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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 자처럼
2018년 05월 30일 (수) 10:43:27 장경애 객원기자 jka9075@empal.com

장경애 사모 /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어느 날 아침에 우연히 보았던 TV의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남자는 굴러다니는 배구공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사고로 인한 상처에서 나온 자신의 피로 그 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 넣고는 그 공을 친구로 삼는다. 그리고 그는 대답 없는 대화를 그 공과 하면서 갈등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 화가 나면 공을 내 던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공에게 사과를 하며 진짜 사람에게 하듯 애정을 쏟는다. 눈물 나는 장면이었다.

인간은 이처럼 혼자서는 도저히 외로워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상대할 대상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하다못해 무생물이라도 있어야 사는 존재이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것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혼자서는 진정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만 사람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 때문에 살 수 없다고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도리어 살아가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

한자로 사람을 칭하는 ‘사람 인()’ 자를 보면 참으로 재미있기도 하지만 오묘한 진리가 숨어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자라는 것이 원래 뜻글자로 단어마다 그 모습을 보면 경이롭지만 특히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인()’ 자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 인()’자는 아주 간단한 글자여서 누구나 쓸 수 있고, 이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간단함 속에는 너무도 깊고 오묘한 철학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사람 인()’자는 작대기 두 개가 서로 붙어서 지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글자다. 어쩌면 그 붙어 있는 모습이 우리의 인생을 말해주는 듯하다. 혹자는 이 ‘사람 인()’ 자의 모습이 나와 남이 서로 지지하고 돕는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수직으로 똑바로 서있는 획이 아니다. 서로가 자신만만하게 곧게 서있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겸손한 자세로 마치 너 없으면 나는 쓰러짐을 전제로 하는 모습이다. 마치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너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다는 듯 서로를 받쳐주며 두 개의 획이 서로 한개 점에 붙어 다른 한 획을 지탱해 주는 모습이 훈훈함을 더해 준다.

한 쪽이 힘들어 더욱 기댄다면 나머지 한 쪽이 그것을 받아 힘 있게 힘을 공급하여 쓰러지지 않게 한다. 만일 힘의 균형이 깨진다면 한 획이 바닥에 누워버리게 되고, 그리고 나면 나머지 한 획도 바닥에 누워버리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사람 인’자가 될 수 없다.

두 개가 서로 누워버리면 ‘둘 이(二)’자가 되든지 아니면 함께 포개져 하나라는 뜻의 ‘한 일()’자가 된다. 혹 서로 제각각 아무렇게나 떨어져 글자로서의 자격이 없어질 수도 있다. 이렇듯 서로를 밀어주며 균형을 잃지 않고 붙어있는 ‘사람 인’자의 글자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최초로 만드실 때에도 아담만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담을 창조하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시고 함께 살게 하셨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혼자서는 바로 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한 마디로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인간 갈등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균등이 깨질 때 오는 원인이 크다.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give & take 원칙. 이것이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 바로 ‘사람 인’자이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원칙을 말하는 것은 야박한 것이라고, 많이 주라고 한다. 그렇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렇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로를 지탱해주고, 균등을 이루는 원칙은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가깝다는 부부관계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적용되는 도리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 내용의 성질은 다를 수 있다. 물질을 주면 정신을 받기도 하고 정신을 주고 물질을 받기도 하고, 혹 시간을 받기도 한다. 어떤 이는 줄 것이 없다고 할지모르지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훈훈한 마음이라도, 애끓는 사랑이라도,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누구를 막론하고 줄 것이 반드시 있다. 그렇기에 한 쪽의 희생과 봉사를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기적인 요구요, 어쩌면 사람이기를 포기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 적어도 넘어지지 않을, 깨지지 않을 정도의 균형은 가지고 있어야 사람인 것이다.

내가 힘에 붙일 때 나를 지탱해주고, 네가 힘에 겨울 때 내가 지탱해서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면 그것은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모습이 아닐까?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 인() 자’의 진수를 알게 하는 훈훈한 이야기로 글을 맺으려 한다.

어느 날 눈먼 사람 하나가 혼자서 험한 길을 가고 있었다. 눈은 보이지 않고 길은 매우 험하여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로 험한 길을 가려고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인기척을 듣고 그가 지체장애인인 줄 모르고 “여보시오 나는 앞이 안 보여서 그러니 좀 도와주시겠소?”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지체장애인은 “당신은 눈이 안 보이지만 두 다리는 튼튼하지 않소.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나를 도와줄 수는 없겠소?”라고 했다. 피차의 사정을 알고 서로 딱하게 느끼던 중 그가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면 서로가 어려운 형편이니 우리 서로 힘을 모아 봅시다. 당신이 나를 업으면 나는 당신의 눈이 되고, 당신은 내 발이 되어 함께 갈 수 있지 않겠소?” 그러자 맹인이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합시다”라고 응답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험한 길을 안전하게 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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