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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삼/돈 이야기] 돈에 대한 (그릇된) 믿음
2018년 05월 17일 (목) 17:25:05 권영삼 목사 032kwon@naver.com

권영삼 목사/ 광교사랑의교회 담임

   

▲ 권영삼 목사

단언컨대, 세상에서 불신자는 없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수를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믿음이 있다. 그에겐 주먹이 믿음이다. 신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억센 고집도 믿음이다. 고집이 믿음이다.

돈만 있으면 된다, 이것도 믿음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갖고 싶은 믿음이다. 그 믿음을 갖고 사람들은 돈을 벌러 오늘도 직장과 사업장 그리고 일터로 나간다. 주부들은 어떻게 하면 가정에서 돈의 지출을 줄일까 하는 묘책을 짜내느라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돈교’는 이렇게 곳곳에 널린 준비된 신자들을 불러 모으며 왕성하게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몇 년 전, 신혼부부를 상담하면서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신랑은 돈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했다. 당시, 더 좋은 직장에서 현재 연봉의 배에 근접한 금액을 약속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문제는 주일성수였다. 부모님이 장로와 권사일 정도로 모범적인 신앙 가정에서 자란 까닭에 처음엔 당연히 거절했다. 하지만 연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돈 앞에 그가 쌓아온 믿음이 흔들린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부모님의 판단은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법인데 조금 고생하다가 나중에 승진하면 그때 가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되지 않겠니?”라고 충고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신랑은 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돈이 권력이다. 돈이 곧 사회규범이요, 상식이다. 돈이 가치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심지어 신앙조차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었다. 돈은 억지로 믿음을 요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신실한 신도들이 불일 듯 일어나고 있다. 자고로 돈교의 부흥이다.

돈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이지 않는 몇 가지 믿음이 있다. 물론, 이 믿음은 신앙적인 믿음이 아니다. 돈교 믿음에 불과하다. 다음은 돈에 대해 간직해온 돈교 신도들의 몇 가지 믿음이다.


1. 돈으로 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믿음이다. 그 믿음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요, 더 위신이 설 것이라는 믿음의 단계까지 올라간다. 종국에는 나야말로 멋지고 매력적이며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라는 ‘내가복음’ 1장 1절을 완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은 그 존재로서 중요하지 돈 때문에 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돈이 많을수록 열등감이 많아지고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게 된다. 요즘, 돈과 돈으로 만든 지위를 이용한 갑질로 사회문제가 된 한진그룹 사태를 보면서 돈이 얼마나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지 모두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에서 돈 많은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일어났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려할 만한 차별이 있었던 것이다. 값비싼 옷을 걸친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주고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허름한 차림의 가난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말석에 앉히거나 서 있게 하는 등 무시와 냉대로 일관하였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 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 2:2-4).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금가락지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예배 시 존경받는 자의 자리에 안내되었다. 금가락지는 당시 로마 사회 상류층의 상징물이다. 반지 위에는 비둘기나 닻 문양이 새겨져 있어 결재할 때 도장으로 사용하였다. 아름다운 옷은 로마 원로원이 입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의복이다.

그런데 교회 안내위원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 여겨 보았다. “눈 여겨 본다”(pay special attention to, NASB)는 말씀은 원어적으로 “호의를 가지고 주목하여 본다”는 뜻이다.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가 좋은 자리로 안내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눈 여겨 본다는 말씀이 없는 것으로 보아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또는 아예 서 있도록 방치했다. 심지어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Sit on the floor by my feet, NIV)고 권했다. 발등상(ὑποπόδιόυ)은 의자 발싸개 또는 ‘발아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안내위원이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홀대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만일, 이 교회에 예수님이 방문하셨다면 어떤 대우를 받으셨을까? 분명 발등상 아래로 인도받았을 것이다.

야고보는 이 모습을 무섭게 질책했다.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 2:4).

이 표현은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사법(rhetoric)이다. 사람을 편파적으로 차별하는 태도는 악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은 재판자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추상같은 말씀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재판 자리에 스스로 올라서는 것과 같다. 차별이 교만의 선봉장이 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차별 없이 심판하시는데 그 안내위원은 사람을 차별하면서 심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돈으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똑같다. 성도는 수직이 아닌 수평의 눈을 가져야 한다. 사람을 높낮이로 볼 게 아니라 대등하게 보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돈 많은 사람도, 돈 많은 사람을 바라보는 돈 없는 사람도 내 가치는 돈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 하나님은 돈보다 마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마음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신앙은 행함이 있어야 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약 1:17, 2:26). 돈과 관련해서는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돈으로 하는 행위보다 마음을 아신다며 지갑을 여는 행위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까닭은 이 말씀 앞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1:14-17).

어느 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아프리카에 글자 한자도 모르는 60대 남자가 살았다. 글자를 모르니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자기 땅인지, 그 땅의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기가 막히게 안다는 것이다. 재물이 있는 곳에 노인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있다면 돈을 써야 한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갑을 찢는 행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돈을 뜯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겁게 돈을 뜯겨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도는 스스로 하나님의 좋은 일을 위해 돈을 상납한다. 돈으로 하는 행위에 마음이 들어 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3. 하나님을 신뢰하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면 필요한 돈은 얼마든지 공급받을 있다는 생각도 돈에 대한 일종의 믿음이다. 일생에 오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를 예로 들면서 사람들은 돈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러면서 2천 명이 넘는 고아들을 기도로 양육했기에 조지 뮬러 같은 기도의 능력이 없음에 열등감을 느낀다. 정말 그럴까?

조지 뮬러는 기도 못지않게 행함을 강조한 인물이다. 그의 어록에는 유난히 기도와 병행하여 인간의 행함을 강조한 내용이 많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라. 그와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하고, 가능한 한 인내하고 참으면서 일해야 한다.”

먼저 기도하고 나서 일하라. 그렇게 일평생 노력하라. 그러면 마침내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 자세로 노력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자녀 된 우리의 행동과 상황에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돈에 관해서도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다해야 한다. 가만히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행위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를 돌보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알기에 우리는 모든 염려에서 자유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핑계로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무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돈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돈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잘 붙들어야 한다. 돈에 헛된 믿음을 타파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참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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