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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는 마음
2019년 03월 25일 (월) 16:26:40 김희건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고등학교 시절 낙엽이 수북이 쌓인 늦가을 교정 뒤의 작은 산에 올라가곤 했다. 유독 나무들이 많은 교정, 그 나무들이 떨어뜨린 낙엽 속에 몸을 묻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늦가을은 내게 고목나무처럼 메마름과 황량한 기분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을은 죽음을 암시하는 계절이라 생각되어 가을을 싫어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하나 둘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런 나에게 봄은 말 그대로 생명의 계절이었다. 학교 뒷산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했고, 5월이 되면 교정 안에는 라일락 꽃 향기가 가득해서 교실 안에서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때도 봄은 짧게 지나갔던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을을 싫어하는 반면, 봄이 되면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즐겁다.

미국 뉴저지의 겨울은 길고 봄은 짧다. 12월에 시작한 겨울은 3월이 지나서야 봄 기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니, 일년 중 삼분의 일이 겨울이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봄은 잠깐 머물다가 여름으로 바뀌고 만다. 올해도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마침내 봄의 기운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봄과 관련된 가곡을 들으면서 봄의 기분을 만끽했다. 이 봄을 맞는 마음은 한편은 반가우면서, 다른 한편 이 짧게 지나가고 마는 봄이 벌써 아쉽게 느껴진다. 왜 좋은 것은 그렇게 짧게 지나가는 것일까?

짧은 봄이지만, 4월이 되면 곳곳에 개나리가 피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봄에 피는 꽃들의 색깔에는 노란색이 많다. 개나리, 수선화, 그리고 민들레, 모두 노랗고 밝은 색으로 긴 겨울 추위 속을 웅크리고 지내온 사람들을 위로하듯 밝은 빛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4월 중순이 지나면 곳곳에 하얗고, 연분홍 목련이 피고, 벚꽃은 눈부신 눈처럼 나무를 덮는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꽃들은 신속히 지나가고 만다. 마치 내 청년의 시절이 그렇게 신속히 지나간 것처럼.

   
 

긴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이 되면, 마음 같아서는 꽃 나무마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장구를 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눈과 마음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하늘의 선물들에 감사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옛날 어릴 적, 봄이 되면 붉은색, 푸른색 옷을 입고 고깔을 쓰고 북치고 장구 치고 거리를 지나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봄을 맞은 즐거움의 표가 아니었을까?

가을이 가고 긴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의 계절이 다가 왔다. 이제 매서운 추위도 한결 눅어지고 바깥 공기가 부드러워짐을 느낄 수 있다. 또 다시 새 봄을 맞는다는 즐거움이 마음을 한결 가볍고 설레게 한다. 그런데 계절은 쉬지 않고 오고가고 또 오지만, 어느새 인생길의 먼 길을 지나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옛날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눈을 한 번 깜박이니 50이 되었고, 눈을 두 번 깜박이니 은퇴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가신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참 세월이 빠르다. 이제 머지않아 그 말을 내가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이 봄은 이 나이의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청춘의 삶을 사는 것과 나이 들어 사는 것은 똑같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마음이 가는 대로 무슨 일이든 좇아가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열정과 사랑은 젊은이들이 특권 아닌가? 생의 감격과 깊이를 가장 깊이 느낄 수도 있고, 다른 한편 가장 큰 좌절과 절망의 날을 보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허무와 좌절감은 20대 초반 대학 시절에 느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때 쓴 일기를 차마 또 읽기 싫어서 군 입대를 앞둔 날 마당에서 불태우고 떠났다.

나이 들어 사는 일은 조심스럽다. 무엇보다도 어디 가서 함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로서,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책임이 가볍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날들을 함부로 보낼 수도 없다. 이제 점점 줄어드는 날들을 아무렇게나 살 수 없지 않은가? 말 그대로 허송세월을 할 수 없다. 한 날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젊은 때는 여기 저기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서도 멀리 바다를 찾아가고, 산과 강을 찾아가며 고독과 자유를 함께 즐기며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멀리 가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행동반경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집에서 음악을 듣고 무언가를 읽고 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 다시 찾아온 봄은 항상 반갑고 즐겁다. 얼마 있으면, 이곳 여기 저기 꽃의 동산이 펼쳐질 것이다. 이곳 주 이름이 “Garden State,” 정원의 주(州)답게 많은 꽃과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하얀 목련꽃은 아기의 살을 닮았다. 나는 마당에 핀 민들레꽃을 좋아한다. 밝은 웃음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 좋기만 한데, 왜 여기 사람들은 그 꽃을 처치하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봄, 생명의 계절, ‘사월의 노래’ 가사처럼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을 기다리며 마음이 설레인다.

아름답지만 짧게 지나가는 계절, 봄은 무지개처럼 아름다우면서, 또 그 계절을 신속히 보내야 하는 눈물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짧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것 아닌가 싶다. 젊음의 날, 산과 들로 다니면서 자유와 젊음을 만끽했던 때가 어제처럼 살아있음에도, 생각하면 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한국에 가면, 옛날 고등학교 시절 그러했던 것처럼 경복궁 호수 옆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고 싶고, 대학시절 찾아 갔던 춘천으로 들어가는 길목 광대한 의왕 호수가 보이는 산장에서 오래 앉아 있고 싶다. 거기도 봄의 풍경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말로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 시가 시작한다. 반가움과 즐거움으로 이 찬란한 생명의 계절을 맞으면서, 다른 한편, 이 사월을 옛날의 마음으로 맞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조금은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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