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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2018년 07월 23일 (월) 15:31:14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기도 생활 속의 인내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마지막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9: 8)

오늘날 교회 안과 밖의 현실을 볼 때, 그 말씀이 종종 생각난다.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는 오늘날

정말 믿음을 지켜 살고 낙심하지 않고 기도생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주님의 탄식이다.

누가복음 본문 말씀의 말미에,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오래 참지를 못한다. 이 세대는 무엇이든 빠름을 인정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 비행기도, 자동차도, 달리기도, 컴퓨터도, 일의 속도도 빨라야 인정을 받는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엇을 오래 기다리고 참는다는 것은 우리 시대 정서와 맞지 않다. 이런 정서와 현상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오래 기다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다림을 고통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생활에 있어 빠른 응답을 기다리고, 그 응답이 더딜 때 답답함과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사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적지 않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기다림이 오래 되면 차라리 포기해야 기다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시대 믿음생활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고 본다. 이 시대 정서에 하나님이 따라 오시려면 얼마나 바쁘고 정신이 없을까? 본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하나님의 시간에 사람이 따라가야 하는 것인데 오늘날 교인들은 그렇게 느린 하나님을 참을 수 없고 믿을 수 없기에 이른 것 아닌가? 그러니 마지막 시대 믿음을 보겠느냐는 주님의 탄식이 이해될 것도 같다.

   
 

이 마지막 시대에 믿음 생활이 더 힘들어지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오늘날 시대 속에는 ‘주(Lord, lord)’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고백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데 있다. 이 ‘주’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뜻과 더불어 주인의 의미를 갖는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 주인은 종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권세를 가졌다. 왕도 백성의 생명을 주관하는 권세를 갖는다. 그런 시대에는 주인이나 왕을 모신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따르고 섬김을 필요로 한다. 자기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주인, 즉 성령을 속였다가 한 날에 죽고 말았다(행5: 1-10).

예수님을 주님으로 왕으로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께 우리의 생명을 걸고 따르고 섬김을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주인이 어디 있고 왕이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람이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고 모두가 자기 생명을 왕처럼 주관하며 살지 않은가? 과연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의식하고 따르고 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을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유익과 만족을 위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살고 있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들에게 일상의 삶 속에서 주인 예수를 의식하며 사는 일이 익숙할까? 우리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정말 내 존재와 삶을 주인 되신 예수님께 맡기고 살고 있을까? 정말 내 삶의 목적이 주인 예수님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야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들조차 정말 예수님을 주인으로 알고 살고 있을까?

정말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부르고 따른다면 내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일이 쉬운가? 우리의 가치와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주님인가? 우리 자신의 편리함과 유익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우리 자신에 묶여 살고 있다.

여러 신학자들이 타락의 핵심에 ‘자기 중심성’에 있다고 한다. 만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일이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삶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 16: 24). 신앙생활에서 제일 힘든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우리 조상의 타락 이후, 철저히 ‘자기 중심적 인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갈등과 불행이 이 자기 중심성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과거 역사 속에 주인이 있고 왕이 있던 시대에는 자기 존재의 이유를 주인과 왕에게 두고 사는 일이 가능했다고 본다. 비뚤어진 경우이지만, 오늘날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모든 영광을 그 지도자에게 돌리는 것을 보면 옛날 주인과 왕이 존재했던 시대에는 가능했을 거라고 믿는다.

교회는 이 주님을 가르치고, 주님의 뜻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러나 한 교회 안에서 진중히 배우고 따르는 일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모든 교인들이 자기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스승을 좇아 산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기 교회 안의 가르침을 온 마음으로 듣고 따르는 것 보다, 교회 안팎의 무수한 스승들과, 홍수처럼 쏟아지는 설교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고 추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신앙의 주체가 본인이요, 본인의 판단과 선택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몸은 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 자기 신앙의 스승은 멀리 다른 곳에 있다. 마치 가정생활을 하면서, 자기 정신적인 지주가 다른 가정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달리 표현하면, 교회 안의 영적 권위가 실종의 위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 세계의 여러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신학과 해석을 따라, 이렇게 저렇게 달리 말씀을 전하다 보니 모든 교훈은 어느새 상대적 가치를 갖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확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교인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신앙생활의 주체가 교인이 되어 간다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교회 안에 교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주체는 교회 안의 영적 지도자에게 있다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

가정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아버지는 다른 곳에 계신 아버지요,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대상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가정생활은 어떤 모양을 할까?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모두가 선생이요, 훈수를 두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어려운 시대를 만나 교회생활, 목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몇 가지를 추려 말하면 이 마지막 시대 교회생활,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는 시대의 조급한 정서와 더불어 하나님의 진리를 상대적으로 듣지 않을 수 없는 교리와 신학의 혼란에 그 이유가 있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만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보고 판단하려는 타락 이후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다.

정말 ‘주인’ 예수를 믿는가? 그를 주인으로 따르는가? 아니면 사람 자신이 만사를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 자기 수준, 자기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어떻게 믿고 살아가든 판단은 거기에 있다. 정말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따르는가?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주님 안에서 찾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만족과 성취 속에서 찾고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영광과 뜻을 구하고 있는가? 자기 편리한 삶의 체계를 좇아 살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따라 살고 있는가? 내 욕망의 소리인가? 주님의 말씀인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 27-28).

영생은 참 목자를 듣고 따르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선택하는 소리, 내 주장을 듣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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