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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의미를 좀더 깊이 묵상하며..
2019년 04월 24일 (수) 11:00:19 김희건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성금요일. 좀 숙연한 기분으로 이 날을 보내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신 날이다.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쇠와 소멸의 길을 간다고 하면, 인간도 그 길에서 자유 하지 못하고 같은 길을 갈뿐이다. 그러나 죽음을 자연의(natural) 현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죽음 앞에서 고민하고 그 길을 면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죽음은 창조 질서의 원래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결과로 죽음이 온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죽음을 부과함으로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고 인간으로 그것을 깨닫게 하셨다고 본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그 생명을 의존해서 살아간다.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거나 부인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것이 선악과 명령을 거역한 동기였다.

사람은 스스로 살 수 없는 피조물이다. 이 우주 속에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사람이 그런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려고 했을 때, 죽음이 선고되었고, 사람은 그날 이후 “죽음의 존재(mortal being)”가 되었다. 태어나서 장성하고, 늙음과 쇠패함, 그리고 죽음의 길을 간다. 그런데 인간의 모든 경험 중에서 죽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경험하게 한다.

   
 

죽기 싫어도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은, 삶이란 사람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 준다. 언제, 어디서 죽음이 우리를 불러 갈지 모른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사람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허무하고 연약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자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사람은 언제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끌려갈지 모르는 위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철학, 종교는 이 죽음에 대한 해석내지는 죽음을 넘어 서려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말한다.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주지 않으면, 사람의 사는 것은 마치 꺼져가는 얼음 판 위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 물 밑으로 가라앉을지 모르면서 그 위에서 춤을 출 수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죽음은 선고하신 뜻은 범죄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하신 배려라고 믿는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 그 시작에 대해, 그 끝에 대해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살아 있는 사람은 그 끝을 미리 보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더 많을 것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철학, 어떤 종교이든지,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답해 주지 못하면, 그것은 무익한 것, 허망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Helmut Thilicke라는 신학자는 계몽주의의 몰락의 배경으로,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답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 죽음에 대한 무언가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떤 종교, 사상도 무익한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을 가장 허무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떨어뜨린다. 살아 있던 사람이 죽고 나서 모든 반응이 정지되고, 부패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볼 때, 얼마나 절망적인가? 이 죽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한 현실, 삶인 것을 가르친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 존재의 근원이시오, 보존자이신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은 그렇게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임을 죽음의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하셨을 뿐 아니라, 에덴을 떠나 죽음의 존재가 된 인간의 삶에 동행자가 되어 주셨다. 인간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든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시고,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되어 주셨다. 이 사실을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이 증거한다.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시된 사실이었다.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함께 하셨고, 바벨론 유배의 생활 속에서도 함께 하셨던 사실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하시고 집행하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인간을 죽음에서 건져내기 위해 스스로 내려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을 죽게 한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괴롭혀온 죽음의 세력을 사로잡고 멸하셨다는 뜻에서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죽음에 동참하신다는 뜻을 넘어, 그 죽음을 가져온 모든 인간의 죄를 친히 짊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사건이다.

그렇게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죄를 청산하셨고 우리로 용서와 화해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었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해 살아 나셨다”(롬 4: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을)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 15: 57). 예수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딤후 1: 10).

주님의 부활은 대속의 사건이 완성되고, 그의 의로운 죽음이 하나님께 열납되었다는 표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죄와 죽음 아래 사는 백성들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갖게 하신 사건이다. 그가 다시 재림하는 날, 우리도 그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복음의 사실을 성령의 임재와 능력 안에서 생생한 삶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 부활의 능력은 성도 안에서 거룩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며,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봉사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죄와 죽음이 여전히 주장하는 이 세상을 이기는 신앙으로 나타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부활의 주를 믿음으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였다”고 한다(벧전 1: 8). 예루살렘 성도들은 이 부활의 주를 믿고 기다리는 삶 속에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전도에 열심하였다고 한다. 부활 신앙은 사람으로 참으로 자유한 삶으로 인도한다. 이 글을 쓰는 창 밖 멀리 푸른 나무들이 연한 초록색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자연 세계에서도 조용히 생명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겨우내 말라있던 나무 마다 푸른 생명의 입들이 돋아나 살아 있는 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에게 이 부활의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원수인 죽음을 이기는 길이 열려 졌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환영하고 기뻐함이 옳을 것이다(고전 15: 22). 사람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절망과 역경을 이길 수 있다는 말과 통하게 된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11: 25-26). 이 위대한 말씀을 깊이 묵상할 이유가 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시 죽음의 세력에 눌려 살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주님의 부활의 생명 안에서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사람이 이기지 못할 대상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아직도 죄와 죽음의 세력이 주장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이김으로 살아 있는 신앙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 55).

부활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죄를 이기고, 죽음의 세력을 이기며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런 신앙과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 세상 다른 종교에 있을까? 거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탁월함이 있다고 본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 복음 진리의 능력을 가장 현저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부활의 주님을 항상 가까이 모시고 세상을 이김으로 주님의 이름이 우리 삶 속에 높임 받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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