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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칼럼/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할아버지
2018년 04월 11일 (수) 16:45:13 장경애 객원기자 jka9075@empal.com

장경애 사모 /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사람들은 무슨 일을 갑자기 당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불쑥 외마디 소리가 튀어 나온다. 그것은 비명과 같은 것으로 주로 “엄마!”라는 외마디다. 가끔은 ‘아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서는 ‘엄마’라는 소리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이 외마디는 생각하고 내지르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갑자기 튀어나오는 심중의 감탄사 같은 것이다.

그런데 좀 다른 외마디 소리도 있다. 다름 아닌 “에구, 주여” 혹은 “아버지"인데 이런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하며 “아버지” 혹은 “주여”라는 말을 조용히 입에 담고 사는 사람도 있다. 남편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남편은 어릴 때부터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을 통해 배운 듯 자주 ‘(하나님)아버지’를 찾으며 하나님을 묵상하곤 했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그 날도 남편은 조용히, 그러나 애절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그런데 그 때 딸이 그런 자기 아빠의 모습을 자못 진지하게, 그리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남편과 같은 모습으로 긴 한숨을 내쉬면서 아주 애절하게 “할아버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평소 자신의 할아버지를 찾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기에 이상하여 갑자기 할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내 딸은 상상을 불허한 기상천외 한 말로 답을 하였다.

딸의 말은 이러했다. 아빠가 힘들 때나 설교 준비 하실 때나 언제든지 자주 ‘아버지’를 부르는데 자기도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주 아버지를 부르는 아빠 모습이 딸 마음에 합했고 또 좋아보였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아빠의 아버지는 자기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니까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딸의 대답에 우리 부부는 박장대소 하고 말았다. 사실, 맞는 말이지 않는가? 아빠에게 아버지가 되면 딸에게는 할아버지니까. 우리는 웃었지만 딸은 그만큼 신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딸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 같은 하나님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이 외할아버지로부터 너무도 큰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에게는 딸이 첫 손주였다. 그렇지 않아도 손주는 무조건 예쁘다던데 맏딸이 낳은 첫 손주였으니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런 사랑을 받은 딸은 사랑의 하나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할아버지의 사랑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의 딸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더 크고 좋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보다는 할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어디로 보나 너무도 당연하고 더 자연스럽고 쉽지 않았을까?
 

   

ⓒpixabay_com / geralt / cross-2713356_640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은 모두 잠재의식에 저장되다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한다. 성경에는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해 여러 각도로 많이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심코 뱉는 말도 하나님 앞에 모두가 쌓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급했을 때 불쑥 튀어나오는 외마디 말은 어떠한가?

평소에 믿음이 좋은 사람이 급한 일을 당하면 대체로 “에구, 주여” 혹은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입으로 하나님을 자주 찾는다고 잘 믿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 아버지’라는 단어가 입에서 자주 튀어나온다면 늘 하나님을 생각하고 갈망하는 사람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외마디는 평소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서 순간 튀어나오는 말이다. 가식을 섞을 단 일초의 순간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게 하는 거울이 그 사람이 소리 지르는 순간의 외마디다. 비록 외마디일망정 삶 속에서 형성된 마음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평소의 삶과 생각이 추하거나 상스러웠다면 그 사람의 외마디 말도 추하고 상스러울 것이고, 그의 삶이 온유하고 고상하다면 그 사람의 외마디 말 역시 부드럽고 고상할 것이다. 이처럼 평소에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이 더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거울일 것이다.

누가 지어낸 유머라고 말하기에는 생각할 것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예수 잘 믿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이 할머니는 언제나 누구를 보든지 그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늘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감사할머니"였다. 어느 집에 우환이 생겨도, 심지어는 사람이 죽었을 때도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리는 소방차를 보았다. 이 할머니는 혹시나 ‘내 집이?’ 라는 생각 속에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는데 정말 자신의 집에 불이 난 것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이 할머니는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성경 찬송이 든 가방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털썩 주저앉아 “에구, 망했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이 할머니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을까? 믿음이 좋았다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아니더라도 “에구, 주여.” 라든지 “에구, 아버지.”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외마디를 제어할 능력은 우리에게는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그분을 늘 생각하고 산다면 나의 생각과 말을 주장해 주실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 “할아버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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