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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빛 칼럼 ] 나라와 권세의 문제
2018년 05월 09일 (수) 10:31:47 김희건 dockimus@naver.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나라, 곧, 통치와 권세는 인간의 삶이 시작된 이후, 항상 중요한 주제와 관심이 되고 있다. 멀리 인간의 타락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돌려야 할 통치와 권세를 사람이 차지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는 분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스스로 왕으로 살려는 것이 타락의 동기와 시작이었고, 인간의 삶과 역사는 그런 잘못된 생각의 연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결과 사람은 혼돈과 갈등 속에 살게 되었다.

문제는 하나님께 돌려야 할 통치와 권세를 사람이 차지할 때, 어떤 삶, 어떤 역사를 살아가는가? 그것이 지나간 인간의 역사(歷史)라 할 수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 그를 진정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우상 또는 악의 세력인가? 성 어거스틴과 루터,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은 결코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마귀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이 루터의 <노예 의지론>에 잘 기술되어 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요, 실천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 이유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주인처럼 살 수 없다는 체험적 진실을 깨닫고, 돌이켜 자기 생을 예수의 통치 아래 드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왕으로, 또는 목자로 모시고 사는 삶 속에서 진정한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우상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돈이 권력이요, 힘이 우상이 된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참 왕으로 모시고 그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 이런 신앙인의 삶은 하루하루 우상 숭배의 현실 속에서 충돌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세상은 여전히 사람이 주인 노릇하며, 돈과 권력을 우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고백하고 그 통치와 인도하심을 바라며 사는 일은 갈등과 고난을 피하지 못한다.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나, 자기 스스로 사는 사람에게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자기 삶의 통치를 맡기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주인처럼 산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가 가장 가치를 두는 그것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끌려간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혹, 돈일 수 있고, 쾌락과 성취일 수 있다. 하나님 아닌 그런 대안을 성경에서는 우상으로 정의한다.


우상 숭배의 결국은 파괴와 황폐함이다. 이는 과거 역사 속에서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볼 수 있다. 과거 신전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과거 신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 이외 다른 신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철저히 파괴하시고, 스스로의 이름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은 그런 우상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상은 필연적으로 멸망에 이른다. “내가 너의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의 중에서 멸절하리니”(미 5: 13).

   

▲ⓒpixabay.com / Papafox /crown-2924543_640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이런 우상 숭배의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진정한 왕으로 고백하며 살고 있다. 오늘도 살아 계셔서,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왕과 목자가 되어 주신다. 욕망과 다툼으로 소용돌이치는 현실 속에서 믿는 사람들은 하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믿고, 그에게 맡기고,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돌봄 속에서 안전과 평화,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아무도 그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요10: 28). 계시록 말씀을 보면, 이 믿는 무리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 묘사한다(계14: 4-5). 이런 삶은 거저 되는 것 같지 않다. 날마다 목도하는 거짓과 탐욕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풍조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믿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투쟁의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다. 손쉬운 성취를 위해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과 탐욕이 쉽게 통용되는 세상 속에서 의와 진실을 지켜 살려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교회 안의 거짓과 탐욕의 사람들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야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진리에서 소외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안,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는 사람들이 우리 왕의 다스림보다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 유익을 앞세워 사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할 교회 안의 지도자들이 돈과 권력을 의존한다는 인상을 받게 될 때, 어떻게 그들을 이해, 수용할 수 있을까?


교회 안에서 가장 척결해야 할 사항은 “거짓과 탐욕”이라 할 수 있다. 거짓의 무서움은 그것이 마귀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마귀를 가리켜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다. 마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살인과 거짓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온갖 미움과 속임이 흘러나온다. 겉으로 참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고, 법을 빙자해서 거짓을 진리로 포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갈등할 일이 없다. 그의 뜻을 좇아 살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갈등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앞세우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을 내맡기고 사는 삶의 열매는 평강이다. 나 자신도 갈등의 한 가운에서 빠져 나오는 비결은 “주님이 통치하신다.”는 이 믿음이다. 그가 통치하시기에 나는 잠잠히 거기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통치하시고, 그가 구원하신다.”는 이 성경적 믿음이 많은 갈등과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잠잠케 한다. 내가 내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기 때문에, 나는 그 상황 속에서 잠잠할 수 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9: 6).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나라와 나라가 모두 갈등 속에 사는 것 같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의 믿음 안에서 찾고 누리는 평안이다. 이 천년 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는 이 현실을 살아가는 참 신앙 고백과 지혜가 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께 있나이다.” 모든 갈등과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야 할 나라(통치), 권세, 영광을 사람이 스스로 차지하려는 데서 파생된 것이 아닌가? 오늘도 이 고백과 기도 속에서 믿는 이들이 하늘의 평강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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