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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사후 남북관계 어디로
교통사고 후유증 사망… 대남정책 향방 관심집중
2003년 11월 05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김정일 신임 업고 남북교류 전권 행사
당분간 혼선… 후임자 누가 되느냐가 관건
“남북관계 공고·사망 이미 대비” 낙관론도


북한의 대남사업을 총괄해온 김용순 노동당 통일전선담당 비서가 지난 10월 26일 사망했다. 김용순의 사망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당국관계와 민간차원의 경협사업과 문화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북측 창구를 관리해온 때문이다.

김용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 대의원, 노동당 통일전선(대남) 비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왔다. 특히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현대와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한 각종 대남 경협사업을 주도했다.

김용순은 북한의 대남사업 총책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확고한 신임을 받은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에 앞서 환담을 하는 자리에 다른 간부들을 제치고 김용순만이 유일하게 김 위원장의 왼편에 배석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김용순은 2000년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김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남한을  방문해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제주에서 회담을 가진 바 있다. 같은 달 김용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 수행해 2차 남북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인 박재규 통일부 장관을 함남 동해안지구 초대소에서 만났으며, 이에 앞서 그해 6월 김 위원장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씨, 8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을 만나는 자리에 모두 배석했다.

김용순은 90년 9월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부총리와 사회당의 다나베(田邊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일본 자민·사회당 합동대표단과 만나 과거 보상 등을 포함한 8개항의 3당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이어 92년 1월에는 북·미 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으로 뉴욕을 방문하기도 하는 등 대미·대일 외교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1934년 7월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난 김용순은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국제관계과에 입학했다가 국제관계과가 현재의 국제관계대학으로 독립하면서 이 대학을 1기로 졸업했다. 졸업후 그는 대외부문에서 일하면서 해외공관에도 주재했으며 지난 72년께 당시 노동당 국제부장이던 김영남(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의해 당 국제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당시 당 국제부 지도원이던 김경희(현 노동당 경공업부장)와 친분을 맺기 시작했으며 대외업무를 다루는 당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용순은 80년 10월 당 중앙위 위원에 선출됐고 당 국제부 부부장, 제1 부부장 등을 거쳐 88년 당 국제부장에 기용됐고 90년 5월 국제담당 비서로 승진했으며, 92년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외교분야에 종사해 오던 그는 허정숙 전 노동당 비서가 사망(91년 6월)한 후 대남분야로 자리를 옮겨 92년 12월 통일전선 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됐다. 지난 93년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 93년 8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94년 7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을 겸임하는 등 대남분야 최고 책임자로의 지위를 확고히 구축했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총괄하는 노동당내 대남선전·공작기구가 대부분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는 얘기다. 노동당 대남기구는 구체적으로 △통일전선부가 통일전선 형성 공작과 대남 심리전 활동 △작전부가 대남 공작원 기본교육과 대남침투 호송 안내 △인민무력부 정찰국이 무장공비 남파 및 대남 군사정보 수집 △대외연락부가 남한내 지하당 구축 및 공작원 밀봉교육 △35호실이 대내외 정보수집 및 대남 우회침투 활동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대남사업 관계자들로부터 ‘용순 아바이’로 불리웠다. 그만큼 아랫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오랜기간 대남사업에 종사하면서 독보적인 자리를 굳혔다는 얘기다. 노동당 서열로 따지면 30위권의 실력자다.

그의 호방한 성격도 우리 정보기관 관계자나 정부당국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의 비공개 인물파일에는 독특한 쇼맨십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한 한 서방 외교관이 김용순을 만나기 위해 그와 약속한 초대소에 도착했더니 자리에 없더라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 김용순이 흙탕물이 얼굴에 튀고 작업복에 장화까지 신은 차림새로 나와 사연을 물으니 김용순은 “평양 인근의 협동농장 모내기를 돕다가 늦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외교관은 한참 늦게서야 면담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김용순이 미리 각본을 짜고 벌인 일이란 소문이 들였다. 당사업은 물론 ‘인민을 지원하는 사업’에 열과 성을 다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꾸민 것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이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김용순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심성이 아주 착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는 게 고위 탈북인사들의 증언이다. 또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며 악기도 능숙히 다루는 등 예술감각도 갖춰 대학재학 중 예술소조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한때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른바 ‘기쁨조 파티’에 단골로 참석한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아무튼 김용순의 사망은 남북관계의 기상도에 적지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북관계의 여러 직책을 책임지며 남북교류협력의 최고 의사결정 단계뿐 아니라 실무채널을 장악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업무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건설사업, 남북간 철도·도로연결 등 3대 현안사업은 물론 사회·문화·체육·문화 분야의 남북교류에 관한 북한측 입장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게 정부 안보팀의 판단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인 지난 6월 13일 남북공동선언 3주를 맞아 <노동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과 남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맞게 우리 민족끼리 공조해야 한다”며 이른바 민족공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대남정책과 관련, 김용순 비서가 사실상 전권을 행사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지도부내에서 당분간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차후 어떤 인물이 노동당 대남담당비서가 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 변화 여부가 감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남북관계가 제도화된 만큼 김용순의 사망으로 인해 당장 큰 혼선이 빚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가 대남정책의 총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간 장관급회담만도 12차례가 열릴 정도로) 남북관계가 공고해진 점과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사망이 충분히 예견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사망이 남북관계 진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북한이 그간 남북관계에 무게를 둬 온 점으로 미뤄  김용순 비서 후임으로 남북관계에 적극적인 인물을 내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지도층 음주운전 비상

김용순 등 고위층 잇따라 사망
운전기사 대동않는 파티문화 탓

김용순의 이번 사망원인이 음주운전 때문으로 알려져 북한 고위층의 빈번한 음주운전 문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고위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고위층의 대표적인 음주운전 사고는 1985년 발생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부부장(차관급)이던 김치구·이화영 등 2명이 숨진 사례다. 당시 이들은 고위층 파티에 참석한 후 차량 한대에 함께 귀가하던 중 차가 전복되면서 사망했다.

 같은 해 7월 이종목 외교부 제1부부장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했다가 평양 귀환도중 음주 운전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1995년 암으로 사망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도 교통 사고를 당해 외국에서 치료를 받는 등 고생을 했다.

 이런 음주운전 사고의 빈발은 이른바 북한 지도부의 파티 문화 때문이란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파티 참가가 허용된 북한 고위층들은 운전기사를 대동하지 않은 채 자신이 손수 운전해 파티장을 가야만 한다. 따라서 파티 참가자들은 귀가시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할 수밖에 없고 교통사고는 항상 잠재돼 있다는 것이 고위층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여기에다 차량이 드문 북한의 현실도 교통사고를 부추기는 요소다.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다보니 운전자들이 음주상태에서 과속을 일삼고 결국 인명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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