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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수 바른말 ] 염치불고(廉恥不顧)
염치불고(廉恥不顧) : ○ / 염치불구(廉恥不拘) : ×
2018년 03월 05일 (월) 11:14:16 김준수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준수 목사 / 밝은세상교회 담임, 카리스바이블아카데미 대표

   
▲ 김준수 목사

‘염치불고’(廉恥不顧)는 한자깨나 안다는 사람도 자주 틀리는 말이다. ‘염치불고’란 문자 그대로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언가 자기의 의사 표시를 할 때 상황이 딱하고 어쩔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안함과 쑥스러움을 나타낼 때 쓰이는 사자성어다.

이 말은 원래 ‘불고염치’(不顧廉恥)라는 말에서 나왔다. ‘불고’(不顧)는 ‘아니 불’(不)과 ‘돌아볼 고’(顧)자로 이루어진 말이다. 의미 그대로 ‘돌아보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염치불고’는 ‘불고염치’와 똑 같은 말로 둘 다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염치’(廉恥)는 양심이 있어 스스로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컫는다. 이 말은 일상생활에서 대화할 때 ‘염치없이’, ‘염치없게도’, ‘염치없게시리’라는 어법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표현들은 체면을 구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므로 불가불 이야기하겠다는 완곡어법이다.

‘불고’(不顧)는 말 그대로 돌아보지 아니함을 뜻하므로, ‘염치불고’(廉恥不顧)라 함은 말하는 사람의 체면이 손상되고 계면쩍으며, 상대편이 이미 알고 있는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속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속내를 표시해야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쓰일 수 있다.

“염치불고하고 한 말씀 올립니다만, 제가 빚을 갚을 능력이 당분 간 없으니 빌린 돈을 이자 없이 5년 후에 갚으면 안 되겠는지요?”

‘염치불고’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나올까?

나오지 않는다. 흔하게 쓰이는 이 말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작 등재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 이 말이 표준어이면서도 아직 ‘완전한 표준어’로 확정되지 못한 까닭은 이 말이 ‘불고염치’를 사전에서 밀어낼 만큼 숙성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고 해서 이 말을 표준어가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많은 작가들의 표현에서 이 말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다소 어정쩡하지만 ‘이상한 표준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염치불고(廉恥不顧)를 스스럼없이 ‘염치불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매스컴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나 앵커우먼, 패널로 출연하는 전문가들, 법조인이나 교수 등 유식한 사람들도 ‘염치불구’라고 말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추측하건대 이런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염치불고’라고 말하는 까닭은 시중에 ‘…에도 불구(不拘)하고’라는 워낙 흔하게 쓰이는 말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자나 우리말에 정통한 지식이 없으므로 아무런 생각 없이 갖다 붙여 너무나 자연스럽게 ‘염치불구(廉恥不拘)하고’라는 괴상한 신조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기에 ‘체면불구하고’라고 하는 말까지 더하여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더욱이 중학교 때부터 신물 나 게 영어 단어와 숙어를 공부해 온 기성세대는 구(句)인 ‘in spite of’나 ‘despite of’, 혹은 절(節)을 이끄는 ‘though’나 ‘although’를 ‘…에도 불구하고’라고 밥을 먹듯 외워 왔던 터다.

그리하여 조금도 의심할 것도 없이 “염치불구하고 제가 한 말씀 올리면”, “이 재판정에 피고인으로 섰지만, 재판장님께 염치불구하고 한 말씀 올리자면” 등의 표현이 도떼기시장이나 점잖은 법정이나를 가리지 않고 도처에서 남발되고 있다.

이 기회에 ‘염치불구’가 아닌 ‘염치불고’라고 확실하게 알아 두는 게 어떨까?

‘체면불고’라는 말도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색하므로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겠다.

필자가 알기로는 ‘염치’라는 말은 신구약성경에서 딱 한 번 나타난다. 그만큼 이 단어는 조심스럽다. 다윗 왕이 우여곡절 끝에 법궤(언약궤)를 다윗 성에 들여왔을 때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법궤 앞에서 옷을 벗은 채 뛰놀며 춤을 추었다. 그것을 목격한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행동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궁전에 돌아온 다윗에게 많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었다”며 빈정거렸다. 다윗은 그런 미갈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하나님도 미갈의 언행을 옳지 않게 여기셨다. 그런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얻지 못했다(사무엘하 6:14-23).

성경에는 ‘염치’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말을 적절히 쓰면 오히려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는 성경 구절들이 몇 개 있다. 예를 들면 소돔의 멸망을 저지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생떼를 쓰는 기도(창세기 18:30), 다윗 왕에게 보살핌을 받는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의 겸양스러운 진언(사무엘하 19:28),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후 제물에 대한 아론의 발언(레위기 10:19),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는 잠언의 말씀(13:5) 등이 그러한 예다.

‘…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도 성경에는 드물게 나타난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사무엘상 1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느헤이먀 13:18).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전도서 7:15).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이사야 25:11).

문학에서 빈도가 높은 이 말을 성경에서는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새벽기도를 하다가 문득 이 ‘염치불고’란 사자성어가 은혜로움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고 때로는 죄를 짓는 연약한 인간이다. 필자도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죄를 짓는 사람인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염치불고’하고 그분 앞에 다시 나아가 보는 것이다.

내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두 번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용기마저 없지만, 주님의 보혈이 나를 덮을 때 이상하게 용기를 얻어 또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사람들끼리는 몇 번 실수를 범하면 두세 번은 ‘염치불고하고’ 얼굴을 내밀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면목이 서질 않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람끼리는 체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에게서는 완전한 은혜를 기대할 수도 없고 누리지도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완전한 은혜를 기대해도 되고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요한일서 1:9)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또 다시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 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는”(시편 100:4)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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