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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로 기도할 것인가?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5)
2020년 05월 26일 (화) 13:14:00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김정훈 교수 / 김정훈 교수는 영국 더람(Durham) 에서 제임스 던(James Dunn)의 지도로 석사를, 영국 글라스고(Glasgow)에서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의 지도로 박사를 취득하였고, 백석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다 올해 2월 정년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The Significance of Clothing Imagery in the Pauline Corpus’ (T&T Clark), ‘바울 서신 연구’ ‘사도들의 설교와 신학’ ‘약속, 성취, 그리고 하나님 나라’ ‘작은 구름 한 조각’ 등이 있다. 현재는 B and C Mission Center 대표로 있다.
 

   
▲ 김정훈 교수

5. 바울의 기도(엡 1:15-19)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바울의 13개 서신서 안에서 그의 기도문을 기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본문들 가운데 하나다. 바울은 여기서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도하는 내용을 직접 보여준다. 물론 기도의 정의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슨 말로 기도할 것인가이다. 기도는 허공에 띄우는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에 그 언어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기도를 배우는 것, 즉 성경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기도를 했는지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내가 가르칠 테니 들어봐라’는 식의 기도, 풍부한 성경지식을 과시하는 듯한 기도, 신앙경력과 헌신을 자랑하는 듯한 기도, 온갖 미사여구로 자신의 문학적 감성을 뽐내는 기도, 뛰어난 구변으로 대중연설을 하는 듯한 기도, 푸념인지 넋두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도, 남을 탓하며 자기를 정당화하는 것 같은 기도,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 같은 인신공격성 기도, 하늘 곳간을 열어 소나기처럼 쏟아부어 달라고 하나님께 으름장을 놓는 것 같은 기도, 신세 한탄 조의 기도, 회개인지 변명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도, 겸손히 간절하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을 소환해 놓고 윽박지르는 듯한 기도··· 성경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예수께서 왜 제자들에게 “[너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사역을 기도로 시작하였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체포하려고 공문서까지 구비하고 조직을 동원하여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라고 하실 때, 그는 벼락을 맞는 듯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온몸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바울은 하늘에서 내리찍듯 자신에게 꽂히는 강한 빛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하였고, 얼마 후 아나니아의 안수로 회복되었지만, 동행자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다메섹에 들어가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어린 시절의 예루살렘 유학생활에 대한 자부심이며, 풍부한 율법 지식이며, 랍비 신분 획득이며, 유대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누렸던 사회적 신분이며,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헌신이며, 들불처럼 번지는 신흥 이단종교(바울로서는 기독교)에 대한 강고한 처단 의지와 실행과 이로 인한 온갖 칭찬이며 ···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자기 발뒤꿈치 바로 뒤에서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 때 그의 참담한 심정은 지옥보다 더 깊은 흑암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목할 것이 있다.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어 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만나주신 주께 매달려 기도하였다(행 9:11). 자기 자신이 그분을 만났고, 음성을 들었고, 빛을 본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 길은 자신에게 충돌해 주신 그분을 찾는 길밖에 없었다. 그는 생명이 되시는 그분께 기도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의 섬세하신 계획을 따라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고 그에 의해 안수를 받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아나니아의 예언을 따라 선교사역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뿐 아니라 세 차례 선교여행을 하며 개척 목회, 순회목회를 하는 가운데서도 항상 기도로 모든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처음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가운데 아라비아 나바테아 왕국에 3년 동안 머물고 있을 때에도(갈 1:17; 행 9:23) 기도에 전념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가서 잠시 머무는 동안 아레다 4세의 위협으로 공포심에 짓눌려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행 9:23-25; 고후 11:33). 그리고 광주리를 타고 밤에 다메섹을 탈출한 뒤에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도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였는데(행 22:17), 이때 그는 신비상태에서 주께로부터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었다(행 22:17). 그는 아직 1차 선교여행도 출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길리기아 다소로 가서 약 8년 정도 체재하는 가운데 신비상태에서 셋째 하늘 곧 낙원의 체험을 하게 되는데(고후 12:1-2), 이는 분명 기도 중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드디어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청빙이 있어 바나바와 함께 일 년간 동역한 후에 교회의 파송을 받고 1차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 장로를 세울 때 금식기도를 하였고(행 14:21-23), 2차 선교여행을 할 때도 틈이 날 때마다 기도처를 찾았으며(행 16:16), 축귀(逐鬼) 사건이 빌미가 되어 실라와 함께 옥에 갇힌 중에도 한밤중에 다른 죄수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기도와 찬송을 하였고(행 16:25), 3차 선교여행 중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한 후 헤어질 때도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행 20:36), 다메섹 서남쪽의 해안도시인 두로의 제자들과 작별하기 전에도 바닷가에서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행 21:5).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가이사랴에서 구금생활을 하다가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해 가던 중 배가 난파되어 가까스로 멜리데섬에 올랐을 때도 그는 그 섬의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기도하고 안수하며 치유해 주었다(행 28:8).

