇인가? 교회가 해외에 있는 타문화권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런 사역에 헌신할 선교사를 선발하고 훈련시키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가 해외에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거나 혹은 이미 파송된 선교사를 협력하여 후원하는 일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또한 젊은이들을 해외 단기 선교에 자주 보내거나, 해외에 있는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자주 개최할 때 ‘선교하는 교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파송한 선교사나 협력하는 선교사 명단을 교회 주보나 교회 회지에 많이 올릴 때 교인들은 그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될지 모른다.

   
 

그 반면에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사람들은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선교적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라는 개념과 유사한 개념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선교하는 교회는 선교를 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개념이라면 선교적 교회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선교와 교회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는 신학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인들에게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해하도록 요구하는 개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는 선교사를 타문화권에 많이 파송하거나 그들을 후원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선교적 교회’가 이런 사역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선교적 교회‘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런 사역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선교 개념을 이해할 때 전통적인 선교 개념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선교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은 ‘선교’를 교회의 타문화권 사역이나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선교는 교회를 진정한 교회가 되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선교적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보내는 자보냄을 받는 자의 이원론적 선교개념을 넘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선교에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동안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파송 받은 선교사에게 선교의 모든 것을 맡기고 교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교인들에게는 단지 선교사를 후원하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구하였다. 선교라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을 두고 선교사와 일반 교인들을 구분 짓는 이원론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선교적인 교회’가 이해하는 선교의 개념은 이와는 다르다. 소수의 전문적인 선교사들에게 선교 사역의 모든 것을 맡기고, 대다수의 교인들은 파송된 선교사들을 기도나 물질로 후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라는 단어 앞에 ‘선교적’(Missional)이라는 단어가 붙여졌을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백성으로서 교회의 본질적인 성격과 소명”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선교적 교회는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교인이 선교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선교는 교회의 사역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교회의 본질로 이해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선교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 있으며 신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될 수 있는 사상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동안 전통적인 교회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간과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단지 개인의 구원으로 끝나지 않고 누구나 선교적인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충분히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해 잘 모르고 있거나 또는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교적인 책임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인식하였던 사도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는지 그 목적에 대해서 말한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사용하고 있는 ‘선전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엑상겔로’(εξαγγελλω)라고 하는데 ‘왕을 대신하여 왕의 뜻을 전하는 행위’(declare)를 뜻한다. 그는 이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 목적은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교적인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이유는 단지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사명을 위해서 불러주신 것이다. ‘선교적 교회’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선교 사역을 단지 교회 내부에서 특별하게 헌신하고 파송된 사람들의 고유한 사역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선교의 사명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깊이 인식한다. 이것이 ‘선교적 교회’가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선교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선교적 교회는 사람들을 교회 건물 안으로 끌어드리기 위한 교회 성장 프로그램이나 어떤 전략적인 접근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선교하는 교회는 성장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선교 개념을 ‘교회성장학적’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만일 교회가 이런 측면에서 선교를 실천하게 된다면 선교는 단지 교회의 가시적인 성장이나 확장을 가져오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을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가 선교하는 목적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 건물이나 조직 안으로 더 많이 끌어오는 것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런 교회 성장학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보다 좋은 위치에 보다 편리하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을 짓고 주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교회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람을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다면 엄청난 재정과 에너지를 투입하여서라도 종교 수요자의 요구에 맞도록 다양한 종교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공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세기 말 선교적 교회론이 새롭게 등장하였을 때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은 선교적 교회론이 수명을 다해 가는 교회성장학을 대신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회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교적 교회론’이 또 하나의 교회 성장 전략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선교적인 본질과 선교적인 실천을 강조할 때 그 목적은 교회의 가시적이고 숫자적인 성장을 통한 교회의 대형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교적 교회’는 지금까지 교회가 가지고 있던 선교 이해나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선교적 교회론’에서 강조하는 교회가 선교하는 목적은 이 세상 한복판에서 진정한 교회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하나님의 나라의 표지로서 그 나라를 사람들에게 증거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선교적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드리는 가시적 교회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가 진정한 교회로서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고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선교할 뿐이라는 것이다.

넷째, 선교적 교회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 이후 점점 사라져 간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움직임이라고 이해된다. 이 시대의 교회 공동체는 모든 절대적인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입하면서 교회 안에서 교회가 붕괴되는 심각한 현상을 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지역 교회들이 교회가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론이 서서히 그 의미를 잃어가는 현상 속에서 이 시대의 교회는 점점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교인들도 영적으로 방황하면서 이 교회, 저 교회로 떠돌거나, 아예 소위 ‘가나안’ 교인들이 되어 교회를 떠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정통 기독교인들이 이단이나 타 종교로 개종하는 일까지 빈번 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현상의 일차적인 책임은 그렇게 떠나가는 자신들에게 있지만 더 큰 책임이 그들을 인도해야 하는 지도자들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이 가시적인 교세 확장을 위해 교회의 모든 영적 에너지와 자원들을 소진하고 있는 동안 교회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교회는 단지 종교적인 상품을 공급하는 단체로 변질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교회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선교적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단지 교회가 자신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사역으로만 보는 개념은 아니다. 교회가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정체성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역사에 있어서 초기 300년 동안 교회는 매우 강한 선교적 특성을 갖고 있었던 공동체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기의 교회는 세상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하시는 선교에 참여하는 것은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속한 본분으로 이해하였다. 선교적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래적인 속성인 선교적 특성 혹은 선교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우리가 ‘선교적 교회’를 교회 성장이 아니라 교회 정체성 회복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교적 교회단지 교회의 삶의 또 다른 국면이 아니라, 교회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교적 교회’의 정립은 주님이 보여주신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포스트모던적 시대에 직면한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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