그의 서신서들을 보면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고(엡 1:15-19; 3:14-19; 빌 1:9-11; 살전 1:2; 살후 1:11), 자신이 세우지 않은 교회들과도 계속 교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롬 1:9; 골 1:3, 9-12; 몬 1:4). 그는 성도들에게 기도에 항상 힘쓰고(롬 12:12; 골 4:2; 엡 6:18),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18), 아무것도 염려 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고(빌 4:6), 쉬지 말고 기도하고(살전 5:17),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도고와 기도를 하라고(딤전 2:1) 당부한다. 또 그는 방언기도의 유익과 한계성을 언급하면서 영으로 기도하고 또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을 교훈한다(고전 13-14, 15). 그는 또한 기도자가 자신이 처한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창조의 원리와 사회적 상식과 하나님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장착해 주신 본성에 비추어 매무새를 경건히 하고 기도할 것을 교훈한다(고전 11:1-16).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대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서슴없이 부탁한다(롬 15:30; 고후 1:11; 살전 5:25; 살후 3:11).

이러한 기도의 사람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의 핵심 내용은 “저 성도들이 ~을 알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식이 없으면 믿음이 견고히 설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지식은 마른 막대기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성경이 때로는 믿는다는 것과 안다는 것을 교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식에게 폭력을 가하고, 믿음에게 조롱을 보내는가? 지식에 대한 행패가 열등의식의 표출이고 믿음에 대한 경멸이 오만에 의해 생성된 불안의 표출이라면 이는 적그리스도적-반성경적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고자 힘쓰는 사람들을 학문 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반성경적 행위이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독려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 대한 무지가 문제이지 그분에 대한 앎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곡해된 영성만 추구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위이다. 성경진리를 추구하는 자라면 마땅히 헌신된 자세로 최선의 학문적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동시에 수많은 말을 쏟아냈던 욥이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확신에 이르러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크게 두 가지를 알게 되기를 위해 기도한다.

첫째,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해 주소서. 믿는 자가 하나님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는 지혜로 충만한 분이시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믿음도, 십자가도, 구원도, 신령한 복도, 교회도, 사랑도 알 수 없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시행과 성취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성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진리와 계시의 성령은 강압적으로 나를 찢고 내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다. 내 안에 칼을 들고 침입하여 내 영혼을 제압하고 쫓아내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조용히 찾아와 말을 거시며 마음 문을 열고 영접해 드릴 때 내 영혼에 가까이 접근하여 부드럽게 결합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내가 내 안의 영토를 내어 드리는 만큼 나를 차지하시고 나를 최대한 존중하며 최선의 방식으로 나를 다스려 주시는 분이시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선하신 뜻과 권능과 사랑을 알 수 있기에 더욱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둘째,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마음 눈이 열려 보배로운 영적 지식들을 알게 해 주소서. 마음 눈이 닫힌 사람들은 영의 세계를 볼 수 없다. 그들은 물질세계를 넘어선 초월세계를 볼 수 없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들만 실재라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은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신의 눈이 볼 수 있는 것들만 실재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왜소한 생각인가? 우주에 떠도는 먼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음 눈이 열린 사람들은 물리적 실재 너머에 영적 실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영적 감지력으로 초월적 세계에 있는 것들을 인식한다. 마음 눈이 열리지 않고는 영의 세계와 그 안에 있는 가치들을 볼 수 없다. 마음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선한 일들과 그가 베푸시고자 하시는 복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음 눈이 열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그가 베푸시는 은혜를 깨달아 알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마음 눈이 열려 세 가지 영적 사실들을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1)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에서부터 불러 주셨다. 그의 부르심 안에는 놀라운 소망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와 이 세상 너머 모두에서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주의 재림과 함께 최종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실 것이다. 지금은 이 모든 신령한 복들을 “첫 숟갈”의 형태로 맛보고 있다. 소망을 가진 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사명에 충실하며 담대히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아간다.

(2) 하나님 나라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유업”(개역개정에는 “기업”)은 하나님 나라를 뜻한다. 믿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받은 자들이며 또한 궁극적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나라다.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부터 그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하늘 시민권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쇠하지 않고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나라를 받은 자들이다. 이 나라의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기에 풍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당신의 힘의 위력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지극히 크신 능력을 나타내 주셨다. 그분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은 세상에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어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시다. 그분은 하늘에 나는 새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바다의 어족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계신 분이시며, 이 세상과 오는 세상 모두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나라와 권세와 영광 모든 것의 영원한 소유자시다. 그분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가난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려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치를 차지하게 하시는 분이시다(삼상 2:7-8). 우리가 그분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분의 권세를 힘입어 영육간 최상급 부요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이상과 같은 지식을 갖출 때 더 풍성한 신앙생활을 할 것을 확신하면서 그들로 그렇게 보배로운 영적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참조. 약 4:8).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분이 응답해 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참조. 렘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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